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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찬송에 대하여 (골 3:16-17)

작성자호현낙선|작성시간26.06.14|조회수2 목록 댓글 0

찬송에 대하여 (골 3:16-17)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오늘은 찬송에 대하여 배우는 시간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다 할지라도 찬송하며 산다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을 찬미하다가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매인 사슬이 다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절망의 감옥 속에 있다할지라도 찬송을 부르면 거기서 해방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론으로 찬송이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노래와 음악이 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만이 찬송입니다. 아무리 가사가 좋아도, 곡이 좋아도, 작곡자가 유명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면 찬송이 아닙니다. 찬송의 생아 분명해야 합니다. 사42:8에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찬송가일지라도 내 흥을 위하여 부르면 찬송이 되지 못합니다. 내용만 찬송이었지 결국 나를 위한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시편 137편을 보면 바벨론에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이 그것이었습니다. 읽어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시137:1-6)

 

이방인 앞에 찬송 부르는 것이 뭐가 나쁩니까? 그러나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한 말씀처럼 그들의 흥미를 위한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입니다. 은혜 받기 위하여 찬송한다는 말을 쓰지만 엄밀히 따지면 옳은 표현이 아닙니다. 찬송하면 은혜를 받지만 내가 은혜 받기 위해서 부른다면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다는 마음으로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찬송을 들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2. 찬송은 하나님의 은혜를 칭송하고 자랑하는 노래입니다.

 

찬송을 뜻하는 구약의 히브리어 단어들 중 핵심적인 “할랄”(halal)은 “자랑하다, 칭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의 문자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덕을 칭송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란 자녀에게만은 인정받고 칭찬 듣고 싶은 심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지 내 자녀들이 부모를 인정해 주면 부모의 마음은 충족합니다. 반면 가족들에게 버림 받는다면 그것처럼 슬픈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 자녀들의 찬송을 기뻐하십니다. 엡1:5-6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찬송을 부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이 그치거나 찬양이 타락하면 믿음도 그치거나 타락하게 됩니다. 겔28:13에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하신 말씀대로 천사장 루시퍼에게 온갖 아름다운 복을 주셨고 찬양을 하게 하신 찬양을 맡은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음악이 타락이란 무서운 결과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영적 싸움도 노래의 싸움입니다. 찬송이 이기냐? 세상 노래가 이기냐? 이걸 모르고 교회에서 세상 노래 부른다면 철부지여도 한참 철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여호와라고 했듯, 사탄도 세상 노래 중에 나타납니다. 춤을 추기 위한 반복적인 리듬을 가진 음악을 록음악이라고 합니다. 이런 록음악 가수들이 집회를 열면 사람들이 쓰러지고 환상을 보고 귀신에 들리고 죽기도 합니다. 슬픔의 노래를 부르면 슬픈 사람이 되고 자기 믿음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노래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찬송은 우리의 신앙고백이요 간증입니다.

 

시편 23편 다윗의 시를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3) 이처럼 찬송은 신앙고백이요 간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구절이 아니어도 복음의 내용 안에서라면 찬송가 가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찬송으로 영광 돌리고 싶어 찬송을 찾을 때 적당한 찬송을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찬송을 많이 알지 못해서도 그렇지만 찬송가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찬송가에 신앙고백이나 간증류의 찬송은 많지만 하나님에 대한 찬송도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에 대한 찬양은 많은데 거기에 비해 성부와 성령과 삼위일체에 대한 찬양은 너무나 적습니다. 그래서 찬송가로는 부족하여 건전한 복음송에서 보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총회 예배모범 제4장 시와 찬송 중에 3항을 30년 전에 제정했는데 거기에 대한 유권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공식 예배 때에는 찬송가에 한하여 부르라고 한 것에 대한 규정인데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예배시간에는 찬송가 외에는 아주 불러서는 안 되는 건지, 그러나 이 조항은 목사가 예배를 진행함에서 찬송가 부를 시간에 복음성가를 채택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노회에 수의할 때 그 생각으로 찬성했고, 타노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복음송이 찬송가 자리마저 차지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그런데 이것을 확대해석하여 성가대나 특송이나 특별집회나 설교의 간증에서까지 제한한다면 상당히 곤란하고 답답한 일이 발생할 수 있고, 부흥을 가로막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가대가 성가집으로 찬양하면 불법이 되고, 예배 전에 복음송도 할 수 없고, 설교 중에 부흥사가 복음송 한 마디만 해도 불법이 된다면 이건 심각한 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는 이를 확대해석하지 않고 성가집이나 복음송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구태여 이걸 말씀하는 것은 혹시라도 우리 중에 너무 고지식해서 그 조항의 제정 의도를 알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확대 해석해서 공동체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경에 비추어 잘못된 조항이라면 그것을 따르지 않을 양심의 자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성가는 물론 찬송가일지라도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엄선해서 찬양을 골라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은혜 받은 말씀을 찬송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다윗과 같은 음악가들도 많이 나오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찬송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 하는 나팔입니다.

 

히13:15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했습니다. 본문 골3:16-17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한 것처럼 말씀의 꽃이 찬송입니다.

 

5. 찬송은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합니다. 

 

시100:4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했습니다. 찬송은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찬송함으로 그 문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찬송 많이 부르면 깊은 영적 은혜 가운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찬송하면 다윗처럼 담대하고 영적 장자 유다지파처럼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300명의 승객을 태운 영국의 여객선이 대서양에서 암초에 충돌하여 죽음의 공포가 사람들에게 몰아닥쳤습니다. 그때 한 소녀가 386장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이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찬송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배 안은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우렁찬 찬송 가운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고 행복한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찬양의 위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요, 하나님의 은혜를 칭송하고 자랑하는 노래입니다. 찬송은 우리의 신앙고백이요 간증이요, 하나님을 증거 하는 나팔입니다. 그리고 찬송은 우리의 결박을 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찬송하지 않는다면 소용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마음을 다해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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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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