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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스크랩] 일체의 비결 (빌 4:11-20)

작성자호현낙선|작성시간26.06.10|조회수3 목록 댓글 0

일체의 비결 (빌 4:11-20)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이 시간에 “일체의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마을에 부자가 있었는데 한 번은 투자를 잘못해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은행에 잔고를 조회해 보았더니 십억 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자 아들이 없으므로 그 유산이 조카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조카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조카가 뜻밖에 큰돈이 주어지자 그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똑같은 돈인데 한 사람은 너무 적다고 죽고, 한 사람은 너무 많다고 죽었습니다. 즉 백만장자였던 사람은 비천에 처할 줄 몰랐고, 어렵게 농사를 짓고 살았던 조카는 풍부에 처할 줄 몰랐습니다. 만약 그들이 평소에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다면 그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11-13절에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물질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이런 일체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1. 일체의 비결은 주님의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11-12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여기 배웠다는 말이 2번이나 나옵니다. 누구에게서 배웠을까요?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주님에게 배웠는데, 고전11:1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았"(고전11:1)다고 한 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고 본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족”이란 헬라말로 ‘아우타르케스’, 이 말은 모든 조건에 완전하게 맞출 수 있는 마음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여건에서든지 거기에 맞춰가며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주님을 생각하면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하늘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본체이신 주님이 나를 위해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걸 안다면 우리가 좀 어렵다고 무슨 불평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걸 알면 낮춤 받아도 만족함이 찾아옵니다. 배고픔도 괜찮고 배불러도 괜찮고 풍부해도 괜찮고 궁핍해도 괜찮고 비천도 괜찮고 존귀도 괜찮습니다.

 

약1:9-10에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했습니다. 낮다고 좌절하거나 열등감 갖지 말고 예수 안에서 영광의 자녀요,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는 큰 자임을 알고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한 자가 시험을 당했을 때 하나님이 자기의 낮추심을 감사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돈만 붙잡다가 지옥 갈텐데 천국 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잘했어도 칭찬 안해 준다고 서운해 할 것 없습니다. 하늘의 상을 빼앗기지 않게 해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도시교회라고 의댈 필요도 없고 농촌교회라고 실망할 것 없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충성하면 하늘의 큰 상을 동일하게 혹은 더 크게 주십니다. 헌금도 기쁨으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부자의 헌금보다 더 크게 보십니다.

 

눅9:58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이러하신 주님을 바라보면 감사를 넘어 죄송할 뿐입니다. 우리가 주님보다 몇 배 더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하면 어떤 고난도 고난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2. 일체의 비결은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이 승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밀은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바울처럼 많이 배우고 바울처럼 땅의 시민권과 하늘의 비밀을 많이 안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자만하려면 얼마든지 자만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주를 위한 고난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랑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겸손한 그 비밀은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잠16:32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했듯이, 자기를 이기는 능력이 가장 큰 능력입니다. 병 고치는 것도 능력이지만 말씀대로 사는 것이 더 큰 능력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씀대로 살까 고민하지만 그 비밀은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36:27에는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하셨습니다사11:2-3에도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랬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스스로 놀랄 만큼 겸손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5:9에서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했고, 딤후1:15에서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했습니다.

 

프란시스의 한 제자가 기도하다가 영적으로 하늘로 들림을 받는 체험을 하는데, 그는 하늘에서 수많은 영광스러운 보좌들을 보았습니다. 그중에는 유난히 빛나는 보좌가 있어 물어 보니 그 자리는 루시퍼 천사가 타락하기 전의 자리였는데 “그의 자리에 이제 겸손한 프란체스코가 앉게 될 것이다.”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환상에서 깨어난 제자는 알면서도 프란시스가 어떻게 대답하는지 알기 위해 "형제님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프란시스는 "나 스스로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네." 그가 스스로 가장 작고 가장 악한 자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능력을 크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능력 받았다고 교만하다면 그 사람은 진짜 능력하고 거리가 먼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3. 일체의 비결은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 믿음만 있으면 어디에 던져 놔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공급자로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도하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던 지역인 빌립보 교인들입니다.

 

14-16절에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자기들을 위해 당한 그 고통을 잊지 못하다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꼭 죄수가 되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느냐면서 다 돌아섰으나 그들만은 바울을 잊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잊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에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정말 감옥에서 풍부해서 이렇게 말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당당함이었습니다. 부자가 아닌데 부자라고 남이 그러면 속상해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고 '그래 부자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다' 라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구하지 말고, 그보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에 대 공황이 왔을 때 시카고 남부의 흑인들은 하루하루 연명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환한 얼굴로 춤추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감명을 받은 기자가 묻자 "우리는 찬양할 수 있는 예수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대답에 많은 성도들이 "아멘!" 하면서 영광 돌렸다고 합니다. 돈은 없어도 예수님이 그들의 보배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풍부에도 처할 줄 알고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분이십니다. 바로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때 우리들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 바라보고, 나를 변화시키는 성령의 큰 능력을 구하고, 그리고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더욱 사명 잘 감당하고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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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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