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3]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전하는 두 가지 소식 (빌 1:12~26)
- 설교 : 김태환 목사
빌립보서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사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복종과 기쁨의 봉사를 통하여, 구원함을 받고 이 복음을 봉사하는 일군으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글입니다. 바울은 이 짧은 편지글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마게도냐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시초부터 바울의 복음 사역에 함께 하였고,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로 감옥에 갇혀있는 지금도 에바브라디도를 파송하여 바울을 돕고 섬김으로 복음 안에서 함께 교제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의 교제가 없었기 때문에 복음의 교제를 힘쓰며 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힘써 왔던 복음의 교제가 더욱 풍성하고 가득하기를 바라고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행한 복음의 봉사와 교제를 인해서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제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그들을 볼 것을 소망하면서, 먼저 이 편지글을 빌립보 교회에 써 보내면서 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여야 하는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전의 모든 기쁨과 자랑과 특권과 유익을 배설물로 여기고 모든 생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드리는 기쁨을 말씀하면서 빌립보 교회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처럼 복음의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대적자들과 맞서 싸우며, 한 마음으로 이 복음을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빌립보 교회를 향한 어떠한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기록하지 아니하고, 복음의 교제를 힘쓴 빌립보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과 마음과 사랑으로 사모하고 그리워하며, 빌립보 교회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러한 복음의 봉사가 이어지도록 하실 것을 확신하며, 그들 안에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사랑이 풍성하여서 이 복음을 위한 가장 좋은 봉사를 감당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빌립보서의 본론에 해당합니다. 빌립보서는 전체 내용이 아주 짜임새가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1:11절까지 서론에서는 은혜와 평강의 인사와 감사와 기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10~23절의 결론 부분에서는 복음의 봉사에 감사하고 축복하며 복음에 교제에 힘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론과 결론에서 빌립보서의 기록 목적과 주제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도록 그 내용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부분이 본론 부분인데, 크게 4단락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12~26절과 2:19~30절은 소식을 알리는 부분이며, 1:27~2:18절과 3;1~4:9절은 권면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A 부분, B부분, A′부분과 B′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소식을 알리는 부분은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소개하는 부분이 아니고 복음의 교제와 봉사와 그로 인한 기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면하는 부분은 1:27~30절이 권면의 서론 곧 주제문이며, 2:1~18절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삶에 대하여 권면하는 부분이며, 3:1~21절은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삶에 대하여 권면하는 부분이며, 4:1~9절의 권면의 결론 부분입니다.
본문은 그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12~18절은 자신의 매임 때문에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진 것에 대하여 기뻐함을, 19~26절은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 둘 다가 유익하지만 빌립보 교회를 봉사하기 위해 바울이 구원을 받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재판이 받기 직전에 있는 죄수가 가질 수 있는 두려움과 공포와 긴장은 찾아 볼 수가 없고 기쁨과 확신과 감사가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도의 모습입니다. 본문은 대조법을 통해서 내용을 전개하다가 결론을 맺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먼저, 12~18절을 보면 15절이 대조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6절과 17절이 대조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8절은 대조법과 15절에서부터 시작된 대조법을 사용하여 말해온 모든 내용을 결론짓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보와 확장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되어진 것을 알지만 바울은 복음이 전파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증거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19~26절도 보면, 21절과 22절이 대조를 이루며, 23절과 24절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25절과 26절이 대조법을 사용하여 말해온 모든 내용을 결론짓고 있습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 두 가지 다 바울에게는 유익하고 바울 자신에게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이 욕망이 더욱 좋지만 자신이 사는 것이 빌립보 교회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말하고, 자신이 살 것과 빌립보 교회의 성장과 자랑을 위해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가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안에서 신뢰하므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12절의 말씀은 13절과 14절에서 풀이가 되고 있습니다. 나의 당한 일은 나의 매임이며, 복음의 진보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것인데 바울의 매임으로 형제 중 다수가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3차의 전도 여행을 통하여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 지방에 복음을 전하였고 예루살렘을 거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다가 쇠사슬에 묵혀서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투옥은 죄수들을 지키는 시위대들에게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바울의 투옥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위축과 두려움을 준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일로 두려워하고 자신의 고난의 형편을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전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택한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사는 삶이 더욱 더 성장하였다고 소식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5~17절은 복음의 진보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보는 두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방식은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방식이고, 다른 한 방식은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지 아니한 방식입니다. 그러면, 투기와 분쟁으로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순전치 못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누구겠습니까? 우선 본문에서 이들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전한다거나, 바울의 잘잘못과 인격의 결핍을 전한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이들도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 불리한 판정이 나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이 옥에서 풀려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며, 바울의 형제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장을 보면 이들의 정체에 대하여 좀 더 알 수가 있습니다. 3:2절과 18~19절입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 본문을 통해서 이들은 유대인이며, 하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형제들이라고 말하면서, 3장에서는 삼가야 할 자들이며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이렇게 말했다가 저렇게 말하는 이중인격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장에서는 이들도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때문에,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관점에서 그들의 역할을 본문은 말하는 것이고, 3장에서는 복음에 율법을 추가하려는 시도는 복음을 조금 변질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대적하고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투기와 분쟁으로 전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고의적으로 행한 방법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도 할 수가 있지만, 투기와 분쟁을 통한 증거는 율법을 따른 방법입니다. 구약성경 민수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봉사하는 군대인 이스라엘의 순종과 불순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투기와 분쟁을 통해서 율법의 봉사를 담당합니다. 모세와 제사장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행하는지 아니하는지 판단하고 재판하며, 이러한 일로 인해서 백성들은 서로의 삶에 대하여 감시하고 고발하며, 자신의 의로움을 위하여 상대방의 범죄를 지적하고,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서 서로가 다투게 되는 방식이 율법을 따른 방식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싸우며, 그들과 연합한 자들을 죽이므로 거룩한 봉사를 감당할 뿐만 아니라, 그들 안에서도 투기와 분쟁을 통해서 죄를 이기고 제거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바울의 대적자들은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바른 복음이 아니며, 바울은 복음을 위해 부름 받은 합당한 사도가 아니라고 말함으로 투기와 분쟁을 통해서 분리와 다툼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로 알고 사랑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참으로, 바울이 그리스도를 봉사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을 복종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그러나, 바울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투기와 분쟁으로 외모로 복음이 전파되면, 그것으로 인해서 그의 괴로움을 더하지만, 바울은 복음의 진보 때문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 때문에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모와 참은 겉과 속의 대조가 아니라,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의 대조와 같은 의미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진 것을 빌립보 교회에 증거하며,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 자신의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바울은 자신의 매임으로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기뻐한다는 소식을 말한 후에, 자신이 구원을 받을 것을 빌립보 교회에 전하고 있습니다. 19절은 바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구원을 받을 줄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이 되겠습니다. 20절은 자신이 구원을 받을 것을 알고 있는 바울의 결연한 각오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자신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그의 모든 생을 경주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복음의 진보 때문에 기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풀려 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풀려남을 통해서 바울이 가지고 있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전과 같이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에게 천하만민이 복종하도록 복음의 봉사자로 사는 것입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한다는 것은 바울의 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가꾸고 치장함으로 존귀케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삶, 생각과 행동과 심지어 호흡까지도 그를 위하여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것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0절~ 24절은 바울이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삶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사는 것은 괴롭고 죽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에게는 죽는 것과 사는 것이 모두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이 말씀은 신학적인 주제 그러니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신비한 연합을 설명하려는 본문이 아니라 바울의 삶을 함축한 그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바울에게는 그리스도가 그의 생의 전부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이전의 모든 기득권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복종하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 죽으심과 부활과 그 권능에 참여코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것은 바울에게 있어 최고의 기쁨과 만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죽는 것도 유익한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삶은 절망이고 죽음은 이제 행복의 시작이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울에게 있어 사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일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교회를 봉사함으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 둘 사이에서 무엇을 가릴는지 알지 못합니다. 바울 자신을 생각하면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이것이 좋지만 그러나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 자신이 육신에 사는 것이 더 낳습니다.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에게 있어 삶과 죽음은 모두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 둘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하여야 할지 갈등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욕망은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이것이 훨씬 좋으나, 교회를 생각하면 육신에 거하는 것이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안의 문제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살게 하실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살아서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와 함께 거하려 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믿음의 기쁨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와 함께 있어서 그들을 봉사하면 그들은 믿음의 진보를 이룰 것입니다. 믿음의 진보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그런 삶입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사랑의 가득하고, 의의 열매가 가득하며,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서로를 돌아보며,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진보 때문에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진보와 믿음의 기쁨때문에 빌립보 교회는 바울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더욱 더욱 자랑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교제하는 삶이 더욱 풍성해 질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그들의 믿음의 진보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둘이 서로를 강열하게 잡아끄는 욕망 가운데서도 그가 살 것이라고 빌립보 교회에 자신의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삶에 대하여 잘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주인을 위한 종으로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빌립보서는 우리들도 이 복음의 봉사를 위하여 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고 봉사하여야 하는 복음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족속이 무릎을 그 앞에 꿇어야 하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과 죽으심은 이전의 율법의 봉사를 끝내는 봉사이며, 율법의 봉사를 완성하는 봉사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만을 기뻐함으로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었고, 큰 자가 작은 자를 다스리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지배함으로 악과 과실과 죄를 제거함으로 거룩한 나라와 백성으로 하나님을 봉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안에는 투기와 분쟁과 다툼이 가득하였고 그들의 외모를, 의를 자랑함이 가득하였습니다. 율법에 합당한가 아니한가를 재판하고 판단하며, 그것을 고발하고 이로 인하여 서로 다투며 서로 분쟁하며, 율법을 신실히 지키는 것으로 자랑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을 이루고 자신의 비어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삶이 아니라 지배하고 다스리고 악을 제거하고 분리하는 봉사가 이스라엘의 봉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는 이러한 봉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봉사를 감당하였습니다. 자기 백성의 왕으로 오셨으나 자기 백성에게 온갖 고난과 질고를 당하시면서도 그들을 판단함으로 그들에게 분노함으로 그들을 고발함으로 그들을 심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쁨으로 즐겨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를 즐겨 기쁨으로 봉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봉사는 이러한 봉사가 아니었습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다스리고 재판하며, 악과 과실을 분리하고 제거한 것이 그들의 봉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큰 자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세상 끝날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으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복종하는 섬김의 봉사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이 봉사를 감당하신 주님을 하나님 아버지는 천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신 주가 되게 하셨고 천하의 모든 족속이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분의 기쁨의 봉사 때문에 바울 사도와 빌립보 교회와 그리고 우리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의 의를 추구함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그의 원수로 행하던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봉사 때문에 구원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으로 하나님 없이 살던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를 위하여 사는 복된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저 좋은 천당을 가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위하여 살던 삶의 모든 유익과 기쁨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그의 유익과 존귀함을 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삶이 어떠한 모습이든지 그들이 궁핌에 처하였든지, 풍부에 처하였든지 그들의 하나님을 기쁘게 봉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복과 생명이 가나안 땅의 부요함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기쁨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고난과 질고와 고통을 당하는 것이 비참함이 아니라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망설임과 주저가 없이 전과 같이 이제도 담대하여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삶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따라 형제를 판단하고 자신을 높이며, 자신이 가진 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과 내 기분과 내 배경과 내 학식을 따라서 형제, 자매를 섬기는 삶도 아닙니다. 내 형편과 처지가 조금 풍요롭고 내 집안과 내 장래가 잘 보장이 되면, 그 후에 교회를 봉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와 남을 나누고, 교회 봉사와 내 삶과, 주님을 위한 삶과, 내 인생을 나누는 방식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삶은 그리스도로 기뻐하고 그만을 위하여 나의 모든 삶을 드리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복종하신 것과 같이 형제와 교회를 위하여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삶입니다. 교회를 봉사하고 형제를 봉사하는 일로 고통과 답답함과 실망이 생기더라도 그것으로 물러서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복음의 진보와 성장이 나타나도록 더욱 힘써서 봉사하는 삶인 것입니다. 참으로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내 모든 삶이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내 모든 삶에 대한 이해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과 그 권능에 참여하는 삶으로 이해하고 사는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 그리스도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그리스도 때문에 애매한 고초를 당하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풍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이 세상의 기준과 가치를 따라 살지 말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바라는 푯대를 향한 삶을 사십시다. 내가 사는 것이 부와 명예와 육신의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 되도록 사십시다. 형제, 자매님 우리의 봉사는 하나됨을 이루는 봉사여야 하겠습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봉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이러렀든지 우리의 완전함고 만족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그러한 봉사여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봉사를 통해서 감사가 가득하고 이러한 봉사를 통해서 기쁨이 가득함으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도록 우리가 신실한 믿음의 봉사를 감당하여야 하겠습니다.
- 설교 : 김태환 목사
빌립보서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사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복종과 기쁨의 봉사를 통하여, 구원함을 받고 이 복음을 봉사하는 일군으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글입니다. 바울은 이 짧은 편지글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마게도냐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시초부터 바울의 복음 사역에 함께 하였고,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로 감옥에 갇혀있는 지금도 에바브라디도를 파송하여 바울을 돕고 섬김으로 복음 안에서 함께 교제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의 교제가 없었기 때문에 복음의 교제를 힘쓰며 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힘써 왔던 복음의 교제가 더욱 풍성하고 가득하기를 바라고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행한 복음의 봉사와 교제를 인해서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제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그들을 볼 것을 소망하면서, 먼저 이 편지글을 빌립보 교회에 써 보내면서 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여야 하는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전의 모든 기쁨과 자랑과 특권과 유익을 배설물로 여기고 모든 생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드리는 기쁨을 말씀하면서 빌립보 교회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처럼 복음의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대적자들과 맞서 싸우며, 한 마음으로 이 복음을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빌립보 교회를 향한 어떠한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기록하지 아니하고, 복음의 교제를 힘쓴 빌립보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과 마음과 사랑으로 사모하고 그리워하며, 빌립보 교회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러한 복음의 봉사가 이어지도록 하실 것을 확신하며, 그들 안에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사랑이 풍성하여서 이 복음을 위한 가장 좋은 봉사를 감당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빌립보서의 본론에 해당합니다. 빌립보서는 전체 내용이 아주 짜임새가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1:11절까지 서론에서는 은혜와 평강의 인사와 감사와 기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10~23절의 결론 부분에서는 복음의 봉사에 감사하고 축복하며 복음에 교제에 힘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론과 결론에서 빌립보서의 기록 목적과 주제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도록 그 내용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부분이 본론 부분인데, 크게 4단락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12~26절과 2:19~30절은 소식을 알리는 부분이며, 1:27~2:18절과 3;1~4:9절은 권면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A 부분, B부분, A′부분과 B′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소식을 알리는 부분은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소개하는 부분이 아니고 복음의 교제와 봉사와 그로 인한 기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면하는 부분은 1:27~30절이 권면의 서론 곧 주제문이며, 2:1~18절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삶에 대하여 권면하는 부분이며, 3:1~21절은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삶에 대하여 권면하는 부분이며, 4:1~9절의 권면의 결론 부분입니다.
본문은 그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12~18절은 자신의 매임 때문에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진 것에 대하여 기뻐함을, 19~26절은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 둘 다가 유익하지만 빌립보 교회를 봉사하기 위해 바울이 구원을 받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재판이 받기 직전에 있는 죄수가 가질 수 있는 두려움과 공포와 긴장은 찾아 볼 수가 없고 기쁨과 확신과 감사가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도의 모습입니다. 본문은 대조법을 통해서 내용을 전개하다가 결론을 맺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먼저, 12~18절을 보면 15절이 대조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6절과 17절이 대조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8절은 대조법과 15절에서부터 시작된 대조법을 사용하여 말해온 모든 내용을 결론짓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보와 확장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되어진 것을 알지만 바울은 복음이 전파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증거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19~26절도 보면, 21절과 22절이 대조를 이루며, 23절과 24절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25절과 26절이 대조법을 사용하여 말해온 모든 내용을 결론짓고 있습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 두 가지 다 바울에게는 유익하고 바울 자신에게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이 욕망이 더욱 좋지만 자신이 사는 것이 빌립보 교회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말하고, 자신이 살 것과 빌립보 교회의 성장과 자랑을 위해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가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안에서 신뢰하므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12절의 말씀은 13절과 14절에서 풀이가 되고 있습니다. 나의 당한 일은 나의 매임이며, 복음의 진보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것인데 바울의 매임으로 형제 중 다수가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3차의 전도 여행을 통하여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 지방에 복음을 전하였고 예루살렘을 거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다가 쇠사슬에 묵혀서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투옥은 죄수들을 지키는 시위대들에게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바울의 투옥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위축과 두려움을 준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일로 두려워하고 자신의 고난의 형편을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전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택한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사는 삶이 더욱 더 성장하였다고 소식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5~17절은 복음의 진보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보는 두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방식은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방식이고, 다른 한 방식은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지 아니한 방식입니다. 그러면, 투기와 분쟁으로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순전치 못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누구겠습니까? 우선 본문에서 이들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전한다거나, 바울의 잘잘못과 인격의 결핍을 전한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이들도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 불리한 판정이 나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이 옥에서 풀려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며, 바울의 형제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장을 보면 이들의 정체에 대하여 좀 더 알 수가 있습니다. 3:2절과 18~19절입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 본문을 통해서 이들은 유대인이며, 하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형제들이라고 말하면서, 3장에서는 삼가야 할 자들이며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이렇게 말했다가 저렇게 말하는 이중인격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장에서는 이들도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때문에,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관점에서 그들의 역할을 본문은 말하는 것이고, 3장에서는 복음에 율법을 추가하려는 시도는 복음을 조금 변질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대적하고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투기와 분쟁으로 전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고의적으로 행한 방법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도 할 수가 있지만, 투기와 분쟁을 통한 증거는 율법을 따른 방법입니다. 구약성경 민수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봉사하는 군대인 이스라엘의 순종과 불순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투기와 분쟁을 통해서 율법의 봉사를 담당합니다. 모세와 제사장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행하는지 아니하는지 판단하고 재판하며, 이러한 일로 인해서 백성들은 서로의 삶에 대하여 감시하고 고발하며, 자신의 의로움을 위하여 상대방의 범죄를 지적하고,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서 서로가 다투게 되는 방식이 율법을 따른 방식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싸우며, 그들과 연합한 자들을 죽이므로 거룩한 봉사를 감당할 뿐만 아니라, 그들 안에서도 투기와 분쟁을 통해서 죄를 이기고 제거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바울의 대적자들은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바른 복음이 아니며, 바울은 복음을 위해 부름 받은 합당한 사도가 아니라고 말함으로 투기와 분쟁을 통해서 분리와 다툼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로 알고 사랑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참으로, 바울이 그리스도를 봉사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을 복종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그러나, 바울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투기와 분쟁으로 외모로 복음이 전파되면, 그것으로 인해서 그의 괴로움을 더하지만, 바울은 복음의 진보 때문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 때문에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모와 참은 겉과 속의 대조가 아니라,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의 대조와 같은 의미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진 것을 빌립보 교회에 증거하며,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 자신의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바울은 자신의 매임으로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기뻐한다는 소식을 말한 후에, 자신이 구원을 받을 것을 빌립보 교회에 전하고 있습니다. 19절은 바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구원을 받을 줄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이 되겠습니다. 20절은 자신이 구원을 받을 것을 알고 있는 바울의 결연한 각오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자신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그의 모든 생을 경주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복음의 진보 때문에 기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풀려 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풀려남을 통해서 바울이 가지고 있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전과 같이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에게 천하만민이 복종하도록 복음의 봉사자로 사는 것입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한다는 것은 바울의 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가꾸고 치장함으로 존귀케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삶, 생각과 행동과 심지어 호흡까지도 그를 위하여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것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0절~ 24절은 바울이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삶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사는 것은 괴롭고 죽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에게는 죽는 것과 사는 것이 모두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이 말씀은 신학적인 주제 그러니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신비한 연합을 설명하려는 본문이 아니라 바울의 삶을 함축한 그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바울에게는 그리스도가 그의 생의 전부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이전의 모든 기득권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복종하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 죽으심과 부활과 그 권능에 참여코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것은 바울에게 있어 최고의 기쁨과 만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죽는 것도 유익한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삶은 절망이고 죽음은 이제 행복의 시작이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울에게 있어 사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일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교회를 봉사함으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 둘 사이에서 무엇을 가릴는지 알지 못합니다. 바울 자신을 생각하면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이것이 좋지만 그러나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 자신이 육신에 사는 것이 더 낳습니다.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에게 있어 삶과 죽음은 모두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 둘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하여야 할지 갈등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욕망은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이것이 훨씬 좋으나, 교회를 생각하면 육신에 거하는 것이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안의 문제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살게 하실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살아서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와 함께 거하려 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믿음의 기쁨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와 함께 있어서 그들을 봉사하면 그들은 믿음의 진보를 이룰 것입니다. 믿음의 진보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그런 삶입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사랑의 가득하고, 의의 열매가 가득하며,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서로를 돌아보며,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진보 때문에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진보와 믿음의 기쁨때문에 빌립보 교회는 바울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더욱 더욱 자랑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교제하는 삶이 더욱 풍성해 질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그들의 믿음의 진보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둘이 서로를 강열하게 잡아끄는 욕망 가운데서도 그가 살 것이라고 빌립보 교회에 자신의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삶에 대하여 잘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주인을 위한 종으로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빌립보서는 우리들도 이 복음의 봉사를 위하여 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고 봉사하여야 하는 복음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족속이 무릎을 그 앞에 꿇어야 하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과 죽으심은 이전의 율법의 봉사를 끝내는 봉사이며, 율법의 봉사를 완성하는 봉사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만을 기뻐함으로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었고, 큰 자가 작은 자를 다스리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지배함으로 악과 과실과 죄를 제거함으로 거룩한 나라와 백성으로 하나님을 봉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안에는 투기와 분쟁과 다툼이 가득하였고 그들의 외모를, 의를 자랑함이 가득하였습니다. 율법에 합당한가 아니한가를 재판하고 판단하며, 그것을 고발하고 이로 인하여 서로 다투며 서로 분쟁하며, 율법을 신실히 지키는 것으로 자랑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을 이루고 자신의 비어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삶이 아니라 지배하고 다스리고 악을 제거하고 분리하는 봉사가 이스라엘의 봉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는 이러한 봉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봉사를 감당하였습니다. 자기 백성의 왕으로 오셨으나 자기 백성에게 온갖 고난과 질고를 당하시면서도 그들을 판단함으로 그들에게 분노함으로 그들을 고발함으로 그들을 심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쁨으로 즐겨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를 즐겨 기쁨으로 봉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봉사는 이러한 봉사가 아니었습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다스리고 재판하며, 악과 과실을 분리하고 제거한 것이 그들의 봉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큰 자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세상 끝날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으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복종하는 섬김의 봉사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이 봉사를 감당하신 주님을 하나님 아버지는 천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신 주가 되게 하셨고 천하의 모든 족속이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분의 기쁨의 봉사 때문에 바울 사도와 빌립보 교회와 그리고 우리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의 의를 추구함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그의 원수로 행하던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봉사 때문에 구원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으로 하나님 없이 살던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를 위하여 사는 복된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저 좋은 천당을 가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위하여 살던 삶의 모든 유익과 기쁨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그의 유익과 존귀함을 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삶이 어떠한 모습이든지 그들이 궁핌에 처하였든지, 풍부에 처하였든지 그들의 하나님을 기쁘게 봉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복과 생명이 가나안 땅의 부요함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기쁨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고난과 질고와 고통을 당하는 것이 비참함이 아니라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망설임과 주저가 없이 전과 같이 이제도 담대하여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삶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따라 형제를 판단하고 자신을 높이며, 자신이 가진 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과 내 기분과 내 배경과 내 학식을 따라서 형제, 자매를 섬기는 삶도 아닙니다. 내 형편과 처지가 조금 풍요롭고 내 집안과 내 장래가 잘 보장이 되면, 그 후에 교회를 봉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와 남을 나누고, 교회 봉사와 내 삶과, 주님을 위한 삶과, 내 인생을 나누는 방식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삶은 그리스도로 기뻐하고 그만을 위하여 나의 모든 삶을 드리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복종하신 것과 같이 형제와 교회를 위하여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삶입니다. 교회를 봉사하고 형제를 봉사하는 일로 고통과 답답함과 실망이 생기더라도 그것으로 물러서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복음의 진보와 성장이 나타나도록 더욱 힘써서 봉사하는 삶인 것입니다. 참으로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내 모든 삶이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내 모든 삶에 대한 이해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과 그 권능에 참여하는 삶으로 이해하고 사는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 그리스도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그리스도 때문에 애매한 고초를 당하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풍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이 세상의 기준과 가치를 따라 살지 말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바라는 푯대를 향한 삶을 사십시다. 내가 사는 것이 부와 명예와 육신의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 되도록 사십시다. 형제, 자매님 우리의 봉사는 하나됨을 이루는 봉사여야 하겠습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봉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이러렀든지 우리의 완전함고 만족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그러한 봉사여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봉사를 통해서 감사가 가득하고 이러한 봉사를 통해서 기쁨이 가득함으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도록 우리가 신실한 믿음의 봉사를 감당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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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해설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