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의 충만 (엡 3:14-19)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시간에 “세 가지의 충만”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은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공간에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히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심히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은 위에 있는 우리 마음의 공간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놓은 것으로 가득히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그 기도가 바로 본문의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3가지의 충만해야 할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세 가지의 충만은 무엇일까요?
1. 성령충만입니다.
16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행1:8이 연상되는 구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이건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신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엡5: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여기도 명령형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충만은 우리가 반드시 받아야 할 사항입니다. 이 성령충만함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습니다.
그래서 시133:1-3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영광의 풍성은 하나님의 속성을 암시하는데, 그런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기에 이 능력을 받으면 우리가 영광스럽고 풍성하게 되고 온전하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아야 예수와 함께 한 모든 구속사적 은총 즉,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고 그리스도의 높아지신 그 영광을 우리가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니라 롬5:5에 말씀했듯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이는 모든 말씀이 허상일 뿐입니다. 그렇게 중요합니다. 성령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령이 없이는 예수를 주시라고도할 수 없고(고전12:3), 아버지라고도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다가 아닙니다.
더 온전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받기 전에 제자들이 얼마나 나약했습니까? 그러나 성령 받고는 100% 달라졌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능력을 받기 전에는 우리가 참 알곡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참 일군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전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오순절 이후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목회도 예수님의 3년 반과 같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하는 일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순절이 없다면 그 믿음은 어린이와 같습니다. 그런 교회는 어린이 신자들만 가득합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모두 젖 먹는 어린아이입니다.
은퇴하신 많은 목회자들이 후회하는 것이 말씀 말씀하면서 성령의 능력에는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하면 뭐합니까? 기회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신약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해야 신약의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처럼 성령충만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진리충만입니다.
17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했는데 여기 믿음이란 진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리충만입니다. 이 기도가 왜 중요합니까? 마음에 예수가 없다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후13:5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바른 진리를 가져야 합니다. 요이1:9에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했습니다.
이단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 성령님을 불러도 잘못된 그 믿음으로는 주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일2:22-23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했습니다.
어떤 분이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마침 옆자리에 김ㅅ환 추기경이 앉아 있더랍니다. 그래서 ‘추기경님 선한 일하면 천국 가고, 다른 종교도 구원의 길이라고 하셨는데 그게 진심입니까?’ 하고 묻자 퉁명스럽게 ‘그런 소리 하려면 가시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존경 받아도 바른 진리가 아니면 소경 목자입니다.
말씀 충만이란 성경을 믿음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잘 이해할 뿐 아니라, 그 말씀에 믿음을 더하여 확신하고, 또 듣기만 하지 않고 배운 대로 행하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먼저는 성경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암8:11-13에 날이 이르면 이 땅에 말씀의 기근이 온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고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했습니다. 예수의 보혈의 씀만 알지 못해도 이렇게 됩니다.
불타는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마음의 천국이라고 하듯이 마음의 지옥을 경험합니다.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한 것도 복음의 말씀을 몰라서였습니다. 열심은 있는데 복음을 모를 때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만 잘 안다고 다 진리충만은 아닙니다. 말씀을 늘 묵상하고 믿고 행해야 합니다. 롬10:8에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어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했듯이 말씀이 입에서도 발성되고 기도가 되고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처럼 성경 읽는 소리가 날 때 우리 심령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3. 사랑충만입니다.
17-19절에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비밀이 여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은혜입니다. 사랑할 때 결혼하게 되고 결혼할 때 두 사람이 가진 것이 공동 소유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주를 사랑하면 하나님도 모든 충만하심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미쳤다는 말을 들을 만큼 주를 사랑하게 됩니다(고후5:13-15). 그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그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전히 충만하게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요14:21에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의 은사야말로 그 어떤 은사보다 큰 은사입니다.
크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자신이 뭐라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다면 얼마나 역겨운 일입니까? 주님이 짝사랑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래서 고전16:22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알았기에 요한이 그렇게 충만했고 바울이 그랬고 프란시스가 그랬습니다. 프란시스의 영성이 겸손이라고 하지만 자기 옷까지 벗어 주며 사랑한 걸 생각하면 사랑이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에 무궁한 비전이 들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 교회에 육신적인 문제가 많았겠지만 신령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우리들도 무엇보다 신령한 기도를 드립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른 것도 풍성히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구합시다. 진리를 구합시다. 그리고 사랑의 은사를 구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우리 영육 간에 더욱 강건하여지고, 주님을 온전히 모시고, 하나님의 모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