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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스크랩] 하나님 일의 원리 1 (행 16:11-15)

작성자호현낙선|작성시간26.06.10|조회수2 목록 댓글 0

하나님 일의 원리 1 (행 16:11-15)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이 시간에는 “하나님 일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활동했던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사자에게 물려 중상을 입고, 열병과 위험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랬어도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사명자는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죽지 않는다" 라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선용하여 열심히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요9:4에 예수님께서 “우리가 낮 동안에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에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여기 밤은 인생의 밤입니다. 밤이 오기 전에 열심히 해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는 몇 가지 원리 안에서 진행됩니다.

 

오늘은 본문을 근거로 두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1. 비전의 원리입니다.

 

앞의 행16:6-9을 보면 바울이 꿈에 환상을 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의 전도 목표는 원래 아시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시아에서 더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길을 열어주시지 않고, 기도해도 예수의 영이 허락하시지 않고 그를 유럽 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기서 내 꿈과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발견합니다. 아시아가 바울 자신의 꿈이라면 유럽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입니다.

 

이처럼 내 꿈과 비전은 다릅니다. 내 꿈은 내가 품은 것이지만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 비전을 받아서 일해야 합니다. 꼭 기도해야만 주시는 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데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바울의 경우 그가 깨닫지 못한 것은 아시아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아시아는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전도여행 지역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애착이 가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꿈으로 보이시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부릅니다. 그때야 모든 것을 종합해 본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마게도냐로 부르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생각이 너무 강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쉽게 포착할 수 없습니다. 안 들려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저변에 있으나 무관심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음성을 들려주시지만 우리 생각과 집착이 너무 강하면 그걸 포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꿈이나 환성을 통해, 욥33:15-17에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異象)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바울의 경우가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여쭐 때는 자기 주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특히 예언의 은사를 활용할 때 자기 주관이나 선입견이나 혹은 어떤 것에 마음이 팔리거나 그래서는 잘못할 수 있습니다. 렘23:16에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것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안디옥에서 선교사를 파송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행13:2-3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여기서 주를 섬겨 금식했다고 했는데 온전히 주님의 뜻대로 하겠다고 맡기면서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안디옥에서 대 사역이 진행 중이고, 안디옥 교인들이 바나바와 바울에서 큰 은혜를 받고 있는데,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고, 담임목사, 그것도 두 사람 다 빼내서 선교사로 보내자고 누가 말했다면 누가 그 말을 듣겠습니까? 그러나 온전히 마음을 비우고 아버지 뜻대로 하기로 다짐하고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교의 비전을 주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쓰임 받는 자세입니다. 이처럼 교회마다 비전을 공유해야 합니다.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교회는 세운 일군들이 방해꾼이 됩니다. 특히 장로님들은 목사에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현실 만족만 하며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렘33:3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뜻을 찾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랐던 바울이었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비전에 사로잡혀 누가 뭐라 해도 그 일을 중단시킬 수 없었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비전은 로마 황제에게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행20:23-24에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런 비전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만남의 원리입니다.

 

행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당시 핍박을 받아 흩어진 성도들은 강가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계에 흩어져 살지만 언제나 머무는 곳에 회당을 짓고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회당이 없을 때는 강가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습관은 바벨론 포로기에 생겼습니다(스8:15, 시137:1). 강가에 많은 여인들이 모여있었으나 인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양쪽 다 사모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은 전도할 사람과 기도의 장소를 찾고 있었고, 거기 모인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전도해 줄 교역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왔는데 아는 사람이 있나 막막하죠. 아시아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입니다. 그리고 여인들도 안식일이 되어 예배하길 원하는데 말씀을 전할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그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역에 있어서 만남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마9:37-38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함으로 만나야지 너무 쉽게 만나면 문제가 생깁니다. 서로가 필요해서 만나면 그것이 속된 말로 찰떡 궁합이 됩니다.

 

모세와 아론도 찰떡 궁합이었습니다. 모세는 입술이 뻣뻣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입이었습니다. 아론 없이는 모세가 일할 수 없고, 아론도 아무리 말을 잘해도 모세가 없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행11:25-26에 나오는 바나바와 바울도 찰떡 궁합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인품도 좋고 덕도 있지만 사울과 같은 예리한 가르침은 부족했기에 두 사람은 동역자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불편한 동거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막1:12-13에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하나님께서 맹수를 붙여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라는 영적 환경입니다.

 

그런데 들짐승 중에 사람 짐승이 가장 무섭습니다. 그래서 마10:16-17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이런 박해가 있었기에 초대교회가 수백 년간 그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죄수들의 섬인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썼듯이 지금도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그렇게 하십니다. 바울에게도 가시가 있었는데 혹자는 그 가시가 병이라고도 하고 혹은 고통을 주는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세 번 이상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셨듯, 그때는 아버지 뜻으로 받아들이고 왜 그렇게 하셨는지 생각하며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기회가 항상 있는 것 아닙니다. “밤이 오리니 그때에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처럼 열심히 일하십시다. 그러기 위해 바울을 마게도냐로 이끄신 하나님의 손길처럼, 우리의 꿈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을 구하고, 또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그 만남을 귀히 여기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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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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