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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말씀을 위해 기도하자 (암 8:11-13)

작성자호현낙선|작성시간26.06.09|조회수26 목록 댓글 0

말씀을 위해 기도하자 (암 8:11-13)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이 시간 "말씀을 위해 기도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게을러서 그렇지 부지런하다면 육신의 결핍이 없고, 지식적으로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은 과연 얼마나 풍요로운 가운데 살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아모스 선지자는 다가올 가장 무서운 심판, 곧 말씀의 기근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들은 정보화시대를 맞이해서 말씀이 풍성한 시대가 왔다고 말하지만, 성경의 예언은 그 반대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 말씀의 기갈, 그 결과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이 예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직면한 문제입니다. 말씀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는?

 

1. 참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15:7-9에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29:13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이 만든 장로들의 유전을 더 중요하게 여겨 형식적인 종교 행위에만 치중하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는데 이런 위선적인 모습을 질책하신 내용입니다.

 

고르반 신앙이라든지, 식사 전후에 손을 씻거나, 안식일을 위한 안식일을 지키는 거라든지, 지금도 그들은 성경에서 사 53장 같은 메시야의 예언들을 삭재하여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을 고소하고 죽이려던 그 행위가 2.000년이 지났음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지옥 자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단의 일부에서는 내용만 다를 뿐 복음에서 크게 이탈하고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가 무엇입니까? 종교다원주의 (Religious Pluralism)는 세상의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는 동등하고 유효한 구원의 길이며, 서로 다른 종교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절대적 실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주의입니다. 우리 믿음을 완전히 뒤엎는 이론입니다.

 

출20:3-7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하셨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셨는데 성경, 아니 십계명이라도 한 번 읽었다면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을까요?

 

딤전4:2-4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양심이 화인 맞았듯 이건 양심을 던져 놓고 하는 말입니다. 성경이 아니다. 아니다 하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젠더(Gender)도 그렇습니다. 젠더란 단순히 생물학적 성별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성을 형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가령 남성이라도 여성적이니까 여성이고, 여자일지라도 남성적이니까 남성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그래서 남자 끼리 혹은 여자 끼리 결혼하면 자손이 생깁니까? 이것을 법으로 만들어 강요한다고 사실이 변하고 진리가 변합니까?

 

오리라 한 이런 세상이 왔고 또 오고 있습니다. 날이 이르면 이 땅에 말씀의 기근이 온다는 말씀이 맞아요. 교리사를 보면 초대에는 기독론쟁 삼위일체논쟁, 중세에는 인죄론논쟁 성찬에 관한 논쟁 등 기본적 입장에서 약간의 견해 차이일 뿐이었으나, 근대에는 성경논쟁 예수적예수논쟁 동성애 종교다원주의논쟁 등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그런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갈1:8-9에서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의 이단도 경계해야 하지만, 교회 안의 이단은 더 경계해야 합니다. 교회 밖의 이단은 경계라도 하지만, 교회 안의 이단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교단은 WCC에 속해 있어도 감사하게도 보수신앙을 지키는 교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교회도 많습니다. 교단의 방침을 따르거나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혹은 보수신학을 따르지만 진리를 깊이 깨닫지 못한다면 그 역시 말씀의 기근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외치면서도 이신득의 교리를 누리지 못하거나, 성령은 믿는다면서도 성령의 은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7:22-23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을 가지고 성령의 은사를 부정하는데 (비록 ~할지라도,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법이 어찌 은사 부정을 위한 말씀입니까?

 

이처럼 우리는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으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많은 사람들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는

 

2. 살아 역사하는 생명의 말씀을 위해서입니다.

 

마7:28-29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없다면 그건 말씀의 기근입니다. 한국교회에 부흥회가 사라진 이유가 복합적이겠으나 부흥사들이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5:25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에스골 골짜기 마른 뼈와 같이 말씀을 듣고 살아나서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도록 복음전도자는 물론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부흥사 무디도 말하기를 기도의 준비가 없이는 아무리 외쳐도 성령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더라고 간증했습니다.  기도 없는 말씀은 외쳐도 허공만 울릴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 증거를 위해 부탁했는데 거기에 대한 구절을 찾아보면

 

엡6:19에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골4:3-4에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살후3:1-2에서도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했습니다. 복음 증거는 모두의 공동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하는 자와 듣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살전1:5에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이처럼 말씀에 진리와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말씀을 받는 데살로니가 교인들 역시 그랬습니다. 살전1:6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고 했고, 살전2:13에는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두 가지 모두 안 됐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말을 교훈 삼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능력도 은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가르침을 받은 그들은 놀랐습니다. 마7:28-29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23:1-3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0:3-5에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이처럼 저의 최고의 소원은 주님에게 쓰임 받아 예수님의 음성을 들려 드리는 것입니다.

 

창조의 음성이 우리에게도 들려 와야 하겠습니다. 고후4:6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예수가 구주이심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빛이 비치고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졌기 때문입니다.

 

호14:2에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했습니다. 말씀으로 돌아와야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떠나면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4-27)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반면 최고의 비극은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안전은 말씀 안에 사는 것입니다. 반면 최고의 불안은 말씀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 음성이, 그리고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오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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