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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

하나님의 법대로

작성자호현낙선|작성시간26.06.17|조회수4 목록 댓글 0

2026년 2월 22일 대구중부교회 설교 “하나님 법대로” 마태복음 7:21-27, 요한복음 15:9-12 1. 사순절 첫째 주일이죠. 사순절은 십자가 사랑의 길을 걸으시면서 “나를 따르라” 이렇게 우 리를 불러주시는 주님을 따라나선 모든 성도에게 십자가의 길이 무엇인지 배우는 절기가 사순 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순절 첫째 주일에 주님의 평안과 사랑과 위로가 중부교회와 모든 성도 위에 충만하기를 축 원합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짧게 드리면, 저는 1963년부터 3년 동안 중부교회 담임목사 사택에서 살 았습니다. 대구고등학교를 다녔고, 경북대학교 문리대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한국신학대학으로 편입하여 가계를 잇는 신학 공부하고, 50년이 지난 때에 목 사로 오늘 이곳에서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목회도 3대째 이어왔으니, 강대상에 오를 때 떨리는 마음이 없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 습니다. 젊은 시절, 첫 담임목사로 강단에 오를 때마다 떨리던 그 순수했던 떨림이, 고향교회 강대상에 선다고 하니 떨림이 여전했습니다. 여러분을 만나 반갑고, 설교의 기회를 준 중부교 회에 감사드립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이 핵무기 위협을 경고하기 위하 여, 1947년에 ‘지구 종말 시계’를 발표했습니다. 1947년에는 지구 종말의 자정까지 17분이 남 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은 89초 전이었습니다. 올해는 어떨까요? 1월 28일에 발표했는데, 인 류 문명의 종말이 작년보다 4초 더 당겨진 85초였습니다. 핵전쟁의 위협과 함께, 무분별하게 확산 중인 인공지능(AI) 기술, AI 도구 사용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잘못된 정보, 가짜 뉴스가 늘어나고, 기후 위기는 더 심각해지지만, 온실 gas 감축이 진전이 없는 것 등이, 4초 당겨진 원인이라 했습니다. 지구 종말이 “85초 후”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어떤 느낌입니까? 위기의 경고 비상등이 빨갛 게 켜지고, 사이렌이 높게 울리는데도, 여러분은 한 사람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 입니다. 걱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삶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믿는 것이겠죠. 내 문제 가 아니라 여기는 것, 어쩔 수 없기도 하고, 어떻게 할 수도 없죠. 그러나 우리 손주의 손주가 사는 세상이 겪을 수 있는데, 나하고 관계없다고 고개 돌릴 수 있을까요? 과학자들이 나름 근 거를 제시하며 발표했는데도, 꼼짝하지 않는 세계 각국입니다. 오히려 자원 전쟁을 일으켜 무 고한 생명을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세계를 평하기는 너무 넓으니, 좁혀서 한국교회, 더 줄여서 우리 교단을 진단해 봅니다. 더 축소해서 중부교회는 어떨지, 진단해 봅니다. 작년 우리 교단은 110회 총회 주제를 “살아계신 하나님, 처음 사랑을 회복하게 하소서”로 정하고, 선언서를 채택하여 공포하고, 지 교회에 나누었습니다. 저는 이 주제를 받고 여러 가지로 복잡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런 주제를 택한 이유가 무엇 일지 생각했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해 주소서’라고 한 것은, 지금 우리 교단 안에 처음 사 랑이 없어졌거나, 병들었다고 공포한 것입니다. 교회에 ‘첫사랑’,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처음 사랑이 없어졌거나, 병들어 시들시들하다는 것, 이것이 우리 교단의 현실이라 세상에 알린 것이죠. 사랑이 있어야 할 교회에 사랑이 없거나, 병들었다고 할 때, 그 교회, 그 교단은 어떤 교회요, 교단일까요? 총회 주제를 보면서, 이 주제는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비명 지른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큰일 났구나. 하나님의 손을 빌려서 우리 안에 생명이 살아나게끔 해야 하겠구나. 사랑이 살 아있게 해야 하겠구나”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지.” 해서 주제를 정해서 선포하고, 이 주제에 따른 선언서를 만들어서 온 교회가 공유했습니다. 문제는 늘 다음입니다, 다음에 뭘 하나? 하고 들여다봤어요. 꼼짝하지 않는 거예요. 그냥 문서로 선포하고 “우리 주제는 이렇습니다. 온 교회가 다 이렇습 니다. 이렇게 갑시다” 했지, 교회들은 다 똑같이 꼼짝 안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위기 상황이 변함없이, 그대로 위기로 남아있다는 얘기입니다. 내년엔 어떤 비명을 지를지, 저는 변하리라고 별로 기대하지 않지만, 그래도 한 번 더 기다려 보려고 합니다. 현실이 그래요. 교단의 위기도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우리 교회 문제가 아니 니까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중부교회를 생각해 봅시다. 100년이 넘은 경북 노회에서 지금은 대구 노회가 되었습니다만. 경북의 어머니 교회였습니다. 이것이 중부교회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자긍심이었습니다. 어머니 교회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온 여러분들인데, 여러분의 중부교회 현실은 어떻다고 진단 하십니까? 이 얘기를 오늘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2. 마가복음 1장 15절은 복음서의 핵심적인 본문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 선언은 예수님께서 로마 시대에 살았잖아요. 또 예루살렘 성전이 중심이었던 유대교가 유 대인들을 지배하고 이끌고 있던 때 예수님이 살았어요. 예수님이 “때가 찼다”라고 한 것은 로마 시대가 끝나간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종말 이 가까웠다, 이 얘기를 선포하신 것이기도 하고 또한 모든 유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 종교를 향해서, 이제 하나님의 심 판이 임했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 말을 다시 우리식으로 번역하면, 새 교회가 시작될 텐데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 복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 복음을 가지고, 이제는 교회로 새 역사를 시작해라.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심판의 때가 임박했다”와 “종말이 85초 전이다”라고 하는 것은, 같은 얘기 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이 임했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십자가 사랑으로 세 워질 교회가, 우리의 살 길이다”라 한 것입니다. 이것이 마가복음 1장 15절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3. 그러면 질문이 생겨요. 왜? 멀쩡하게 근사하게 지어놓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서, 예수님이 진단하시며 “이것은 돌 위에 돌 하나가 남지 않도록 무너져야” 하고, 그 안을 들여다보시고는 “너희가 모 든 사람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구나” 하면서, 채찍을 휘둘렀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통하여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제사장들, 레위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 이들을 향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 까? 예를 들면, “회칠한 무덤 같은 너희 바리새인들이야!” “독사의 자식들아!” 하셨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사랑의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진짜 하셨어요. 자비가 풍성하신 예수님의 성품에 맞지 않는 폭언을 퍼부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다시 한번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욕을 먹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나요? 예루살렘 성전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어쩌면 우리들보다도 더 믿음이 좋았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우리들보다 더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지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서 야단을 치셨을까? 문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한 그 율법을 완전히 고체를 만든 거예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면서 고체가 된 율법으로, 사람을 규제하는 감옥처럼 만들어서 안식일 법을 만들고, 거룩한 정결법을 만들고, 온갖 제도를 머리 위에 쌓아놓아, 이것으로 하나님의 본래 뜻은 사라지고,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완전히 굳어진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져야 하고, 새롭게 복음으로 세워지는 새 신앙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도바울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사도바울의 옛사람 사울을 생각했으면, 금방 이해가 될 거예요. 사울이 어땠습니까? 그는 가말리엘에게 공부한 최고의 지성인이었고,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기 전에, 새로 일어나는 복음의 종교 기독교를 어떻게 봤습니까? 전부 붙잡아서 죽여야 할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유가 간단해요.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인데, 왜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한 분,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고 전하며 믿느냐? 어떻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느냐? 이것은 한 분 하나님을 모독하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율법에 사로잡혔던 사울은, 그 눈으로 기독교를 볼 때, 이것은 정말 망해야 할 새로운 종교였던 겁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이는 자리에서 스데반의 옷을 받아 들고 당연하게 그 죽 음을 받아들였던 사울이었어요. 이랬던 그가 누구를 만납니까? 다메섹 도상(途上)에서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사랑의 예수님을 만난 거예요. 그리고서 그는 바울이 된 겁니다. 바울이 된 후, 지난날의 자기를 돌아보았더니,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던 자기는 “죄수 중에 괴 수”라고 고백하였고, “나는 복음 앞에서 날마다 죽는 사람”이라고 고백한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고린도 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이 제일이다. 모든 것 중에서 사랑이 제일”이라 합니 다. 바울이 말한 ‘사랑 제일’은,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타인을 살리는 이 사랑, 예 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만이 우리 생명의 근원, 구원의 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사울이 사도바울로 된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것인데, 사울이었을 때 그는, 지금까지 율법이 최고인 줄 알고 율법주의에 빠져있었는데, 이것이 편견 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편견을 가지고 기독교를 보았다가, 편견이라고 하는 벽을 허물어 버렸더니, 복음 속에 있 는 사랑이 그의 가슴속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얘기예요. 우리는 자꾸 벽을 만들고, 그 벽을 통해서 사람을 보니까, 제대로 사람을 보지 못하게 되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벽 속에 갇혀있는 나의 시각으로 타인을 보면서 상처를 주고, 징계하고, 미워하고, 그래서 그에게 고통을 주는, 이러한 모습을 많이 가지는데, 예수님은 우리가 만들고 있는 벽을 허물어 버리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 기장을 시작하게 한 송창근 목사님, 김천에 있는 황금동 교회를 목회한 만우 송 창근 목사님은 ‘벽도 밀면 문이 된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복음의 진수를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죠. 4. 예를 들어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은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 하죠. 예수님의 어록을 모은 것인데, 학자들은 ‘Q 자료’라고 합니다. 이 산상수훈은 교회는 어떻게 세워져야 하느냐? 물음에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래야 풍파가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할 때, 떠올려지는 본문 말씀이 하나 있죠.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길을 가시다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 냐?” 질문했고,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너는 반석이구나.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 ‘에클레 시아’를 세우겠다.”(마태 16:16-18)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해되시죠? 이 반석과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반석이, 같은 반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기억해 볼 때, “내가 누구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이십니다. 이 빌립보 가이사랴는 그런 곳이에요.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신전이 있습니다. 그 신전 앞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다”라고 할 때에, 그 신앙고백 위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운다고 했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이때 하신 말씀 마태복음 7장 24~25절에서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무너지지 아니한다.” 이 말씀을 하기 직전에, 무슨 말씀을 하시느냐 하면,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 야 들어간다.” 그리고 이어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주의 이 름으로 많은 권능을 하였습니다.”(마 7:22) 이렇게 말하자. 예수님이 “내가 도무지 너희가 누군지 나는 모르겠다. I don't know you.”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주여 주여 하며 선지자의 일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했는데, 주님은 나를 향해서 “I don't know you. 나 너 몰라.” 하시더니 “불법(不法)을 행하는 자야. 내게서 떠나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도대체 이 불법(不法)이 뭐예요? 그것은 ‘불법을 행하는 자’라는 말씀 앞에 나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것’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뭡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죠.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랑을 행하여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여 주여 선지자의 이름을 소리치며, 권능을 행했지만, 그들의 가슴 속엔 사랑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모른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주여 주여 하더라도 아버지의 뜻대로 사랑을 행하지 아니하면 불법자가 되는 거예요. 무서운 얘기입니다. 5. 서구 세계 역사를 보면, 그 중심에 기독교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 기독교가 행한 편견이 만들어낸 잘못된 사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창세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후, 하나님이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 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하셨습니다. 생명 세계를 “좋다”고 만들어 놓으시고, 사람에게 “너희가 세상을 잘 다스려라.” 말씀한 것을 “땅을 정복하라” 한 말씀을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 세계를 “지배하라”로 곡해하여, 자연과 모 든 생물을 파괴하며 지배하고, 모든 창조물을 인간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공유(共有), 함께 살았어야 하는 건데 이렇게 침탈해서 지금의 기후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까? 자원 싸움이에요. 필요한 자원이 있는 나라에 가서, 전쟁을 일으켜 그것을 빼앗는 것입니다. 남미의 사건을 일으킨 일이라든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그 배후에도 그런 문제들이 있 다는 걸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이 자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편 견에 사로잡혀 만들어낸 위기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군 전쟁도 따지고 보면, 그것도 편견이 만들어낸 전쟁입니다. 더 유명한 얘기가 있죠. 노아의 아들 셋이 있었는데 셈, 함, 야벳입니다.(창 9:20-27) 아버지 하체를 봤다는 것을 문제 삼아, 흑인과 백인을 완전히 구별해놓고, 백인이 한 짓거리 가 무엇이었습니까? 이게 편견 아니고 무엇이에요? 하퍼 리라고 하는 소설가가 쓴 ‘앵무새 죽이기’라고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정교과서에 안 들어가 있지만, 서양 세계, 미국은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꼭 읽어 야 할 국정교과서 소설과 다름없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배우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영화 ‘앨라배마 이야기’ 제목으로 상영되었습니 다. 1960년대 초 이야기인데, 이 책은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흑인 노예해방의 방아쇠는 당 겼는데, 남부 미국의 남부 쪽에는 전혀 관계가 없었고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습니 다. 그것이 앨라배마라고 하는 작은 도시가 극심했어요. 이런 시대에 흑인의 인권 문제를 다 루었습니다. 이 당시 미국 남부 백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 하면, 백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 그 어려움의 책임은 흑인이다, 흑인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견이 있었어요. 소 설은 한 백인 여성이 흑인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하는 거짓말을 온 마을 사람들이 믿어서 재판 해서 죽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때 그레고리 펙이 주연 배우로 변호사 역을 맡아 흑인 죄수가 된 로빈슨을 변호하는데, 그의 7살 된 딸이 아버지의 하는 일들, 마을 사람들이 하는 걸 보는 겁니다. 결국은 무죄인 것을 알았지만 린치는 계속됐었습니다. 작가 하퍼 리는 “앵무새가 사람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단지 노래한 것뿐이다. 해 를 끼치지 않았는데 왜 앵무새를 죽이느냐?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 그래서 아무 잘못이 없 는 앵무새를 죽이는 그것이 죄다”라 썼어요. 1961년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1960년대 이 소설이 흑인 자유와 인권을 살려내는 소중한 사건이었어요. 우리 생각에는 우리의 편견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를 사로잡고 나면 알게 모르게 이 편견에 사 로잡혀서 정확하게 제대로 보질 못하는 거예요. 눈이 좁아지는 거예요. 자꾸만.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법을 만들어 보니까, 있는 그대로의 모 습, 팩트를 보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자,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이야기,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봅시다. 어느 날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낚싯바늘에 걸기 위해서 질문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율법에 뭐라고 했더냐? 네가 어떻게 읽느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랬습니다.” “그래, 너 잘 아는구나. 너 그대로 행하라.” 그랬더니,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아,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얘기했어요. 그때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시죠.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났어요.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그 옆에 제사장이 지나갑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서 먹고사는 사람이에요. 레위인이 지나 갑니다. 레위 지파도 예루살렘 성전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그냥 지나갔어요. 강도 만난 그 사람이 “Help me! Save me!” 소리치지 않았을까요? “나 좀 살려주세요. 죽어 갑니다.” 소리쳤을 거예요. 들었을 겁니다. 어쩌면 보았을 겁니다. 듣고 보았음에도 그들은 지 나쳤어요. 왜? 무엇이? 뭔지 모르겠지만 편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편견에 의해서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던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줬습니다. 사랑을 베풀었어요. 자비를 행했어요. 예수님이 뭐라고 그럽니까? 율법교사에게 질문하셨죠.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냐?”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래, 그렇지?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행하라”. 여러분, 사랑은 그렇습니다. 편견을 뛰어넘는 거예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벽들을 뛰어넘는 거예요. 이게 사랑입니다. 6. 조금 멀리 돌아온 것 같지만 예루살렘 성전 종교, 율법과 성전의 전통, 우리가 과거에서 지 금까지 지켜왔던 규례들, 우리의 관습, 100년 된 중부교회도 그런 것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이것으로 교회가 존속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교회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무엇으로 나타나야 하느냐? 할 때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법, 사랑의 법이 교회에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졌을 때, 때가 차서 하나님 나라가 임박해지는 종말의 때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의 시대가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의 시대가 시작되 었는데, 오늘의 세계교회나 한국교회나 이 중부교회가 위기에 봉착했다면 바로 무엇이 우리에 게 없는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두 번째 본문,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법, 사랑의 법을 잘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그냥 그대로 본문대로 읽어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제자 된 너희도) 나의 사 랑 안에 거하여라.” 이것은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하나님의 법대로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되리라.” “이것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길이다.” “나의 법, 나의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다.” “이럴 때 열매 맺는 참 포도나무가 된다.”(요 15:5) 그래서 마가복음 12장 31절에서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 하신 것입니다. 내가 내 몸 사랑하는 것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 여러분, 이렇게 될 때 교회는 포도 열매를 많이 맺는 공동체요, 믿음의 삶이 된다는 겁니다. 이게 요한복음 15장 말씀이에요. 7. 흔히들 교회의 위기를 말하면, 자꾸만 그 위기를 바깥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아, 코로나 때문에 그래.” 여러분 많이 말씀하셨죠? 그런 진단 많이 내리셨죠? 그래요, 맞아요. 코로나 영향을 받은 게 맞습니다. “아, 젊은 세대가 자녀를 낳지 않아서 그래요.” 중부교회도 보니까, 교회 학교 학생 숫자가 역시 어른들보다 훨씬 적더군요. 존폐 위기에 속한 교회들이 많습니다. 정말 그래서일까요? “물질을 하나님 자리에 두는 이 사회. 세속화된 것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은 안 그런가요? 그렇잖아요. 축복해 주세요. 뭐 해달라는 거예요? 아, 풍성하게 부자 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아, 물질화된 교회 때문에 지금 우리가 위기를 맞이했다고 하면, 자기는 빼는 건가요?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것들이 틀리다는 얘기를 한 게 아닙니다. 이것들도 원인이 되지만, 보다도 근원적인 것이 무엇일까 할 때에 오늘의 교회를 주님의 교회에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 물어볼 때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십자가 사랑.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는, 이 살아있는 신앙. 이 신앙이 교회의 신앙입니다. 교회 안에 이 신앙이 소멸하여 갈 때 교회는 무너지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않으리라.”(마 7:24-25) 여러분, 이 중부교회가 어떤 시련과 위기 앞에서도 반석 위에 세워져 무너지지 아니하는 교회 이루어가기를 사랑인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하시죠. 감사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벽을 만들며 살아가는지, 이 벽 때문에 또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상처를 입고 힘들어하는지 저희가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법이 살아나야 함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회복하는 저희 되도록 은혜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강석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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