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황금률
황금률(Golden Rule)이란 무엇인가? 황금률이란 영어 ‘Golden Rule’의 뜻처럼 ‘황금같이 귀한 교훈(말씀)’을 가리킨다. 그리고 황금률이 가리키는 교훈의 구체적인 근거는 바로 “대접을 받으려면 대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한편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대우 받고자 하는 대로 대우 하라.”는 표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황금률의 직접적 근거는 성경의 언약대로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첫 설교 곧 산상수훈(산상복음; 마태복음 5-7장)이며, 일반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수훈의 결론으로 주신 말씀이 황금률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예수의 황금률’,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황금률’로 불리운다.
다음은 오늘날 황금률의 근거가 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누가복음 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황금률의 시작, 곧 그 근원은 모세 시대의 율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출애굽기 23: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33-34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황금률을 기독교만의 가르침이나 예수님의 교훈으로만 오해하면 안된다. 황금률은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는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윤리다. 오늘날의 황금률은 보편화, 상식화, 세계화가 된 기본 윤리로 보아야 한다.
다음은 황금률과 관련한 각 종교 마다의 교리적 가르침이다.
기독교 : “대접을 받으려면 대접하라.”
유대교 :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
이슬람 : “나를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라.”
힌두교 : “네가 고통스러운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불 교 :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주지 말라.”
유 교 :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황금률은 사실 율법(성경)의 요약이요 목적이며 결론을 의미한다. 율법의 근본 정신은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다음은 율법과 선지자의 언약(예언)대로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시 율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모든 백성들이 율법 아래서 나그네 대접 계명(황금률)을 비롯하여 십계명을 목숨걸고 지키던 유대인들을 향해 주신 새 계명이다.
마태복음 22:36-40 “선생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황금률과 관련하여 ‘대접하라’는 용어는 성경적으로는 ‘영접하라’는 용어에 더 가까우나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는 ‘대우하라’, ‘환대하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나그네를 대접하라”, 또는 “이방인을 환대하라”는 황금률은 율법을 신봉하는 유대교와 이슬람권에서는 매우 중요시되는 교리다. 이미 오래전부터 중동 지역에서는 황금률이 하나의 문화적 관습 및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나그네 환대’는 단순한 선행을 너머 한 가문과 부족의 신앙과 수치와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다.
오늘날 교회가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육적으로 이방인(외국인)을 환대하고, 손님을 대접하며, 또는 윤리적 선행이나 인간 관계에서 타인의 행동을 존중하며 역지사지적으로 행하는 행동원리로 삼아 가르치는 것은 사실 성경의 본래 목적에 맞지 않다.
따라서 필자는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상식화된 황금률을 신자들에게 육적인 교훈으로 가르치기 보다는 황금률의 본래적 의미 곧 성경이 황금률에 관해 기록한 본질적 의미와 그 궁극적 목적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렇다고 황금률이 가르치는 바 육적인 선행과 이방인에 대한 환대 및 손님 대접에 대한 과거 한국교회의 가르침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과 행함은 하나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황금률에 대한 실천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2천년 전의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나, 5백년 전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주신 특별계시의 책으로서 보이는 문자적 진리보다 그 속에 감추어진 보이지 않는 영적 진리가 더 중요하다.
특히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경 속에 감추어 두신 구원의 비밀 곧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한 구원의 진리를 깨달아 믿는 것이 곧 구원받는 믿음을 얻는 하나님의 방법이며 또한 구원받은 자의 믿음이 성장하고 나아가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비결임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그 모든 구원역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 성령님의 역사이며 동시에 신비요 비밀이다.
다음은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의 두 산봉우리요 두 거장인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의 성경관이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다. 성경을 따면 그리스도의 피가 나온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
“성경은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어야 한다. 누구든지 이것을 외면하면 평생 학문에 힘써도 결코 진리를 알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과거 한국교회가 충분하게 가르친 황금률에 담긴 육적인 교훈보다는 그 황금률에 감추어진 영적 교훈에 집중할 것이다. 나아가 필자가 황금률에 관해 다루는 궁극적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렇다면 황금률의 일반적인 의미가 무엇이며, 황금률을 오늘날 시대는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를 AI 비서가 작성한 설교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황금률의 사전적 의미
♣위키백과 한국어 사전
황금률(黃金律)은 수많은 종교와 도덕, 철학에서 볼 수 있는 원칙의 하나로, '다른 사람이 해 주었으면 하는 행위를 하라'는 윤리 원칙이다. 영어로는 골든룰(Golden Rule)이라고 한다.
♣나무위키
근거 성구 : 누가복음 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은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원칙이다. 인류의 수많은 문화,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원칙이다. 수많은 종교의 경전에는 비슷한 의미의 문구들이 수록되어 있다.
유럽/중동 쪽에서는 기독교 윤리관의 기초를 이루는 예수의 명언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가 유명하다.
유사한 표현으로 토빗기 4장 15절의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가 있으며 후자의 이 표현은 ‘은률’(silver rule)이라 불렸다. 신약이 ‘행하라’고 했다면, 구약 토빗기에선 ‘하지 마라’고 표현한 것이다.
동아시아 쪽에서는 위의 은률과 비슷하게 공자가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비슷한 말로는 역지사지 등이 있다. 반대말은 이중잣대.
♣[네이버 지식백과] (종교학대사전)
『마태복음』 7장 12절, 『누가복음』 6장 31절에 있는 예수의 말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에 붙여진 명칭. 영어로는 Golden Rule. 그리스도교 윤리의 근본원리로서 존중되는데, 이 명칭 자체는 근대 이후의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소박한 응보사상에 의한 격언으로, 기원 전후의 유대사회에서 널리 인구회자 되었다고 생각되며, 오래된 랍비문헌 등에도 부정형 〈~하고 싶지 않는 자는 남에게도 하지 말라〉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것이 예수의 진정한 말이 라고는 단정하기 어렵다.
2. 황금률의 정의에 대한 AI의 답변
황금률에 관해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두 종류 AI 비서(챗봇)에게 물었다.
질문 : “황금률에 대하여 500자 이내로 간략하게 설명해줘”
♣O사 AI의 답
황금률(Golden Rule)은 인간관계와 윤리의 기본 원칙으로, “내가 대접받고 싶은 방식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뜻이다. 반대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형태로도 표현된다.
이 원칙은 기독교, 불교, 유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와 철학 전통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며,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황금률은 공정한 사회와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진다.
♣G사 AI의 답
황금률(Golden Rule)은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인류 보편의 윤리 원칙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핵심 가치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기독교 성경의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며, 유교의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기소불욕 물시어인)"라는 가르침도 맥을 같이 합니다.
황금률은 인간관계의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바탕으로 합니다. 나의 도덕적 행동 기준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를 존중하며 갈등을 해결하도록 돕는 인류 최고의 도덕적 지침입니다.
3. 황금률을 주제로 AI가 작성한 설교문
질문 : "황금률을 주제로 1.2.3대지로 구성하여 A4 5매 분량의 설교문을 작성해줘"
1) G사의 AI가 작성한 설교문
제목: 삶을 바꾸고 세상을 치유하는 하늘의 법, 황금률
본문: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선택과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정에서 배우자와 자녀를 대할 때, 직장에서 동료와 상사를 만날 때, 심지어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를 마주할 때도 우리는 끊임없이 행동의 기준을 요구받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저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까?", "어떻게 해야 내 권리와 이익을 지키면서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마주하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도 명쾌한 삶의 기준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십니다. 세상 학자들은 이 말씀을 일컬어 '황금률(The Golden Rule)'이라고 부릅니다. 황금처럼 고귀하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모든 도덕과 윤리의 결정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한 문장이 구약 성경 전체, 즉 "율법이요 선지자"의 핵심 요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수백 가지의 계명과 복잡한 종교적 의식들이 결국 이 한 마디의 원리로 수렴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황금률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세 가지 대지로 나누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막힌 관계가 뚫리고, 메마른 심령에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제1대지: 황금률은 이기심을 깨뜨리는 '역지사지'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황금률을 묵상할 때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이 말씀이 철저하게 '타인의 자리'에 서서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존재입니다. 죄로 오염된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나의 유익, 나의 감정, 나의 형편을 가장 먼저 살피게 만듭니다. 우리는 남이 나에게 상처 준 것은 뼈에 새기듯 기억하면서도, 내가 남에게 준 상처는 모래 위에 쓴 글씨처럼 쉽게 잊어버립니다. 내가 대접받고 존중받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정작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일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이기적인 본성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도덕적 기준의 출발점을 '나의 욕구'에서 시작하여 '타인을 향한 실천'으로 전환시키십니다.
"너는 존중받고 싶으냐? 그렇다면 먼저 그 사람을 존중해라."
"너는 위로받고 싶으냐? 그렇다면 네가 먼저 손을 내밀어 위로해라."
"너는 네 허물이 덮어지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너도 다른 이의 허물을 덮어주어라."
세상의 다른 종교나 철학에도 이와 유사한 가르침이 존재합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기소불욕 물시어인)"고 했습니다. 랍비 힐렐 역시 "네가 싫어하는 일을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르침은 대개 '소극적인 금지'에 머무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된다"는 수준입니다. 내가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내 할 도리를 다했다는 식의 방어적인 태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황금률은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적극적인 행동을 명령하십니다. "하지 말라"가 아니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대접해야 비로소 나도 대접하는 '조건부 행동'이 아니라, 내가 받고 싶은 대접을 계산 없이 먼저 베푸는 '선제적 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역지사지입니다. 나의 시선을 내 안에서 끄집어내어 형제와 자매의 처지로 옮겨 심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지금 얼마나 힘들까?",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떤 위로를 받고 싶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2대지: 황금률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황금률의 말씀을 들을 때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이 말씀대로 살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마음에 여유가 없고, 무엇보다 상대방이 그럴 만한 자격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에게 손해를 입힌 사람, 도무지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향해 어떻게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먼저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본문의 첫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이 "그러므로"는 마태복음 7장 앞부분에 나오는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바로 앞 구절인 9절부터 11절에서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소개하십니다. 자식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냐고 물으십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즉, 황금률의 전제 조건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께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가장 좋은 것을 얻는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원수 같은 자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대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시며, 우리를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최고의 신분으로 대접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황금률은 나의 메마른 자원에서 짜내는 도덕적 의무가 아닙니다. 이미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무한한 사랑과 은혜의 저수지에서 흘러넘치는 생수가 되어 이웃에게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았기 때문에 비로소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조건 없는 용납을 받았기에, 자격 없는 이웃을 용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색한 세상 속에서 손해 볼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공급자는 세상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부요하심과 사랑을 날마다 공급받아, 이웃에게 넉넉히 베풀고 대접하는 넉넉한 영성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제3대지: 황금률을 실천할 때 공동체가 살아나고 천국이 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황금률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자, 하나님의 모든 통치 원리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황금률을 따라 살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며,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작은 천국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멍들고 깨어져 가고 있습니까? 모두가 '역(逆) 황금률'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남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나도 남에게 상처를 주겠다", "내가 대접받지 못했으니, 나도 대접하지 않겠다"는 보복과 원망의 악순환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부간에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사회에서는 계층 간, 세대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서로가 먼저 대접받으려고 소리칠 뿐, 먼저 대접하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대안이 되어야 합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비난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먼저 건넬 때, 직장에서 남들이 꺼리는 궂은일을 내가 받고 싶은 존중의 마음으로 먼저 감당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비아냥거림이 가득하던 곳에 감사가 피어나고, 긴장과 갈등이 가득하던 곳에 평화의 물결이 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말로만 황금률을 외치지 않으셨습니다. 친히 온 몸과 삶으로 이를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병든 자와 소외된 자들을 먼저 찾아가 만져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 순간에도, 자신을 조롱하고 못 박는 군인들을 향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며 용서의 대접을 먼저 베푸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먼저 행하신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구원받은 백성으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교회를 향해, 그리고 오늘 우리를 향해 원하시는 모습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손 내밀고, 우리가 먼저 사랑하고, 우리가 먼저 용서할 때, 우리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치유가 가득한 피난처가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 황금률을 가리켜 "모든 이의 마음속에 새겨진 자연법이자, 멀리 갈 필요 없이 언제나 우리 손에 쥐여져 있는 가장 쉬운 교과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고 핑계 대지만, 사실 서야 할 기준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라면 지금 어떤 말을 듣고 싶을지,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을지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면 됩니다.
황금률은 머리로 이해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손과 발로 살아내야 하는 실천의 복음입니다.
오늘 문을 나서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실 때, 이 말씀을 가슴에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대할 때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작은 실천을 통해 깨어진 관계들이 회복되고, 상처 입은 심령들이 위로를 얻으며, 우리가 발을 딛는 모든 곳에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넘치기를, 우리를 먼저 최고의 사랑으로 대접해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O사 AI가 작성한 설교문
제목: 황금률의 삶
본문: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서론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인간관계를 원합니다. 존중받기를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며, 이해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관계는 종종 갈등과 상처로 가득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받기를 원하지만 먼저 베풀기를 주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서 매우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황금률입니다. 황금률은 단순한 예절이나 도덕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황금률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세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1대지: 황금률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내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황금률은 나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라고 가르칩니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다면 나 역시 다른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나를 친절하게 대해 주면 기쁩니다. 그렇다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보실 때 불쌍히 여기셨고, 굶주린 무리를 보실 때 먹을 것을 주셨으며, 죄인들을 정죄하기보다 품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셨습니다.
오늘날 가정과 교회, 직장에서 많은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배우자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부모는 자녀의 마음을 듣지 않으며, 성도들은 서로의 형편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황금률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떻겠는가?”
“당신이 그 상황에 처해 있다면 무엇을 원하겠는가?”
이 질문에 답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관계는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십시오.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십시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황금률의 첫걸음입니다.
제2대지: 황금률은 먼저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남을 해치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적극적으로 “남을 대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악한 행동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한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행동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먼저 인사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인사하십시오.
누군가 먼저 용서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용서하십시오.
누군가 먼저 사랑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사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법도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은 먼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황금률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여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자신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큰 일을 하지 못해도 작은 친절을 베풀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격려의 문자 한 통, 힘든 사람을 위한 기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향한 작은 섬김. 이 모든 것이 황금률의 실천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사랑의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다리지 마십시오. 먼저 사랑하십시오. 먼저 섬기십시오. 먼저 다가가십시오. 이것이 황금률의 삶입니다.
제3대지: 황금률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황금률이 성경 전체의 핵심 정신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바로 이웃 사랑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미래에 가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가 황금률을 실천하면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성도들이 서로 존중하고 섬기면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던 이유는 단지 설교를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며 나누고 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경쟁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 미워할 때 사랑하고, 누군가 비난할 때 축복하고, 누군가 외면할 때 품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입니다.
성도 한 사람의 친절이 한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용서가 공동체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이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황금률은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복음을 보여 주는 삶의 방식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황금률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삶입니다. 황금률은 먼저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황금률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사랑하고, 먼저 존중하며, 먼저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의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황금률을 실천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우리의 공동체는 더욱 아름답게 세워질 것입니다.
주님의 황금률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추신 : 위의 황금률에 관한 두 AI 비서(챗봇)의 정의와 설교문은 필자가 단 한 글자도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옮겨 놓았음을 밝힌다.)
♣황금률에 관한 필자의 마무리
황금률을 주제로 하여 AI가 작성한 설교문이 매끄럽고 실제적인 교훈 중심으로 잘 작성된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현재의 무료 AI가 필자의 단순한 질문만 가지고도 이런 설교문을 작성할 수 있다면 앞으로 더 업그레이드된 AI와 가까운 미래의 인간의 지능을 그대로 모방한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인공일반지능, 또는 범용인공지능), 더 나아가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될 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초인공지능, 또는 생성형 거대AI)의 성능과 수준은 가히 모든 면에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벌써 타 종교계는 물론 기독교 역시 멀잖은 미래에는 신자들이 신앙생활의 대부분의 영역을 AI에게 의존하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이미 현재의 AI 성능 만으로도 목회자는 물론 신자들 대부분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물론 목회와 신앙의 영역에서 AI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까지는 허용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놀랍게 발전하고 있는 역대급 과학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목회자와 신자들이 과연 어떻게 세상 문명을 지혜롭게 활용하며 동시에 세상의 각종 유혹들을 이기며 살아가는 슬기로운 신앙이 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물론 모든 신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은 답을 외친다. “본질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문제는 구호(표어)만 외치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건대 그 본질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방법이요 비결은 바로 사도 바울이 전한 ‘오직 예수복음’을 회복하는 것이요, 또한 종교개혁자들의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오직 성경’신앙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필자가 황금률에 관해 언급하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증거하고,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빌 3:8)을 소유하게 하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더욱 자라가며, 동시에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동행하며 연합하는 신앙이 되게 하는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그리고 그 모든 방법은 이미 사도 바울과 마틴 루터와 존 칼빈(장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쳐 준 방법이며, 또한 한국교회 개혁주의 신학과 믿음의 선배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한 것임을 밝힌다.
황금률의 일반적 의미에 관하여는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황금률에 관하여 말씀하셨고, 왜 성경(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황금률을 반드시 지키도록 명령하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황금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떠한 형태로 지켜야 하는가? 등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와 나그네, 또는 선지자를 영접한 자들이 축복을 받고 또한 구원받는 역사가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세 나그네(천사)를 영접하여 아들 이삭을 낳는 약속을 받았다. 소돔 성의 롯이 하나님이 보내신 두 천사(나그네)를 영접하여 유황불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다. 기생 라합이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꾼(나그네)을 영접하여 여리고 성 멸망에서 구원을 받았다. 사르밧의 한 과부가 하나님이 보내신 엘리야 선지자를 영접하여 3년 반 기근에서 살아남았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를 영접하여 7년 기근에서 살아남았다.
성경에 기록된 황금률과 관련한 사건들의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은 바로 오실 메시야를 증거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을 황금률로 정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경에 황금률을 율법으로 정하여 지키고, 기록하게 하신 그 본래 의도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성경 전체의 목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본래의 의도, 곧 성경의 본질적 목적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전했으며, 신약성경 대부분을 기록한 위대한 사도 바울의 증거에 잘 나타나 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성경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감추어 두셨다(골 1:26-27). 사도 바울에 의하면 성경66권의 주제는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다.
사도 바울은 그가 기록한 신약성경 대부분(로마서부터 히브리서까지)을 통해서 성경 속에 감추어진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으로 해석하는데 온 힘과 정성을 쏟았다. 그 이유는 그가 기록한 신약성경이 바로 신약시대에 이방인 곧 세상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과 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사도 바울이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로 해석하고 깨닫는 원리로 제시한 말씀으로 필자는 ‘사도 바울의 성경해석 원리’로 이름을 붙여 보았다. 사도 바울의 성경해석 원리는 훗날 종교개혁자들의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해석 곧 구속사적 성경해석의 원리가 되었고,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에서 가르치는 모형론을 통한 성경해석의 기초요 원조가 되었다.
♣사도 바울의 성경해석 원리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적 해석을 위한 방법의 제안이지 절대적 원리는 아님)
1) 하나님께서 성경 속에 구원의 비밀을 감추어 두었다.
골로새서 1:26-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건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로새서 2:2-3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참고 : 마 13:10-17, 롬 11:11-12, 히 1:1-6, 히 9:9-12)
2)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하라.
고린도후서 3:13-16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참고 : 눅 24:44, 요 5:39, 롬 5:14, 고전 10:1-5, 히 8:5, 히 9:10)
3)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소유하라.
빌립보서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참고 : 호 4:6, 호 6:3-6, 요 17:3, 벧후 3:18)
4)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에베소서 4:13-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참고 : 고전 13:11, 히 5:11-14, 히 6:1-8, 벧후 3:18)
5)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오직 예수복음만을 믿고 전하라.
디모데후서 3:15-17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2: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
(참고 : 고후 2:17, 고후 11:1-4, 갈 1:6-10)
하나님께서 왜 황금률을 율법으로 정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반드시 지키도록 명령하셨는가? 그 목적은 바로 오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그네가 되어 천국복음을 선포하실 때 영접하여 구세주로 믿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 성읍들로 파송하신 목적도 결국 율법 아래 나그네 대접 계명을 근거로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다(마 10:1-15, 마 10:40-42). 그리고 황금률의 최종적 결론이 바로 예수님의 양과 염소 비유(마 25장)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모든 사람을 양(의인)과 염소(악인)로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황금률이다.
율법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이며(갈 3:24), 예수님이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요 안식일의 주인이며(마 12:6-8),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듯이(요 8:53-59, 마 12:41-42), 나그네 대접 계명 곧 황금률의 목적과 주인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다.
황금률의 중요성은 이미 2천년 전에 구약교회(유대인)를 통해서 다 보여 주었다. 2천년 전에 유대 땅에 참 나그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죄사함과 구원의 복을 받았고, 반면에 스스로 율법의 계명대로 다 지켜 행하였고 또한 나그네 대접 규례를 잘 지켰을지라도 예수님과 예수님이 보내신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은 자들은 다 구원의 실패자가 되었다.
2천년 전의 구약교회(이스라엘)의 실패는 신약시대에 이방인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이며(롬 11:11-12), 동시에 신약교회를 위한 거울과 경고다(고전 10:11).
2천년 전에는 육적 나그네 대접이 메시야 영접으로 이끄는 중요한 신앙이 되고 또한 구원과 멸망의 기준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영접한 사건이며 또한 사마리아 지역의 수가 성 여인이 예수님을 영접한 사건이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육적 나그네 대접이 예수님 영접이나 구원과 멸망의 기준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하면 신약시대의 구원받는 믿음의 주체와 근거는 ‘오직 성경’과 ‘성령의 역사’다. 신약시대는 만인제사장 시대로서 주의 종과 신자의 구분이 없는 시대다. 따라서 과거 한국교회가 가르친 바와 같이 주의 종을 잘 대접하여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의 복을 받으라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단지, 복음과 신앙의 초기를 위한 초보적인 가르침일 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황금률의 성경적 의미와 목적을 바로 깨달아 오늘날 시대에 맞게 행하는 지혜로운 신앙이 되어야 한다. 성경을 주신 이후 신약시대는 ‘오직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소유하되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로 깨달아 믿는 것이 곧 올바른 예수님 영접신앙이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깨달아 믿는 것이 바로 참 나그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환대요 영접이다.
나아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때를 따른 양식이 있듯이(마 24:45), 시대마다 복음을 통한 구원의 역사가 다르기에 시대에 따라 황금률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 기독교 2천년 역사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라”(마 28:19-20, 행 1:8)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시대를 위한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때를 따른 양식을 먹이는 종이 되라”(마 24:45)는 것과 “작은 책을 갖다 먹고 다시 예언하라”(계 10:9-11)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시대는 예수님의 재림을 영접하는 신앙과 관련한 황금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일반적으로 보편화된 황금률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의 신앙성장(영의 사람, 새 사람)을 위하여 황금처럼 귀하게 여기는 나만의 영적 황금률을 소유하라는 의미다.
예수님의 여러 교훈 중 마지막 때와 관련하여 가장 강조하신 말씀은 바로 ‘때’(시대)를 분별하여 행하는 지혜로운 신앙이 되라는 것이다. 황금률의 역사와 관련하여 볼 때 오늘날 시대를 위한 최후의 황금률은 요한계시록 3:20절 말씀이다. 다시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마지막 때에는 요한계시록을 통한 예수님과의 영적 교제를 통해서 신부단장하는 신앙이 곧 최후의 황금률을 지키는 신앙이다.
오늘날 교회는 성경의 진리를 깨닫되 구약시대와 메시야 시대(초림)와 사도시대(초대교회시대)와 성경의 완성 이후 신약시대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마지막 때를 분별하여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시대에 맞지 않는 신앙적 행위는 곧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믿음이며 동시에 미련한 신부신앙이다.
오늘날 교회는 과거에 성경의 문자적 교훈을 읽고, 암송하고, 가르치며, 지키는데 힘썼던 그 수고와 노력을 이제부터는 성경의 본질적 의미와 목적을 깨달아 믿는데 쏟아야 한다. 나아가 지난 기독교 2천년 역사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데 힘썼다면,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하고 신자들로 하여금 신랑 예수님을 맞이할 슬기로운 신부신앙으로 단장시키는데 목회와 신앙생활의 중점을 두어야 한다.
끝으로 오늘날 시대를 위한 황금률로 삼을 만한 성경구절 몇 개를 추천해 본다.(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①요한복음 8:32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
②고린도후서 3:14-16 “성경을 예수의 안경을 쓰고 보라.”
③빌립보서 3:8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소유하라.”
④마태복음 24:45 “때를 따른 양식을 먹으라.”
⑤마태복음 25:1-13 “슬기로운 신부신앙이 되라.”
⑥요한계시록 1:3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다”
⑦요한계시록 10:10-11 “작은 책을 갖다 먹고 다시 예언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황금률에 감추어진 진리를 깨달아 오늘날 시대에 맞는 참된 영접신앙을 소유하며, 나아가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슬기로운 신부신앙으로 단장하자.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