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중국 전한(前漢)의 원조(元祖)때의 일인데 왕소군(王昭君)에게는 봄은 봄이 아니었습니다. 한(漢)나라 원제(元帝BC74~BC33)는 색(色)을 밝힌 인물이었습니다. 장안(長安)의 미인이라는 미인은 모두 궁(宮)으로 불러들여 궁녀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들인 여인이 3000여명. 원제는 궁녀를 매일밤 바꿔 가며 밤을 보냈습니다. 고르는 것에 지친 그는 화공 모연수(毛延壽)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습니다. 그림을 보고 여인을 간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중에는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이름의 궁녀도 있었습니다. 절세 미인이 따로 없었습니다. 후대인들은 중국 전한(前漢) 시대 원제(元帝)의 궁녀였던 왕소군과 춘추전국시대의 서시(西施), 삼국시대의 초선(貂蟬), 당나라의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중국 고대의 4대 미인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왕소군은 이미 고령이 된 원제에게 눈에 띨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돈도 없었지만 자신의 미모에 자신만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괘씸하게 여긴 모연수는 왕소군을 가장 못나게 그려 바치고 말았습니다. 다른 궁녀들은 모연수에게 돈을 줘가며 잘 그려달라고 매달렸지만 왕소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림 속의 얼굴은 미인(美人)과는 거리가 먼 추녀(醜女)중에 추녀였습니다. 어느 날, 북방의 흉노족 족장이 '원제'를 찾아 와 '한족'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한(漢)나라 원제(元帝)는흉노 왕에게 반반한 궁녀 하나를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누구를 보낼 것인가 생각하다가 '원제'는 궁녀들의 '초상화집' 을 가져오게 해서 쭉 훑어봤습니다. 그 중 가장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을 찍었습니다. 며칠 후, 작별 인사 차 온 왕소군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림과는 달리 절세 미인이었던 때문이었습니다. 오랑캐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실물을 본 원제는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모연수의 비리 행각을 알게 된 원제는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잘랐습니다. 기원전 33년,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기 3년전 정략(政略)의 도구가 된 궁녀(宮女) 왕소군은 이렇게 흉노(匈奴)의 왕(王)에게 억지로 시집을 갑니다. 이국 땅으로 떠나가는 날...왕소군은 고향 생각이 나 금(琴)을 연주합니다. 아름다운 선율이었습니다. 한 무리 기러기가 날개짓을 잊고 그만 땅으로 고꾸라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낙안(落雁)이란 떨어질 낙(落)자에 기러기 안(雁)자를 쓰는데 그래서 왕소군을 낙안(落雁)이라 칭하였다고 합니다. 훗날 많은 화가들이 왕소군을 그렸고 시인들은 그의 애달픈 삶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게 바로 당(唐)나라 '측천무후'의 '좌사(左史)' 였던 '동방규'가 쓴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 입니다.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어(胡地無花草) 봄이 왔으되 봄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 나도 모르게 옷 띠가 느슨해졌나니(自然衣帶緩) 몸이 약해진 때문만은 아니리니(非是爲腰身) 이 시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 '춘래불사춘'은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규)' 의 시 '소군원(昭君怨)' 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요즘 봄은 왔어도 봄같지가 않습니다. 시국이나 경제 또한 어수선 하기만 합니다. 거기다가 온 산하가 산불 화마(火魔)로 뒤덮히는 형국이니 봄꽃이나 제대로 피어 날런지 모르겠습니다. 모든것이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모셔온 글- |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