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문화유산자료

춘야연도리원서 해설

작성자濟椿|작성시간07.09.10|조회수172 목록 댓글 1
 

春夜宴桃李園序    ― 李  白

◆ 해제(解題): '春夜宴諸從弟桃李園序'로 된 板本도 있음. 序란  宴會와 送別會席上에서 지은 詩를 모아 詩集을 만들고 거기서 붙인 序文.李白이 33세시 지은 작품


춘야연도리원서는 이백이 봄날 밤에 형제와 친족들과 함께 복숭아와 오얏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연회를 열고 각자 시를 지으며 놀 적에 그 시편 앞에 그 때의 감상과 일의 차제를 편 문장이다. 서(序)는 사물의 차제(次第)를 순서를 세워서 서술하는 글이다.


夫天地者는 萬物之逆旅요, 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而浮生이 若夢하니 爲歡이 幾何오. 古人秉燭夜遊는 良有以也라.

(부천지자 만물지역려 광음자 백대지과객 이부생약몽 위환기하 고인병촉야유 양유이야)


무릇 천지라고 하는 것은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지나가는 길손이다. 부평초 같은 인생 꿈과 같으니

즐거움이 되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옛사람이 손에 촛불을 밝혀든 채 밤에 유유자적하였음은 참으로 까닭이 있었다.


▶ 逆旅 맞을 역: 나그네 려: 나그네를 맞는 곳, 여관(旅館)

▶ 光陰 빛 광: 그늘 음: 햇빛과 그늘 즉 시간을 말함, 세월

▶ 百代 일백 백: 세대 대: 영원함

▶ 之 갈 지(zhi1): ①∼의 ②그, 이, 그 사람, 그것(사람, 사물을 대신하여 목적어로 쓰임)

     ex) 求之不得 ③가다, 이르다   ex)君將何之

▶ 過客 지날 과: 손님 객: 과객, 손님

▶ 而 말이을 이: 그리고

▶ 浮生 뜰 부: 살 생: 뜬 구름 같이 덧없이 흘러 다니는 인생을 뜻하는 한 단어.

▶ 若 같을 약: ①∼과 같다 ②만약∼라면 ex)若不勞力, 必要失敗

▶ 夢 꿈 몽: ①꿈 ②헛된 생각, 환상, 공상, 꿈꾸다 ex)我如何敢作那?夢??

▶ 爲 될 위: ①∼이 되다, ∼로 생각하다 ②하다, 행하다 ex)事在人爲

▶ 秉 잡을 병: 잡다, 쥐다, 들다

▶ 燭 양초 촉: 양초, 초

▶ 良 진실로 량: 진실로, 참으로


況陽春이 召我以煙景하고 大塊假我以文章이라. 會桃李之芳園하여 序天倫之樂事하니

(황양춘 소아이연경 대괴가아이문장 회도리지방원 서천륜지락사)


하물며 양춘가절의 봄날이 아지랑이 낀 경치로 나를 부르고, 창조주가 문장으로써 나를 빌어 쓰니 복숭아꽃, 오얏꽃 활짝 핀 동산에 모여 형제들이 즐거움을 펼치니


▶ 況 하물며 황: 하물며

▶ 陽春 따뜻할 양: 봄 춘(chun1): 화창한 봄 날씨

▶ 召 부를 소: 부르다, 초대하다의 뜻과 통함

▶ 煙景 연기 연: 경치 경: 놀, 안개 등이 끼어서 아름다운 봄 경치를 뜻하는 한 단어이다.

▶ 大塊 클 대: 덩어리 괴: 대지, 천지, 대자연을 뜻하는 한 단어

▶ 假 빌릴 가:: ①빌리다, 차용하다 ②거짓(의), 가짜(의) ex) 槍假眼睛

▶ 桃李 복숭아 도: 오얏 리(li3): 오얏나무

▶ 芳園 꽃다울 방:, 뜰 원:: 정원

▶ 序 펼칠 서: 펼치다

▶ 天倫 하늘 천:, 차례 륜: 하늘이 맺어준 질서 즉 형제. 부자 형제 등 가족간의 변치않는 떳떳한 도리


群季俊秀하여 皆爲惠連이나 吾人詠歌는 獨慚康樂이로다. 幽賞이 未已하여 高談이 轉淸이라.

(군계준수 개위혜련 오인영가 독참강락 유상미이 고담 전청)


젊은 수재들의 글솜씨는 사혜련과 같은데, 내가 읊는 노래만이 강락후에 부끄러울 뿐이다. 그윽한 경치감상은 아직 끝나지 않고, 격조 높은 이야기는 한층 더 맑다.


▶ 季 젊을 계: 젊다, 어리다

▶ 惠連 은혜 혜: 이을 련: 남조 송(宋)의 사혜련(謝惠連) 10세에 시를  잘 지어 그의 형 령운(靈雲)은 그를 만나 시를 지으면 좋은 구가 얻어졌다 함

▶ 吾人 나 오: 사람 인: 나

▶ 詠 읊을 영: 노래하다, 시를 읊다

▶ 慙 부끄러울 참: 부끄럽다

▶ 康樂 건강할 강 즐거울 락: 사령운이 강락후에 봉해졌기 때문에 사강락(謝康樂)이라 함. 그는 산수시의 시조로 이태백이 그  의 詩品을 특히 좋아하여 은근히 자신에 비유함

▶ 幽賞 깊을 유: 감상할 상: 그윽한 감상, 고요히 바라보며 즐김

▶ 已 그칠 이: 그치다, 끝나다, 멎다

▶ 高談 고상할 고: 이야기 담: 고상한 담론


開瓊筵以坐花하고 飛羽觴而醉月하니 不有佳作이면 何伸雅懷리오. 如詩不成이면 罰依金谷酒數하리라.

(개경연이좌화 비우상이취월 불유가작 하신아회 여시불성 벌의금곡주수)


훌륭한 연회를 열어 꽃에 자리하고 새 모양의 술잔을 주고받으며 달빛처럼 취하니, 아름다운 시가 있지 않고서 어찌 우아한 마음을 펴리요. 누구든 시를 이루지 못한다면 금곡의 예에 의하여 술 석 잔을 마셔야 한다.


▶ 瓊筵 옥 경: 댓자리 연: 화려한 연석(宴席)

▶ 羽觴 날개 우:, 술잔 상: 새깃 모양으로 된 술잔의 이름

▶ 伸 펼 신: 펴다

▶ 雅懷 우아할 아: 품을 회: 마음속의 맑은 회포, 아취(雅趣)있는 마음

▶ 依 의하여 의: ①∼에 의하다 ②기대다, 의지하다

▶ 金谷酒數 쇠 금: 골 곡: 술 주: 셀 수: 진(晋)의 석숭(石崇)이 금곡원(金谷園)에서 손님들을 초빙하여 연회를 베풀 때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로 술 석 잔을 먹였다는 고사(古事). 金谷은 하남성 낙양현의 서쪽 금수(金水)가 흐르는 골짜기. 석숭은 동양을 대표하는 대부(大富)였으나 녹주(綠珠)라는 애첩 때문에 아사(餓死)함


李  白 701∼762


중국 성당기(盛唐期)의 시인.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간쑤성[甘肅省] 룽시현[西縣]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이었다고 전한다. 출생지는 오늘날의 쓰촨성[四川省]인 촉(蜀)나라의 장밍현[彰明縣] 또는 더 서쪽의 서역으로서, 어린 시절을 촉나라에서 보냈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따라서 장난[江南]·산둥[山東]·산시[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젊어서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그는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안릉(安陵:湖南省)·남릉(南陵:安徽省)·동로(東魯:山東省)의 땅에 체류한 적도 있으나, 가정에 정착한 적은 드물었다. 맹호연(孟浩然)·원단구(元丹邱)·두보 등 많은 시인과 교류하며, 그의 발자취는 중국 각지에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불우한 생애를 보내었으나 43세경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창안[長安]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던 1, 2년이 그의 영광의 시기였다. 도사(道士) 오균(吳筠)의 천거로 궁정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의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지위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는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이다. 이것으로 그의 시명(詩名)은 장안을 떨쳤으나, 그의 분방한 성격은 결국 궁정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창안을 떠났다. 창안을 떠난 그는 허난[河南]으로 향하여 뤄양[洛陽]·카이펑[開封] 사이를 유력하고, 뤄양에서는 두보와, 카이펑에서는 고적(高適)과 지기지교를 맺었다. 두보와 석문(石門:陝西省)에서 헤어진 그는 산시[山西]·허베이[河北]의 각지를 방랑하고, 더 남하하여 광릉(廣陵:현재의 揚州)·금릉(金陵:南京)에서 노닐고, 다시 회계(會稽:紹興)를 찾았으며, 55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쉬안청[宣城:安徽]에 있었다. 적군에 쫓긴 현종이 촉나라로 도망하고 그의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이 거병, 동쪽으로 향하자 그의 막료로 발탁되었으나 새로 즉위한 황자 숙종과 대립하여 싸움에 패하였으므로 그도 심양(尋陽:江西省九江縣)의 옥중에 갇히었다. 뒤이어 야랑(夜郞:貴州)으로 유배되었으나 도중에서 곽자의(郭子義)에 의하여 구명, 사면되었다(59세). 그 후 그는 금릉·쉬안청 사이를 방랑하였으나 노쇠한 탓으로 당도(當塗:安徽)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에게 몸을 의지하다가 그 곳에서 병사하였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고, 때로는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쓰촨성 각지의 산천을 유력(遊歷)하기도 하였으며, 민산(岷山)에 숨어 선술(仙術)을 닦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랑은 단순한 방랑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를 찾는 ‘대붕(大鵬)의 비상(飛翔)’이었다. 그의 본질은 세속을 높이 비상하는 대붕, 꿈과 정열에 사는 늠름한 로맨티시스트에 있었다. 또한 술에 취하여 강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에게도 현실 사회나 국가에 관한 강한 관심이 있고, 인생의 우수와 적막에 대한 절실한 응시가 있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는 방식과 응시의 양태는 두보와는 크게 달랐다. 두보가 언제나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고 인간 속에 침잠하는 방향을 취한 데 대하여, 이백은 오히려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까지도 그것을 혼돈화(混沌化)하여, 그 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하였다. 술이 그 혼돈화와 비상의 실천수단이었던 것은 말할것도 없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俠氣)와 신선(神仙)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다. 두보의 시가 퇴고를 극하는 데 대하여,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다. 두보의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대하여, 악부(樂府)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장기로 한다. ‘성당(盛唐)의 기상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의 이백은 한편으로 인간·시대·자기에 대한 커다란 기개·자부에 불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개는 차츰 전제와 독재 아래의 부패·오탁의 현실에 젖어들어, 사는 기쁨에 정면으로 대하는 시인은 동시에 ‘만고(萬古)의 우수’를 언제나 마음속에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그의 시문집은 송대(宋代)에 편집된 것이며, 주석으로는 원대(元代) 소사빈(蕭士)의 《분류보주 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청대(淸代) 왕기(王琦)의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 등이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중묵 | 작성시간 07.09.10 정말 공부 많이 하고 또 담아 갑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