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을 묵묵히 갈아 매며,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소. 서두름이나 욕심 없이, 옆 눈 안 팔고
그저 묵묵하게 우직한 걸음으로 늠름하게 나아가는 소. 소를 닮으리라! 평생 주인을 위해 일해주고 나중에 몸까지
보시(布施)하는 소. 소의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음매~~~

올해는 기축년(己丑年), 헌 해는 가고 새해는 언제나 오는 법. 해놓은 일 없이 나이테(연륜) 하나가 더 늘어버렸다. 그런데 자(쥐), 축(소), 인(호랑이), 묘(토끼), 진(용), 사(뱀), 오(말), 미(양), 신(원숭이), 유(닭), 술(개), 해(돼지)의 십이지(十二支)중에서 진(용)을 빼면 나머지는 우리 주변 동물들이다. 소는 우리에겐 가축이자 가족이었다. 듬직한 소의 노동력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니 우리 집 재산목록 제1호였고. 게다가 외삼촌이 소 팔아 준 돈으로 대학공부를 시작 할 수 있었던 나였으니…. 얼마 전에 중국에 다녀왔는데, 놀랍게도 시간이 멈춘 듯한 그곳 시골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논으로 밭으로 고삐 잡아 몰아 소에게 풀 뜯기던 꼬마둥이 나를 거기서 발견한 거다. 땔감나무하고 소 치던 철부지 시절을 거듭 반추하였다. 그때가 그리워지는 건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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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사전에서 '쇠'자를 찾아보았다. 명사 앞에 붙어서 '소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 쓰여 있다. 그 밑에 있는 '쇠'자는 ‘작다’는 뜻이라고 한다. 쇠우렁이‧쇠고래‧쇠기러기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이런 재미로 사전 뒤지기를 한다. 소는 당연히 포유강(綱), 소목(目), 소과(科)의 동물이다. 소과에는 소, 들소, 양, 염소, 사슴, 고라니, 노루들이 속한다. 소과동물은 하나같이 머리와 가슴은 작고 몸통(배)이 훨씬 크다. 4부위로 나뉜 반추위(되새김위)와 각질화(角質化)된 딱딱한 발굽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되새김위를 가진 동물을 반추동물(反芻動物)이라 한다. 그리고 발굽(蹄,toe)을 가진 동물을 유제류(有蹄類)라 한다. 발굽이 하나인 말(馬)과 셋인 코뿔소처럼 홀수의 굽을 가진 것을 기제류(奇蹄類)라고 한다. 소나 돼지, 염소 같이 짝수(둘)인 발굽동물을 우제류(偶蹄類)라 한다. 발굽은 돌산 같은 험한 지형에 살기 위해 적응한 장치다. | |

| 사실 길들여 농사일 시키고 늙어 힘 빠지면 잡아먹었던 소인데, 요새는 기계가 힘든 일 다 하니 소 하면 키워 먹는 살코기 ‘한우’로 둔갑하고 말았다. 소의 밥통(반추위, ruminant stomach)을 ‘양’이라 하며 그것은 네 방으로 나뉘어 지니, 제1위는 혹위라 한다. 가장 커서 반추위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검은 수건처럼 안이 오돌오돌한데, 구이로 쓴다. 제2위는 벌집위라 한다. 벌집 꼴을 하기 때문이다. 벌집위는 양즙을 내 먹는다. 제3위는 겹주름위라 하는데, 주름이 많이 졌다. 처녑 또는 천엽이라 하는데, 처녑전이나 처녑회로 좋다. 제4위는 주름위라 하는데, 진짜 위다. 막창구이로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쇠고기 부위가 쉰 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참 알뜰하기 그지없다. 내장은 말할 것도 없고 선지해장국감에다 뼈다귀에 소발, 쇠가죽에 붙은 질긴 수구레까지 벗겨 먹는다. 안심‧등심‧갈비‧육회는 물론이고 뿔은 빗(櫛)으로, 껍질은 벗겨 구두를 만든다. 과연 소는 사람을 위해 태어났단 말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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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과 동물은 모두 반추(反芻-꼴을 되돌림)동물들이다. 초식동물들은 성질이 양순하고 특별한 공격방어무기가 없어 언제나 힘센 포식자(捕食者)에게 잡혀 먹힌다. 그래서 풀이 있으면 어서 빨리 뜯어먹어 일단 위(胃)에 그득 채워 넣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가서 되새김질을 한다. 아주 멋진 적응이요 진화다! 가장 큰 제1위인 혹위는 겉에서 보아 혹처럼 불룩불룩 튀어나와 붙은 이름이다. 여기에 짚을 집어넣으면 제2위인 벌집위로 넘어가 둥그스름한 덩어리(cud)가 된다. 되새김질감이 된 것이다. 그것을 끄르륵! 트림하듯 토(吐)하여 50번 이상 질겅질겅 씹어 되넘기면, 제2위를 지나 제3위인 겹주름위, 제4위인 주름 위를 지나 작은창자로 내려간다. 결국 제1,2위가 반추위인 셈이고, 그 중에서 혹위가 빵빵한 소 복통(배)의 3/4를 차지하니 거기에 약 150ℓ의 먹이를 채운다. 기름 한 드럼통이 200ℓ니 혹위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것이다. 제1,2,3위가 식도(食道)가 변한 것으로 주로 저장과 반추를 한다면 제4위인 주름위는 다른 동물의 밥통과 맞먹어서 강한 위액을 분비한다. 닭의 모이주머니는 식도의 일부이고, 모래주머니가 진짜 위인 것을 생각하면 되새김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 |
| 반추위에 서식하는 미생물(rumen microorganisms)은 반추동물에게는 없어서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공생생물(共生生物)이다. 이 미생물에는 혐기성세균(嫌氣性細菌,anaerobic bacteria)과 원생동물(原生動物,protozoa)이 주를 이룬다. 균류(菌類,fungi)도 소량 차지한다. 이것들은 거의 다 혹위에 산다. 그 중 세균들은 주로 섬유소나 다당류 등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생동물은 섬모충류가 주류다. 세균보다 40배나 더 커서 세균을 잡아먹어서 세균의 수를 조절한다. 효모를 포함하는 균류도 일부 발견되는데, 그것들의 하는 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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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혹위는 커다란 분해탱크, 즉 발효 통이다. 꿈틀꿈틀 움직여(연동운동) 여물과 침과 미생물을 버무려 섞는다. 먹이는 여기에 9~12시간 머문다. 그러면 세균들이 식물의 세포벽을 얽어 만드는, 소화시키기 어려운 셀룰로오스(cellulose, 섬유소)를 분해하기 시작한다. 세균들은 셀룰라아제(cellulase)라는 효소를 분비하여 다당류인 셀룰로오스를 2당류인 셀로비오스(cellobiose)로 분해한다. 이어서 셀로비아제(cellobiase)라는 효소로 셀로비오스를 단당류인 포도당(glucose)으로 분해한다. 섬유소, 리그닌(lignin), 펙틴(pectin) 같은 아주 질긴 식물세포벽의 성분을 분해하는 효소는 오직 이들 세균들만이 합성하여 분비한다. 소나 사람 같은 동물은 만들 엄두도 내지 못 한다. 이렇게 섬유소에서 만들어진 포도당을 또다시 세균들이 발효시켜 휘발성지방산을 만들어낸다. 아미노산이나 비타민까지도 합성한다. 이때 공해물질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CH4)이 만들어진다. 하루에 소 한 마리가 280ℓ를 트림이나 방귀로 내뱉는다고 한다. 어쨌거나 여러분들은 소가 풀만 먹는데도 살(단백질)이 찌고 비계(지방)가 끼는 까닭을 알게 됐을 것이다. 물론 풀에도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성분이 들어있다는 것도 알아야 소의 살찜을 이해한다. 우리가 먹는 쌀밥에도 탄수화물 21%, 단백질 10%, 지방이 3% 정도 들었듯이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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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위 속에 사는 원생동물(ISotricha intestinalis) 소 위 속에 사는 원생동물(Entodini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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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 없다. 미생물들은 혹위라는 안정된 삶터에서 소가 먹은 풀이나 곡식을 분해하면서 나오는 에너지를 얻어 번식한다. 소는 그들이 분해하고 합성한 포도당, 지방산, 아미노산, 비타민 같은 양분을 얻는다. 둘은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다. 천생연분(天生緣分)이요, 뗄 수 없는 공생(共生,symbiosis)이다. 묘한 상생(相生)이라 해도 좋다. 혹위에 있던 그 많은 미생물들(1010~1011마리/㎖)은 죽처럼 묽어진 식물(食物)에 섞여 제4위와 소장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소화되어 역시 귀한 양분을 소에게 공급한다. 이렇게 미생물은 반추동물인 소에게 숙명적인 것이다. 갓 태어난 송아지도 엄마 소의 젖꼭지나 마구간 바닥에 널려있는 어미 똥 묻는 볏짚을 씹으면서 귀중한 공생체를 뱃속에 집어넣는다. 외양간 바닥에 소 한 마리가 드러누워 있다. 겨울 햇볕을 받으며 지그시 눈 감고, 끄덕끄덕 고개 질 하고 있다. 꿀꺽꿀꺽 여물을 토해 내 되새김질하는 소의 모습. 거기서 평온함과 여유로움을 만난다. 정녕 정각(正覺), 해탈(解脫)이라는 올바른 깨달음도 소에서 얻지 않는가. | |
- 글 권오길 /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생물의 죽살이>, <꿈꾸는 달팽이>,
- <인체 기행> 등이 있다. 한국 간행물 윤리상 저작상(2002), 대학민국 과학 문화상(2008) 등을 수상했다.
출저>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