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천팔백열여덟 번째 샴막 예술축제 샴페인과 막걸리의 축제?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술. 막걸리는 조선의 대표적인 서민의 술이요, 샴페인은 프랑스의 고급 술입니다. 클리코 샴페인 회사를 운영하던 뵈브 클리코는 식사 자리에서 왕이 “짐이 곧 국가다”라고 하자 “저는 곧 샴페인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해서 여걸로 이름이 남았습니다. 지금 서울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 전시에 옹기 술병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조선의 옹기 술병을 전시한 이유가 뭘까요? 175년 전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비금도라고 하면 겨울 시금치의 대명사인 섬초의 본고장이고, 이세돌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51년 프랑스 고래잡이배 나르발호가 바로 이 비금도에 표류했습니다. 그러자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가 급히 찾아와 보니 선원들 20명 모두 나주 목사牧使의 보호로 무사했답니다. 프랑스 영사는 조선의 처사에 감격해 떠나기 전 송별연에서 프랑스산 샴페인 10여 병을 대접했답니다. 無酒不成席, 無酒不成禮(무주불성석, 무주불성례), 술이 빠져서는 도무지 모임이 성립되지 않고 잔치나 제사와 같은 의식儀式도 치러질 수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851년 5월 2일, 조선 사람이 프랑스 샴페인을 처음 맛보는 순간입니다. 이에 조선에서도 전통술 막걸리를 대접했는데, 그때 그 술병이 지금 전시되고 있는 옹기 술병이랍니다. 그렇게 두 나라는 만났고, 두 나라의 술이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지난해 ‘샴막 축제’가 처음 열렸던 것이랍니다. 선거가 끝났으니 당선인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즐거워하고 있겠지요. 그러나 본디 샴페인은 ‘악마의 술’이라며 두려워했던 음료였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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