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천팔백스물세 번째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2,500여 년 전 아테네에서 활동한 스토아 철학의 대가 에픽테토스 Epictetos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나의 판단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신론자들이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할 때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내게 시련을 주시나 보다.’라며 더욱 기도에 매진하는 것과 같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외적 조건에 연연할 때 인간이 불행해진다고 믿었던 겁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집필한 정신과 의사 프랭클 박사도 비참한 환경을 원망하는 대신 ‘이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지키겠다’라며 고통마저도 내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의미이자, 영혼을 단련하는 계기로 삼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겁니다. 그가 그랬습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마지막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삶의 크기가 각각이 다른 것은 그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칼라하리에서 부시맨이라는 소수의 인종이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던 영화 <부시맨>, 원시생활을 그대로 영위하며 순진무구한 인간성을 간직했다는 그들에게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라는 두 부류의 사회적 개념이 있다고 합니다. ‘리틀 헝거’는 먹고사는 생계에 굶주린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은 왜 태어났으며, 사후 세계는 과연 존재하는지 같은 답 없는 질문에 대한 갈급함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가 한데 얽혀 살고 있지요? 질문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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