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팔백서른네 번째
선악의 발명
선善은 뭐고 악惡은 뭘까요, 하고 물으면 누군가는 심각해질 것이고, 어떤 이는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냐고 되물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이 많은 노인을 젊은이들이 구타하고 있거나, 어린애가 물가로 기어가고 있어 위험해 보인다면 아주 무감각한 사람이라도 얼른 쫓아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겁니다. 이런 마음은 우리가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좋은 교육을 받아서일까요? 만일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일찍이 동양에서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하여 이런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여겨왔습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에서 윤리학을 연구하는, 독일 주요 언론에서 ‘철학계의 떠오르는 스타’라는 평가를 받는 하노 자우어 Hanno Sauer라는 사람이 500만 년에 걸친 도덕의 역사를 추적한 <선악의 발명>이라는 책을 냈는데, 도대체 선과 악이 발명의 대상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덕이 500만 년 전에 생겼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인지도 궁금했습니다. 정말로 선악은 발명된 것일까? 하노 자우어는 ‘도덕은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인간이 더 큰 규모의 협력을 위해 만들어낸 사회적 장치’라고 합니다. 처벌과 규범, 위계질서, 평등과 개인주의의 발전 역시 모두 협력의 범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겁니다. 그리 생각하니 정말 선악은 발명한 게 맞는 듯 보입니다. 힘 있는 자가 어떤 기준을 내세워 이에 따르지 않으면 ‘악’이라고 지칭하는 걸 보면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 세계 질서도 힘센 나라가 ‘이리 이리하자’ 그러면 그게 잣대가 되고, 그 잣대에 맞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는 행태를 과연 ‘선과 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래도 이 책을 읽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