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제유중생’이 이런 중생이라면 우리는 이 거울로 자기 자신을 비춰볼 수 있습니다. 경전은 하나의 거울과 같아서 우리가 거울 앞에 서면 우리가 깨끗한지·단정한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불법으로써 자신의 삼업 행위를 대조해보면 자신이 선인지 악인지, 근기가 높은지 낮은지, 수행을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나중에 어디로 가서 어떤 과보를 받을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담란대사의 고백
담란대사는 노실하게 수행하신 분입니다. 대사님이 불법을 거울로 삼아 자기 자신을 비추어서 얻은 결론(대사님의 『찬아미타불게』 속에 스스로 고백하는 게송 한 수가 있습니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무시이래 삼계를 돌며 허망한 수레바퀴에 회전 당했는데,
일념 일시에 지은 업으로도 족히 육도에 묶이고 삼도에 막힐 만 하였네.
我從無始循三界,爲虛妄輪所回轉;
一念一時所造業,足系六道滯三塗。
담란대사께서 말씀하시길, 당신은 무시이래로 욕계·색계·무색계에서 윤회하고 있었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내가 무시이래 삼계를 돌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허망한 수레바퀴에 회전 당했었네’: 삼계가 곧 육도윤회이고, 육도윤회 자체가 허망하여 진실하지 않은 것임에도 우리는 그것이 허망한 것임을 모르고서 허망한 것을 진실한 것으로 여기고 끊임없이 윤회하며 오늘날에 이른 것입니다.
‘일념 일시에 지은 업으로도 족히 육도에 묶이고 삼도에 막힐 만 하였네’: ‘일념 일시’란 염념마다 라는 뜻으로, 염념마다 항상 업을 짓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업에는 선업과 악업이 있지만, 담란대사님은 본인의 업이 족히 육도 안에 묶여있게 하고 삼악도에 막혀있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담란대사님은 스스로 자신은 죄업을 짓은 범부로서 염념마다 지은 업은 선업이 아니라 도리어 삼악도에 머물게 할 업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본래 석가모니불께서도 육도는 고해라며 육도윤회는 바다와 같아서 끝없이 넓고 깊다고 하셨지요. 우리는 육도 속에서 간혹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했었지만 바다에서 머리를 내밀어 숨을 몇 번 쉬고는 다시 침몰하였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항상 육도 속에서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었다가 다시 머리가 잠기곤 하였지요. 담란대사조차도 스스로 육도에서 머리를 내밀었다가 머리가 잠겼다가 하였으며, 게다가 삼악도에 체류하는 시간이 좀 더 많았다고 하셨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아미타불이 없었다면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담란대사님을 말할 것 같으면, 남북조 시대에 양무제마저도 대사님이 계신 방향을 향해 절을 하면서 ‘난보살鸞菩薩’이라 존칭하였고, 북위의 황제도 대사님을 ‘신란神鸞’이라 존칭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조차도 스스로 죄악중생이라 여기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이로써 말한다면 우리는 육도에서 벗어날 능력과 기연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위해 ‘설아득불, 시방중생’이라는 제18원을 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히 육도에서 윤회하며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정도보살경』에서 말하는 중생의 모습
중생의 심리활동은 모두 어떠한 행위들일까요? 『정도보살경淨度菩薩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 중에 팔억사천 념이 있나니,
염념마다 모든 행위가 전부 삼악도의 업이라네.
一人一日中,八億四千念,
念念之所爲,皆是三塗業。
한 사람이 하루 동안에 몇 가지 마음이 있을까요? 팔억사천 가지가 있습니다. 이 ‘팔억사천’은 구체적인 숫자가 아닌 일종의 표법表法입니다. 다시 말해 무량무변하여 셀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들로 염념마다 지은 행위들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거나 천당에 태어나게 하는 게 아니며, 육도윤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도리어 모두 지옥·아귀·축생 등 삼악도의 업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가 염념마다 짓는 업의 결과가 이러하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나 두렵습니다.
『지장경』에서 말하는 중생의 모습
정말로 『지장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남염부제 중생들의 행동거지와 심리활동은
업이 아닌 게 없고 죄가 아닌 게 없느니라.
南閻浮提衆生,舉止動念, 無不是業,無不是罪。
즉, 심리활동과 신구의 삼업의 행위가 모두 업이고 모두 죄라는 것입니다.
또 말씀하시길,
업력이 매우 커서 수미산과 대적할만하며,
큰 바다보다 더 깊어서 성도를 장애할 수 있느니라.
業力甚大,能敵須彌, 能深巨海,能障聖道。
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수미산이지만 우리의 죄업은 수미산보다 더 높고, 가장 깊은 것은 바다이지만 우리의 죄업은 바다보다 더 깊습니다. 우리의 죄업은 우리가 범부의 지위를 초월하여 성인의 반열에 드는 것을 장애하고 우리가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장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중생들을 위해 아미타불께서 48원을 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삼계육도에서 윤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삼계의 모습
이 ‘삼계’에 대해 담란대사님은 어떻게 묘사하셨을까요? 담란대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삼계는 허가상·오염상·전도상· 파괴상·윤전상·무궁상이로다.
三界是虛假相、汙染相、顛倒相、 破壞相、輪轉相、無窮相。
다시 말해 삼계 내의 중생들은, 그들의 원인이든 그들의 결과든 모두 거짓으로 진실하지 못하고, 모두 오염되어 청정하지 못하며, 모두 전도되어 바른 지견이 아니고, 모두 파괴되어 염념마다 덧없이 변화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게 아니며, 모두 끊임없이 윤회하여 지옥이 아니면 아귀이고, 아귀가 아니면 축생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윤회하며 끝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대단히 공포스럽고 대단히 두렵습니다.
또 말씀하시길,
이 삼계는 생사범부가 유전하는 어두운 집이로다.
此三界,蓋是生死凡夫流轉之暗宅。
삼계는 마치 매우 넓고 큰 집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아주 약간의 빛도 없이 매우 어둡습니다. 이는 우리처럼 삼계육도에 있는 범부들이 모두 미혹되어 깨닫지 못한 존재들이란 것입니다.
또 말씀하시길,
이 삼계는 모두 유루의 삿된 도에서 생겨난 바이며,
길이 깊은 잠에 빠져서 벗어나길 바랄 줄 모른다.
此三界皆是有漏邪道所生, 长寝大梦,莫知悕出。
영원히 깊은 잠에 빠져서 벗어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삼계 내에서 유전하는 것이지요. 만일 불법을 만나지 못했거나, 불법을 만났지만 아미타불의 구제를 만나지 못했다면 영원히 어두운 삼계 내에서, 깊은 꿈속인 육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