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유제오역, 비방정법
제18원은 총 아홉 구절, 서른여섯 글자로 되어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일곱 구절을 함께 공부했는데요, 아직 마지막 두 구절, 여덟 글자 ‘유제오역, 비방정법’이 남았습니다.
이 두 구절은 문자의 표면상의 뜻으로 보면, ‘앞서 말씀하셨듯이 누구라도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 게다가 매우 쉽고 매우 수승하다. 그러나 이렇게 쉽고 수승한 왕생법문임에도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사람은 제외되어 왕생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문자의 뜻은 이러한데, 그럼 진실한 뜻도 이러할까요? 정말로 이러하다면 그럼 여전히 누구나 구제될 수 있는 법문이 아닙니다.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사람은 영원히 기회가 없고, 아미타부처님의 대자대비도 아직 원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추측할 필요 없이 역시 먼저 선도대사님의 해석을 보겠습니다.
『관경사첩소』의 해석
다들 『선도대사전집』을 펼치시고 먼저 304쪽 거꾸로 셋째 줄부터 보겠습니다.
혹 어떤 중생이 착하지 못한 오역죄와 열 가지 악을 지으며,
온갖 착하지 못한 일을 행하는 경우이니라.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악업을 지은 까닭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져 오랜 겁 동안 한없는 괴로움을 받을 것이니라.
或有衆生,作不善業,五逆十惡,具諸不善;
如此愚人,以惡業故,應墮惡道,經歷多劫,受苦無窮。
이는 『관경』의 경문으로, 하품하생의 사람은 ‘오역과 십악이라는 착하지 못한 일을 행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뜻밖에도 극락세계에 왕생했다는 겁니다. 이는 『무량수경』에서 아미타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문자로부터 봤을 때 모순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도대사님은 여기서 문답을 가정하였습니다. 선도대사님의 이 단락의 해석을 우리 함께 공부해보겠습니다.
“묻기를: 저 48원 중에서 다만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이는 왕생할 수 없다고 설하였다”: 바로 제18원의 원문을 말하고 있습니다. 48원 중의 제18원에서 “다만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이는 제외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오역과 정법비방의 중죄를 지은 사람은 제외되어 이 두 종류의 사람은 왕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관경』의 하품하생에서는 정법비방은 골라내고 오역죄를 지은 자는 섭취한다고 하셨는데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 정법을 비방한 사람은 골라내지만 『관경』에서 정법을 비방한 사람도 왕생할 수 있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섭’은 섭취입니다. 오역죄를 지은 중생을 섭취한다는 것으로, 이 오역죄를 지은 사람도 『관경』에서는 왕생할 수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이것도 모순입니다! 제18원에서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제외되어 왕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정법비방을 한 자만 제외하고 도리어 오역죄를 지은 자는 섭취하여 왕생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까요. 이것은 무슨 도리일까요? 모순이 있는 게 아닐까요? 책장을 넘겨서 306쪽을 보겠습니다.
“답하기를: 이 뜻은 그러나 억지문抑止門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선도대사께서는 자문자답을 하시면서 이것은 억지(저지)의 각도에서 이해해야만 정확하다고 말씀하셨지요. 아래에서 상세하게 해석하셨습니다.
“저 48원에서 정법비방과 오역의 죄를 지은 자는 제외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 두 업은 그 장애가 지극히 심하여 중생이 짓는다면 곧장 아비지옥에 들어가 여러 겁 동안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벗어날 수 없다”: 48원에서 정법비방과 오역이라는 이 두 가지 죄를 제외하여 이 두 가지 죄를 지은 사람은 왕생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두 가지 악업의 장애가 너무나 무거워서 이 죄를 지은 중생은(곧바로 아비지옥에 떨어질 죄이다) 숨이 끊어지자마자 바로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정업定業입니다. 만일 당장에 숨이 끊어지면 당장에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되는데, 일단 지옥에 떨어지면 여러 대겁을 거쳐 그 곳에서 순회를 하며, 이 지옥에서 저 지옥으로 옮겨 다니며 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그들이 이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를까봐 염려하시어 방편으로 저지하며 ‘왕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지 역시 섭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래’는 부처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이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를까봐 염려하십니다. 부처님께서 우리가 이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를 것을 염려하신다면, 이는 우리가 충분히 이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일 아라한이라면 부처님도 “아라한이여,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라한은 성자시거든요. 설사 아직 성인의 과위를 증득하지 못했어도 발보리심을 한 사람은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와 같은 이런 죄업범부에 대해 부처님은 ‘방편으로 저지하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를 저지하며 “이 두 가지 죄를 지으면 왕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지 방편으로 저지하는 것이지 결코 부처님의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아직 죄를 짓기 전에 먼저 당신이 못하게 막는 것이지요. 다른 죄업들은 그래도 좀 가볍지만 이 두 가지 죄의 과보는 너무나 무거워서 일단 아비지옥에 떨어지면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먼저 저지를 하는 것입니다.
“역시 섭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의 본심도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업을 지은 중생을 섭취하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이는 우선 제18원 중의 방편 저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하품하생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품하생에서 오역은 섭취하고 정법비방은 제외한 것은”: 부처님의 자비는 참으로 매우 적절하고 세밀하십니다. ‘오역은 섭취함’, 오역중죄를 지은 사람은 섭취하여 왕생할 수 있고, ‘정법비방은 제외함’,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자는 제외되어 왕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오역을 지은 사람은 윤회하게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어서 다시 대비심을 발하여 섭취하여 왕생한다”: 이 사람은 이미 오역죄를 지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만일 그를 포기해버린다면 그는 다시 한 번 삼악도에 유전하게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차마 그가 다시 유전하게 내버려둘 수 없어서 “다시 대비심을 발하여 섭취하여 왕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품하생에서 이미 오역죄를 지은 사람의 경우입니다. 아직 죄를 짓지 않았을 때는 당신이 그 죄를 지을까 두려워서 방편으로 저지를 합니다.
이는 마치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날씨가 추워졌으니 옷을 더 껴입어야 한다! 옷을 껴입지 않아서 감기에 걸리면 난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렇죠? 좋아요! 그가 감기에 걸리면 당신은 그냥 내버려둘 건가요? 그가 감기에 걸렸다면 당신은 여전히 돌봐야 합니다. 그가 감기에 걸리기 전에 당신이 저지를 하며 “날씨가 추워졌으니 옷을 더 껴입어야 한다. 만일 옷을 껴입지 않아서 감기에 걸리면 난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 이것을 방편억지方便抑止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조심하지 않아 감기에 걸렸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를 돌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감기에 걸린 후에 당신은 여전히 섭취를 해야 합니다. 이치는 똑같습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이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을까봐 염려하시어 “너희가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으면 난 모른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미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부처님은 여전히 접인을 해주십니다.
“그러나 정법비방의 죄는 아직 짓지 않았기에 다시 저지를 하며 ‘만일 정법비방을 했으면 왕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정법비방의 죄는 아직 짓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그를 저지하고 한 단계 또 한 단계씩 저지를 하십니다.
“이는 아직 죄업을 짓지 않은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만일 지었으면 여전히 섭취하여 왕생한다”: 이 역시 그가 아직 정법비방의 죄를 짓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하신 말씀입니다. 만일 이미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부처님의 대자비심은 역시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섭취를 해주십니다. 보세요,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사람마저도 부처님은 섭취를 해주시는데 세상 어디에 이런 자비가 있습니까? 부처님을 비방하고 정법을 비방하며 불법을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사람도 부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신다면 단 한 명도 포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비록 저 나라에 왕생할 수 있으나”: 비록 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으나 입니다.
“연꽃에 닫혀서 여러 겁을 지내야 한다”: 연꽃 속에 싸여서 12대겁을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은 연꽃 속에서 세 가지 장애가 있다”: 세 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처님과 여러 성중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둘째는 정법을 들을 수 없으며, 셋째는 타방국토로 가서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고통은 없다”: 오역과 정법비방의 중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죄를 짓고 나서 그가 마음만 돌린다면 부처님은 여전히 섭취를 해주십니다. 그러나 극락세계에 가더라도 여전히 장애가 있습니다.
이 단락의 경문에 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일설에서는 이 역시 저지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극락세계에 가면 정말로 연꽃 속에 갇히게 되는지는 모릅니다. 이것도 저지입니다. 즉, 당신이 비록 왕생하였으나 그렇다고 남들과 평등할 수는 없고 남들보다는 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당신더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무거운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래에 말씀하신 것은 또 섭취입니다.
“『경』에서 이르시길, 마치 비구가 삼선의 낙에 드는 것과 같다”: 비록 연꽃 속에 세 가지 장애가 있어서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 공양을 올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의 즐거움은 마치 비구가 삼선三禪의 낙에 드는 것과 같습니다. 삼선의 낙은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종의 낙입니다.
“마땅히 알라. 비록 연꽃 속에서 여러 겁이 지나도록 꽃이 열리지 않지만 그래도 아비지옥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온갖 고통을 받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이 단락에는 또 다른 섭취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구! 나중에 연꽃 속에 세 가지 장애……” 듣다보면 퇴심退心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자네가 지옥에 가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하품하생의 중생은 필히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오랜 세월 고통을 받아야할 중생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미 극락세계에 왕생하였으니, 비록 12겁 동안 연꽃이 피지 않는다지만 연꽃 속에서 마치 비구가 삼선의 낙을 누리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좋은지 몰라!” 이렇게 들으니 마음이 또 기뻐졌습니다! 다시 왕생하려 합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서원과 자비에는 이러한 여러 겹의 관계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와 같은 죄업을 짓는 중생들에 대해 마치 한걸음 한걸음씩 양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에겐 마지노선이 없습니다. 최대의 마지노선이 바로 오역과 정법비방이지요. “너희들이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만 짓지 않으면 된다!” 만에 하나 오역죄를 지었으면 부처님은 한 걸음 물러나며 “그럼 정법비방은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만에 하나 정법을 비방했으면요? 부처님은 다시 한 걸음 물러나서 여전히 섭취를 해주십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직 그런 죄를 짓기 전에는 부처님께서 여전히 이렇게 경계를 해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부처님의 뜻으로 추론을 해본다면, 설사 십악의 죄도 부처님은 역시 우리들이 짓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십악의 죄를 짓기 전에 부처님은 틀림없이 저지를 하시며 “너희들은 십악의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이미 한 가지 악을 지었다면 “그럼 아직 남은 아홉 가지 악은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또 두 가지 악을 지으면 부처님은 “그럼 아직 남은 여덟 가지 악만은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부처님은 항상 뒤로 물러나시고 한 걸음 한걸음 뒤로 물러나시는데, 이는 부처님의 자비가 광대무변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십악의 죄를 짓기 전에 다른 작은 죄들도 부처님은 우리가 짓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중생에게 왜 “다만 십악의 죄만은 제외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다만 기타의 죄업은 제외한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았지요) 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첫 번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당신더러 망상잡념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면 당신은 할 수 있습니까? 당신더러 채식을 하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저지를 하며 “육식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만일 이렇게 저지를 한다면 거의 저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전혀 할 수 없을 뿐더러 너무나 쉽게 범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부처님의 자비를 철저하게 드러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이처럼 가장 악랄한 두 가지 죄업을 취하여 저지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근기가 어느 정도로 저열한지를 나타내며, 우리에게 더욱 높은 차원의 요구를 할 수가 없어서 이 최후의 마지노선을 가지고 “너희들이 이 두 가지 잘못만 범하지 않으면 다른 잘못들은 모두 용서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잘못은 세간과 출세간에서 가장 큰 죄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역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는 죄로서, 세간에 더 이상 이보다 더 무거운 죄는 없습니다. 정법비방은 불법을 비방하고 불교를 파괴하는 행위로서 불법 가운데 가장 큰 죄입니다. “이 두 가지 죄만 짓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저지입니다. 이 저지의 말씀 속에서도 부처님의 철저한 자비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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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라클 작성시간 18.05.25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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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원준석 작성시간 18.12.1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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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佛定 작성시간 19.11.03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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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르샘 작성시간 20.09.05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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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정 작성시간 23.06.14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