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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토 왕생의 마음가짐

작성자淨傳|작성시간26.06.03|조회수199 목록 댓글 14

12. 정토 왕생의 마음가짐(往生淨土用心)

               (대정장 제83권 262쪽 하)

 

(一)有人言“依宿善往生”,此非謬誤。短促之此世果報,亦依前世之善惡而生禍福,何況往生之大事,必依宿善,聖教亦言之。

 

  (1) 어떤 사람이 “숙세의 선근에 의지하여 왕생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릇된 말이 아니다. 이 짧은 현세의 과보 또한 전생의 선악에 의지하여 화복이 생기거늘, 하물며 왕생이라는 큰일은 반드시 숙세의 선근에 의지한다고 경전에서도 이를 말하고 있다.

 

  但,念佛往生,不因無宿善而不能。《觀經》言,殺父母、出佛身血之五逆罪人,臨終十念往生。

  然而,宿善深厚之善人,雖無聖教,自然畏惡行善,心向佛道,不造五逆。五逆罪人,臨終十念得往生,非由無宿善。

 

  그러나 염불왕생은 숙세의 선근이 없다고 해서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관경』에 이르기를, 부모를 살해하고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내는 오역죄인이라도 임종 시 십념으로 왕생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숙세의 선근이 깊고 두터운 선인은, 비록 성인의 가르침이 없더라도 자연히 악을 두려워하고 선을 행하며 마음이 불도를 향하여 오역을 짓지 않는다. 오역죄인이 임종 시 십념으로 왕생하는 것도, 숙세의 선근이 없어서가 아니다.

 

《經》言:

若人造多罪,得聞六字名。

火車自然去,花台自來迎。

若有重業障,無生淨土因。

乘彌陀願力,必生安樂國。

極重惡人,無他方便。唯稱彌陀,得生極樂。

 

『경』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많은 죄를 지었더라도 육자명호를 듣게 되면,

불수레는 저절로 떠나가고 연화대는 스스로 와서 맞이하네.

만약 무거운 업장이 있어 정토에 왕생할 인연이 없다 하더라도,

아미타불의 원력에 올라타면 반드시 안락국에 왕생하리라.

극중한 악인에게는 다른 방편이 없으니, 오직 아미타불을 불러 극락왕생한다.

 

  又,善導和尙《觀經疏》云,爲迎接曠劫以來輪回六道、無出離緣之常沒衆生故,阿彌陀佛成佛。

  言“常沒衆生”者,沉於恒河深底之衆生,體大而長,塞滿恒河,身不能動,常沉不起,以此喩惡世之凡夫。

  又“凡夫”兩字,弘法大師《秘藏寶鑰》釋爲“凡夫狂醉”。誠然,凡夫之心,如狂於物、醉於酒,不能明辨善惡。

  和尙云“一時煩惱百千間”,善惡亂心故,雖有萬行,自力難修。若論了脫生死、修持佛道者,須發菩提心,淨盡煩惱,經三祇百劫,難行苦行,方得成佛。然五濁凡夫,以自力具足願行,難以契應,故長輪六道四生也。

  阿彌陀佛甚爲悲愍此事,於法藏菩薩之昔,兆載永劫之間,修我等難行之僧祇苦行,積功累德而成阿彌陀佛。阿彌陀佛一佛所具之三身、四智、十力、無畏等一切內證功德,相好、光明、說法、利生等一切外用功德,皆無遺漏,悉納於三字名號之中。善導和尙亦言:衆生念佛,十聲一聲,若不迎接,誓不成佛;彼佛今現,在世成佛,衆生稱念,必得往生。

  如是深信,念佛不怠、不疑往生之人,謂之信他力之人也。

 

  또한, 선도화상의 『관경소』에 이르기를, 광겁 이래 육도를 윤회하면서 출리의 기연이 없는 상몰(常沒) 중생을 영접하기 위한 까닭에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셨다고 하였다.

  “상몰중생”이라 함은, 갠지스강의 깊은 바닥에 잠겨 있는 중생으로, 그 몸집이 크고 길어 갠지스강을 가득 메우고 있어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늘 가라앉아 떠오르지 못하니, 이것으로 악세의 범부를 비유한 것이다.

  또 “범부” 두 글자를 홍법대사는 『비장보요(秘藏寶鑰)』에서 “범부광취(凡夫狂醉)”라 해석하였다. 참으로 범부의 마음은 마치 물욕에 미치고 술에 취한 것과 같아 선악을 분명히 가리지 못한다.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한때 번뇌가 백천 가지로 사이사이에 끼어 있다”고 하였으니, 선과 악이 마음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비록 만행이 있다 하더라도 자력으로는 닦기 어렵다. 만약 생사에서 벗어나 불도를 닦으려 한다면, 반드시 보리심을 발하고 번뇌를 깨끗이 없애어 삼아승지과 백겁 동안 난행고행을 거쳐야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 그러나 오탁악세의 범부가 자력으로 원행을 구족하여 그에 계합하기 어려우므로, 영원히 육도 사생에서 윤회하는 것이다.

  아미타불께서는 이 일을 매우 가엾이 여기시어, 법장보살로 계시던 옛적에 조재영겁 동안 우리로서는 닦기 어려운 아승지겁에 걸친 고행을 닦으시고 공덕을 쌓아 아미타불이 되신 것이다. 아미타불 한 부처님께서 갖추신 삼신·사지·십력·무외 등의 모든 내증공덕과, 상호·광명·설법·이생 등의 모든 외용공덕을 빠짐없이 세 글자의 명호 가운데 거두어 넣으셨다.

  선도화상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열 번·한 번을 염불했음에도 만약 영접하지 않으면 맹세코 성불하지 않겠다. 저 부처님은 지금 극락세계에서 성불하셨으니, 중생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고 하셨다.

  이와 같이 깊이 믿어 염불을 게을리하지 않고 왕생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타력을 믿는 사람이라 한다.

 

  世間之事亦有他力。如足萎腰折,欲行遠路,雖不可能,乘舟車故,輕易而到。此非自力,乃舟車之力,故名他力。卑賤惡世凡夫,以諂曲心所作乘物,亦具他力;何況彌陀,經五劫之間思惟所定他力本願船乎!乘此大悲願船,必渡生死苦海,不須疑也。加之,愈病草木,吸鐵磁石,不思議力用也。又,麝香有芬芳之用,犀角有避水之力。此等皆無心之草木、不發誓願之禽獸,然自始即具不思議之力用,何況佛法,豈無不思議之力用乎!

 

  세간의 일에도 타력은 있다. 예컨대 다리가 위축되고 허리가 꺾여 먼 길을 가고자 하여도 스스로는 도저히 갈 수 없으나, 배나 수레를 타면 가볍게 이르게 된다. 이는 자력이 아니라 곧 배와 수레의 힘이니, 그러므로 이를 타력이라 한다.

  비천한 악세의 범부가 아첨하고 굽은 마음으로 만들어 낸 탈것에도 또한 타력이 있거늘, 하물며 아미타불께서 오겁 동안 사유하여 결정하신 타력본원의 배이겠는가! 이 대비의 원선(願船)에 올라타면 반드시 생사의 고해를 건너게 되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

  더 나아가 병을 고치는 초목이 있고 쇠를 끌어당기는 자석이 있으니, 이는 모두 불가사의한 힘의 작용이다. 또 사향(麝香)에는 향기를 내는 작용이 있고, 서각(犀角)에는 물을 피하는 힘이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마음이 없는 초목이요, 서원을 발하지 않은 금수이지만, 본래부터 불가사의한 힘을 갖추고 있다. 하물며 불법에 어찌 불가사의한 힘이 없겠는가!

 

  然則念佛,一聲有滅八十億劫生死罪之力用,是故應信阿彌陀佛有迎接惡業深重衆生之力用,不論宿善有無,不論罪惡深淺,唯稱名號,必得往生。持戒、破戒,貧窮、富貴,高位、下賤,皆悉不論,但念名號,猶如令石瓦變金,來迎之誓約也。法照禪師《五會法事讚》云:

彼佛因中立弘誓,聞名念我總迎來。

不簡貧窮將富貴,不簡下智與高才,

不簡多聞持淨戒,不簡破戒罪根深。

但使回心多念佛,能令瓦礫變成金。

 

  그렇다면 염불 일성에 80억겁 생사의 죄를 멸하는 역용이 있는 까닭에, 마땅히 아미타불께 악업이 깊고 무거운 중생을 맞이하시는 역용이 있어, 숙세의 선근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않고, 죄악이 깊으냐 얕으냐를 따지지 않으며, 오직 명호를 부르면 반드시 왕생함을 믿어야 한다.

계를 지켰는지 파하였는지, 가난한지 부유한지, 높은 지위인지 비천한지 모두 따지지 않고, 오직 명호를 부르는 일은 마치 와륵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같으니, 이는 중생을 맞이하겠다는 서원의 약속이다.

 

  법조선사의 『오회법사찬』에 이르기를,

  저 부처님 인지에서 세우신 크신 서원,

  이름을 듣고 나를 염하면 모두 맞이해 오신다네.

  가난함과 부귀를 가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이와 재능이 뛰어난 이도 가리지 아니하며,

  많이 배우고 청정한 계를 지키는 이도 가리지 아니하고,

  파계하여 죄근이 깊은 이도 가리지 아니하시니,

  다만 마음을 돌이켜 염불을 많이 하면,

  능히 와륵도 황금으로 바꾸시네.

 

  唯撥念珠而不動舌,是懈怠也。但,猶如善導和尙《觀經疏·定善義》“三緣”之中釋“親緣”云:衆生禮佛,佛即見之;衆生稱佛,佛即聞之;衆生念佛,佛即知之。衆生憶念佛者,佛亦憶念衆生。是故阿彌陀佛三業與行者三業彼此一體,不相舍離。

  佛與衆生,猶如父子,故名親緣。手撥念珠者,佛亦見之;心思念佛者,佛亦念衆生也。然則蒙佛所見、蒙佛所念之身也。

  雖如是言,應常動舌,三業相應故也。“三業”者,身、口、意也。且阿彌陀佛本願之稱名故,應知以聲爲本體。然以自耳得聞之念佛,亦在高聲念佛之中,所謂“大聲見大佛”;又言“心念亦入念佛之數”,皆是往生之業也。

 

  염주만 돌리고 혀를 움직이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다. 그러나 선도화상의 『관경소』 「정선의」의 “삼연(三緣)” 가운데 “친연(親緣)”을 해석하기를, “중생이 부처님께 예배하면 부처님께서 곧 이를 보시고, 중생이 부처님을 부르면 부처님께서 곧 이를 들으시며, 중생이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님께서 곧 이를 아신다. 중생이 부처님을 억념하면 부처님 역시 중생을 억념하신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의 삼업과 행자의 삼업은 서로 하나가 되어 서로 버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부처님과 중생의 관계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과 같으므로 이를 친연이라 한다. 손으로 염주를 돌리면 부처님 역시 이를 보시고,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님 또한 중생을 생각하신다. 그렇다면 이는 부처님께서 보시고 부처님께서 생각하시는 몸이다.

  비록 이렇게 말하더라도 항상 혀를 움직여야 하니, 삼업이 서로 상응하기 때문이다. “삼업”이란 신·구·의이다. 더구나 아미타불 본원의 칭명이므로, 마땅히 소리를 본체로 삼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게 염불하는 것 역시 큰 소리로 염불하는 범주에 들어가니, 이른바 “큰 소리로 부르면 큰 부처님을 본다.”고 하고, 또 “마음으로 부르는 것도 염불의 수에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이 모두가 다 왕생의 업이다.

 

(二)不雜語之念佛可慶,有人謂“念佛時有雜語者,則功德少”,誤也。念佛如金,金受火燒,其色增輝,入水不損。如是,念佛不受妄念之汚,不受言談之紛。知如是理,念佛不雜餘事,而思多念佛者,甚好。若此理忘失,忽出言語,亦不可歎言“今之念佛無功矣!”不論如何,念佛皆是往生之業。

 

(2)잡다한 말이 없는 염불은 참으로 경사로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염불할 때 잡다한 말이 있으면 공덕이 적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릇된 말이다. 염불은 금과 같은데, 금은 불에 태워도 그 빛이 더욱 빛나고, 물에 들어가도 손상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염불은 망념의 더러움도 받지 아니하고, 말의 어지러움도 받지 아니한다.

  이와 같은 이치를 알고 염불할 때 다른 일을 섞지 않고 많이 염불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좋다. 그러나 이 이치를 잊어버리고 문득 말을 하였다고 하여도, 또한 “지금의 염불은 공덕이 없다.”고 탄식할 것은 아니다. 어떠한 경우이든 염불은 모두 왕생의 업이다.

 

(三)百萬遍之事。此雖非佛願,然《阿彌陀經》言,若一日,若二日乃至七日念佛之人,往生極樂。如是言故,應七日念佛也。“七日念佛,得百萬遍”,迦才大師於《淨土論》言之。雖七日百萬遍,不堪之人,可八日九日念之。雖然如是,非言不念百萬遍不能往生;一念十念,亦得往生也。心思一念十念亦得往生之殊勝念佛,歡喜之餘,而累積百萬遍之功德也。

 

  (3) 백만 번의 일이다. 이는 비록 부처님의 본원은 아니나, 『아미타경』에 이르기를 “혹은 하루, 혹은 이틀, 나아가 칠일 동안 염불하는 사람은 극락에 왕생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말이 있는 까닭에, 마땅히 칠일 동안 염불해야 한다. “칠일 염불하면 백만 번에 이른다.”고 가재대사가 『정토론』에서 말하였다.

  칠일에 백만 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팔일·구일에 부르면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이 말하였다고 하여 백만 번을 염불하지 않으면 왕생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일념·십념으로도 역시 왕생한다. 마음으로 일념·십념으로도 왕생하는 수승한 염불을 생각하며 기뻐한 나머지 백만 번의 공덕을 쌓는 것이다.

 

(四)七分全得之事。雖有爲自己死後追福之人,亦不依賴之。應思自己勤於念佛,速生極樂,得三明六通之後,利益六道四生之衆生,尋父母師長之生處,隨心所願,迎生極樂。又,日常念佛,亦逐日回向之,使其往生。爲亡者念佛回向者,阿彌陀佛即放其光明,照地獄、餓鬼、畜生,故墮此三惡道受苦之人,其苦則息,壽終之後得解脫。《大經》言:若在三途勤苦之處,見此光明,皆悉休息,無復苦惱,壽終之後,皆蒙解脫。

 

(4)칠분을 전부 얻는 일이다. 비록 자신이 죽은 뒤에 복을 지어 주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스스로 부지런히 염불하여 속히 극락에 왕생하고, 삼명육통을 얻은 뒤에 육도사생의 중생을 이익케 하며, 부부모와 스승과 어른들이 태어난 곳을 찾아 마음에 원하는 대로 극락으로 맞이하여 왕생하게 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평소에 한 염불의 공덕을 날마다 회향하여 그분들로 하여금 왕생하게 해야 한다. 망자를 위하여 염불하여 회향하면 아미타불께서 곧 그 광명을 놓아 지옥·아귀·축생을 비추시므로, 이 삼악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 사람은 그 고통이 곧 쉬고, 수명이 다한 뒤에는 해탈을 얻게 된다. 『대경』에 이르기를, “만약 삼악도의 괴로운 곳에서 이 광명을 보면 모두 다 쉬게 되어 다시는 괴로움이 없으며, 수명이 다한 뒤에는 모두 해탈을 얻게 되느니라.”고 하였다.

 

(五)“無本願之疑心,亦無不願生極樂之心;然而,無往生一定之想,亦無早生極樂之意”,如是言者,誠然不可。

 

  (5) “본원에 대한 의심하는 마음이 없고, 또한 극락에 왕생하기를 원치 않는 마음도 없다. 그러나 왕생이 결정되었다는 생각도 없고, 또한 속히 극락에 왕생하고자 하는 뜻도 없다.”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참으로 옳지 않다.

 

  雖聞淨土法門,猶如不聞者,始從三惡道來,罪尙未盡故,《平等覺經》亦言之,亦是厭娑婆之心淺也。其故者,不下西國之人,雖有人備船,亦不疑船浮於水,然無歡喜之心。又如被虜於敵城,終得脫出,逃至海邊,苦不得渡,忽見父母備船來迎,慶喜何如!如是被貪瞋癡所縛,系於三界焚籠之我等,彌陀悲母願深,持名號利劍,斷生死之絆,浮本願之船,入苦海之波,渡我等於涅槃彼岸。如是思惟,歡喜之淚染袖,渴仰之思銘肝。

 

  비록 정토법문을 들었다 하더라도 마치 듣지 않은 것과 같은 이는, 이제 막 삼악도에서 온 사람으로 아직 죄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평등각경』에서도 이를 말하고 있으니, 이 또한 사바를 싫어하는 마음이 얕은 것이다. 그 까닭은 서쪽 먼 나라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비록 어떤 이가 배를 준비해 두었다 하더라도, 그 배가 물 위에 뜬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기뻐하는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또 예컨대 적국의 성에 사로잡혀 있다가 마침내 벗어나 바닷가까지 도망쳤으나 건너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홀연히 부모가 배를 마련하여 맞이하러 오는 것을 본다면, 그 기쁨이 어떠하겠는가!

이와 같이 탐·진·치에 얽매여 삼계의 불타는 우리에 갇혀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대비의 어머니이신 아미타불의 서원이 깊으시어, 명호라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생사의 속박을 끊으시며, 본원의 배를 띄워 고해의 물결 속으로 들어가 우리를 열반의 피안으로 건너게 하신다.

  이와 같이 사유하면 기쁨의 눈물이 소매를 적시고, 간절히 사모하는 생각이 마음 깊이 새겨진다.

 

  若受嚴責時,或覺身毛爲起;若漫不經心,則無所覺,此亦自然之理也。造罪之事,雖不受教,自然染心。其故者,無始以來輪回六道時,身雖變異,心不變異;造集諸種罪業故,不經教導,自然造罪。“念佛即往生”之理,今始得聞故,一時難信。加之,人心有頓機、漸機二品,頓機一聞即悟,漸機漸次理解。猶如朝拜佛寺,足健者一時即到,足遲者一日不達;然而,但有願往之心,終必到達。如是,但有願生之心,一經年月,信心漸深。

 

  만약 엄한 꾸지람을 받을 때 혹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만일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아무 느낌도 없을 것이니, 이 또한 자연한 이치이다. 죄를 짓는 일은 비록 가르침을 받지 않더라도 저절로 마음에 물든다. 그 까닭은 무시 이래 육도를 윤회하는 동안 몸은 비록 바뀌었으나 마음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죄업을 지어 모아 왔으므로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자연히 죄를 짓게 된다. “염불하면 곧 왕생한다”는 이치는 이제야 비로소 듣게 되었기 때문에 곧바로 믿기 어렵다. 더구나 사람의 마음에는 돈기(頓機)와 점기(漸機)의 두 부류가 있으니, 돈기는 한 번 들으면 곧 깨닫고, 점기는 차츰차츰 이해한다. 마치 절에 참배하러 갈 때에 발이 빠른 사람은 곧바로 도착하고, 걸음이 더딘 사람은 하루가 지나도 이르지 못하지만, 가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마침내 반드시 도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왕생을 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세월이 흐를수록 신심도 점차 깊어진다.

 

(六)“雖日常念佛,臨終若無善知識,難得往生。又,病重心亂,難得往生”,有人言之。

 

(6)“비록 평소에 염불하더라도 임종 때 선지식이 없으면 왕생하기 어렵다. 또 병이 위중하여 마음이 어지러우면 왕생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然而依善導和尙之意,有願生極樂之心,上盡一形、下至十念之念佛人,臨命終時,阿彌陀佛與諸聖衆前來迎接。是故,日常念佛,臨命終時,雖無善知識,阿彌陀佛必來迎接。

 

  그러나 선도화상의 뜻에 의하면, 극락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위로는 평생을 다하고, 아래로는 십념에 이르기까지 염불하는 사람이라면, 임종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과 함께 앞에 나타나 맞이하신다. 그러므로 평소에 염불하는 사람은 임종할 때 설사 선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아미타불께서 반드시 오셔서 맞이하신다.

 

  又,依善知識之力往生者,《觀經》下三品之事也。下品下生之人,日常既不念佛,亦無願生心,唯造逆罪之人,臨終始遇善知識,具足十念而往生。若日常仰憑他力本願、稱念彌陀名號、願生極樂之人,無善知識之力,阿彌陀佛必來迎接。

 

  또한 선지식의 힘에 의지하여 왕생하는 것은 『관경』의 하삼품에 해당하는 일이다. 하품하생의 사람은 평소에 염불도 하지 않고 왕생을 발원하는 마음도 없는 오직 오역죄를 지은 사람으로서 임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선지식을 만나 십념을 갖추어 왕생한다. 그러나 평소에 타력본원을 우러러 의지하고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며 극락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는 사람은, 선지식의 힘이 없더라도 아미타불께서 반드시 오셔서 맞이하신다.

 

  又,雖有小智,無病而死,然臨終之時死苦來逼,從八萬塵勞門,責無量病身,猶如百千鉾劍割裂此身。雙眼頓暗,欲見之物不能見;舌根堅硬,欲言之事不能言:此是人生八苦中之死苦。故信本願、願往生之行者,亦難逃此苦。然雖至悶絕,一旦息將斷時,以阿彌陀佛之力,成爲正念而往生。臨終刹那,快如剪斷發絲,非他人所知,唯阿彌陀佛與行者之心知之。

 

  또한 설사 약간의 지혜가 있고 병이 없이 죽는다 하더라도, 임종할 때 죽음의 고통이 몰려와 팔만진로(八萬塵勞)의 문으로부터 한량없는 병고가 이 몸을 핍박하니, 마치 백천의 창과 칼로 이 몸을 찢어 베는 것과 같다. 두 눈은 갑자기 어두워져 보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없고, 혀뿌리는 굳어 말하고자 하는 일을 말할 수 없으니, 이것이 곧 인생 팔고 가운데 사고(死苦)이다. 그러므로 본원을 믿고 왕생을 발원하는 행자라 하더라도 이 고통을 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록 정신이 막혀 의식이 끊어지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숨이 막 끊어지려 하는 순간에 아미타불의 힘으로 정념을 이루어 왕생하게 된다. 임종의 찰나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처럼 빠르니,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고 오직 아미타불과 행자의 마음만이 그것을 안다.

 

  加之,三愛之心若起,魔緣得便,而失正念。此之愛心,善知識之力難除;能斷除者,阿彌陀佛之力也。善導和尙云“諸邪業系,無能礙者”。

 

  더구나 세 가지 애착(三愛)의 마음이 만약 일어나면, 마연(魔緣)이 기회를 얻어 정념을 잃게 된다. 이 애착의 마음은 선지식의 힘으로는 제거하기 어렵고, 능히 끊어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미타불의 힘이다. 선도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온갖 삿된 업의 계박이 장애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願生極樂之人有言“先住正念而念佛時,佛則來迎”,然而《阿彌陀經》言:“與諸聖衆現在其前,是人終時,心不顛倒,即得往生阿彌陀佛極樂國土。”其人終時,阿彌陀佛與諸聖衆來至眼前,令人一見,心不顛倒,而生極樂。應知此理。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사람 가운데 어떤 이는 말하기를, “먼저 정념에 머문 뒤에 염불하면 그때 부처님께서 오셔서 맞이하신다.”고 한다. 그러나 『아미타경』에 이르기를, “여러 성중과 함께 그 앞에 나투시는데,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 마음이 전도되지 아니하고 곧바로 아미타불의 극락국토에 왕생한다.”고 하였다. 그 사람이 임종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과 함께 눈앞에 나타나시어, 그로 하여금 한 번 뵙게 하시니 마음이 전도되지 아니하고 곧바로 극락에 왕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땅히 이 이치를 알아야 한다.

 

  是故,欲祈病輕,欲遇善知識之暇,即雖一遍,病輕之時,即應念佛,臨命終時,即預彌陀來迎,消除三愛,成爲正念,往生極樂。

 

  그러므로 병이 가벼워지기를 바라거나 선지식을 만나기를 기다릴 여유를 구한다 하더라도, 병이 잠시라도 가벼울 때가 있으면 곧 염불해야 한다. 그러면 임종할 때 아미타불께서 예정대로 오셔서 맞이하시니, 삼애(三愛)를 소멸하고 정념을 이루어 극락에 왕생하게 된다.

 

  雖如是言,不可以爲善知識非必要。先德等亦言:“臨終之時,西壁安置彌陀佛像,佛像面前,病者西向而臥,以隨善知識念佛。”此亦病者之所望也。

 

  비록 이와 같이 말하였으나 선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선덕(先德)들이 말하기를, “임종할 때 서쪽 벽에 아미타불상을 모시고, 불상 앞에 병자를 서쪽을 향해 눕히고 선지식을 따라 염불하게 하라.”고 하였다. 이것 또한 병자가 바라는 바이다.

 

  然而,人之死緣非如所期,有忽然倒地而死,亦有大小便而亡,前業難逃。有刀傷而殞命,有水火而葬身,此類甚多。雖如是而死,日常念佛,有願生心者,息將絕時,彌陀、觀音、勢至前來迎接,應當信之。《往生要集》亦云:“不論時處諸緣,臨終願求往生,得其便宜,無如念佛。”此甚可仰憑之語也。

 

  그러나 사람의 죽음의 인연은 기대한 바와 같지 않다. 갑자기 쓰러져 죽는 이도 있고, 대소변을 보다가 죽는 이도 있으니, 전업(前業)을 피하기는 어렵다. 칼에 찔려 목숨을 잃는 이도 있고, 물이나 불에 목숨을 잃는 이도 있으니, 이러한 경우가 매우 많다. 비록 이와 같이 죽는다 하더라도, 평소에 염불하고 왕생을 발원한 사람이라면 숨이 끊어지려 할 때 아미타불과 관음·세지께서 앞에 나투시어 맞이하신다. 마땅히 이를 믿어야 한다. 『왕생요집』에도 이르기를, “때와 장소와 여러 인연을 막론하고, 임종에 왕생을 구하기를 발원하여 그 편리함을 얻는 것은 염불만 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는 참으로 우러러 의지할 만한 말이다.

 

(七)與其規定念佛多而欠缺,不如日課念佛少,所謂“一念亦得往生”。

 

  (7) 염불을 많이 하기로 정해 놓고 채우지 못하는 것보다는, 날마다 적게라도 정해 염불하는 것이 나으니, 이른바 “일념으로도 왕생한다.”는 것이다.

 

  誠然如是,善導和尙《往生禮讚》云“十聲一聲定得往生,乃至一念無有疑心”,然而《觀經疏》之文云“念念不捨者,是名正定之業”,是故,應信十聲一聲亦得往生,而念念不忘稱念名號。

 

  참으로 그러하다. 선도화상의 『왕생예찬』에 이르기를, “열 번·한 번으로 반드시 왕생함에 내지 일념의 의심도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관경소』의 글에는 “염념마다 버리지 않는 것을 정정의 업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열 번·한 번으로도 역시 왕생한다는 것을 믿으면서 염념마다 명호를 부르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又,《法事讚》亦云“彌陀名號相續念”,是故應當相續念佛。一食之間,三度憶佛念佛,即是相續。常憶佛念佛者,雖非十萬六萬之稱念,能得相續。

 

  또 『법사찬』에도 이르기를, “아미타불의 명호를 상속(相續)하여 불러라.”고 하였으므로 마땅히 상속하여 염불해야 한다. 한 끼 식사하는 사이에 세 번이라도 부처님을 억념하고 염불하면 곧 상속이라 한다. 항상 부처님을 억념하고 염불하는 이는 비록 십만·육만 번을 칭념하지 않더라도 능히 상속을 이룬다.

 

  然而人心,見境聞聲,被物所轉,在紛雜中,難得憶念。日課念佛多,常持念珠,即能常覺憶佛念佛;雖有事礙,而缺念佛,亦能“悲哉!無念佛矣”,容易發覺。總之,能常不忘,即是相續。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경계를 보고 소리를 들으면 사물에 끌려가 분잡한 가운데에서 억념하기가 어렵다. 일과로 염불을 많이 하고 늘 염주를 지니고 있으면 능히 항상 부처님을 억념하고 염불할 수 있다. 비록 다른 일이 생겨 염불을 빠뜨리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슬프다! 염불하지 못하였구나.” 하고 스스로 알아차리기 쉽다. 요컨대 항상 잊지 않으면 곧 상속이라 한다.

 

  又,“今日缺念,次日補之亦可”,如是允許之心,甚爲不宜。應加策勵,應知。

 

  또 “오늘 염불을 빠뜨렸으면 다음 날 보충해도 된다.” 이와 같이 허용하는 마음은 매우 옳지 않다. 마땅히 더욱 채찍질해야 한다. 마땅히 알라.

 

(八)“食魚鳥等肉,七日間不可到於佛前”,此說非也。乃是一切衆生,皆是宿世父母,故不可食。

 

  (8) “물고기나 새 등의 고기를 먹으면 이레 동안 부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말은 옳지 않다. 이는 일체중생이 모두 숙세의 부모이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又,臨終之時,酒、肉、鳥、蔥、韭、蒜等,亦所戒故,限於因病治療方可食用;然,非急死之病,或平時痛苦難忍之病,亦許之也。宜正身念佛而治療。

  惜命者,障往生故;若僅爲治病,可許之也。

(譯注:此《往生淨土用心》,《四十八卷傳》二十三卷云:“或人就往生用心之不審,列條尋問,上人之返答。”)

 

  또한 임종할 때에는 술·고기·새·파·부추·마늘 등을 금하기 때문에 병 치료에만 한하여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급사에 이르는 병이 아니거나, 평소의 통증이 견디기 어려운 병이라면 역시 허용된다. 마땅히 몸을 바르게 하고 염불하면서 치료해야 한다.

  목숨을 아끼는 마음은 왕생을 장애하므로, 단지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면 허용된다.

 

  (역주: 이 『왕생정토용심』에 대해, 『사십팔권전』 제23권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왕생을 위한 마음가짐을 잘 알지 못하여 조목조목 나누어 질문하니, 상인이 이에 답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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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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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처사 | 작성시간 26.06.03 나무아미타불!감사합니다
  • 작성자일향전칭미타불명 | 작성시간 26.06.03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원력행 | 작성시간 26.06.03 스님 수승한법문 수희찬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합장
  • 작성자대행심 | 작성시간 26.06.04 수승한법문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경원 | 작성시간 26.06.04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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