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도가 사상-도가
道家
중국사상(中國思想)의 여명기인 선진시대(先秦時代) 이래 유가(儒家)와 함께 중국 철학의 두 주류를 이루었던 학파. 도가라는 일컬음은 이 사상의 개조(開祖)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가 우주 본체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도(道)와 덕(德)의 개념에서 비롯되어 도덕을 논하는 일련의 학자들을 도덕가라고 호칭하다가 뒤에 이를 약하여 도가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호칭이 선진시대부터 나타난 것도 아니며, 전한대(前漢代) 유흠(劉歆)과 사마 담(司馬談) 부자가 중국사상의 내원(來源)을 설명하는 가운데 구가(九家) 또는 육가(六家)로 분류한 데서 일반화되었다.
〈도가의 연원(淵源)과 사상〉 도가라고 할 때, 넓은 뜻으로는 노자를 교조(敎祖)로 하여 뒤에 성립하는 종교형태인 도교(道敎:Taoism)도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도교와 구별하여 노자․장자(莊子)․열자(列子)․관윤(關尹) 등이 중심이 되는 철학파를 가리키며, 좁은 뜻으로는 노장철학(老莊哲學)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보면 노자와 장자,양주(楊朱)․열자를중심으로한선진도가(先秦道家)뿐만 아니라 위진시대(魏晉時代)의 왕필(王弼)과 향수(向秀)․곽상(郭象) 등을 주로 하는 현학파(玄學派)와 명리학파(名理學派)도 도가에 속한다. 도가사상은 노자에서 비롯하였기 때문에 그 연원도 노자사상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보면 도가자류(道家者流)는 사관(史
官)에서 나왔다고 한 것 또는 《사기(史記)》에서 노담(老聃)은 주(周)나라의 수장실지리(守藏室之吏)였다고 한 것처럼 노자는 사관 출신이었고, 사관은 역사와 전통적인 학술사상과 지혜를 이어받은 해박한 지식인이었다. 그러므로 노자는 한편으로는 서주(西周)의 예악제도(禮樂制度)와 그 문화에 대하여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전화(戰禍)와 도덕의 붕퇴(崩頹), 사상의 분란 및 정치적인 암흑상황을 가장 심각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영일(永逸)의 방법을 구하되 눈앞의 고통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져온 근원으로서 서주문화자체를비판적으로검토해서,본래상태로돌아가려는반박귀진(反樸歸眞)의 사상을 이루게 된 것이 도가이다. 도가는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부정적 사변법(思辨法)을 사용하여 유가(儒家)의 가치도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론적 본체관념(本體觀念)으로서 道와 德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도가의 도덕은 인위조작(人僞造作)하지 않으면서도 어김없이 전개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에 따라 인생론에서도 무욕과 허무의 방법 등 부정적 방법을 통하여 자연대도(自然大道)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하였고, 지식과 가치의 문제에서는 시비(是非)가 양행(兩行)하는 상대주의(相對主義)와 반지주의(反知主義)를 주창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장자(莊子)의 개체(個體)의 절대자유․절대평등의 사상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노자의 도덕경
『老子道德經』
중국의 사상가 노자(老子)가 지은 것으로 전하는 저서명. 《노자(老子)》 또는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약 5,000자, 상하 2편으로 되어 있다. 성립연대에 관해서는 이설(異說)이 분분하나, 그 사상․문체․용어의 불통일로 미루어 한 사람 또는 한 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BC 4세기부터 한초(漢初)에 이르기까지의 도가사상의 집적(集積)으로 보여진다. 선진시대(先秦時代)에 원본 《노자》가 있었던 모양이나, 현행본의 성립은 한초로 보는것이통설이다.그후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상편 37장, 하편 44장, 합계 81장으로 정착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노자 사상의 특색은 형이상적(形而上的)인 도(道)의 존재를 설파하는 데 있다. 무위(無爲)함이 무위함이 아니다라는 도가의 근본교의, 겸퇴(謙退)의 실제적 교훈, 포화적(飽和的) 자연관조 등 도가사상의 강령이 거의 담겨 있어 후세에 끼친 영향이 크다.
《노자》는 흔히 말하는 도(道)가 일면적․상대적인 도에 불과함을 논파하고, 항구 불변적이고 절대적인 새로운 도를 제창한다. 그가 말하는 도는 천지(天地)보다도 앞서고,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적 존재이며, 천지간의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이를 성립시키는 이법(理法)이다. 다시 말하면, 대자연의 영위(營爲)를 지탱하게 하는 것이 도이며, 그 도의 작용을 덕(德)이라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도와 덕을 설파하는 데서, 《노자》의 가르침은 도덕(오늘날의 도덕과는 다름)으로 불리어 《도덕경》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다. 그러나 노자사상의 중심은 오히려 정치․처세의 술(術)로서의 무위를 설파함에 있고, 형이상적인 도의 논설은 그 근거로서의 의미를 지님에 불과하다. 노자는 하는 일만 많으면 도리어 혼란을 초래하고, 공을 서두르면 도리어 파멸에 빠지는 일이 흔한 세상에 비추어, 오히려 무위함이 대성(大成)을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선 의도하는 바는 아무런 작위(作爲)가 없고, 게다가 그 공업(功業)은 착실절묘하다고 설파하였다. 이 도를 본으로 하여 무위함에서 대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파하며, 이 점에서 형이상의 도와 실천적인 가르침이 관련된다. 무위의 술(術)이란 구체적으로는 유약․겸손의 가르침이 되고, 무지․무욕의 권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징으로서는 물[水]․영아(兒). 여성에의 예찬이 된다. 유가가 말하는 인의예악(仁義禮樂)이나 번잡한 법제금령(法制禁令)은 말세의 것으로 배척하고, 태고(太古)의 소박한 세상을 이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궁극적으로는 세속적인 성공을 쟁취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그 논법에는, 도는 언제나 무위하면서도 무위함이 아니다 대공(大功)은 졸(拙)함과
같다,그 몸을 뒤로 하여 몸을 앞세운다와 같이 역설(逆說)이 많은 점이 두드러진다.
莊子(BC 369~BC 289?)
중국 고대의 사상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자이다.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 송(宋)의 몽읍(蒙邑:河南省商邱縣 근처) 출생. 정확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나 맹자(孟子)와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약한 것으로 전한다. 관영(官營)인 칠원(漆園)에서 일한 적도 있었으나, 그 이후는 평생 벼슬길에 들지 않았으며 10여 만 자에 이르는 저술을 완성하였다.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 그를 재상으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저서인 《장자》는 원래 52편(篇)이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진대(晉代)의 곽상(郭象)이 산수(刪修)한 33편(內篇 7, 外篇 15, 雜篇 11)으로, 그 중에서 내편이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사상】:인간의 마음은 일정한 시대․지역․교육에 의하여 형성되고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이 마음이 외부 사물들과 접촉하여 지식이 생긴다. 이러한 지식은 시대․지역, 그리고 사람들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장자는 이러한 지식에 입각한 행위를 인위(人爲)라고 한다.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하여 그것을 이어주거나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하여 그것을 잘라주면 그들을 해치게 되듯이 인위는 자연을 훼손할 수 있다. 장자는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본다. 도는 일(一)이며 대전(大全)이므로 그의 대상이 없다.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다. 도는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자연(自然)하다. 도는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거미․가라지․기왓장․똥․오줌 속에도 있다. 이는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이다. 도가 개별적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德)이라고 한다. 도가 천지만물의 공통된 본성이라면 덕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도 덕이다. 이러한 덕을 회복하려면 습성에 의하여 물들은 심성(心性)을 닦아야 한다. 이를 성수반덕(性脩反德)이라고 한다. 장자는 그 방법으로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들었다. 덕을 회복하게 되면 도와 간격 없이 만날 수 있다. 도와 일체가 되면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이를 이도관지(以道觀之)라고 한다. 물(物)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자기는 귀하고 상대방은 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만물을 평등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천지만물과 자아 사이의 구별이 사라진 지인(至人)이라야 누릴 스 있다. 이 지인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천지만물들과도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다. 장자의 사상은 대부분 우언(寓言)으로 풀이되었으며, 그 근본은 노자(老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현세와의 타협을 배제하는 점에서는 더욱 철저하여, 바로 그와 같은 면에서 장자의 분방한 세계가 펼쳐진다.
【영향】:이러한 장자사상은 위진현학(魏晉玄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남북조 시대에 성행한 반야학(般若學)과 당나라 때 융성한 선종(禪宗)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현종(玄宗)은 그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호를 추증하였으므로,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읽혔다. 송(宋)․명(明) 이학(理學)은 유학을 위주로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장자철학을 수용하였다. 장자의 이러한 초탈사상은 자연주의 경향이 있는 문학 예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전기에 이단(異端)으로 배척받기도 하였으나 산림(山林)의 선비들과 문인들이 그 문장을 애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