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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이야기13 - 레비스트로스 야성적으로 생각하라

작성자선통박영수|작성시간09.01.21|조회수363 목록 댓글 0

야성적으로 생각하라

 

-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흔히 원시시대보다는 현대사회가 더욱 발달되고 문명화된 사회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역시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무지와 야만에 맞서 문명세계를 꿈꾸어왔다. 낙후된 시골의 풍습이나 사고방식을 고치기 위하여 초가지붕을 강제로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들고, 흙먼지 날리는 시골길에 아스팔트를 깔고, 새벽이면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되는 노래를 동네 확성기를 통하여 무지막지한 볼륨으로 틀었던 새마을운동의 주창자도 이처럼 생각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떠한가. 원시와 현대의 차이는 무엇인가? 야만의 세계보다 문명화된 세계가 더욱 나아졌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는가? 혹 건설이라는 명목 하에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소중한 것들을 파괴한 것은 아닌가? 과거보다 현재가  더욱 나아졌다고 믿는 역사주의적 사고방식은 우리의 오만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우리는 혹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여 정착 소중한 것들을, 근본적인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 Claude)는 190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태교의 랍비였고, 그의 아버지는 화가였다.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조각, 골동품 등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었고, 이러한 그의 경험은 그의 학문에 커다란 밑천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등학교시절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고, 사르트르가 다니던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법학과 철학을 공부하였다. 1931년에는 최연소자로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이 때 그의 나이는 23세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고등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1935년 선배의 소개로 브라질의 상파울로 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취임하게 된다.

   사르트르가 독일로 유학을 가서 현상학을 접한 것이 삶의 커다란 전기가 되었다면, 레비스트로스에게는 브라질 체류가 바로 삶의 전기가 되었다. 그는 체류기간 동안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하여 아마존 강 유역의 원주민 사회를 답사할 수 있었고, 1938년에는 브라질 정부의 후원으로 브라질 내륙지방의 원주민 사회조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후에 그의 주저가 된 󰡔슬픈 열대󰡕(1955), 󰡔구조인류학󰡕(1958), 󰡔야성적 사유󰡕(1962) 등에 널리 활용되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유태인이었던 그는 미국으로 탈출하여 뉴욕의 신사회조사연구원에서 8년간 연구생활을 하게 한다. 여기서 그는 저명한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야콥슨을 만나 깊이 영향을 받고, 그와 공동으로 󰡔언어학과 인류학에 있어서의 구조적 분석󰡕(1954)이라는 논문을 내놓는다.

   전쟁이 끝나자 48년에 파리로 돌아와 인류학 박물관의 부관장직을 맡으며 저술활동에 전념한다. 그의 원시사회에 대한 연구경험은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만나자 빛을 발한다. 그는 일약 구조주의 인류학자로 명성을 얻고, 1959년에는 모교로 돌아와 사회인류학을 강의한다. 그는 동시대 인물인 사르트르와 학문적으로 대립하여 당시 사상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인류학을 넘어 신화학(神話學)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1964년부터 71년까지 8년간의 기간 동안 방대한 네 권의 󰡔신화학󰡕 저서를 내놓는다. 제1권 󰡔날 것과 익힌 것󰡕(1964), 제2권 󰡔꿀로부터 재까지󰡕(1966), 제3권 󰡔식사법의 기원󰡕(1968), 제4권 󰡔벌거벗은 인간󰡕(1971) 등이 그것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비판하며 구조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인류학자, 책상에 앉아 관념을 주무르는 대신 원시사회를 몸소 체험하며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저술했던 철학자이자 문명사회의 고발자인 레비스트로스를 만나보자.



슬픈 열대

   그는 문명사회의 일원이었다. 한편 그는 인류학자였다. 이러한 그의 조건은 그로 하여금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 하나의 길은 문명의 선교사로써 미개사회를 연구하고, 미개인들을 계몽시키고 찬란한 문명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길이다. 다른 하나의 길은 원시사회의 사고방식 속에서 문명사회를 비판하고 원초적인 그들의 삶의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전파하는 길이다. 그는 삶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 길을 택하게 하였다.

   그는 문명사회가 이룩한, 정확히 말한다면 저지른, 들끓는 탐욕과 무한경쟁, 전쟁과 파멸을 경험하였다. 유태인이라는 그의 신분 때문에 그는 전쟁의 참혹함과 무자비함을 더욱 적나라하게 경험하였다. 또한 브라질의 체류기간 동안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을 조사하면서 문명사회가 원주민 사회에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놓은 파괴현상을 목격하였다.     

   인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헛된 곳에 낭비하고 있다. 세상은 온통 들끓고 폭파되고 폐허가 되어갔다. 인류는 이대로 멸망하고 말 것인가? 출구는 과연 없는 것인가? 대립을 뛰어넘는 참된 평화는 과연 아무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단 말인가? 안정된 전체감을 인류에게 주고, 인간의 슬픔을 축제에 의해 해결하고, 영혼이 감성과 지성을 통일시키는 ‘황금시대’는 과연 오지 않을 것인가? 전쟁을 겪은 지성인이라면 한번쯤을 해보았을 이런 질문들을 그는 인류학을 통하여 답하려하였다.

   그리고 그는 원주민들의 사유/생활방식 속에서 인류의 보편적인 사유 질서를 발견하고, 이러한 ‘사유’ - 레비스트로스의 용어에 의하면 <야성적 사유> - 를 통하여 문명사회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다. 진정 ‘슬픈 것’은 ‘열대’가 아니라 ‘문명사회’라고 그는 역설적으로 주장하였다.



뜨거운 사회와 차가운 사회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저서 󰡔슬픈 열대󰡕(1955)에서 인류학(anthropologie)이라는 용어는 ‘엔트로폴로지(entropologie)’라는 신조어로 바꾸어 써야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용어에 따르면 ‘인류(anthropos)’에 대한 ‘학문(logie)’은 ‘열역학의 상태함수(entropie)’에 대한 ‘학문’으로 대체된다. 이러한 그의 표현은 다음과 같은 것을 암시한다 : 인간의 행위는 역학적 요소처럼 과학적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자연이나 사회현상에는 임의적인 것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인류학은 그 요소와 요소간의 관계 속에서 심층적이고 보편적인 질서와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와 문명사회를 비교하면서도 역학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차가운 사회(cold society)>와 <뜨거운 사회(hot society)>가 그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한대(寒帶)사회와 열대(熱帶)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는 서구와 같은 문명사회를 <뜨거운 사회>라 말하면서 이를 ‘열역학적 기계’에 비유한다. 그 사회는 마치 ‘증기기관’과 같아서 에너지를 산출하고 소비하면서 발전을 하고 그에 따라 갈등을 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는 기술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그만큼이나 파괴, 무질서 와 갈등을 수반하게 된다.

   반면 원시사회와 같은 <차가운 사회>는 ‘기계론적 기계’에 비유된다. 이 사회는 처음에 주어진 애너지의 양이 거의 증감하지 않고 고스란히 유지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기계적(mechanical)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는 마치 시계처럼 원초적 상태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변화되는 역사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사회이다. 이 사회는 인간간의 파괴나 무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동적 사회(mobile society)와 정적 사회(static society)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러한 레비스트로스의 구분은 단순히 두 사회의 우수함/열등함이나 좋음/나쁨을 가르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물론 그가 차가운 사회(정적 사회)에 더욱 많은 관심을 쏟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두 사회를 비교함으로써 문화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서구사회의 잘못된 시각을 교정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식인풍습만 해도 그렇다. 원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식인풍습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지비한 살육을 감행하는 서구의 전쟁에 비하면 얼마나 인간적이고 (역설적이지만) 문명적인가.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절대대립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성을 회복함으로써 화해시키려는 전략이 감추어져 있다. 뜨거운 사회 또한 차가운 사회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던가. 동양사상에는 이러한 표현이 있다. 動中靜, 靜中動! 자, 그러면 그의 화해전략을 살펴보도록 하자.



탐사장비

   화해를 위해서는 그가 썼던 장비들을 살펴보자. 탐사에 나서기 전에 장비를 확인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니까. 그는 우선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지질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나 프로이트가 썼던 장비(사상)는 인류학의 지적탐사를 위하여 유용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 지질학이나 정신분석학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것 같다. 이상의 세 영역은, (……) 참다운 현실은 가장 겉표면에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고 진리의 본성은 그 진리가 스스로 숨으려 하면서 두는 세심한 주의 속에서 이미 속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인용구를 통하여 유추해 보건대, 그의 작업이 <겉표면>보다는 <속살>에 더욱 강조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결정적인 장비를 제공한 것은 구조언어학이었다. 여기서 잠시 구조언어학의 특징을 상기해보자. (기억이 모자라는 사람은 3부 1장의 소쉬르 부분을 참조하라.)


    1) 무의식적 구조 : 개별 언어현상의 이면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이고 무의식적인 언어구조와 법칙 중시(빠롤과 랑그)

    2) 언어의 관계성 : 언어의 구성요소 그 자체보다는 요소 간의 체계적인 관계중시(연쇄관계와 계열관계)

    3) 비역사성 : 언어의 역사적 변천보다는 언어의 보편적 구조와 법칙의 강조(통시성과 공시성)

    4) 반인간주의 : 지시대상이나 주체보다는 언어 내적 관계에서 나오는 가치 강조(능기와 소기)


   명필은 붓을 안 가린다지만, 학자는 그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갖게 된다. 특히 레비스트로스처럼 유능한 학자가 좋은 장비를 갖게 된다면 더욱 그렇다. 그는 구조언어학의 방법을 인류학에 적용시킴으로써, 언어에 대한 하나의 방법론의 차원을 넘어 명실상부한 구조주의 철학을 정착시키게된다. 자 장비가 갖추어졌으니 본격적인 탐사에 들어가자.



여자 나누기

   이상의 장비를 가지고 그가 먼저 탐사해 들어간 곳은 인류의 결혼규칙이었다. 결혼은 인류를 구성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가족단위를 형성시키고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행위이다. 만약에 인류가 같은 규칙에 의하여 결혼을 하고 있다면, 그 규칙이야말로 인류의 심층적인 의식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심층적인 의식구조의 규칙을 통하여 제반의 문화인류현상의 규칙을 발견할 수 있지는 않을까?

   결혼규칙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자. 남자는 여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혼이 무차별적이지 않다. 그는 어머니나 여동생과 결혼할 수 없다. 이는 금기시 된다. 왤까? 하도 가까이 있으니 성욕이 발동하지 않아서? 아니면 죄의식 때문에? 만약에 그렇다면 굳이 금기시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왤까?

   레비스트로스가 보기에 인간사회의 공통되고 보편적인 규칙인 <근친상간의 금기(incest taboo)>는 생리적인 욕망을 자제하기 위하여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소극적 의미보다는 일정한 규칙 하에서 여자를 교환함으로써 집단 간의 <호혜성의 관계>를 형성하려는 적극적인 규칙이었다. 한편 이러한 규칙은 인간이 규칙을 염두에 두고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인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언어체계와 흡사하다. 의사소통을 위하여 언어가 교환되듯이, 친족구성을 위하여 여성이 교환되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두 경우 현상의 본질적 측면이 동일하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인류사회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규칙이 무의식적으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친밀한 아버지와 엄한 외삼촌

   만약에 부부관계가 친밀하다면 부자관계는 어떠할까? 그리고 어머니와 외삼촌의 관계는? 이러한 질문을 갑자기 받으면 당혹스럽겠지만 레비스트로스에게는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그는 친족구성 뿐만 아니라 친족구조의 관계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레비스트로스에 대표적인 예로 체르케스족과 트로브리얀드족의 유형을 비교분석한다. 체르케스족은 부부관계와 부자관계가 엄격한 반면 남매관계(어머니-외삼촌)와 외삼촌-조카관계는 친밀하다. 이와는 반대로 트로브리얀드족은 남매관계와 외삼촌-조카관계가 엄격한 반면 부부관계와 부자관계는 친밀하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도표로 나타내보자.

 

 

 

 아버지

 

 

 외삼촌

 

 

 

 아버지

 

 외삼촌

 

 어머니

 

 

  엄격

 

  친밀

 

 어머니

 

  친밀

 

  엄격

 

  나

 

 

  엄격

 

  친밀

 

   나

 

  친밀

 

  엄격


                   <체르케스족>                                           <트로브리얀드족>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친족 개별의 특성이 아니라 친족구성원 사이에 맺고 있은 관계이다. 한편 친족 간의 상호관계는 어느 한 관계가 정해지면 나머지 관계를 자동적으로 알게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언어의 가치가 상호대립하는 음운(예를 들어 rice 와  lice)이나 개념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친족구성원의 위치와 역할은 상호대립하는 친족단위의 구조적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이원적 대립>이야말로 인간의 무의식적 사유를 구조화하는 법칙이며, 이 법칙에 의거하여 사회 문화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원적 대립>의 구조를 친족체계 뿐만 아니라 요리, 색상, 신화 등의 영역에 광범위하게 적용하였다. 그는 요리체계의 이원대립(구운 음식/끓인 음식=손님용/가족용), 색상체계의 이원대립(적색/녹색=위험/안전) 등의 예를 들어 우리가 비논리적이고 비체계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영역 또한  <이원적 대립>구조를 통하여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야성적 사유

   이상의 <근친상간의 금기>규칙, 친족체계의 이원적 대립 등을 통하여 레비스트로스가 주장하는 바는, 이러한 규칙이 바로 자연과 문화, 정신의 세계에 보편적이고 공통적으로 관철되고 있으며, 인간은 바로 이 규칙에 의하여 무의식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원주민들의 사유방식에 주목한다. <차가운 사회>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야말로 인간의 사유를 외부의 개입이나 심한 변동없이 순수한 상태로 계속해왔다. 이러한 지속성과 반복성은 인간의 사유구조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원주민이 사유방식 속에서 모든 인간의 무의식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사유방식(구조와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원주민들의 사유방식을 <야성적 사유(la pense'e sauvage)>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주술적이고 신화적이긴 하지만, 그것이 곧 단순하고 무질서하지는 않다.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추상과학의 논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러한 사고를 비과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레비스트로스는 오히려 이러한 <야성적 사유>를 통하여 서구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구체적인 것들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그는  <야성적 사유>를 가리켜 서구인의 추상적인 과학과는 다른 ‘구체적인 것의 과학’이라 말하였다.

   그런데 왜 <야성적 사고>가 서구인들에게는 낯설어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서구인들이 이룩해놓은 기술적인 진보에 대한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유는 인류의 무의식 속에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구인들에게조차 남아있다. 따라서 자신의 근거없는 우월감을 없애고 <야성적 사고>를 회복하라고 레비스트로스는 외친다. 이 외침은 마치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것과 하모니를 이루며 레비스트로스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외침이다.



주체 없는 칸트주의

   이제 정리하자.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인류학을 전개함으로써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을 드러내 주었다.

   그의 구조인류학은 인류의 문화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무의식적 구조의 지평을 열었다. 그는 인류에게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사유구조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사회를 하나의 커다란 전체성 속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를 폴 리쾨르는 ‘선험적 주체 없는 칸트주의’라고 하였다. 인류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사유구조를 주장했다는 측면에서는 ‘선험적 칸트주의’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인식주체’를 배제하고 그 자리에 ‘사회적 무의식’을 놓았다는 점에서는 칸트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한편 그가 주장하는 ‘무의식’이 대상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 논리적 형식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과도 차별성을 가진다.

   둘째, 그의 입장은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실존주의와 대립지점을 형성한다. 실존철학이 보편적 규칙을 배제하고 인식주체를 강조한 휴머니즘 철학이었다면, 그의 구조주의는 이와는 정반대로 ‘주체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가는 반휴머니즘 철학이었다. 여기서 실존철학과 구조주의 철학의 입장의 차이를 간단히 도표로 살펴보자.


실존철학

구조주의 철학

 주체의 강조

 의식적(선구적) 결의

 자유의 강조

 휴머니즘

 역사주의

 구조의 강조(주체의 해체)

 무의식적 사고

 필연의 인식 강조

 반휴머니즘

 비역사주의

  

   실존주의철학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비판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 주체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주체에 대한 철학적 비판은 후에 다른 철학자들을 통하여 더욱 다방면에서 검토될 것이다.)

   한편 레비스트로스의 체계는 구조와 법칙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변화를 무시하는 ‘폐쇄적이고 무기력한’(사르트르) 체계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체계 속에서는 다양성과 역동성이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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