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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종교, 법률

불교 사상

작성자선통박영수|작성시간08.12.03|조회수110 목록 댓글 0

 

불교 사상

 

3. 불교

 

印度哲學(Indian philosophy)

인도에서 성립․발전한 철학․종교․사상의 총칭 및 그것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다르샤나(darsana:知見)로서, 세계와 인생에 관한 사변(思辨)의 체계를 가리킨다. 인도에서는 고대로부터 철학이 줄곧 종교와 친연관계(親緣關係)에 있어서 그 지적(知的) 탐구도 미망(迷妄)으로부터 해탈(解脫)을 목적으로 하며, 인도철학은 이와 같은 탐구의 역사적 전개를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인도철학사(哲學史)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서(西)유럽의 철학사와는 달리, 여러 체계들은 서로 교섭하고 병행하면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연대는 추정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으나 사상 전개의 경향성(傾向性)으로 보아 다음과 같이

① 고대(서력기원 초까지),

② 고전시대(7세기경까지로 불교를 비롯한 모든 철학사상이 상당히 체계화되었다),

③ 중세(8세기 이후, 베단타학파가 주류를 차지한 후부터 15세기경까지),

④ 근대(15세기 이후 약간의 과도기를 거쳐 18세기 이후까지)로 구분할 수 있다.

 

고대의 사유(思惟)는 신화적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그 연원(淵源)도 BC 13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으나, 주된 것으로는 베다의 종교, 브라마나의 세계관 및 고(古)우파니샤드의 철학이 있다. 베다의 종교는 다신교(多神敎)로, 신들의 대부분은 자연신(自然神)이었으나 점차 인격화되어 갔다. 4종류의 베다 본집(本集) 중에서는 《리그베다》가 가장 오래되었고, 그 철학적 찬가 속에는 우주창조의 최고신(最高神)과 궁극원리로서의 유일자(唯一者) 등이 탐구되었다.

 

브라마나는 베다이래의 제식(祭式)에 관한 규정이나 해석을 집성한 문헌이다. 여기서는 제식의 연구나 실행이 인간생활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제사를 직접 주관하는 바라문족(族)은 우주를 지배하는 힘, 즉 브라만[梵]을 가졌다 하여 점차 상류계급을 형성하였다. 또

 

한 최고신을 프라자파티라고 하고 세계의 창조자․지배자라고 생각하였다. 우파니샤드란 가까이 앉는다란 뜻에서 전화(轉化)되어 사제간(師弟間)에 구전(口傳)되는 비의(秘義) 및 그 문헌의 총칭이며, 각각 독립된 철인(哲人)이 대화형식으로 철학적 사색을 전개하는 점에 그 특색이 있다. 샨딜리아(BC 7세기~BC 6세기)는 우주의 통일 원리를 브라만이라 부르고 이것을 본래의 자기인 아트만[我]과 동일시하였다. 이것을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하다. 우달라카 아루니(BC 7세기~BC 6세기)는 만물의 근원을 유(有)라 부르고 이에 입각하여 현상의 개전(開展)을 유물론적으로 설명하였다. 이에 비하여 인식주체(認識主體)로서의 아트만은 부정적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즉 네티 네티(neti neti:…이 아니고, …이 아니다)로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전존재(全存在)를 관념론적으로 통일하려던 사람이 야지냐발키아(BC 8세기경)였다. 또한 후세에 와서 각종 우파니샤드가 만들어졌으나, 고(古) 우파니샤드에는 이미 독특한 업(業)과 윤회(輪廻)의 사상이 담겨 있다. 고대의 종교단체로는 불교와 자이나교가 유력하다. BC 5세기경 도시가 발달하여 왕족과 상공업자의 실권이 강화되면서 바라문족의 권위가 약화되고 많은 자유사상가가 나타났다. 이들을 불교측에서는 육사외도(六師外道)라 부르는데, 석가(BC 563?~BC 483?)는 여기서 혁신적 종교운동을 일으켜 불교를 창시하였다. 그는 극단적인 쾌락주의와 고행주의(苦行主義)를 버리고 중도(中道:八正道)를 택하여 어디까지나 인생의 진실을 구하였

다. 또한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무아설(無我說)에 입각하여 인간적 현실을 직시하며 진실의 지혜에 눈뜰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특히 인간의 평등과 자비의 정신을 강조하는데 교설(敎說)의 주요 내용은 오온(五蘊)․사제(四諦)․십이인연(十二因緣) 등에 나타나 있다. 불교는 그 후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으로 나뉘고, 대승과 소승에서는 다시

 

여러 분파가 생긴다. 소승에서는 다원론적(多元論的)․실재론적(實在論的)인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현상론적(現象論的)인 경량부(經量部)가 주류를 차지하였다. 대승에서는 중관(中觀)과 유가유식(瑜伽唯識) 양파가 2대 사조(二大思潮)를 이루는데, 전자인 나가르주나(Nagarjuna 龍樹:150?~234)는 공관(空觀)에 의해 대승불교 사상의 기초를 다지고, 후

자의 아상가(Asanga 無著:310?~390?)와 그의 동생인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320?~400?)가 보살의 실천을 매개로 한 현실세계의 구조를 관념적으로 체계화하였다. 자이나교는 마하비라(Mahavira 大雄:BC 448~BC 376?)가 시작한 것으로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非) 바라문적인 사문(沙門)의 흐름에 그 연원을 두고 해탈(解脫)을 목표로 한다. 그 극단적인 고행주의(苦行主義)와 상대적인 관찰법은 별도로 치고, 세계관․유정관(有情觀) 실천규정 등에서는 불교와 유사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기원 후 얼마되지 않아 성립된 집권적(集權的) 국가를 배경으로 모든 철학사상이 정비되었으며, 정통(正統) 바라문교에서는 6개의 학파가 각각 수트라(古典)를 정비하여 차례로 주석서(註釋書)를 만듦으로써 학설을 발전시켰다. 이것을 육파철학(六派哲學)이라고 한다. 카필라(Kapila:BC 350?~BC 250?)를 개조(開祖)로 하는 상키아학파는 우다라카의 유론(有論)의 비평적 개혁을 통해 성립되어, 푸르샤(순수정신)와 프라크리티(根本原質)의 두 원리에 의해 우주의 창조와 개전(開展)을 설명하고, 또한 요가의 실천을 통해 고뇌의 종식을 지향한다. 요가학파는 기초이론을 상키아학파로부터 이어받으면서 신비적이며 금욕적인 실천을 체계화하였으나 그 태도에서는 주지적(主知的)이었다. 아크사파다(50?~150?)를 개조로 하는 니아야학파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논증방법(論證方法)을 정리하면서 논리학과 지식론(知識論)에 전념하여 혁신적인 불교논리학을 성립케 하였다. 일반적으로 인도의 논리학은 복잡다

 

양하여 서유럽의 논리학과 비교 연구하는 데 좋은 소재를 제공하였다. 니아야학파와 자매관계에 있는 바이세시카학파의 개조는 카나다(Kanada:BC 150?~BC 50?)인데 실체․성질․운동․보편․특수․내속(內屬)의 6가지 원리를 설정하고

실재론적인 자연철학을 전개하였다. 그 범주론(範疇論)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과 대비한다는 것만으로도 특수한 의의가 있다. 미망사학파는 자이미니(Jaimini:BC 2세기경)에 의해 확립되었으며, 베다 성전(聖典)에 규정된 제사의례의 연구와 실천을 인간생활의 의무라 생각하고, 베단타학파와 더불어 정통 바라문 철학의 중핵(中核)을 이루었다. 그들의 언어철학은 특히 뛰어났다. 8세기 이후 불교가 밀교화(密敎化)하고 이슬람교의 침투로 점차 세력을 잃어갔으나 바다라야나(BC 100?~1?)를 개조로 하는 베단타학파는 특히 상카라(700?~750?) 이후, 다른 학파나 불교의 사상을 섭취하여 인도 철학계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이 학파는 베다 성전의 근본사상인 우파니샤드의 철학을 철저히 연구하여 브라만으로 귀일(歸一)하는 한편, 내부의 논쟁을 통하여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제한불이론(制限不二論)․다원론적 실재론(多元論的實在論)․불일불이설(不一不異說) 등 다채로운 사상을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14세기경부터 인도의 민간신앙을 받아들여 광범한 사상적 생명력을 유지시키는 단서를 마련하여 힌두교의 이론적 지주(支柱)로 삼았다. 힌두교는 바라문교에서 전화(轉化)된 새로운 형태이며, 주요한 것으로는 비슈누파와 시바파가 있다. 각각 독자적인 교의(敎義)를 가지며, 많은 종파(宗派)로 갈리어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업(業)과 윤회에서 해탈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이슬람교와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인도의 모든 철학 학파는 이슬람교와 융합하는 양상을 나타냈고 독창적인 사상이 무시되었다. 오히려 라마난다(1400?~1470?), 카비르(1440~1518), 나나크(1469~1538) 등에 의한 전통

 

사상의 개혁이 점차 표면화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한다. 18세기 이후부터는 서유럽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종래의 인도철학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부적합하게 되었다. 그러나 라마크리슈나(1834~86), 비베카난다(1862~1902) 등에 의한 전통사상의 재생운동이 인도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는 것을 빠뜨릴 수 없다. 간디의 진리 파악, 타고르의 생명관도 그 근본에서는 인도의 전통적 철학과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의 인도철학은 라다크리슈난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비교철학에 역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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