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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종교, 법률

바가바드 기타란 무엇인가

작성자선통박영수|작성시간08.12.03|조회수120 목록 댓글 0

 

철학과 믿음 - 그대 마음속에 진리가 있네

 

바가바드 기타란 무엇인가?

 

 

 

 

서 론

 

본 론

 

Ⅰ 바가바드 기타란 무엇인가

 

1. '바가바드 기타'란 말의 어원 / 2. 바가기타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

 

3. 바가바드 기타의 개관

 

Ⅱ 바가바드 기타의 각장의 주요 내용

 

Ⅲ 바가바드 기타의 종교적 의의

 

1. 바가바드 기타의 종교적 의의 / 2. 바가바드 기타와 박티-요가

 

3. 바가바드 기타와 해탈

 

Ⅳ 바가바드 기타에 나타난 주요 사상들

 

1. 3종 요가 / 2. 기타에 나타난 이상적인 인간상

 

3. 바가바드 기타의 사상과 인도철학의 학파들의 비교 이해

 

결 론

 

참 고 문 헌

 

< 서 론 >

 

힌두이즘 수업시간에 수없이 나오는 바가바드 기타가 과연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늘 가지곤 했다. "바가바드기타가 과연 무엇이길래, 또한 힌두이즘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길래, 이렇게 힌두이즘 시간에 수없이 많이 나오는 걸까?" 나는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바가바드 기타라는 성전을 조사하려고 한다. 대체로 보아 바가바드 기타의 개관과 바가바드 기타의 각 장의 대충적인 내용의 파악, 바가바드 기타의 종교적 의의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 본 론 >

 

Ⅰ 바가바드 기타란 무엇인가

 

1. '바가바드 기타'란 말의 어원

 

우선 바가바드 기타의 내용을 알기 전에 바가바드의 기타의 어원과 사전적인 의미부터 알아보기로 하겠다. '바가바드'란 말은 '숭배할 만한 者' 혹은 '지극히 존귀한 자'라는 뜻이며, '기따'는 이 지존의 '노래' 혹은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唯一神을 초월적인 존재로 보고 있으므로 끄리쉬나도 이와 같은 존재다.

 

2. 바가바드 기타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

 

바가바드 기타의 원형이 성립된 시기는 대략 BC.150년경으로 보고 있으며, 그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은 바이셰시카 학파의 개조인 카나다가 생존하던 시기(BC.150~BC.50년경)이며, 파탄잘리가 쉬비 스칸다, 쉬바 바가바타 신앙을 기록 하고 역시 파탄잘리가 《大註釋書》를 저술하였다. 또한 베단타 학파의 개조인 바다라야나(BC.100~BC.1년경)가 생존하였으며, 기원전 100년경에는 불교의 부파분열이 거의 끝나고, 기원전 50년경에는 대승불교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반야경의 원형이 성립되었으며, 이것은 이 시기에 대승불교가 흥기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불교의 설일체유부가 성립되고(BC.160년경) 대강 슝가 왕조와 카얀바 왕조에 걸친 시기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면서 마하바라타라는 서사시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서사시 《마하바라타》안에서, 특히 철학설을 말하는 것은 <사나트수자티야 파르반>, <바가바드 기타>, <모크샤 다르마>, <아누기타>등의 4편이다. 그 중에서 《마하바라타》의 제6편 <비쉬마 파르반>의 제25장에서 제 42장까지, 합하여 18장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가바드 기타》이다.

 

또한 아래와 같은 이러한 견해도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원래 바수데바(V?sudeva)라는 人格神을 숭배하던 중인도 서부의 바가바타派에 의하여 만들어진 독립된 聖典이었다. 바가바타는 중인도의 서부에서 이미 불교 이전에 있었던 宗派라고 한다. 이 종파는 바수데바를 本尊으로 하여, 이 신을 믿으면 반드시 구제를 받는다는 믿음[신애 bhakti]을 가르친다. 이 바가바타파들이 居하던 지방에 크리쉬나(K???a)라는 영웅이 있었는데, 이 영웅은 신격화되어 至尊과 동일시되게 되었다. 이러한 바가바타파에서는 본존을 받들어서 흔히 바가바트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이러한 성존을 찬탄하는 노래를 「바가바드 기타」라고 하였다..

 

3. 바가바드 기타의 개관

 

(1) 바가바드 기타의 의의 : 바가바드 기타가 힌두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헌이라는 것을 힌두교를 조금이라도 접해 본다면, 그 수 많은 언급을 통해서 집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인도의 정신을 나타내는 한 권의 책을 들어 보라고 하면 비록 전체가 700개 정도의 싯구로 이루어진 비교적 적은 분량의 문헌이지만 이 《바가바드 기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무수한 종교철학서 중에서 옛부터 현재까지 이 작품만큼 널리 애독되고, 깊이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현대의 인도의 사상과 행동의 지도자들중 틸락, 슈리, 오로빈도, 간디등도 모두 《바가바드 기타》에서 그 행동의 활력을 얻었는데, 간디의 자서전을 읽어 보면, 그의 사생활에서부터 정치적인 행동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깊이 《바가바드 기타》의 영향을 받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근대 인도의 국부로 숭앙받는 마하트마 간디는 비극에 찬 그의 생애를 살아오는 동안 한가닥 희망도 없이 절망에 부딪쳤을 때 항상 바가바드기타의 시구에서 무한한 용기를 얻었다고 술회한 바있다. 한편 마하트마 간디의 그늘에 가려 크게 빛을 보지 못한 대중적 민족주의자이자 고전 연구자인 발강다르 틸락은 바가바드 기타에서 행동철학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틸락은 바가바드의 가르침은 바로 행동철학이라고 말하고, 여기서 제시하는 바와 같이 자유를 얻을 때까지 행동주의는 인도국민의 의무라고 했다.

 

(2) 바가바드 기타의 사상적 의의 : 이러한 행동철학과 관련하여서는 카르마 요가와 관련하여 간디의 사상체계에서의 행동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간디는 정신적인 자기 수련의 지침으로써 기타의 행동주의적 철학인 까르마 요가의 사상을 생활 속에 실현하고자 했다. 간디는 삶을 抛棄한 자(samny?sin)의 삶보다 카르마 요가의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간디는 기타의 영향으로 「행위의 捨離」가 아니라 「행위 안에서의 離慾」의 삶을 실천했다. 간디는 기타에 관한 한 주석 가운데서 「행위 안에서의 이욕」에 대한 그의 개념을 「아나삭티 요가(anasakti-yoga)」라고 정의 했다. 간디는 1914년부터 국민회의파의 지도자로서 한 힌두교의 흉탄에 의해 사망할 때까지, 인도 민족을 위해서 활동하였다. 그의 활동은 모두가 사탸그라햐(Saty?graha)였다. 간디의 사탸그라하의 설명은 주로 기타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기타는 우리에게 카르마 요가의 수행자로서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간디는 행위의 이상을 기타에서 설명했다. 카르마 요가의 理想으로 간디는 아힘사를 채택했다.

 

「바가바드 기타」는 제2의 「우파니샤드」라고 말해지고 있고, 인도인이 가장 즐겨서 애창하는 聖歌이다. 이것은 고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도인의 정신적․문화적․知的생활에 가장 현저한 영향을 끼쳐왔다. 따라서 오늘날에 있어서도 인도의 사상이나 지도적 사회원리의 지침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타」의 암시성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많다. 「기타」는 그 내용에 체계있는 哲學說을 설해지고 있지 않으나, 상캬, 요가, 베단타에 걸친 여러 사상을 포함하고 有神論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타」의 저변의 철학을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그 대표적인 것은 상캬-요가의 철학체계이다. 상캬철학은 실체계와 현상세계를 보는 기본틀을 제공하며 「기타」인식론의 토대가 되고 있고, 요가철학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철학의 실천적 이론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또 미망사 철학요소는 제의식(yajna)에서 찾을 수 있으며, 우파니샤드의 사상-범신론적 신의 개념이나 '智'를 강조한 것-이 기저에 흐르고 있으며, 베단타철학의 요소는 「기타」에서 궁극적으로 모든 만물이 神에게서 하나가 되며, 신에게로 귀입한다고 함에서 볼 수 있다.

 

(3) 바가바드 기타의 개략적 내용 : 「바가바드기타」는 「마하바라타」의 주제로 되고 있는 바라타족의 전쟁에 있어서 쿠루(Kuru)국의 백 명의 카우라바(Kaurava)왕자와 판두(P???u)의 다섯 와자 판다바(P???ava) 형제들 사이에 행해진 혈연 사시의 상극이라는 비통한 장면을 빌어 상대적 가치관에 얽매인 도덕적인 갈등을 종교적 차원에서 극복하는 길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기타」는 형식상으로 볼 때, 아르쥬나라(Arjuna)라는 무사와 그 마부로 있던 크리쉬나 사이에 전쟁터(Yuddhaksetra)에서 진행된 대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내용은 크리쉬나가 아르쥬나에게 일방적인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서양고전에만 익숙해 있는 서양의 독자들은 왜 복음서와 같은 바가바드 기타가 전쟁의 이야기인 마하바라타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 적대적인 두 무리의 군사들이 전쟁 준비를 모두 마치고 전열을 갖추고 있는 상태에서 바가바드 기타의 대화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힌두교도들은 이 경우에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는다. (바가바드 기타에서의 크리슈나의 박티에 대해서는 Ⅲ장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Ⅱ 바가바드 기타 각 장의 주요 내용

 

1. 제1장 : Arjuna Visada Yoga(발단, 아르주나의 고민) - 카우라바스 군과 판다바스 군대가 서로 노려보고 대립하는 전쟁터인 쿠루크세트라에서 크리슈나(사실은 비슈누의 화신)를 마부로 하는 판두의 셋째 왕자인 아르주나는, 양쪽 군대의 사이에 전차를 정지시키고 서서, 배치되어 있는 적군편에 수많은 친족, 스승, 친구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보고, 동족끼리의 전쟁의 잘못을 깨닫는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로서 일어날 가족법의 파탄을 두려워하여, 절망하며, 무기를 버리고, 전차의 좌석에 주저않는다.

 

2. 제2장 : Sa?khya Yoga(아르주나의 비탄과 바가반 크리슈나의 격려) - 아루주나는 나가 싸우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서 완전히 침묵해 버린다. 이에 대하여 크리슈나는, "육체는 죽어도 아트만은 영원불멸한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정의의 전쟁은 크샤트리아 계급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아르주나에게 일어나서 싸우라고 재촉한다.

 

3. 제3장 : Karma Yoga(집착함이 없는 행동의 요가) - 갸나 요가와 카르마 요가의 모순을 설명하고, naiskarma(행동에 얽매임이 없는 해탈의 경지)와 akarman(집착없이 하는 행위)에 대한 가르침을 설한다.

 

4. 제4장 : Jn?na Karma Samny?sa Yoga(집착함이 없는 지혜의 요가) - 크리슈나의 환신의 의의와 크리슈나의 神的 출생과 그 행동을 참으로 아는 자는 크리슈나 신의 본성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5. 제5장 : Karma, Samny?sa Yoga(영원한 평화를 얻는 길) - 행동의 놓아버림과 실천적 요가와의 비교, 실천적 요가는 놓아버림의 요가보다 더 나은 것이다. 그러나 상키야 이론의 수행자와 카르마 요가의 수행자를 서로 별개로 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설한다.

 

6. 제6장 : Dhy?na Yoga(요가의 관법과 정신통일의 경지) - 행동의 요가와 산야사는 서로서로 거역하지 않고 상통한 것이다. 그리고 요가의 관법과 정신통일의 경지에 대해서도 설한다.

 

7. 제7장 : Jn?na Vijn?na Yoga(지극히 높으신 이에 대한 체험) - 하레 크리슈나에 대한 체험의 곤란함, 그리고 프라크리티(여기서는 '특성')의 두 종류에 대하여 설한다.즉 프라크리티(정신․물질의 양쪽 방면에 걸친 만물의 모태)와 J?va(생명의 자아, 영혼)에 대한 말씀이 있고, 그리고 크리슈나는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대표한다.

 

8. 제8장 : Aks?ra Brahma Yoga(영원불멸의 브라흐만에 이르는 길) - 브라흐마 등의 중요한 개념에 대한 크리슈나의 정의가 있다.

 

9. 제9장 : R?ja Vidya R?ja Gubya Yoga(대주재자에 대한 지식과 그 신비로움의 가르침) - 신과 만유와의 포섭관계, 신적인 성품과 악마적인 성품, 크리슈나에 신에 대한 헌신이 설해지고 있다.

 

10. 제10장 : Vibh?ti Yoga(크리슈나의 거룩한 영광의 모습) - 크리슈나의 거룩한 능력의 시현(vbh?ti) 크리슈나는 스스로 만물의 본원이며, 대자재주, 모든 미덕의 근원임을 선언하고, 특히 헌신적인 신앙의 사람(박타)을 사랑하는 취지를 설한다.

 

11. 제11장 : Visvar?pa Dars?na Yoga(크리슈나 몸의 우주적 나타남) - 크리슈나의 몸의 우주적 현현, 힌두 교도의 입장에서 보면, 바가바드 기타의 절정이다.

 

12. 제12장 : Bhakti-Yoga(헌신의 길) - 크리슈나는 그가 사랑하는 자의 특질을 열거하면서, 신앙심을 갖고 자기에게만 전념하여 헌을 바치는 자(Bhakta)를 특히 두드러지게 더 사랑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13. 제13장 : Ksetra-Ksetrajna Vibh?ga Yoga(몸과 참된 자아<아트만>를 구별함) - Ksetra 밭<육체>과 Puru?a<참된 자아>( Ksetra-jna, 밭을 아는 자)에 대한 정의가 있고, 올바른 지식에 도달하기 위하여 수득해야 할 덕목이 설해지고 있고, 또 알고 있어야만 하는 브라흐만의 우파니샤드적인 묘사가 있다.

 

14. 제14장 : Gu?atraya Vibh?ga Yoga(세가지 성품(三性)의 분류) - 아버지인 크리슈나가 어머니의 자궁인 프라크리티속에 종자를 뿌리면, 그로부터 만물이 발생한다. 프라크리티를 구성하는 세가지 성품(gu?a)의 성질에 대해서, 또 성품과 죽은 뒤 환생의 관계에 대해서, 또 성품에 대한 설법이 있다. 그리고 바가반 크리슈나는 브라흐만의 기초임이 발설된다.

 

15. 제15장 : Purusottama Yoga(소멸과 분멸을 초월해 있는 지극히 높은 자아) - 불멸의 아슈바타타 나무(윤회의 상징), 해탈의 경지, 윤회에 있어서의 자아, 만물이 내재한는 하레 크리슈나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16. 제16장 : Daivas?ra Samp?d Vibh?ga Yoga(거룩한 바탕의 사람과 악마적인 바탕의 사람) - 거룩한 바탕의 사람과 악마적인 사람의 성격, 특히 악마적인 바탕의 사람이 행하는 행동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7. 제17장 : Sraddhatraya Vibh?ga Yoga(세가지 종류의 신앙) -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성한 경전의 규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의 제사는 세가지 구나(성품)에 지배된다고 설해지고 있다.

 

18. 제18장 : Samny?sa Yoga(놓아 버림으로써 해탈에 이르는 길) - 행동을 놓아버리는 산야사와 과보를 놓아버리는 산야사의 참된 意義에 대한 것과 행동하는 자와 성품과의 관계, 그리고 상키야 설에 의한 행동의 다섯가지 원인에 대한 설명과 행위의 이론이 설해진다.

 

Ⅲ 바가바드 기타의 종교적 의의

 

1. 바가바드 기타의 종교적 의의

 

바가바드 기타는 기독교 내의 신약성경의 유사한 위치를 힌두교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탓으로, 현대의 주석가들은 그것을 흔히 힌두교의 신약성서로 일컫는다. 물을 필요도 없이, 기타는 인도의 이 쪽끝에서 저 쪽 끝까지 인도 전역을 속속들이 편만하고 있다. 신약성서처럼 기타도 역시 보다 커다란 성전적 전통의 일부다. 왜냐하면 그것이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완성일 뿐 아니라, 옛 가르침들을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바로잡는 중요한 새 가르침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약성서와는 달리, 기타는 새 종교를 필요로 할 만큼 옛 전통과 극단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진실로 기타는 새 종교를 위한 영감이 되는 대신에 하나의 거대한 통일의 힘이 되어, 실재에 대한 다양한 비전을 서로 접근시키며, 옛 전통 안에서 발전되어 왔던 다양한 구원의 길을 수용하였다. 또한 기타는 힌두교도에게는 크리스트교의 복음서와 같다고도 할 수도 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교주로 삼는 크리슈나라는 이름이 기독교의 'Christ'와 유사한 점과 바가바타 푸라나(Bh?gavata-pur??a)나 그 밖의 문헌에서 전하는 출생 및 유아기의 전설, 나아가 여기서 강조하는 헌신적인 사랑의 내용으로 보아 기독교와 어떤 연관관계와 있지 않나 하는 주장이 종종 거론된다. 그러나 리그베다에서 보이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 슈베타시와타라 우파니샤드(?vet??vatara Upani?ad) 제 6 장과 그 밖의 카타카(Kathaka) 및 문다카 우파니샤드(Mu??aka Upani?ad) 속에서도 보이는 유사한 귀절을 참조한다면, 그러한 가설의 필요성이 반드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기타는 행위가 자아를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결과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행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면 자아에게 속박을 창조하는 욕망과 취착의 에너지는 무화되고 파괴되며, 행위는 속박이 아니라 해탈의 乘物이 된다. 그런데 이런 무사한 행위는 아트만 또는 푸루샤라는 고차적 자아와 프라크리티라는 저급한 자아 사이의 분별에 대한 최초의 지식을 그 행위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무사한 행위는 지식을 자기제물로 바치는 과정에 신적인 자아를 혼융하여 자아에 대한 고차적인 지식을 자기 제물로 바치는 과정에 신적인 자아를 혼융하여 자아에 대한 고차적인 지식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행위 길과 지식의 길은 그것들 자체로 용인될 수 있는 구원의 길로 보일 수 있다. 더욱이 예배의 길과 함께 이 두 길은, 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신애의 길로 끌어들이는 보다 고차적인 길의 부분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신이 비록 세계와 그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체의 관념을 아주 초월한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만유의 근원, 바탕, 힘으로서 두루 편재한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신적인 존재에 근거한다면, 이 세계와 세계 안에서의 행위는 악으로 간주되거나 해탈의 이름으로 버려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악한 것과 버려야 할 것은 욕망과 이기심이다. 그것들이 에고가 갖는 분리성을 통해 인간을 신과 세계로부터 갈라놓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을 가지고 기타는 구원의 세 가지 고전적인 길, 지식, 행위, 신애의 길들을 상호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하는 것으로, 이들 셋 모두를 통합하고 있는 보다 높은 길의 부분적인 모습돌로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들 세 개의 길이 다른 길을 배제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으므로, 기타는 구원의 길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라자스에 지배되어 행위로 경도되어 있는 자에게는 무사한 행위의 길이 특히 적합하며, 사트바에 의해 지배되어 지식과 성찰에 경도된 사람에게는 지식의 길이 보다 적합하다. 타마스로 지배되는 사람은 예배의 길을 특히 매력 있는 것으로 본다. 이 들 세개의 길 모두 자기 - 제공의 정신과 신에 대한 사랑의 정신으로 수행된다면, 보다 고차적인 길로 변화될 수 있다. 이 길은 신적인 생명이 은총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신적인 행위, 지식, 신에 대한 사랑으로써 채울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

 

2. 바가바드 기타와 박티-요가

 

박티, 즉 헌신은 인격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한 관계이다. 헌신되지 않은 불명확한 것에 대한 숭배는 비록 비인격신에 친애한 감정을 품은 위대한 아드바이틴(비이원론자)의 증거가 있어도, 보통 인간에게는 곤란할 것이다. 인격신에 대한 숭배는 모든 약하고 천한 자, 병들고 무지한 사람에게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박티는 봉사한다는 뜻의 어근 바쥬(Bhaj)에서 파생됐고, 신에게 봉사함을 뜻한다. 그것은 신에게 사랑으로 매달리는 것이다. 나라다(Narada)는 그것을 '신에 대한 강한 사랑이다' 라고 정의했고, 사디르야의 경우는 '구원을 위해 신에 대한 지고한 동경'이라 했다. 그것은 신께서 은총을 주심을 믿음으로써 복종되어지며, 그것은 요가 수트라의 이슈와라 프라니다나이다.

 

아르쥬나는 신성의 형상은 신의 은총에 의해 그에게 보여진다고 들었고 나로부터 그것들의 상실은 물론 기억과 지식도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상카라조차도, 신 혼자만이 구원의 지혜를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고 인정한다. 프라파띠와 박티 사이의 차이는 성 어거스틴과 성 페라기우스와 같은 고대의 기독교 사상에서의 논쟁과 관계되는 것으로, 피조물인 인간이 구원되려면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과, 인간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문제와 같다.

 

신봉자에게는 고양된 자유라는 것은 신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신의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 모든 신봉자들의 의무이다. 그들의 의무를 저버린 채 단지 신의 이름인 '크리슈나여, 크리슈나여' 만을 외치는 사람들은 참으로 위선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신봉자가 참으로 자신을 신에게 복종시킬 때, 신은 그의 마음을 다스리는 정열이 되고 신봉자는 무엇을 하든지, 신의 영광을 위해 행한다. 바가바드 기타 안에서 박티는 신에게 철저한 자기 봉사이다. 그것은 신의 존재를 믿고, 그를 사랑하며 그에게 봉헌하고,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보상이며, 그러한 신봉자는 자신 안에 완전한 인간의 에너지 뿐만 아니라, 가장 고양된 지식의 핵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3. 바가바드 기타와 해탈

 

해탈은 업의 속박을 떠나 다시 윤회를 되풀이하는 일이 없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번뇌와 죄악에서 벗어나게 되어, 생사윤회를 초월하기 때문에 不死라고도 불리워진다. 모든 수행자의 노력은 생사유전의 苦海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여 행하여진다. 그러므로 해탈은 인생 최고의 귀착지와 목적이다. 그리고 크리슈나는 지상의 목적이 되기 때문에 바가바드 기타에 있어서 해탈은 하레 크리슈나, 즉 크리슈나 신에 도달하는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분명하게 卽神解脫을 설명하지 않는다. 해탈은 죽음을 기댜려 처음으로 실현되고, 보통사람은 많은 生을 지나 겨우 그 이상을 달성한다. 우파니샤드는 최고 원리인 브라흐만을 깨달아 이것과 합일하는 것이 해탈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梵我思想과의 융합을 나타내는 장소에 있어서는 바가바드 기타도 해탈을 브라흐만에 도달하는 것으로 하여 그 경지를 '브라흐만의 상태(梵的狀態)', 혹은 '브라흐만과 하나됨'이라고 칭하여 해탈자를 '브라흐만이 될 수 있는 자'라고 부르고 브라흐만도 크리슈나 신과 같이 궁극적인 귀착지라고 되어 있다. 또, '브라흐만의 道'란 해탈의 道와 다름 아니다. 사실 바가바드 기타는 해탈의 경지에 관하여 상세한 설명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탈한 자아의 존재형식은 지상의 인간의 경험적인 지식을 超絶한 것이고, 만유를 지도하여 우주를 主宰하는 힘은 아니지만, 크리슈나 신과 동일한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바가바드 기타가 해탈을 가리켜, 크리슈나 신에 도달한다고 할 때, 그것은 크리슈나 신의 본성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고, 크리슈나 신과 sadharmya(신과 똑같은 성품의 경지 : 同性位)에 이르는 것이다. 원래 크리슈나 신의 부분인 자아가 프라크리티의 속박(굴레)을 벗어 최초 최고의 상태에 돌아가는 것이다.

 

Ⅳ 바가바드 기타에 나타난 주요 사상들

 

1. 3종 요가

 

바가바드 기타는 해탈에 이르는 길을 하나로 한정하지 않고, 사람의 성격이나 역량에 따라 몇 개의 길을 제시한다. 다양한 해탈의 길 중에서 주요한 것을 들면,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지식 및 puru?a(神我)의 인식에 바타을 둔 지식의 길(jn?na-yoga),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의무를 수행하는 행위의 길(karma-yoga), 신에 대한 열렬한 信愛와 절대적 귀의에 바탕을 둔 신애의 길(bhakti-yoga)등이다. 3종 yoga에서 사용되는 'yoga' 라는 말은 인도의 철학․종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요가는 원래 어근 yuj로부터 파생한 말이다. 이 동사 어근은 원래 '소에 멍에를 메다, 말에 裝飾具를 메다'라는 의미에서 '어떤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다.'라는 의미가 되었다. 바가바드 기타에 있어서도 요가는 실천, 수련, 수행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며, 각 장의 끝 부분의 제목에서는 바가바드 기타 자체를 요가 논서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말하는 실천이란 하나의 목적에 이르는 방법이며, 길(道, marga)이다. 그래서 jn?na-yoga는 지식의 수련, karma-yoga는 행위의 실천, bhakti-yoga는 신애의 실천이며, 동시에 각각 '지식에 의한 해탈에 이르는 길, 행위에 의한 해탈에 이르는 길, 신애에 의한 해탈에 이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종교에서 일반적으로 요가는 보통 호흡을 조정하며, 어떤 한 대상에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坐法, 觀法을 의미한다. 특히 요가는 요가학파에서 조직되었다.

 

(1) jn?na-yoga :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지식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지식에 의한 제사는 재물에 의한 제사보다 낫고, 모든 행위는 지식에서 완결된다고 한다.(4.33)

 

예컨대 당신이 모든 악인 중에서 가장 악인이었다 하더라도, 다만 지식에 배에 의해서 당신은 모든 죄악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4.36)

 

타는 불이 장작개비를 재로 바꾸듯이, 아르주나여, 지식의 불은 모든 행위를 재로 만든다.(4.37)

 

왜냐하면 지식과 동일한 정화의 수단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요가 즉 정신통일에 의해 완성된 자는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그것을 자신 안에서 발견하리라.(4.38)

 

바가바드 기타에 의하면, 신의 본성을 아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그 과보는 무엇보다도 크다.

 

나를 不生이며, 시작도 없고, 세계의 주인(mahe?vara, 大自在主)으로 아는 자는 결정코 모두 죽을 인생 안에서 미혹에 빠지지 않고, 일체의 죄악으로부터 해방된다.(10.3)

 

수없이 낳고 죽음을 거친 끝에 지혜를 얻은 사람은 바수데바(크리슈나)를 일체라고 믿고 나에게 귀의하여라. 이와 같은 위대한 사람은 실로 구하기 어려우니라.(7.19)

 

이리하여 바가바드 기타에서 주장하는 지식의 요가는 신에 대한 절대적인 귀의를 나타내는 박티 요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karma-yoga :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 중에 지금까지도 힌두인들이 생활방식에 있어서 근거로 삼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욕심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한다. 카르마 요가란 이처럼 利害得失을 생각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의무만을 다함으로써 해탈을 얻는 길(道)이다.

 

쿠루 족은 각기 최강의 군대력으로 전쟁터에서 집결하여 곧바로 결전을 시작하려고 할 때, 동족이 피를 흘린다는 사실에 무의미함을 느끼고서 戰意를 잃은 아루주나에게 마부가 된 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슬퍼해서는 안된느 자를 슬퍼하고 있다. 그러나 현자는 산 자를 위해서도 죽은 자를 위해서도 똑같이 슬퍼하지 않는다.(2.2)

 

그리고 여기에서 자신의 의무를 강조하는 카르마 요가를 말한다.

 

만약 당신이 정법의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신의 의무와 명예를 저버려 죄악을 범하게 될 것이다.(2.33)

 

괴로움과 즐거움, 얻음과 잃음, 성공과 실패를 똑같이 보고, 당신은 싸울 준비를 하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은 죄악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2.38)

 

여기, 카르마 요가에는 노력하여 헛된 법이 없고, 잘못에 빠짐도 없다. 가령 이 요가를 조금이라도 실행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큰 공포(生死輪廻)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2.40)

 

당신의 관심은 다만 행위에 두어라. 결코 결과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당신은 행위의 결과를 동기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행위하지 않음에도 집착하지 마라.(2.47)

 

오, 아르주나여, 요가를 닦아 집착을 버리고, 성공과 실패를 평등하게 보고 행동하여라. 카르마 요가란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평등관이니라.(2.48)

 

마음을 수련한 자는 이 세상에서 선행과 악행도 모두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카르마 요가를 닦아라. 카르마 요가는 행위에 있어서 숙련된 것이다.(2.50)

 

바가바드 기타에서 말한 카르마 요가는 평등관을 본질로 하며, 집착을 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말하지만, 힌두 사회는 이것과 카스트의 의무와 관계가 깊다. 지식에 의해 해탈에 도달하는 길이 주로 전문적인 출가수행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 비하여, 행위에 의해 해탈에 이르는 길은 일반 민중에게도 열려 있는 것이며, 일상생활 속에서 해탈을 얻을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bhakti-yoga : 바가바드 기타에서 jn?na-yoga, karma-yoga와 함께 강조된 것은 bhakti-yoga 이다. 요가에 의한 정신 수련, 혹은 고행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련해 온 것은 인도의 여러 철학에서 표준적인 해탈에 이르는 수단이지만, 이것을 수행(修行, 實行)하기 위해서는 매우 강인한 정신을 필요로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출가 수행은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 되는 경우도 있다. 수행을 지속하는 데 충분한 정신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 전문적인 출가수행가 되는 조건이 안 갖추어진 사람들, 그와 같은 수행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한 하층 카스트의 사람들, 이들에게는 다만 열렬히 최고신에게 신앙을 바치면 신의 은총을 받게 되어,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과 귀의를 박티라고 하며, 이 박티에 의해 해탈에 이르는 길을 박티 요가라고 한다. 최고신에게 절대적으로 귀의하고 신애를 바쳐야 은총을 받는다는 사상은 고대에는 슈베타슈베타라 우파니샤드에 나타난다. 그리고 대서사시, 그 중에서도 바가바드 기타의 크리슈나, 즉 비슈누 숭배에서 가장 강조되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판두의 왕자 아르주나에게 충고하는 신성한 신 크리슈나는 비슈누의 화신이다. 이 비슈누에 대하여 헌신적인 신앙을 바치면, 누구든지 이 신의 은총을 받아 해탈할 수 있다.

 

오직 나만을 섬기고 생각하며 항상 헌신하는 자에게 나는 그가 얻지 못한 것을 얻게 해주고, 이미 얻은 것은 온전하게 해 줄 것이니라.(9.22)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신애로서 나에게 잎새 하나, 꽃 한송이, 과일 한 알, 물 한 모금을 바친다면, 나는 그 사랑과 그 순수한 심정을 다 받을 것이다.(9,26)

 

나는 일체 존재에 대하여 평등하다. 나에게는 미운 것도 없고, 고운 것도 없다. 그러나 신애로써 나를 정성으로 믿는 사람, 그들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9.29)

 

설사 극악한 자라고 하더라도, 다른 것에 귀의하지 않고 나를 정성된 믿음으로 섬긴다면, 그는 실로 선한 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올바르게 결심했기 때문이다.(9.30)

 

실로 푸리타 여인의 아들 아르주나여, 나에게 귀의한 자들은 비록 비천하게 태어난 자, 여성, 바이쉬나, 슈드라일지라도 최고의 목적 즉 해탈을 이룬다.(9.32)

 

여기에서 아루주나에게 충고한 자는 크리슈나의 모습을 한 비슈누이다. 이후의 신애 사상은 비슈누․크리슈나 숭배와 더불어 발전하며, 힌두교의 중심적 교의의 하나가 되었다.

 

2. 기타에 나타난 이상적인 인간상

 

(1) 베단타의 Sthitaprajna [지혜가 부동의 자리에 간 사람] <G?ta Ⅱ.54~72>

 

제 Ⅱ 장 Sa?khya Yoga(아르주나의 비탄과 바가반 크리슈나의 격려

 

* 54절 : arjuna uv?ca,

 

sthita-prajnasya k? bh???, sam?dhi-sthasya ke?ava,

 

sthita-dh?? kim prabh??eta, kim ?s?ta vrajeta kim

 

아르주나가 말하기를, 지혜가 확고한 사람(sthita-prajna), 아트만속에 깊이 들어있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오, 케샤바여! 확고한 지혜의 사람은 어떻게 말하며, 어떻게 앉으며, 어떻게 걷습니까?

 

< 해 설 > 삶에는 두 길이 있다. 하나는 가정의 살림을 하는 在家者의 길이요, 또 하나는 세상을 버린 出家者의 길이다. 카르마-요가는 재가자를 위한 길이요, 상키야 곧 지혜의 길은 출가자의 길이다. 이 두 갈래의 사람들이 다 확고한 지혜(prajna)의 경지에 이르며, 그렇게 되었을 때는 삶의 한계와 사회의 제약을 벗어난다. 그런 사람들의 삶은 개체적인 존재와 우주적인 본체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나타낸다.

 

* 55절 : ?r?-bhagav?n uv?ca,

 

prajah?ti yad? k?m?n, sarv?n p?rtha mano-gat?n,

 

?tmany ev?tman? tu??a?, sthita-prajnas tadocyate

 

슈리 바가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는 모든 옥망들을 말끔히 떨어버릴 때에, 오, 파르타여, 그가 오직 아트만에 의해 아트만속에 만족할 때에 그때야 말로 그는 확고한 지혜의 사람이라고 일컬을 수 있느니라.

 

< 해 설 > 이 절은 삼매(sam?dhi)의 경지 즉 초월적인 의식의 상태와 Nitya-sam?dhi 즉, 우주의식의 상태에서의 확고한 지혜를 말해준다. 이 양쪽 경우에서 마음은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는 모든 욕망을 말끔히 떨어버린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55절은 확고한 지혜의 바탕, 즉 초월적인 의식 또는 우주 의식에 있어서 본체의 깨달음을 밝혀주고 있다. 다음 56절은 확고한 지혜에 이른 사람의 성격을 말해준다. 57절은 그가 확고한 지혜의 경지에서 하는 행동 방법의 성격, 곧 無執着을 말씀해 준다. 58절은 무집착의 경지에서 하는 행동의 성격을 말씀해 주는데, 행동하는 자의 감각은 대상에서 물러서 있는 것이다. 끝으로 59절은 확고한 지혜에 대한 '보이지 않는것'의 영향을 밝혀준다. 59절은 '가장 높은 것'이 감각들 앞에 그 한없는 위엄속에 스스로를 펼쳐보일 때 - 즉, 지극히 높은 것이 감각적인 수준에 와 닿게 될 때에는, 감각들이 비단 감각의 대상에서 물러설 뿐만 아니라, 그 대상들에 대한 감각들의 기호마저도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다섯 장을 합쳐져서 '확고한 지혜'의 본질들을 밝혀주는 것이다.

 

* 56절 : du?khe?v anudvigna-man??, sukhe?u vigata-sp?ha?,

 

v?ta-r?ga-bhaya-krodha?, sthita-dh?r munir ucyate

 

슬픔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쾌락속에서도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 집착과 두려움과 노여움으로부터 이미 초월해버린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을 일컬어 확고한 통찰을 지닌 성자라고 하느니라.

 

< 해 설 > 바가반 크리슈나께서는, 상대적인 존재의 차원에서 행동하기를 계속하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확고한 지혜의 사람'에 대한 아르주나의 물음에 대답하기 시작한다. 이 56절은 확고한 지혜를 이룬 사람의 어떤 객관적인 표시를 말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주관적인 면모를 그려보여 주고 있다. 초월적인 의식의 체험은 아트만이 모든 활동에서는 완전히 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차원에 이르게 해주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그 자신의 가치가 달라진다. 각기 다른 진화의 단계마다 삶의 가치가 다르다. 이것이 거룩한 의식의 차원에 자리잡은 확고한 지혜의 사람(Sthitaprajna)이 하는 정상적인 행동도 평범한 인간의식의 수준에서 볼 때, 뭔가 다르게 보통이 아니게 보이는 쾌락과 고통, 두려움과 노여움에 흔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 57 절 : 어떤 것에도 지나친 애착을 품지 않는 사람, 좋은 것을 얻거나 나쁜 것을 얻거나 우쭐거리지도 움츠리지도 않는 사람, 이러한 사람의 지혜는 이미 확고부동이니라.

 

< 해 설 > '애착을 품지 않음'이란, 너무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단순히 sthitaprajna 가 훈훈함이 없는 냉정함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한량없는 慈悲와 행복의 바다이다. 그의 자비와 행복은 넘쳐 흘러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미친다. 그런 까닭으로 그는 어떤 것에도 지나친 애착을 품지 않는 것이다. 다음의 58절에서는 감각이 대상에서 물러서 있으면서도 확고한 지혜의 경지에서 하는 활동의 바탕인 것이다.

 

* 58절 : 마치 거북이가 자기의 사지를 끌어들이듯이 자기의 모든 감각을 그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끌어들인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을 일컬어 지혜가 확고한 성자라고 하느니라.

 

< 해 설 > 이 58절은 거북이가 겉으로 보면 사지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사지를 속으로 끌어들인 상태에 비유해서, 확고한 지혜의 사람이 지니는 감각의 상태를 그려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사람의 감각들은 안으로 끌어들여져 있고, 밖을 향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말한 원리는, 감각이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확고한 지혜의 경지에 들었을 때 감각의 수준에 나타나는 무집착의 속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59절 : 감각의 대상들은, 그것들을 먹고 살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모두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한 입맛은 끈질기게 남는다. 그런 가장 높은 것을 볼 때 이 입맛마저 사라지느니라.

 

< 해 설 > '그것들에 대한 입맛은 끈질기게 남는다.'라는 것은, 마음이 감각의 보다 섬세한 수준을 통해서 감각의 대상들을 경험하기를 계속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감각적인 지각의 거칠은 영역과 섬세한 영역을 확실히 구분해서 말함으로써, 확고한 지혜의 경지에서는 감각의 보다 섬세한 기능마저도 감각 대상에 매여있지 않은 채로 머문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 60절 : 오, 쿤티의 아들이여, 사나운 감각들은 그것들을 다스리려고 애쓰는 현명한 사람의 마음마저도 억세게 휘몰아 간다.

 

< 해 설 > 여기서 바가반 크리슈나께서는 아르쥬나에게 감각기관들의 성질을 말해주고 있다. 마음으로 하여금 다양한 자연계의 영광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연장이 감각이며, 감각의 주된 목적은 마음에서 가능한 최대의 행복을 안겨주는 일인 것이다. 영원한 기쁨의 체험에 이르기 위하여 이 감각들을 어떻게 최대로 이용하는 가를 다음 61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 61절 : 모든 감각을 제어하면서, 나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통일하고 앉아 있을지어다. 감각을 자제의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지혜가 확고히 서 있느니라.

 

< 해 설 > 이 61절에서는 바가반 크리슈나께서는 감각의 통제가 가능하며, 또한 '감각들을 자제의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지혜가 확고히 서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희망을 안겨준다.

 

* 62절 : 사람이 감각의 대상들을 골똘히 생각하면, 그것들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집착에서 욕망이 생기고, 욕망은 분노를 낳는다.

 

< 해 설 > 이 62절은 거룩한 것을 향하여 있지 않고, 감각의 대상을 향해 쏠리고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해서 점점 미망의 수렁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가 마침내 멸망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 63절 : 분노로부터 미혹이 생겨나고, 미혹함에서 기억의 혼란이 오며, 기억의 혼란에서 知性(Buddhi)의 파괴가 오고, 지성이 파괴되면, 그는 멸망하느니라.

 

< 해 설 > 知性은 각 개인의 주관성의 가장 섬세한 표현이다. 지성이 손상되지 않는 한, 삶의 전진과 성취를 위한 희망은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슈리 바가반께선는 지성의 파괴가 인간의 멸망으로 결과된다고 하는 것이다.

 

* 64절 : 그러나 자기 수련을 쌓은 사람은 아트만으로 애욕과 혐오감을 벗어나 있으므로, 이러한 사람은 모든 감각의 대상속에서 지내면서도 언제나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느니라.

 

< 해 설 > 여기서 '평화'라고 하는 것은, 순수의식의 상태에서 생기는 기쁨(至福)과 원만함을 뜻한다. 이 64절은 앞의 두 절들과 대조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의 두절들에서는 아르쥬나에게 감각을 다스리지 못하고 욕망의 부름에 자신을 내 맡긴 사람들이 당하는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 64절에서는 세속의 삶에 들어가기 전에 자기 수련으로 자신을 다듬은 사람들이 얻는 보람을 말씀해주고 있다.

 

* 65절 : 이 마음의 평화속에서 그의 모든 슬픔은 끝이 난다. 참으로 드높아진 意識의 사람은 곧 확고한 지혜에 굳게 서게 되느니라.

 

< 해 설 > 순수한 至福意識의 체험은 모든 괴로움에 종지부를 찍는다. 가슴을 행복으로 가득 채워, 그 체험은 마음에 완전한 평안을 안겨주는 것이다. 원리는 바로 이렇다. 즉,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자유, 영원한 평화, 성취를 바란다면, 지복의식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 66절 : 자기 마음 하나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확고한 지혜(Buddhi)가 없어서 아트만의 실재를 추측할 수도 없다. 지혜가 없는 사람에게는 평화가 없나니, 평화가 없는 사람에게 어찌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 해 설 > 이 66절은 세속의 마음이 지복의식으로의 길을 갈 때 거치는 단계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될 수 있다.

 

* 67절 : 사람의 마음이 떠도는 감각에 지배될 때, 그의 지성은 그것에 휩쓸려 가기를 마치 물위의 배가 바람에 휩쓸리듯 하느니라.

 

< 해 설 > 배가 바람에 휩쓸려 가듯이, 마음은 감각들에게 외부의 거칠은 자연계쪽으로 즉, 감각의 대상쪽으로 완전히 휩쓸려 간다. 마음은 집중력을 잃게된다. 그 까닭은 마음이 마치 여러갈래로 분산되어 퍼지는 빛살처럼 흩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이 흩어져 나가는 경로는 당연히 지성의 집중된 상태와는 반대일 것이다. 다음 68절은 안전을 기하기 위하여 감각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 68절 : 그러므로 감각을 그 대상들로부터 모두 물러서게 한 사람은, 오, 억센 팔을 가진 자여, 그 사람은 지혜가 확고하게 서있는 사람이니라.

 

< 해 설 > 이 68절은 지혜가 확고하게 결정되었을 때, 즉, 아트만 속에 자리잡았을 때는 감각들이 그 대상과의 관계를 잃는다는 이치를 분명하게 해준다. 다음 69절은 깨달은 자의 삶의 경지와 無智한 자의 삶의 상태를 뚜렷이 구분해준다.

 

* 69절 :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밤에 감각의 제어자는 깨어 있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깨어 있을때, 진리를 보는 賢者에게는 밤이다.

 

< 해 설 > '보는'이란 진리를 보는 것을 말한다. 깨달은 사람은 아트만의 빛 속에서 깨어 있는데, 부지한 사람은 감각의 빛 속에서 깨어있기 때문이다. 깨달은 사람은 절대의 기쁨(至福)의 빛 속에서 깨어있고, 無智한 사람은 無常한 성질의 대상적인 즐거움의 빛속에서 깨어 있는 것이다.

 

* 70절 :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흘러 들지만, 바다는 결코 줄지도 늘지도 않으며 항상 한결같은 상태에 있는 것과 같이 욕망도 성자의 마음에 흘러들지만 항상 평화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애욕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결코 평화를 누릴 수가 없다.

 

< 해 설 > 이 70절은 아르주나에게 깨달은 사람의 참된 자아의식은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어떠한 욕망의 물줄기도 다 받아들이면서도 말려듦이 없이 그 욕망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다음 71절은 활동(Action)의 한가운데에서도 그와 같은 영원한 평화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말해준다.

 

* 71절 : 사람이 모든 욕망을 버리고,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갈구함이 없이 행동할 때, 그는 평화에 도달한다.

 

< 해 설 > '모든 욕망을 버리고'라는 말은, 마음이 더이상 어떤 욕망도 품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살아있는 존재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55절의 주석에서 분명히 밝혔듯이 활동(karma, 業)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써의 아트만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이 경지에 있는 사람은 '나' 그리고 '내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행동을 하기 때문에, 활동이 어느 모로나 그의 확고한 지혜의 경지를 흔들어 놓지 못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런 사람은 삶에서 영원한 해탈에 이른 것이니, 이 경지에서 사람의 본성은 어떤 활동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음 72절이 이것을 더욱 분명히 밝혀준다.

 

* 72절 : 이것이 브라흐만(Brahman)의 경지이니라, 오, 파르타(Partha)여,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결코 미혹되지 않는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죽음의 순간에서도 그는 브라흐만의 열반(Nirvana)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 해 설 > 앞의 71절에서 말씀한 삶의 경지는 우주의식의 경지라고 슈리 바가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 경지에 도달하려면, 활동(karma, 業)의 한 가운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자아 의식의 안정성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의식의 자리인 신경계통이 그 본성에 있어 초월적인 참된 자아 의식을 깨어 있거나 꿈꾸거나 잠자는 의식상태와 함께 항상 유지해 나가게 되도록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브라흐만의 경지, 곧 영원한 생명의 경지에서는, 상대적인 실존의 활동 또는 고요함이 모두 절대적 본성(Reality)에 예속되는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렀을 때, 인간의 삶은 참으로 거룩한 본성(Reality)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룩한 본성이 개체의 생명속에서 발견되는 그것은 곧 인간의 차원에서 보면, 절대적 본체요, 개성의 한계, 즉 시간, 공간, 因果속에서 보면, 영원한 해탈이다.

 

(2) 상키야의 Gu??tita [三性을 초월한 사람, 또는 초월적 상태] <G?ta ⅩⅣ .25>

 

제 ⅩⅣ 장 Gunatraya Vibh?ga Yoga(세가지 성품의 분류)

 

* 25절 : m?n?pam?nayos tulyas, tulyo mitr?ripak?ayo?

 

sarv?rambhaparity?g?, gu??l?ta? sa ucyate

 

명예를 얻을 때에나 또 모욕을 당할 때에도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은, 전쟁터에서도 적군과 아군을 따로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항상 어떤 상태분별적인 판단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람을 일러 구나를 초월한 사람(Gu??tita)이라고 하는 것이다.

 

< 해 설 > 세가지 구나(三性)는 프라크리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트바(착한 성질), 라자스(급한 성질), 타마스(게으른 성질)을 말한다.(5절) 또한 이 구나만이 모든 행동의 헹위자라는 것을, 꿰뚫어 보는 이는 알아야 하며, 또 이 구나를 초월하는 자를 안다면, 그는 이미 나의 해탈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으며 생로병사로부터 영원한 생명에 도달하게 된다.

 

(3) 요가의 Yogar?dha[이미 요가(하나됨)에 올라선 사람] <G?ta Ⅵ.3>

 

제 Ⅵ 장 Dhy?na Yoga(자기 자신을 다스림으로서 평정에 도달하는 요가)

 

* 3절 : ?ruruk?or muner yoga? akrma k?ra?am ucyate,

 

yog?r??hasya tasyaiva ?ama? k?ra?am ucyate

 

카르마 요가에 올라가고자 하는 聖者에게는 행함이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요, 이미 요가(하나됨, 평정)에 올라선 사람(yogar?dha)에게는 고요히 함이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다.

 

< 해 설 > '요가(karma-yoga)의 길에 올라가고자 하는' 이 말씀은 앞 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Sankalpa 가 없는 마음의 상태에 아직 이르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요가에 올라선 사람'이란 마음이 보통의 깨어있는 상태로부터 초월적인 의식상태로 높아진 사람이며, 이 상태에서는 마음이 바가반 크리슈나의 본성과 완전한 하나됨 속에 있다. 이 초월적인 의식에서의 요가의 상태는 고요함, 다시 말해서 거룩한 本性이 마음의 성질속으로 크게 흘러들어옴에 따라 이룩되는 우주적인 의식에서 영구해진다. 우주의식 또는 크리슈나 신의식에 자리잡은 성취된 요기(yogi)가 하는 모든 일은 고요의 힘, 절대 본체의 영원한 침묵(sama)의 힘으로 행하여지고 달성된다. 한 요기의 개체적인 삶은 그것과 하나가 되어있기 때문에, 그 두루 퍼져 있는 고요(sama)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해준다는 것을 그는 깨닫는다.

 

(4) 바이슈나바의 the Bhakta [믿음의 사람] <G?ta ?.1>

 

제 ? 장 Bhakti-Yoga(신애<헌신에>의 길)

 

1절 : eva? satatayukt? ye, bhakt?s tv?? paryup?sate

 

ye c?'py ak?aram avyakta?, te??? ke yogavittam??

 

아르주나가 묻기를 그와 같이 끊임없이 신앙심(통일된 마음)으로 당신을 섬기는 사람(The Bhakta)들과, 불멸이시며 항상 없는 브라흐마(Brahma)를 섬기는 사람들 중에서 누가 더 참된 요가의 수행자입니까?

 

< 해 설 > 이와 같은 아르주나의 질문에 대해서 2~12절에서 크리슈나는 브라흐만의 신봉자를 허용하면서도, 헌신적인 자기의 신봉자가 더 뛰어남을 가르친다. 크리슈나는 그가 사랑하는 자의 특질을 열거하면서, 신앙심을 갖고 자기에게만 전념하여 헌신을 바치는 자(박타)를 특히 두드러지게 사랑한다고 결론짓고 있다.(13~20절)

 

3. 바가바드 기타의 사상과 인도철학의 학파들에 나타난 사상들

 

베다와 우파니샤드와 불교와 바가바타 종교와 상키야 가르침과 요가와 크리슈나의 노래인 바가바드 기타와의 관계를 한 번 알아 보겠다.

 

(1) 기타와 베다 : 기타는 베다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는다. 기타는 베다의 가르침들이 어떤 특정 문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타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기타는 베다의 예배 의식의 의무를 행하지 않고는 완전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기타는 보상이나 무엇을 바라는 바 없이 예배 의식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 기타와 우파니샤드 : 기타의 철학적 배경은 우파니샤드에서 취해진다. 어떤 구절들은 우파니샤드와 기타에서 공통적이다. 예를 들면 크세트라(Ksetra)와 크세트라즈나(Ksetrajna), 크사라(Ksara)와 아크사라(Aksara)에 대한 논의는 우파니샤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최고의 實在에 대한 설명도 역시 같은 근원에서 나온다. 헌신이라고 하는 뜻의 박티(Bhakti)란 말도 우파니샤드의 우파사라(Upasara)의 직접적인 발전이다. 기타와 우파니샤드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즉, '우파니샤드는 암소이며, 크리슈나는 젖짜는 이며, 아르쥬나는 송아지, 그리고 감로수와 같은 기타는 훌륭한 우유' 라고.

 

(3) 기타와 바가바타 종교 : 바가바타 종교는 바가바드 기타의 종합에 직접적으로 자극을 주었다. 사실상 기타의 가르침은 바가바타의 가르침과 동일하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래서 때때로 기타는 하리 기타(Hari Gita)라고 불린다.

 

(4) 기타와 불교 : 기타와 불교에 있어서는, 서로 몇 가지 비슷한 사상이 있기는 하나 기타에 있어서 불교에 대한 언급은 없다. 불교와 기타는 똑같이 베다의 절대적 권위에 반항하여, 카스트의 엄격함을 이완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불교보다는 기타는 더 보수적이고 그래서 반항이 철저하지는 못했지만, 의식과 형식으로만 점철되어 있던 그 당시 종교적 분위기를 뒤흔들어서 사상적으로 격변시킨 것만은 사실이다. 부처님도 중도를 이야기 했다. 그리고 크리슈나도 똑같이 중도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서로 이야기하는 입장은 다른 것 같다. 그것은 불교는 出家의 입장이요, 기타는 행동(Action)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5) 기타와 상키야 : 상키야의 가르침과 기타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기타는 상키야의 형이상학적 內含은 거부하지만 상키야의 심리학과 창조의 순서는 다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6) 기타와 요가 : 또 기타는 요가 수행도 가르치고 있다. 아르주나가 크리슈나에게 이 변덕스럽고 시끄러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참 제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물었을 때, 크리슈나는 아브야사(Avyasa)와 바이라그야(Vairagya)를 성취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애착을 버리고 행하라'라는 것이다.

 

< 결 론 >

 

위에서 바가바드 기타에 대해서 다각도로 많은 조사를 해 보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바가바드 기타의 1/3의 내용도 알지 못한 것 같다. 인도 종교사에 있어서 하나의 개혁적인 성격을 띄고 있는 바가바드 기타를 잘 파악해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비교적 그 연구가 부진한 다른 종교 사상간의 비교 연구도 병행해야 하겠다. 인도인의 사상을 잘 드러내는 하나의 성전을 들자면 바가바드 기타라를 든다고 하니 바가바드 기타의 그 중요성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참 고 문 헌 -

 

1. 바가바드 기타, 석해탈, 수현출판사

2. 바가바드 기타, 석진오 譯解, 고려원

3. 마하뜨마 간디철학 연구, 김선근 저,

4. 힌두교 입문, 스가㈇?아키라 저, 문을식 역, 도서출판 여래

5. OUTLINES OF HINDUISM, T.M.P. MAHADEVAN, CHETNA BOMBAY

6. 인도사상사, 中村 元 저, 김용식․박재권 共譯, 서광사

7. 인도 문화의 이해, 이은구 지음, 세창출판사

8. 인도인의 길, 존. M. 콜러, 허우성 역,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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