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론에서 성리학의 사물이 어떤뜻인지
심성론 성리학에서는 에서는 사물을 기라고 보고 기는 항상 물질적인것 그리고 자칫하면 이를 드러나게하는데 방해하는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악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물질적인 욕심 때문인데 이러한 개인의 욕망을 조절하여 중용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기질을 변화시켜 본래의 선한 모습을 회복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이·기의 가치문제를 따지게 되었고 이는 존귀하며 기는 비천한 것이라는 가치관이 형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양명학에서는 심성론에서 사물을 제외한 마음만 추구했기때문에 (심즉리) 이기론에서 이는 설명할수있어도 기는 설명못한다는건데 그게 왜 그런지
양명학에서는 모든것을 마음에서 찾아 마음은 곧 이라고 주장하고 물질적인 것을 인정하지않다보니 기는 설명할수 없는 것입니다.
성리학은 어떻게 이기론을 설명할수 있었는지
이기론은 우주·인간의 성립·구성을 이(理)와 기(氣)의 두 원칙에서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말하는것이고
성리학은 이기론이 심성론과 연결됨을 중요하게 여기고 인간의 마음을 성(性)과 정(情)으로 나누어 이에 해당하는 성은 오로지 선하고 기에 해당하는 정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기의 개념부터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는 변하지 않는 근본 원리를 뜻하고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를 뜻합니다. 물이 들어있는 그릇이 있다고 가정해보면 이 때 물 자체는 ‘이’에 해당하고 물을 담고 있는 그릇은 ‘기’에 해당합니다. 물이 어느 그릇에 담아도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물질이라면 그릇은 그 모양과 넓이에 따라 달라지는 피상적인 물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리학이란
훈고학에 의한 경전의 자구적 의미해석에 치우친 방법에 반대하고, 유교경전을 형이상학적인 이론적 방법에 의해 새롭게 해석하려는 경향으로서 송나라(960-1279)시대에 일어난 새유교운동입니다. 이 학풍은 주자(1130-1200)에 의해 집대성되었다하여 주자학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불교와 도교의 철학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유학을 철학적이며 형이상학적으로 체계화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주자는 공자와 맹자의 근본 가르침을 이론적으로 재편성하여 성리학을 체계화시키고 크게 네 분야로 구성하였는데, 우주의 존재 문제를 탐구하는 이기론, 인간의 내면적 구조와 본질을 분석하는 심성론, 도덕을 실천하고 수양하는 방법으로 제기한 거경 궁리론, 정치와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경세론 등이 그것입니다.
주자는 도덕의 기초가 되는 인륜의 이치에 대하여 형이상학적 체계를 갖추어 설명하였는데 특히 맹자의 성선설과 앞선 도학자들의 성즉리설을 집대성하여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바탕으로 한 인격의 수양과 실천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주자학을 성리학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한편 유학에서는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을 군자나 성인이라고 하는데 성리학은 이와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은 학문의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성학이라고도 합니다.
주자는 성인이 되기 위한 수양 방법으로 격물치지와 존양성찰을 강조하였는데 격물치지란 인간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참모습에 대해 밝게 아는 것을 말하여 존양성찰은 양심을 보존하고 본성을 함양하여 나쁜 마음이 스며들 때에는 이를 잘 살펴서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주자는 인간이 착한 본성을 상실하고 악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욕심 때문인데 이러한 개인의 욕망을 조절하여 중용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기질을 변화시켜 본래의 선한 모습을 회복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서 경의 태도로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할 것(존천리 거인욕)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된 인격을 바탕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 도덕적인 사회를 이룩하려는 데에 주자학의 특징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양명학이란
명대의 왕수인은 주자학이 형이상학적 이론에 치우친 면을 비판하고 심즉리설, 지행합일설, 치양지설 등을 주장하여 양명학을 성립시켰습니다.
양명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중요시한 주자와는 달리, 본래 타고난 인간의 마음인 심을 중시하여 심이 곧 우주 자연의 이법인 이와 일치한다고 하는 심즉리설를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양명은 인간이 본래 타고난 참된 앎인 양지를 근거로 하여 양심을 바르게 깨닫고 그에 따라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곧 인식으로서의 지와 실천으로서의 행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하나라고 보는 지행합일설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인이 되기 위한 수양 방법으로 인간 마음에 있는 천리로서의 순수한 도덕성이 실현되지 못하는 것은 사욕 때문이므로 사욕을 극복하고 인간의 순수한 본래성만을 유지하면 누구나 지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치양지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성리학과 양명학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성리학의 경우 성즉리설(성은 곧 이)인간의 본성은 천리와 같다.
도덕적 실천(존양성찰, 존천리 거인욕)과 함께 이론적 탐구로써 지식의 확충(격물치지)을 주장하는 반면
양명학의 경우 심즉리설(마음은 곧 이)모든 인식의 근거를 마음에서 찾아 마음속에 천리가 있다.
객관적 지식보다 내면의 순수한 도덕성을 확충할 것 즉 사욕을 극복하고 인간의 순수한 본래성만을 유지한다면 성인이 될 수 있다(치양지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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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性理學)은 본성을 중시하고, 지식은 후천적으로 얻어진다 믿으며, 학습을 중시하고, 지식과 행동은 분리 되어있다고 여기는 즉 性卽理가 사물세계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품을 이(理또는 天理)라고 주장하는 성리학의 명제이고, 반면 양명학(陽明學)은 마음을 중시하고, 선천적인 지식을 믿으며 학습을 중시하지 않고, 지식과 행동은 합일되어야 한다는 지행합일설을 주장한 즉 心卽理는 性과 情을 분리하여 性을 주로 삼았던 성리학에 대해 반기를 들고, 왕양명(왕수인)이 주장하는 바 情이 속하는 마음(心)이 주체적인 자각의 중심이고 이것이 바로 理(天理)라 주장했던 명제입니다 .
.성리학(性理學)
자연과 사회의 발생·운동을 이(理)와 기(氣)의 개념에 의해 설명한다.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의해 우주 만물이 생성되며, 그런 점에서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그런데 기는 맑음과 흐림, 무거움과 가벼움 등에 따른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기에 의해 구성되는 우주 만물은 차별성·등급성을 갖는다. 결국 자연·인간·사회가 모두 위계적 질서를 갖는 것이다. 한편 태극(太極), 즉 천리(天理)·이의 개념은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실재로서 기의 존재 근거이며, 동시에 만물에 내재하는 원리로서 기의 운동법칙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만물의 존재 근거가 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만물에는 모두 이가 내재한다는 점에서 이의 개념은 인간과 사물의 원리적 보편성을 설명하는 범주이다. 이기론에 바탕을 둔 인간 이해는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인성론으로 체계화되었다. 본연지성은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본래 존재하고 있는 이로서, 도덕적 본성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기질지성은 인간 형성에 관여하는 기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육체와 감각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인간 본능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본연지성에 따른 행위는 선한 것이며, 기질지성에 따른 행위는 인욕에 의해 악으로 흐르는 경향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보존하는 도덕 실천을 통해 본연지성에 따르는 생활방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방식을 가지기 위해서 사물에 존재하는 천리를 인식하는 궁리(窮理)와 인욕의 발동을 억제하는 내면적 수양으로서의 거경(居敬)이라는 수양 방법이 제시되었다a>(→ 색인 : 거경궁리). 그런데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이의 구체적 내용은 삼강오상을 비롯한 유교적 윤리도덕이었으며, 나아가 관료제적 통치질서, 신분계급적 사회질서, 가부장제적·종법제적 가족질서를 포함하는 명분론적 질서였다. 따라서 성리학은 이의 보편성을 통해 유교적 윤리도덕과 명분론적 질서의 보편성을 교설하며, 인간은 명분론적 질서 속에서 각각의 계층적 지위에 합당한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존재로 설명했다. 결국 성리학은 명분론적 질서를 합리화하는 사상체계였으며, 명분론적 질서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도덕적 의무라고 했다.
.양명학(陽明學)
심즉리로부터 출발하여 지행합일설에 도달하고 마지막으로 치양지설에 의하여 완성된다는 원리이다.
새로운 격물치지설을 주장하게 된 원리는 심즉리이다. 이는 육상산(陸象山)에서 발견된 심학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심학은 왕수인에 의해 대성되었다. 그는 "심은 곧 이이다. 천하에 심외(心外)의 일이 있고, 심외의 이가 있겠는가"라는 주체적인 자각에서 심즉리가 정립되었다고 했다. 심외에 사물이 없고, 심외에 일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객관적인 외계(外界)의 사물은 마음을 떠나면 소멸해 버린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가 남진(南鎭) 땅에서 바위 위에 핀 꽃을 보고, "저 꽃은 스스로 피고 스스로 떨어지니 우리 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하고 질문했을 때, 왕수인은 "당신이 이 꽃을 보지 못했을 때는 이 꽃은 당신의 마음과 함께 고요했다. 그러나 당신이 와서 이 꽃을 보았을 때 이 꽃은 빛깔이 분명하게 되었다. 이 꽃은 당신의 마음 외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사람에게 의식되지 않을 때 그 꽃은 고요히 그대로 있었지만, 사람이 의식했을 때 비로소 아름답다·분홍이다·빨갛다 등의 평가와 판단으로 인하여 꽃은 꽃노릇을 하게 된다. 사물은 인간의 의식과의 관계에서 그 가치가 주어지고 세계질서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마음 외에 사물은 없다'는 근본 뜻이다. 그러나 치양지설을 주장한 후부터 이보다 심에 중심이 옮겨졌다. 즉 심의 외화(外化)가 곧 자연적인 사물이라는 것으로 사물현상은 심의 현상물이라 했다.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은 지(知)에 속하고 아름다운 꽃을 좋아하는 것은 행(行)에 속한다. 그런데 아름다운 꽃을 보았을 때는 이미 좋아하는 것이지 먼저 보고 난 뒤에 또다른 마음이 있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왕수인이 지는 행의 시작이요, 행은 지의 완성이라고 했던 까닭이다. 즉 우리의 지식과 실천은 본래 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린(賀麟)은 지행합일신론(知行合一新論)에서 대략 "지는 의식활동이며, 행은 생리적인 활동이다. 지행이 비록 성질이 다른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활동이라는 점에서는 합치한다. 우리의 의식활동은 생리적 조건과 물질적인 변화가 있게 된다. 이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므로 지행합일이라고 한 것이다. 의식활동과 생리적인 활동은 동시에 발동되며, 시간적인 선후가 없다"고 했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지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양지이다. 왕수인은 49세 때에 치양지설을 주장했다. 치양지설이 창안된 뒤부터는 인욕을 버리고 천리를 보존한다는 등의 수양방법보다 오히려 양지의 실현이 중시된다. 양지를 실현한다면 모든 사사로운 폐단이 스스로 소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정을 바룬다', '사욕을 버린다'고 할 필요조차 없게 된다. 치양지 그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왕수인은 양지의 두 글자가 참으로 성인되는 학문의 바른 법이요 안장(眼藏)이라고 했다. 치양지설 이후부터 사상마련설(事上磨鍊說)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그것이 치양지하는 수단이 되었다. 치양지는 일상생활에서 때와 곳을 따라 정당한 실천이 요구된다.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일들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양지에 따른 판단과 처리가 있어야 하고, 이러한 요구들은 즉결(卽決)을 요하는 것이니, 정좌하여 명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왕수인은 천군만마(千軍萬馬)의 전쟁터에서 즉결이 요구되는 실지체험을 했기 때문에 사상마련이라고 하는 양지발현의 수단방법이 발상되었다. 치양지의 수단으로, 그의 만년부터 정좌에 의존하거나 독서에 의존하는 수양법을 버렸던 까닭에 사상마련법이 발견되었다. 또 대동(大同)의 인(仁)을 실현하기 위해 천지만물 일체의 인인 본체가 내 본연이요, 양치인 것을 철저히 깨우쳐서, 공리(空理)와 기능적 지식이 그것을 막고 어둡게 하는 줄을 알아서 이를 근본·근원부터 뽑아버리며 막자는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을 주장했다. 천하를 보되 한 집처럼 하고, 중국 보기를 한 사람과 같이 한다는 대동주의(大同主義)는 왕수인의 가장 만년 저술인 〈대학문 大學問〉의 간절한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