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선진화의 길
-경제와 윤리를 생각해 본다-
박영일 (인하대 교수, 국제경제학)
1. 여는 말
함석헌 선생께서 50년 전에 발표하신 ‘생각하는 백성’의 인간형을 메마른 경제학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주관적 자각과 공공적 이성을 가진 선(善)하고 의로운(正) 민중’으로 시도해봤다. 경제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선’으로서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정’으로서 소득분배의 공정성을 상징하는 효율과 정의는 작금의 한국경제상황과 신정부의 정책기조를 감안할 때, 지금처럼 생각하는 백성에게 절실하게 요청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난 해 우리는 ‘경제살리기’와 ‘국민성공시대’를 내건 이명박 대통령을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했다. 이는 반칙과 특권을 철폐하겠다던 노무현 정부가 ‘권력은 시장으로 옮겨갔다’고 경제 본연의 역할을 방기하고 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양극화를 낳았던 데 대한 실망에 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탐욕과 무지의 속성을 지닌 백성들이 물신주의에 홀려 진실과 거짓에 대한 분별력을 상실한 결과다. 불행하게도 이런 선택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이 신정부의 출범과 함께 벌써 나타나고 있다. 여우새끼가 두려워 피했던 백성 앞에 호랑이가 나타난 격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의 열쇳말은 ‘선진화’였다. 그는 선진화를 위해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호소하고 정책기조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외쳤다. 정권의 요직을 담당할 면면을 보면 ‘실용’이라는 낱말이 소수특권층의 도덕적 해이와 탈법과 불법을 포장하는 수식어로 변질된 감도 없는 바는 아니다. 여하튼, 취임사의 전체적 맥락에서 볼 때, 실용은 경제, 효율, 시장, 경쟁을 의미하고, 이념은 윤리, 정의, 정치(정부), 연대를 내포하는 것 같다.
확실히 한국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신정부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경제가 죽었거나 성장률이 낮기 때문에 위기가 아니다. 인간의 사회적 공존을 위해 봉사해야 할 물질적 수단인 경제가 인간관계와 사회구조의 궁극적 목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위기다. 경제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인간에게 경제가 전부가 아니며 최고의 가치도 아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용’의 선․악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위한 실용인가를 분별할 필요가 있다.
시장과 정부는 경제를 운영하는 수레의 두 바퀴다. 시장이 이기심을 자극하여 경제에 효율과 혁신을 가져다준다면, 정부는 경제의 근본과 목적을 제시한다. 경쟁의 목적이 무엇이든 모든 경쟁에는 이기적인 동기가 존재한다. 시장경쟁은 자애심이라고 하는 인간본성에 불을 붙여 경제적 부를 추구하고, 결과적으로 사회로서는 활력과 진보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될 수 있다’가 ‘된다’로 되기 위해서는 경쟁의 동기, 과정, 목적에 윤리가 존재해야 한다. 시장경쟁은 정치적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제도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사회보장제도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게 된다.
선진경제란 단순히 경제규모가 크고 경쟁력이 강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의 근본에 공정하고 정의로운 경제제도가 존재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정의가 보장되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다양한 문화적 기회를 향수하면서 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 실현에 기여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윤리나 정부가 경제나 시장을 일방적으로 지배하여 비효율을 낳지 않으면서, 동시에 경제나 시장이 윤리나 정부를 지배하여 무법적인 시장경쟁과 경제적 불의를 낳지 않도록 정부가 민주적 정치과정을 통하여 조정하는 사회가 선진사회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경제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는 시장경쟁의 전제조건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경쟁과정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 경쟁성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공정하게 해결할 사회적 제도가 미비한 가운데 시장원리가 사회의 전 영역을 지배하는 데 있다. 동시에, 경제활동의 성과물이 사회구성원 모두의 잠재능력의 개발과 인간적 성취에 기여하지 못하고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데 있다.
한국경제가 선진화를 열어가자면, 경제가 윤리에 의해서 정당화되고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경제의 근본에 정의롭고 공정한 제도를 확립해야 하고,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경제적 자유, 정치적 평등, 사회적 복지를 실현할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민주적 정치절차는 없어서는 안 될 불가결한 조건이다. 실용보다는 이념, 경제보다는 윤리, 시장보다는 정부, 효율보다는 정의에 힘을 실어야 할 것이다. 선진화를 지향하면서 ‘실용’과 ‘친기업․친시장’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후진기어를 넣고 액셀레이터를 밟는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 3절에서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경제에서 왜 이념과 윤리가 중요시돼야 하는가를 고찰하고 4절에서는 한국의 시장경제에 만연한 경제적 비효율과 부정의를 개관하고 제5절에서는 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정책방향의 대강을 제시한다.
2. 시장경제와 윤리
먼저 경제가 왜 윤리적 정당성을 가져야 하는가?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는 인간사회가 바라는 모든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용한, 아니 경제만 허용되면, 온갖 것을 다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는 어디까지나 수단이다. 경제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윤리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제학은 원래 윤리학 혹은 도덕철학의 일부로 인식돼 인간사회의 윤리나 규범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경제학이 윤리학으로부터 독립되면서 심하게는 서로 대립되는 학문분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윤리란 인간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규범이다. 따라서 윤리적 가치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보편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해야 할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되는 최상의 규범이다. 어떠한 인간의 행위나 존재, 제도도 윤리에 어긋나면 인간에 고통과 불행을 안겨준다. 한편 경제적 가치는 ‘희소성’(scarcity), 즉 인간의 욕망에 비하여 이를 충족시켜 줄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데서 비롯된다. 희소성이 존재하는 한, 어떤 경제체제에서든 경제가 인간사회의 모든 영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그렇지만, 경제적 가치가 아무리 크고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공존을 위태롭게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악이다. 경제가 윤리에 의해서 정당화되고 뒷받침돼야 할 근거다.
역사적으로, 경제와 윤리는 서로 옹호하고 비판하는 이중적인 관계를 가진다. 윤리는 근대 이전의 사회나 현대의 중앙집권적 사회주의계획경제체제에서 보았듯이, 한편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제하고 억압하여 경제적 효율과 정의를 훼손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자유, 금욕, 근면과 같은 규범을 강조하여 경제사회의 발전과 안정에 기여했다. 눈부신 경제발전은 인간을 고루한 도덕률로부터 해방시켜 문화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경제가 윤리적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면서 불평등, 실업, 빈곤, 착취, 소외, 상업주의, 배금주의, 환경파괴를 야기했다. 또한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자들이 유착구조를 형성하여 인간성을 파괴하고 사회의 근본을 뒤흔들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경제와 윤리의 조화로운 통합을 요청한다.
사회의 경제문제는 기본적으로 희소한 자원을 가지고 ‘무엇을 얼마나’(what & how much), ‘어떻게’(how), ‘누구를 위하여’ (for whom) 생산할 것인가에 있다. 자원의 사용량과 사용방법과 관련되는 첫째와 두 번째 문제는 ‘자원배분’에 관한 문제이며, 생산물의 분배와 귀속과 관련되는 세 번째는 ‘소득분배’에 관한 문제다.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는 경제문제를 시장을 통해 해결하며, 따라서 교환, 경쟁, 가격, 사기업, 소유권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바로 경제의 세계가 안고 있는 희소성 때문에, 자원은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소득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분배돼야 한다. 경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이념이 자원배분의 ‘효율’과 소득분배의 ‘정의’라는 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9세기 중반 이후 주류정통파의 위치를 차지한 신고전학파경제학은 소득분배의 문제가 ‘가치판단’을 전제로 한다는 이유로 윤리학에 맡기고 투입과 산출이라는 생산과정의 기술적 관계에 초점을 맞춰 자원배분의 효율성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사실판단’에 입각하여 순수한 경제현상만을 대상으로 하는 신고전학파경제학은 현실의 복잡하고 다양한 경제현상을 일정한 가정을 설정하여 단순화하고, 경제행위의 주체도 합리적인 인간형으로 이기심만을 추구하는 ‘경제인’(homo economicus)을 상정한다. 그리고 일정한 조건 하에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사회적으로 극대생산을 보장하는 완전경쟁균형으로서 ‘파레토의 최적’(Pareto's optimum)상태를 수학적 분석을 통하여 도출하여 ‘시장자유주의’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서 일정한 조건이란 시장경제가 갖춰야 할 제도적 장치를, 개인의 자유란 시장에서 선택, 교환, 경쟁의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형의 기본전제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란 개인의 선택과 활동의 기회를 보장한다는 시장에서의 자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백번 양보하더라도, 합리적인 경제인에게 선택의 자유만 보장된다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주류경제학의 ‘시장만능주의’에는 중대한 도덕적 함정이 내재돼 있다. 경제적 자유와 효율의 관계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자유로운 이기적 활동이 사회전체로서 생산의 극대화라는 공적 이익을 가져오려면 특정한 도덕적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시장이 완전히 경쟁적이어야 하고, 시장이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시장의 실패가 없어야 하며, 시장경쟁이 윤리적으로 정당해야 한다.
첫째는 완전경쟁 시장이어야 한다. 시장이 완전히 경쟁적이 되기 위해서는 시장참가자 누구도 시장이나 가격에 대한 지배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동시에, 거래되는 상품은 동질적이고 차별화가 없어야 하며, 시장현황에 대한 정보는 모든 시장참가자에게 완전히 공개되고, 누구나 시장에 자유롭게 진입하고 시장에서 퇴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행하게도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완전경쟁시장은 존립할 수가 없다. 갤브레이스(1967)는 경제력집중과 시장지배력을 가진 대기업집단이 독과점을 통하여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순수한 시장경제로 볼 수 없으며, 시장의 자동조절기능도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 시장경제시스템의 문제는 시장에 대한 계획과 통제를 정부가 하는가, 기업이 하는가의 차이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유시장경제의 전제조건인 경제력의 분산이 결여된 상태에서 기업의 시장 지배는 경제는 물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규정했다. 제3절에서 상술하는 바와 같이, 경제적 자원의 불평등이 경제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정치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부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시장이 보편적으로 존재하여 시장의 실패가 없어야 한다. 즉, 모든 자원과 재화는 사적소유권이 확립돼 있고, 시장이 존재하여 경제주체 사이에 발생하는 일체의 혜택과 부담이 시장거래의 형태로 결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물질적 후생에 기여하는 재화 중에 상당한 부분이 사적소유권을 확립할 수 없거나 시장이 존재하지 않아 시장의 실패를 야기한다. ‘외부효과’ (externality), 소비에 있어서 비경합성(nonrivalness)과 비배제성(nonexcludability)을 지닌 공공재의 존재로 시장의 원리인 수익자부담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고, 시장의 불확실성(uncertainty)도 크다.
마지막으로 시장경쟁의 윤리성이다. 윤리적 차원에서 시장경쟁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난은 양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지배한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경쟁의 윤리성을 평가하려면, 경쟁의 동기나 유인, 경쟁의 규칙, 경쟁의 사회적 목적을 점검해야 한다. 시장의 동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시장경쟁의 양상, 경쟁을 제약하는 규칙의 윤리성이 중요하다. 공정한 규칙이 있어야 경쟁이 합리성을 유인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하게 된다. 자유경쟁은 경쟁자들 사이에 능력이나 다른 조건이 불균등하기 때문에 성과의 불평등, 즉 분배의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구성원이 경쟁 결과에 승복하기 위해서도 공정한 규칙이 정비되고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여기에서 사회제도로서 시장경쟁의 전제조건, 경쟁과정의 규율에 관한 규칙, 경쟁성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공정하게 해결돼야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사유재산 및 경제적 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어떤 계약이 합법이고 어떤 계약이 불법인가, 생산자의 의무는 무엇인가, 노사 쌍방의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가, 등등의 문제가 명확하고 공정하게 확립되어야 한다.
한편, 주류경제학이 외면해온 공정한 분배의 문제로 눈을 돌려보자. 사회는 기본적으로 구성원들 사이에 이해가 대립하고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의 가치이념이나 목적이 다양하기 때문에 ‘공정성’을 둘러싼 논쟁은 ‘신들의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해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때문에 주류경제학이 가치판단이라는 이유로 윤리학에 일임하였다. 그러나 사회가 존립하는 것은 다양한 가치이념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념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념이 ‘정의’이고, 모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기본원리가 된다. 윤리적인 사회는 정의가 현실의 사회제도 속에 규범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말하자면, 경제정의(분배정의)가 경제제도 속에 뿌리내려야 한다.
경제학에서 분배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신고전학파가 암묵적으로 상정하는 공헌도의 원칙과 롤스(1971, 1993)가 제창한 정의원리를 들 수 있다. 양자는 사로 배타적이라기보다는 보완적으로 해석된다. 공헌도의 원칙은 ‘오일러의 정리’(Euler's theorem)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사회적 생산물은 생산에 참여한 자본가, 노동자, 지주, 경영자들에게 기여한 정도를 기준으로 완전히 분배된다. 따라서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소득, 즉 불로소득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예를 들면 부동산투기를 비롯하여 매매차익을 노리는 각종 투기, 각종 이권추구행위(rent-seeking activity), 생산과 관계없는 일체의 소득은 모두 경제정의에 어긋난다. 그러나 공헌도 원칙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자본, 토지 등 생산수단도 없고 노동능력도 없는 노인, 장애자, 유아 등 사회경제적 약자나 노동할 의지와 능력은 있지만 노동할 기회가 없어 생산에 공헌하지 못하는 비자발적 실업자에게는 전혀 분배되지 않는다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다른 하나는 생산에 대한 기여는 초기상태에서 생산수단의 보유를 바탕으로 하는데, 초기상태의 인적, 물적 자산의 불균형으로 인한 분배의 불평등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문제가 있다.
공헌도 기준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롤스의 정의원리가 보완한다. 롤스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정치적 자유를 포함한 기본적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는 상태에서 공정한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한의 생활수준인 ‘기초적 필요’ (basic need)를 보장하는 상태가 정의라고 한다. 롤스의 기회균등의 원칙은 정책적으로 상속이나 증여에 의한 재산의 과도한 집중을 배제하고 교육의 기회균등을 보장함으로써 초기상태에 존재하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제거하려고 한다. 초기상태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대부분 부모세대의 경제적 성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인의 능력이나 의지, 노력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상을 정리하면,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경제의 궁극적인 가치인 효율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일정한 도덕적 규범을 갖춰야 한다. 일부에서 효율과 정의를 양자택일(trade-off)의 관계로 이해하여 공정한 소득분배를 중요시하면 경제성장과 효율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경제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의 ‘경제하려는 의지’(willingness to economize)를 유인하고 적응과 혁신을 자극하여 경제효율과 성장에 기여한다. 공정한 법과 제도를 확립하여 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독과점과 경제력 집중을 제한하고, 시장의 실패를 시정하고 공정한 경쟁규칙을 확립하는 일은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임무다. 이러한 법과 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시장경제는 홉스가 말한 ‘자연상태’, 기껏해야 시장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시장사회’ (market society)가 될 것이다(Shionoya, 2005).
3. 현대복지국가와 윤리
공정한 시장경쟁을 위한 정의로운 법과 제도의 확립이 경제의 근본에 있어야 한다면, 사회보장은 경제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다. 선진제국의 경제, 정치, 사회의 기본구조를 이루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보장의 3개 제도가 결합하여 선진사회의 전형인 복지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복지국가는 역사적으로 시민의식의 발전으로 이룩한 성과다(Marshall, 1981). 18세기에 발달한 개인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시민적 권리’, 19세기에 공공적 의사결정에 참여를 보장하는 ‘정치적 권리’, 20세기에 경제적 복지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권리’가 발전했다. 이러한 발전은 다양한 사회계급 사이에 정치적 투쟁을 통해 이룩됐다. 절대주의 왕정을 대신한 시민사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확산되면서 경제적 자유를 확립했으나 얼마가지 않아 부르조아지가 지배하는 불평등사회로 변질됐다. 지식인, 노동자, 일반대중이 일련의 투쟁과 혁명을 통해 이 추세에 제동을 걸어 결국에는 참정권을 획득했다. 일반대중이 획득한 정치적 자유를 수단으로 경제적 자유의 원칙을 수정하여 최종적으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고 빈곤의 문제를 공적인 문제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민주주의와 사회보장이 자본주의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는 형태로 현대 복지국가체제가 성립하였다.
사회보장제도는 자본주의경제체제와 민주주의정치체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보장제도가 가지는 윤리성을 고찰하기 전에 양자의 기본적 관계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사적소유와 사적이익에 입각한 교환의 장치이고 민주주의는 사적판단과 공적이익에 입각한 통치의 장이다. 두 체제 모두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시민의식의 발전과정에서 정치적 투쟁을 통하여 순차적으로 성취한 것이다. 프리드만(1962)이 경쟁적 자본주의가 정치적 자유주의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발전과정을 고려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일정한 발전, 즉 경제발전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통속적인 견해가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장의 자유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가 반드시 민주주의를 보장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자유롭고 자발적 교환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는 원천적으로 정치권력의 개입을 거부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충 혹은 대립한다. 첫째, 이념적으로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사적영역에서 지배로부터 자유, 즉 ‘국가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데 대하여 민주주의는 공적영역에서 공적 의사결정에 참여, 즉 ‘국가에 대한 자유’를 추구한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바로 이 ‘민주화’와 ‘자유화’를 동일시함으로써 정치적 민주화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둘째, 소비자주권에 입각한 자본주의시장경제는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장투표에서 ‘1원1표’로 경제권력의 원리적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데 반하여 국민주권에 입각한 민주주의는 모든 개인에게 평등하게 ‘1인1표’를 보장하여 기본적으로 정치권력의 원리적 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장경제의 의사결정은 소비자의 투표가 자원배분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투표결과가 시장메커니즘을 통하여 경제현상에 곧바로 반영된다. 이에 반하여 민주정치에서 투표는 절차적 규범을 결정하는 데 불과하고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은 투표에 의해서 대표로 선출된 ‘정치가’가 한다. 또한, 실제 행정은 선출된 정치가가 아니라 관료가 담당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피통치자가 통치자를 통치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구체적인 제도로서 다수결제, 대의제, 정당제, 관료제를 채택하는 민주주의의 최대의 취약점이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절차적 결함과 제도적 취약성으로 현실의 민주주의가 형해만 남아 정통성을 상실할 우려가 크다. 즉, 경제적 불평등과 부의 집중이 정치과정을 지배하고 정치참여의 불평등을 낳고 정권을 창출하는 정경유착구조를 낳게 된다. 경제적 독과점시장과 마찬가지로 투표에 의존하는 정치과정에서도 현실적으로는 정당, 이익집단, 관료집단이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경쟁의 승자들이 담합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 경제권력은 정치권력에 정치헌금이나 뇌물을 제공하고 정치권력은 경제권력에 유리한 정책을 유도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과 경제력 집중을 더욱 조장하고 확대한다. 관료는 정책집행단계에서 경제력과 정치력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담당한다. 바로 ‘정․관․재 유착구조다.
사회보장제도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정치적 평등 사이의 대립관계를 화해시킨다. 기본적으로 사회보장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회보장을 위한 ‘능력’과 ‘필요’가 괴리되는 근본에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괴리가 자리 잡고 있다. 자본주의는 생산을 위한 ‘능력’을 문제로 하는데, 시장경제의 성과와 그 분배의 시정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는 자체적인 재생산능력이 없으면서 필요한 재원을 징수하여 재분배한다. 이러한 기생적 성격 때문에 사회보장은 경제로부터 제약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사회보장은 적응과 혁신능력을 배양하여 자본주의가 능력을 키우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민주주의는 문화적 다원성을 보장하여 필요를 창출한다. 사회보장은 정치적 절차에 의존하게 되는데, 현실 정치제도는 단순히 집단의 의사결정을 위한 절차상의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치권력의 지배이념 여하에 따라 사회보장제도에 적대적일 수도 있고 우호적일수도 있다. 그래서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정의에 입각한 민주적 정치시스템과 공공적 이성을 지닌 사회구성원의 존재라고 하는 도덕적 조건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사회보장은 효율․경쟁의 이념과 정의․자존의 이념을 매개하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조정자 역할을 함으로써 현대 선진사회의 전형인 복지국가를 완성시킨다.
오늘날 선진제국에서 복지국가의 위기가 회자되고 이데올로기적 비판과 함께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경제의 성숙과 성장 둔화, 인구감소와 고령화, 가족을 포함한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사회보장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정치이데올로기가 정부개입을 적대시하고 친시장적으로 대폭 이동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사회보장의 수혜자이자 재원의 부담자인 근로계층에서 사회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부담증가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또한 경제의 글로벌화와 함께 사회보장제도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며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야기하고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초래해 노동의욕과 투자의욕을 감퇴시킨다는 의견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거론한 바와 같이, 복지국가의 구축은 단지 사회보장을 위한 재정적 입장에서만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근본으로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정합성을 요구하는 도덕철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회보장은 최소한의 사후적 구제에 해당하는 안전망(safety net)을 제공하는 일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권리’의 성격과 본질에 알맞게 보다 적극적이고 사전적인 보장의 측면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이 고립된 제도로서가 아니라, 경제정책, 사회정책, 문화정책 등과 제휴시켜 바람직한 사회건설을 위한 일련의 정책체계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회보장의 전제로서 경쟁정책, 고용정책, 재정정책이 필요하고, 동시에 가족, 주택, 교육, 육아, 돌봄 등 사회보장과 인접한 사회정책과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보장으로 안전이 보장된 개인이 적극적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문화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연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보장을 국가의 전반적인 정책체계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하여 정부의 다른 모든 정책과 연계시킴으로써 사회보장에 적극성과 사전적 보장성을 도입할 수 있게 된다.
정리하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모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개인주의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충되고 대립하는 관계에 있고 영향력이 상호 밀착돼 유착구조를 형상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 정치과정이 경제권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종속돼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민주주의의 ‘규범성’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매개자로서 사회보장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민주주의란 롤스가 말하는 정의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로서, 공공적 이성과 정의의식을 가진 도덕적이고 분별력 있는 인간의 자유가 보장될 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정치적 평등 사이의 대립관계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사회보장은 정의의 원리를 실현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평등을 양립시키는 완충지대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사회보장을 단순히 기초적 필요를 충족할 수 없는 개인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한다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 경제적 효율, 사회적 정의, 개인의 자유를 통합한다고 하는 정의이념을 구체화한다고 인식함으로써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보다 폭넓은 신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4. 한국경제와 윤리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경제가 윤리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정당화돼야 한다. 우선 경제의 근본으로서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에 걸맞게 각종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이를 공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동시에 경제의 궁극적인 목적, 즉 경제력을 가지고 무엇을 실현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적으로 답을 구해야 한다. 인간적, 사회적 목표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지니지 못한 채 경제성장만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인가, 그리고 그 귀결인 시장문화의 지배를 그대로 수용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 한국경제가 선진화를 열어가기 위해서 제기할 문제는 무엇을 위한 경제성장인가, 무엇을 위한 물질적 풍요인가에 있다. 이들 문제는 경제와 시장을 초월한다.
한국은 오랜 기간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해방이 지상과제였기 때문에 경제성장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무엇 때문에 경제가 성장해야 하는지, 경제가 수단으로서 봉사해야 할 목적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모든 것이 경제성장과 효율에 공헌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으며,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인 해외여행객의 씀씀이는 세계인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품위가 없어 졸부대접을 받고 있다. 경제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인간에게 전부가 아니며, 최고의 가치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때다. 경제는 어디까지나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제가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고 다양한 문화적 기회를 향수하면서 자기를 개발하고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여 공동체의 문화가치축적에 이바지하고 인류문화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한국의 고도성장과정에서 한국사회를 지배한 가치이념과 제도의 바탕은 군사독재권력과 재벌의 유착구조가 주도한 ‘성장지상주의’였다. 기본적인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이 시장원리가 아니라, 정부의 명령과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졌었다. 당연히 경제의 근본에 있어야 할 시장경제에 합당한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으며 미비한 제도마저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았었다. 군부정권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성장지상주의와 목표달성주의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었다. 정경유착 하에서 정부로부터 온갖 특혜와 보호를 받은 재벌 덕택으로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은 실현하였지만, 물신주의, 정경유착, 부정부패, 경제력집중, 재벌기업의 황제경영과 과잉․중복투자, 부동산 투기, 노동자․농민의 탄압, 환경악화 등 온갖 경제적 비효율과 부정의를 낳아 유산으로 남겼으며, 오늘날까지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
민주화과정에서 군부정권의 몰락은 정치권력의 통제로부터 재벌의 해방을 의미했다. 시장경제의 근본인 사회경제적 법과 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채 자의적인 통제에 의존해온 군부권력이 붕괴함으로써 그 휘하에서 막대한 경제력을 축적한 재벌기업이 경제를 지배하게 되었다. 특히, 민주화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갈등적 요소나 시장경제의 윤리적 조건을 깨닫지 못하고 정부의 개입과 통제로부터 해방은 무엇이든 민주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었다. 시장의 ‘자유화’를 ‘민주화’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당시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에 뇌동하여 개방화, 자유화, 민영화를 추진하고 미비한 규제마저 푸는데 여념이 없었다. 제도적 규제 장치 없었던 자유화의 귀결은 역사상 최대의 경제 환난인 1997년 외환위기였다. 한국경제를 근본부터 흔들어놓은 외환위기는 급속하게 전개된 금융․자본시장의 자유화와 개방화를 계기로 금융기관과 재벌기업이 정부로부터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외화자금을 방만하게 운영한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권을 잡은 민주정부들이 한국경제시스템을 권위주의적 개발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으로 제도개혁을 추진했다. 제도개혁의 기본방향은 정치사회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지향하는 ‘민주적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으로 내걸었으나 ‘민주적 시장’보다는 ‘자유시장’에 중점을 두었다. 개혁과정에서 IMF가 상징하는 ‘워싱턴 컨센서스’ 의 지원에 힘입어, 한국경제의 발전단계나 제도적 취약성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의 자유시장경제시스템을 도입하는데 급급하였다. 그러나 도입과정에서 자유시장시스템을 뒷받침하고 있는 미국의 엄격한 시장경쟁정책, 즉 법과 제도에 의한 투명한 ‘경쟁규칙’(game's rule)으로 기업의 시장지배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위반할 경우에 사법적으로 엄벌하는 룰(rule) 의존형 규제를 외면하였다. 한국의 시장경제시스템에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제도개혁의 귀결의 하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흔히 오늘날 한국경제가 당면한 과제로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를 든다. 지난 수년간 한국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4-5% 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고도성장기의 성장률보다는 낮지만, 비슷한 경제발전단계에 있는 나라들에 비하면 결코 낮지 않다. 또한 성장률 둔화는 한국경제가 성숙단계로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훨씬 중대한 문제가 사회경제적 양극화다. 소득분배에 있어 법인소득과 개인소득이 격차로 중산층이 위축되고 있다. 지난 6년 동안에 기업소득은 연 평균 10.4%로 증가했으나, 개인소득 증가율은 2.3%에 불과했다. 또한, 산업간, 지역간, 기업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등 사회 전반에 양극화가 확산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은 기술이나 제도 혁신을 통한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의 확충보다는 단기적인 수익성 제고를 위한 재무개선과 비용절감, 그 중에서도 인건비 절감에 중점을 두었다. 예를 들면,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에 한국기업의 경상이익률은 1-2%에서 8-9%로 증가하였으며, 부채비율이 300% 대에서 105%로, 인건비 비중은 13%에서 8%로 감소하였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수익 증대에는 기여했지만, 아웃소싱 확대, 하청단가 인하,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사용을 통해 이룩하였다. 특히, 고용의 유연화가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의 경직적인 임금체계로 대기업의 임금비용을 중소하청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여 노동시장과 기업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 양극화 현상이 경제성장을 둔화시켰다. 하나는 고용창출이 부진하고 조기퇴직이 일반화되고 비정규직과 자영업자가 늘어나면서 경제성장잠재력이 떨어졌다. 특히 젊은이들의 장기실업은 노동의 질과 숙련을 떨어뜨렸다. 둘째, 소득분배의 불평등으로 노동의욕을 위축시키고 사회정치적 갈등과 불안을 야기하여 투자의욕을 감소시켰다. 셋째, 내수시장을 위축시키고 유효수요를 감소시켰다. 고용불안과 임금하락으로 저소득층의 소비가 감소하였으며, 고소득층의 소비가 낳는 생산유발효과는 대부분 해외로 유출되었다. 그 결과 내수가 부진하고 결과적으로 저투자, 저성장을 야기하였다. 요컨대. 한국경제의 저성장은 소득분배의 불공평과 양극화현상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는 한국경제가 성장이냐 분배냐 양자택일적 혹은 분배는 성장을 저해한다는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경제정의가 없이는 효율도 없는, 분배와 성장을 조화롭게 동시에 달성해야하고, 할 수 있다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다른 하나의 중대한 귀결은 경제력 집중이 더욱 심화하여 한국사회가 ‘시장사회’ (market society)화 됐다. 미국 경제시스템이 도입되고 기업의 매수․탈취(take-over), 인수합병(M&A)이 일반화되고 공기업의 민영화 등의 영향으로 재벌기업으로의 집중도는 더욱 커진 반면, 독과점적 결탁이나 담합 등 기업의 시장지배행위에 대한 규제는 완화됐다. 그 결과 재벌기업의 시장지배력이 더욱 강화되어 공정한 시장경쟁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출고조절, 영업방해, 진입방해, 경쟁제한 등으로 독과점이윤을 획득하고 하도급거래에서 대금 후려치기와 지급지연, 강제구매와 판매, 물품수령 거부, 부당반품 등 불공정행위로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있다.
경제력 집중이 야기한 더욱 중대한 폐해는 소수 재벌의 영향력이 단순히 경제부문에 머물지 않고, 이른바 ‘재벌공화국’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정치, 사회, 언론, 문화, 스포츠 등 한국사회의 전 역역에서 지배력을 가지고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중심축이 되고 있는 점이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이나, ‘삼성은 국가기관을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삼성비자금 특검 관계자의 토로는 재벌의 국가지배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사실 재벌은 법과 제도를 정비할 정치권,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관료, 법률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사법관료, 정경유착을 감시해야 할 언론계, 학계, 종교계 등 사회 전반을 장악하여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재벌개혁은 법치의 확립과 동시에 민주주의와 경제정의의 차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5. 경제와 윤리의 통합을 통한 선진화의 길
이제 한국경제가 당면한 경제문제를 극복하고 선진화를 열어가자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점검해보자. 시장과 정부는 경제를 운영하는 중심축이다. 시장이 경쟁의 덕목인 진취, 향상, 도전, 근면 등 자애심을 자극하여 경제에 효율과 혁신을 가져다준다면, 정부는 경쟁의 규칙을 확립하고 적용하여 경쟁의 규범을 확립하여 경쟁의 과정과 성과배분에 사회구성원 모두가 승복하도록 한다. 이제 정부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여 시장사회를 견제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구체적인 역할을 살펴보기 전에 신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이 지니는 의미를 간략하게 고찰해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작은 정부’론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 그 배경이 완전히 다른 선진 서유럽국가들의 논의를 무비판적이고 몰역사적으로 수용하는 데 불과하다. 단순히 시장에서 정부가 담당하는 역할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서유럽국가들이나 한국 모두가 비교적 광범위한 개입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개입의 목적, 배경, 방법, 범위, 효과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전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시장개입은 ‘개발주의국가형’ 개입으로 억압적,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가운데 성장지상주의의 산업정책으로 시장을 통제하고 분할하는 명령형 개입의 연장이다. 반면에 서유럽국가들의 정부개입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민주적인 시장경제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시장경쟁의 과정과 성과를 보완하고 시정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정부역할에 대한 이론적 근거, 경제적 효율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까지 확보하고 있다. 이런 차이를 고려하면, 한국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큰가, 작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새롭게 재정립해야 할 문제이다. 자의적이고 상황의존적인 개발주의국가형 개입을 철폐하는 대신에, 한편으로는 시장규율과 사회적 규범을 제도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여 시장의 자유, 정치적 평등, 사회경제적 정의를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에 입각하여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하여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정책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경제의 근본에 있어야 할,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에 합당한 공정한 법과 제도를 확립하고 적용하는 일이다. 한국경제의 후진성은 바로 경제제도와 시장규범이 왜곡돼 부정의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데 있다. 매일 같이 접하고 있는 권력형 부정부패, 독직․뇌물수수․공금횡령․파당적 지원 등 관료의 부패, 기업 간 거래관계에서 재벌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 부동산투기를 비롯한 각종 투기행위, 지하경제의 성행 등은 기본적으로 법과 규범의 제도의 미비와 미비한 제도마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성공한 기업인이 존경받지 못하고 규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근본이유는 시장규범이 불공정하고 그 적용이 형평에 어긋나서 대부분의 국민이 시장경쟁결과에 승복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우선적인 과제로 제기한 한국사회의 ‘반기업정서’, ‘반재벌정서’, ‘부유층에 대한 반감’은 백성들의 단순한 질투나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시장경쟁의 성과에 승복하지 못할 정도로 규칙이 정비돼 있지 않고 공정하게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둘째, 한국사회가 지금까지 성취한 경제적 부와 정치적 민주화를 바탕으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여 인류사회의 가치이념인 ‘자유․평등․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복지국가를 달성하는 일이다. 아직도 한국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발전과정을 경험하지 못하여 복지국가이념에 대한 확고한 가치나 의식이 결여돼 있다. 따라서 민주화를 단순히 법 앞의 평등이나 기회의 평등 등 절차적, 형식적 평등으로 인식함으로써 민주화과정에서 확보된 정치적 자유를 실질적인 권리와 자유 확보를 위한 경제사회적 민주화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경제권력이 정치과정과 관료기구를 지배하여 이제 정치적 민주화를 후퇴시키는 악순환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보장제도는 시장경제의 효율․경쟁의 이념과 민주주의의 정의․자존의 이념을 조정․매개하여 현대복지국가를 완성한다. 일부에서 복지제도의 확충과 관련하여 ‘복지병’,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며 작은 정부론을 주장하고 있으나, 한국의 복지제도는 이제 겨우 절대빈곤층에게 최저수준의 삶을 보장해주기 위한 도입단계에 불과하다. 그것도 1998년 경제위기를 맞아 미증유의 대량실업과 경제양극화가 사회적 위기 수준에 도달하면서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공공재 공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공공재 공급 부족은 한국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고비용사회의 요인이다. 공공재 공급이 부족함으로 개개인이 이를 전부 시장에서 사적으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재의 공급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세습을 차단하여 계층간 이동을 촉진하는 가장 유력한 길이다. 아마도 사설독서실이나 아파트 단지 앞의 책대여점이 사기업으로 번성하는 나라는 한국뿐일 것이다.
끝으로, 한국은 그 동안 이룩한 경제적 부와 정치적 민주화를 바탕으로 이제 선진사회로 발돋움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떨어지고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구성원들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국제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일 자체가 결코 용이하지 않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제의 근본에 있어야 할 것’과 ‘경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할 목적으로 사회의 제도나 규범이 존재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을 통하여 공정하고 정의로운 제도와 규범을 정하는 길이 선진화의 첫 걸음이다. 한편 선진사회란 모든 개인이 유덕한 존재로서 자신을 실현하고 개성적인 삶의 방식을 창출해 고도의 인간미가 넘치고 다양한 문화적 기회를 즐길 수 있는 사회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의 선진화를 열어가기 위해서 경제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주관적 자각과 공공적 이성을 가진 선하고 의로운 ‘생각하는 백성’을 고대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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