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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역사의식과 사유체계

작성자선통박영수|작성시간08.12.08|조회수112 목록 댓글 0

 

함석헌의 역사의식과 사유체계

 

양현혜(이화여자대학교교수, 신학)

 

1. 들어가는 말

2. 함석헌의 역사인식의 시점

3. 함석헌의 형이상학적 윤리사관

(1) 인간관

(2) 역사관

4. 함석헌의 종교관

5. 함석헌의 한국사관

6. 결론을 대신하여

 

 

1. 들어가는 말

 

함석헌은 한국인의 역사 현장이라는 주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동서 정신 문화를 성찰하며 이에 근거해 시대의 문제를 규명하고 대응하고자 했다. 그의 사상은 서재에서 만들어져 몇몇 전공자들 사이에서 유통되다가 폐기되고 마는 지적 소일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근현대사의 역사적 공간에서 많은 동시대인들과 소통하며 역사 변혁을 풀무질했던 변혁적 실천사상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사상은 단순한 정치사회사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인간 내면의 자리에까지 파고들어가서 해석하고 처방하는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깊이를 가진 것이었다. 그의 사상이 가진 이러한 깊이와 넓이 그리고 오늘날에 더욱 빛나는 시대적 적합성 등으로 그에 대한 연구를 날로 활발하게 하고 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그의 사상을 담은 대표적인 책을 들라면 누구라도 단연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들 것이다. 이 책은 그가 남긴 많은 책들 중에서 가장 학술적이며 자기 완결적인 체계를 가진 저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 증 가장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영향을 준 대중적인 저작이기도 했다. 이 책에 대한 종래의 연구 경향은 세 가지로 대별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이 책을 한국역사서로 보는 입장이다. 분명한 사관을 가지고 한국사를 일관되게 해석한 한국통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책을 역사서로 보지만 과도한 종교적 성격으로 인해 전문적 역사서라고 하기에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입장에도 다양한 편차가 있다. “역사서술에서 정신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역사의 동인을 단순화시킨 점”은 있으나, 민족주의 사관을 극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입장, 그의 씨알사관을 1980년대 한국 역사학계의 중심적 흐름이 된 민중주의적 한국사학의 선구적 업적으로서 평가하는 입장, 종교적 서술이 과도하여 검토를 보류한다는 입장 등이 있다. 세 번째 경향은 철학적 내지 사상적 연구방법에 입각하여 한국사의 통사적인 측면보다는 그 역사철학을 중심으로 이 책의 성격을 고찰하려는 입장이다. 이러한 종래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보면, 이 책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상반되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으며 책의 성격 규정에서도 의견일치에 이르지 못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사의 상고시대에서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뤘다는 의미에서 분명히 한국사에 대한 통사적 저서이지만, 그 전체 내용의 절반 정도는 역사 일반에 대한 그의 독자적인 사관을 밝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 그 사관이 중심이고 그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한국사를 보완적 소재로 논하고 있다고 볼 것인가, 혹은 한국사가 중심이고 그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사관이 보완적 성격으로 논해지고 있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그의 역사철학과 한국사는 상호 불가분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하나의 통일된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볼 것인가에 따라 책의 성격 규정도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책의 성격 규정에 대응해 책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 속에서 전개된 함석헌의 사유체계의 의미 그물망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그물망 안에서 그의 역사의식과 한국사 인식이 점하는 위상과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을 올바르게 독해하고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수일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나타난 함석헌의 사유체계를 규명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서 그의 인간관과 역사관 그리고 종교관과 한국사관을 분석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그의 사유체계가 어떠한 구조의 의미 그물망을 구성하고 있는가를 규명하고 그 구조를 통해 함석헌이 궁극적으로 분명히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그것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갖는 사상적 함의가 무엇인지도 가능한 한 조망해 보고자 한다.

 

2. 함석헌의 역사인식의 시점

 

함석헌은 현상적인 세계의 사실과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는 객관적인 사실 인식과 그 인식의 타당성 여부를 이론적으로 들여다보면서 판단하는 작업은 전문 연구자들에게 맡겼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역사에는 그 비참함과 곤고(困苦)함을 상쇄해 줄만한 어떤 가치가 있는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왜 포기해서는 안 되는가, 역사의 변혁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따라서 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사실과 사실 사이의 의미 관련성을 넘어, 세계 역사의 밑바닥을 흐르는 어떤 정신을 파악하는 것, “실로 영원한 뜻, 곧 의지와 의미를 붙잡아 내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는 그러한 정신을 찾아내어 사람들에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할 ‘역사의 풀무질’을 하고자 했다. 역사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렇게 철저히 주체적이고 윤리적인 실천 의지에 입각해 있었던 것이다.

함석헌은 현상의 배후에 인간의 역사를 의미 있게 하는 어떤 정신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보통 이성으로서 아는 세계는 현상의 세계다. 그것은 참이 아니다. 참의 세계는 현상 뒤에 참을 믿음으로 열린다. 그러므로 세계가 바뀐다. ……그것은 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옳게 말하면 믿음이 세계를 뒤집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뒤집어 놓은 것을 믿음이 도로 바로 잡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현실의 자율성만을 확실하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현상 내재적 일원주의를 철저히 거부했다. 경험적으로 파악되고 인과법칙으로 도출될 수 있는 물질적인 것만을 유일한 실재(實在)로 보았을 때, 역사의 ‘의미’에 대한 인간의 물음은 결코 대답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현상 뒤의 참을 부정하는 사람도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일원주의에 입각한 실증만능주의야말로 인간 존재의 현실에 입각하지 않는 비과학적 태도라고 보았다. 인간을 순수한 물질적인 차원만의 존재로 환원해 놓고 허무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의 정신적 빈곤이라고 함석헌은 인식했다.

그는 현상 뒤에 있는 정신에 의거하여 역사를 보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역사의 존재 근거와 의미를 해명하고 그것에 대응하여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해명하고자 했다. 역사를 보는 함석헌의 입장은 이렇게 형이상학적이고 윤리학적 관점이었다. 이러한 함석헌의 입각점에 의거해 그의 역사 이해를 고찰해 보기로 하자.

 

3. 함석헌의 형이상학적 윤리사관

 

(1) 인간관

 

함석헌의 역사관은 역사의 의미를 묻는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인간은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까닭이 되는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내적 필연성에 따라 자기를 규정하고 그러한 자기를 스스로 형성해 가는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간의 주체성은 자기규정이라는 의식의 차원과 자기실현이라는 행위의 차원이란 두 가지 차원을 가진다고 했다. 함석헌은 인간이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음은 그가 “자기를 뒤돌아 볼 수 있는” 반성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을 대상화하고, 이 대상화에 의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자기로서 의식한다. 자기 존재의 규정도 대상화할 수 있는 이 반성적 능력, 즉 ‘생각함’이 있어서 비로소 가능한 것으로, 인간이 자기 주체성을 획득해 가는데 ‘생각함’이란 필수적 요소라고 함석헌은 인식했다.

‘생각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반성하여 만들어진 자기의식에는 이미 만들어진 자기를 단순히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되어야 할 자기, 되고 싶은 자기에 대한 인식까지가 함께 녹아 있었다. 따라서 ‘생각함’에 의해 인식된 자기의식에는 과거의 나에 대한 인식만이 아니라 미래의 되어질 나에 대한 동경과 염원이 공존해 있는 것이었다. 함석헌은 ‘생각함’이 자기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의해 자기 존재가 달라지며, 그래서 인간은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인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함석헌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정신의 자기규정이 행동 없이 자동적으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그를 규정하려는 외적 상황의 ‘구속’에서 스스로를 해방하려는 ‘대듦’의 행위가 요구되었다. 그는 “생명의 바탕이 만일 자유에 있다면 그 자유를 구속하고 빼앗으려는 세력”에 대해 “일어나 결러대는 정신”의 활동인 저항이야말로 가장 귀한 도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저항을 통해 자기 밖의 구속에서 스스로를 해방함으로써만 인간은 되어야 할 자기를 창조해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함’과 저항에 의해 인간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상황화해 갈 수 있는 창조적인 존재라고 함석헌은 인식했다. 함석헌에게 인간은 창조적 행위에 의해 ‘이루어 서는’ 존재이자 ‘만들어지는’ 존재였다. 자기실현을 통해 스스로의 ‘정신’을 드러내는 존재였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언제나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여기에서 그는 인간 “생명의 근본원리는 스스로 함”, 즉 자유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함석헌의 자유 이해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인간의 자유를 관계성 안에서 파악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인간이 홀로 있는 능동적 개체이기 이전에 관계성 속에서 수동적으로 태어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함을 직시했다. 이러한 관계성에 입각하지 않는 한 인간의 자유는 고립된 개별성에 함몰되어 “이기주의에 떨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배타적이 됨으로 거기는 싸움이 일어나고야 만다”는 것이었다. 함석헌은 자유가 타자와 적대적으로 대치되는 ‘자기 결정권’으로 표출되는 것은 자유의 소극적 형태에 불과한 것이며, 참 자유는 이러한 소극적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말했다. “사람은 자유이지만, 또 넘을 수 없는 절대의 너에게 얼굴을 맞댄 자유다. ……우리의 자유 의지는 절대 의지에로 바쳐진 의지이다. 자유의 값은 제 맘대로 하는 데 있지 않다. 도리어 자기 맘대로 하지 않는 데, 자진해 하나님께 바치는 데 있다.” 함석헌에 있어 참 자유는 하나님, 즉 “우주적인 무한한 전체” 앞에서 개인이 그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이때 비로소 개인은 대자적 투쟁의 자유를 넘어 일말의 내적 거리낌이 없는 참된 자유에 도달한다고 함석헌은 주장했다.

그런데 함석헌은 보이지 않는 ‘무한한 전체’는 눈앞에 보이는 실재인 타자로서 구체화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무한한 전체’로서의 정신은 가장 개별적인 것으로 구체화되기 때문이며, 따라서 참 자유는 전체를 대변하는 존재인 타자 앞에서 자신의 자유를 주체적으로 제한할 때 비로소 획득된다고 함석헌은 이해했다. 이것을 함석헌은 ‘사랑’이라고 했다. 타자에 대한 주체적인 자기 제한으로의 ‘사랑’만이 나의 자유를 타자의 자유와 소통하게 하며, 사랑은 타자를 보존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구현하여 우리를 하나 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둘이면서 하나됨”을 이루는 ‘사랑’은 주체적인 자기 포기를 통해 개인을 전체에 참여시키는 원리라고 할 수 있는데, 즉 나를 통해 너를 보존하고, 너를 통해 나를 보존하게 함으로써 전체를 이루어 가는 생명 창조의 원리였던 것이다.

따라서 함석헌에게 있어서 자유는 주체적으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자유는 자신의 개별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동시에 개인을 전체성에 참여시키는 역동적 능력이었다. 참된 자유를 사랑을 완성시키는 능력이라고 봄으로써, 그는 인간의 자유를 타자 없이 고립된 개인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인류적 전체성의 자리에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함석헌의 자유를 서구 근대의 부르조아적 자유와 구별시키는 점이자, 그가 추구하는 자유의 보다 적극적인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적 차원에서 자유를 보는 서구 근대의 자유 이념은 정치적 차원의 자유를 약진시키는 데는 적지 않는 공헌을 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정치적 차원의 자유는 진정한 자유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말하자면 자유의 필요조건일 뿐, 그 자체가 참 자유를 위한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고 함석헌은 주장했다. 참 자유는 정치적 제도에 의해 부여되는 소여물이 아니며, 그것은 외부적 억압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통과해야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을 통해 전체의 조화로운 유기적 일부가 되는 경지가 참 자유라고 보았던 것이다. 때문에 참 자유는 “안에 있는 것이요, 결코 밖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는 대자적 투쟁의 자유뿐만 아니라 인류적 전체성에 참여하고 연대하는 자유였다. 이러한 전체성의 원리에까지 고양되지 않는 자유는 그에게는 ‘자기탐닉이나 자기도취’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으로 구현되는 자유는 인간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실화되는 것일까. 함석헌에 있어 타자를 보존하는 사랑은 그것을 추구하는 주체에게는 ‘고난(苦難)’이었다. 참으로 타자를 만날 수 있는 자리는 그의 슬픔의 자리였다. ‘불행을 떠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질 때 사랑은 관념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기 포기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또한 사랑은 자기 포기를 위해 스스로와도 부단히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자기포기’를 어리석음이라고 규정하는 세상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싸워야 한다고 함석헌은 주장했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고난인 것이었다. 고난을 통해서만 나는 너에게 이를 수 있고, 나의 자유를 너에 대한 사랑으로 구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나는 “서로 충돌하는 작은 나, 거짓 나, 사(私)”의 ‘나’를 극복하고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나”의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난을 통해 개인은 인류적 전체성에 참여하는 ‘참 나’로 자신을 초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함석헌에게 있어 이러한 ‘고난’은 흔히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약자가 당하는 피해나 윤리적인 벌로서의 고통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은 살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를 추구하지 못하는 노예적인 존재의 ‘당함으로서’의 고난은 문제시하지 않았다. 함석헌의 고난은 자유로운 주체가 자기완성을 추구함으로 인해 조성된 고난이었다. 고난의 원인이 자기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주체의 내발적인 의지에 있는 것이었다. 고난은 자기 초월을 통해 참 자기를 실현하는 원리이며, 그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를 실현해 가는 존재론적인 자기 변혁의 원리, 즉 ‘창조적 자기수고(自己受苦)’인 것이었다.

따라서 함석헌은 고난이 발생하는 원인을 규명하여 그것을 피해가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한 고난을 마지못해 견디어 내려는 태도에도 공감하지 않았다. “고(苦)는 락지모(樂之母)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고난을 통해 자유를 일구어가는 사람과는 무관한 “상대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사뭇 참을 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천하 사람이 선이 선한 줄만 알지만 사실은 불선(不善)뿐이다. 고(苦)를 피하고 락(樂)을 맞으려는 사람은 영원히 고를 못 면할 것이요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히 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함석헌은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의 자기실현은 ‘고난’을 통해 체현되어 가는 동적 과정인 것이었다. 인간이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한, ‘창조적 자기수고’로서의 고난은 영원히 동반되는 것이었다.

그는 고난의 의미가 ‘창조적 자기수고’인 것을 깨닫는가 못 깨닫는가에 따라 인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보았다. “알면 자유요, 모르면 필연이다. 알면 은총이요 모르면 숙명이다. 아는 것으로 자녀가 될 수 있고 모르는 것은 종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고난이 자기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자기 변혁의 원리임을 아는 자에게 그것은 은총이지만, 그 의미를 모르는 자에게 그것은 그의 존재를 사물화(事物化)하려는 정체 모를 외압으로서의 암울한 숙명이 된다는 것이었다. 고난을 추구하지 않는 자는 필연적으로 자기실현 또한 추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창조적 자기수고’로서의 고난은 내면적으로는 인간의 자기실현을 이루어 가는 원리이지만, 외면적으로는 인류의 유기적 전체성을 실현해 가는 원리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창조적 자기수고자’는 스스로를 생명의 근원적 원리인 자유와 사랑에 부단히 근거지움으로써 타자와의 공감과 연대의 공동체를 실현해 가는, 즉 현실의 역사를 변혁해 가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명 원리가 자유라는 측면에서 이 공동체는 무한한 개방성을 갖는 것이며, 또한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무한한 비폭력성을 갖는 것이었다. 개방성과 비폭력성은 이 공동체를 통합하는 중심원리이자 그 작동원리이기도 했다. 창조적인 자기포기로서의 ‘고난’이 만들어내는 공감과 연대가 개방성과 비폭력성을 수단이자 목적으로 하는 유기적 공동체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함석헌이 지향하는 인류적 전체성의 성격이 분명해 진다. 그것은 자기를 위해 타자가 있고 타자를 위해 자기가 있는 유기체적 공동체 안에서 개별성을 유지하는 다양한 개체들의 자유로운 총체로서의 전체성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이점에서 함석헌의 전체성은 ‘이기적인 나’를 양적으로 무한히 확대시켜 놓은 집단주의나 억압적 총체성에 의해 통일적 연대성의 근거를 두는 전체주의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조적 자기수고자’의 자기실현 과정은 동시에 그들의 자유와 사랑 능력의 폭발적인 연쇄반응을 통해 인류의 유기적 전체성을 이루어가는 역사변혁의 과정이었다. 이 점에서 고난은 역사변혁의 원리이기도 했다. 결국 함석헌이 말하는 개인의 진정한 자아는 인류 전체를 대변하는 자아로서의 ‘나’이고, 개인이 자신의 고유성을 통해 인류 전체의 유익을 실현하는 자리에 설 때, 인류사회 전체가 살고 그 전체의 일부를 이루는 개인의 자기실현도 가능해지는 것으로 함석헌은 인식했다. 그에게 있어 개인의 자기실현과 인류의 전체성의 실현은 이렇게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이 유기적 통합을 매개해 주는 것이 다름 아닌 ‘창조적 자기수고’로서의 고난이었다. 그에게 있어 고난은 자유와 사랑이 관념적 영역으로 추상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고난이 자유를 현실의 역사 속에서 사랑으로 구현하여 공감과 연대의 공동체를 형성해 가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고(苦)는 생명의 기본원리이다. 고를 통해 자유에 이른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고난은 인간의 자기실현과 역사변혁을 가능하게 하고 이 둘을 불가분의 유기적 통일체로서 작동하도록 매개하는 생명의 원리였던 것이다.

 

(2) 역사관

 

함석헌의 이러한 인간 이해는 역사의 배후에 있는 정신의 자기실현 원리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는 우주는 “신의 로고스가 자기를 포기하고 그 영원무궁의 자리에서 내려와 만물 속에 거함에 의해 성립된 것”이라고 보았다. 절대자가 스스로를 기꺼이 포기하고 제한함으로써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우주 탄생의 원리는 절대자의 자발적인 자기 포기라는 ‘사랑’에 다름 아니라고 보았다. ‘사랑’이 바로 “역사를 낳는 이, 즉 역사의 근원이 되고 그 원동력이 되고 그 원리가 되는 이”라는 것이었다. 즉 만물의 생성과 역사 형성의 원인이 되는 생명의 원리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사랑은 만물이 돌아갈 역사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했다. “아가페를 공자는 인(仁)으로 노자는 도(道)로 석가는 빔(空)으로 보았다. 노자의 말대로 억지로 붙인 이름이다. 그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는 운동을 믿음이라 해도 좋고 통일이라 해도 좋고 령화(靈化)라 해도 좋고 영원으로 돌아간다 해도 좋다”고 함석헌은 말한다. 사랑에 입각한 인류적 유기체의 완성이 역사의 목표라는 것이었다. 절대자는 사랑을 통해 만물을 낳고 사랑을 통해 ‘하나됨’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만물의 역사를 이끌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사랑을 완성하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자기실현 원리는 역사 배후에 있는 절대자의 이러한 자기실현의 원리에 근거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인간의 자기실현과 절대자의 자기실현은 ‘자유와 사랑’이라는 생명 원리의 동일성에 의해 꿰뚫어져 있고, 이 동일성에 의해 절대자는 인간 정신 안에 내재하며, 인간은 반성적 사유를 통해 절대자에게 접속되어 있는 자신의 본질을 직관한다고 함석헌은 인식했다. 그리고 절대자가 의욕하는 역사의 목표를 직관한다. 사랑을 통한 인류의 유기적 전체성의 완성이 절대자가 제시하는 역사의 목표임을 자각하는 것이었다. 즉 사랑에 의한 인류적 전체성의 완성이 바로 역사의 ‘뜻’이며 ‘참’이며 절대자가 인류 역사에 명하는 ‘절대 명령’인 것이었다.

함석헌은 역사의 각 시대를 사는 모든 개인들은 인류적 전체성을 완성해 간다는 동일한 목표에 속한 단일한 유기적 인격체의 일부라고 보았다. 따라서 모든 개인은 역사 완성의 도덕적 책무를 진 책임자인 것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본질을 자각하고 ‘창조적 자기수고자’로서 섰을 때 인간은 자기 삶의 주체이며, 동시에 인류 역사 완성의 주체이고, 이를 통해 절대자의 뜻을 역사 속에서 이루어 내는 주체가 된다고 함석헌은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인류 역사를 절대자의 ‘뜻’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도덕적’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역사의 진행 과정을 이 지식과 실천 능력이 자라는 ‘도덕적 자람’의 과정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그의 낙관은 역사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무책임한 낭만이 아니었다. 그는 인류의 역사 실현과정이 동요 없는 직선적인 상승의 과정일 수 없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마디 선을 말하려면 열 번 입을 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백 번 무덤 문이 열려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 선만 좋고 그 무덤은 불행인가? 가슴속에는 말할 수 없는 항상 타오르는 불덩어리를 품고 맘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을 향해 목말라 하며,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디로 모색을 하는지, 그러나 몸은 붙으면서, 걸리면서, 넘어지고는 일어나며, 일어났다간 넘어지는 것이 사람이다. 역사다.

 

함석헌은 생명의 원리인 고난과 사랑이 현실에서 얼마나 자주 패배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폭력의 오만함과 그 거대함에 절망하며, ‘사랑’의 하찮음에 좌절하며, 역사가 실은 거대한 무의미, 무내용이 아닌가 회의하기도 한다고 그는 인식했다. 또한 역사의 심연 앞에서 인간은 ‘창조적 자기수고’의 책임과 절대자의 ‘뜻’을 외면하며, ‘허무’ 앞에서 쓰러지고 넘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넘어짐’은 인간 존재가 절대자의 ‘노리개’가 아니라 ‘스스로 하는’ 자유로운 인격인 한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함석헌은 주장했다. 인간이 이미 도덕적으로 완성된 존재였다면 이러한 넘어짐은 없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거기에는 자유 또한 존립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파악했다. 따라서 함석헌은 인류 역사 속의 무수한 ‘넘어짐’에 대해서는 문제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이 ‘넘어짐’을 ‘다시 일어섬’에 대한 절박한 책임의 호소로 언제나 반전시켜 나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몇 번을 잘못 하더라도 역사가 무의미로 끝나지 않기 위해 늘 다시 쓸 의무가 남아 있다. 다시 함이 삶이요, 역사요, 생명이다. 열 번 넘어지면 넘어지는 순간에 열한 번째 일어나야 한다는 책임이 이미 지워지는 것이다. 실패는 또 한 번 살아보라는 명령이요, 이김의 약속이다.

 

함석헌은 ‘넘어짐’을 ‘다시 일어섬’에 대한 극한적인 책임으로 고조시키는 긴장으로 이해했다. ‘넘어짐’은 비정상적인 일탈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 전개의 본래적 구성요소인 것이었다. 역사의 좌절을 통해서 인간은 “지금까지의 모든 시대의 개인이 진 빛”을 스스로 떠맡아 다시 일어서야 할 결단의 자리로 거듭 세워진다고 그는 주장했다. 넘어짐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결단을 수행하는 모순, 이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의 꿈틀거림”이 바로 ‘뜻’의 실현을 향해 역사를 전진시키는 역동성이라고 보았다. 이 역동성 속에서 인류의 역사는 불연속적인 것 같으나 실은 항구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전진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함석헌은 이것을 직선적인 상승만이 아니라 퇴보를 통해서도 역시 전진하는 ‘나선형적 전진 구조’의 역사 진행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 ‘나선형적 전진 구조’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객관적 역사 인식은 아니다. 그것은 ‘창조적 자기수고자’들이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희망을 견지하고자 하는 자기 확인이자 자기 다짐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기도’이자 ‘믿음’이었다. ‘넘어짐’을 극복하여 또 전진하는 방법은 ‘다시 일어섬’에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함석헌에게 인류 역사의 전개과정이 어떤 형태를 띠느냐를 추론하는 것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그가 참으로 문제시한 것은 자기완성과 역사의 완성을 위해 어떻게 ‘다시 일어섬’을 거듭해서 결단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여기에서 그는 인간을 ‘지금 여기’라는 현재의 시간 앞에서 세계멸절에 대항해야 할 ‘창조적 자기수고자’로서의 결단을 요구받는 자유로운 인격체로 인식했다. 그리고 시간적 전개과정에서의 모든 시점들을 인류 역사의 향방이 갈리는 역사의 분기점으로 규정했다. 그에 의하면 인류 역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서있는 나의 책임 있는 결단에 의해 형성되어 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함석헌에게 있어 역사의 구원은 과거의 축적된 결과에 의해 도래하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의 “구원은 언제나 현재”의 나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역사에 대한 그의 불굴의 낙관주의는 오직 이러한 치열한 주체적 책임 의식의 각성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함석헌에게 인간의 자기실현 구조는 역사 참여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역동적 구조를 갖는다. 역사는 그에게 인간 존재 실현의 본래적인 구성 요소였다. 함석헌의 인간 이해는 이 점에서 정태론과 동태론이 통일되는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에게 자기실현을 향한 자기변혁의 수직적 상승운동은 인류적 전체성의 실현이라는 역사변혁의 수평운동으로 끊임없이 전환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점에서 그의 인간 이해는 ‘하나이면서 모두’임을 깨닫는 것에 머무는 여타의 신비주의적인 정태론적 존재론과는 현저하게 구별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함석헌의 인간 이해는 정신적인 것을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것에 사유와 실천을 근거지우는 관념론적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관념론은 절대자와 인간의 내적 본질이 동일한 정신적 원리라는 점에서 동일성의 형이상학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탈세속화와 세속으로의 회귀를 가능하게 하는 실천철학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함석헌은 역사과정의 모든 시점에서 주체가 ‘창조적 자기수고자’로서 자신을 새롭게 거듭 결단할 수 있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았을까.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여 절대적인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견지할 수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역사의 분기점이 되는 매 순간 순간에 대해 그토록 치열하게 깨어 있어 자신의 책임에서 도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일까.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종교론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4. 함석헌의 종교관

 

함석헌은 참된 종교에 이르기 위해서는 절대자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보았다. 절대자에 대한 이해에 따라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이해도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함석헌이 말하는 절대자는 홀로 존재하고 홀로 있기를 주장하는 신이 아니었다. 절대자는 자신을 제한하고 내어줌으로써 인간과의 사귐을 추구하는 존재였다. 절대자는 인간과의 인격적 사귐을 위해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했다. 자유 없이는 인격이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그의 자유에 입각하여 신의 존재를 묻고 신에게 대거리하며 그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공명해 가는 인격적 사귐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함석헌에게 있어서 절대자의 힘은 사랑 가운데 사귐을 누리기 위해 행사되는 힘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신에게 자유와 사랑은 동일한 것이었다. 자유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며, 사랑 없는 자유는 목표 없는 맹목적인 힘의 행사일 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절대자는 사귐 가운에 있는 인격이기 때문에 자유롭고, 자유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존재라고 그는 파악했다. 함석헌의 절대자는 인간의 자유를 침범하여 노예화함으로써 전능의 힘을 행사하는 거대한 권력에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에게 신은 권력을 행사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사귐을 이루려는 의지였다. 그의 신은 인간과 힘과 사랑을 나누는 사귐 속에서 ‘하나이면서 모두’인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의지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지에 의해 역사의 모든 모순이 종식되어 우주적 대동(大同)의 공동체가 완성되는 때가 그가 말하는 ‘우주 완성의 날’이었다. 역사의 모든 비참이 극복되어 “죽었던 돌과 나무가 미(美)로 살아나고 떨어졌던 과거와 현재가 진(眞)으로 살아나고 서로 원수되었던 너와 나의 행동이 선(善)으로 살아나는” 우주적 화해의 공동체가 실현된다는 것이었다. 함석헌은 인류의 유기적 전체성도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 완전히 형상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우주 완성을 지시하는 절대자의 무한과 현실의 미완성 속에 머무는 자신의 시간적 유한 사이에는 엄청난 질적 간극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에 대한 그의 강렬한 동경은 이 간극을 초극했다. 무한과 유한의 간극을 믿음으로 메우며 비약하는 것이었다. 그는 우주 완성의 날이 인류 역사 한가운데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종말론적 대망 속의 기다림의 시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말관은 인류 역사를 이끄는 정신적 항성이다. ……종말일은 역사상의 결혼날이다. ……만일 그 날이 없다면 이 무한히 계속될 고통의 운명에서 누가 능히 견디어 낼까? 더구나 그날이 예측할 수 없이 온다는 데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날이 온다. 언제 올지 모르게 도둑같이 온다. 이것을 믿는 데 역사 추진의 힘이 있다.

 

함석헌은 이러한 종말론적 믿음에 궁극적인 희망을 두었을 때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은 그 자신의 패배와 죽음을 넘어서서 자신을 세울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불굴의 희망으로 인해 인간 정신이 역사의 암흑 속에서도 질식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믿음에 근거할 때 인간은 역사의 허망함만이 아니라 그것에 함몰되어 버리는 자신의 연약함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역사 안의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 의미가 있음을 긍정하게 된다고 그는 파악했다. “실패하더라도 그저 실패로 그치는 실패는 아니다. 영원히 실패라는 것은 없다”고 그는 확신했던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실패와 패배까지도 넘어서서 역사를 진행시켜 끝내 완성에 이르게 한다는 절대자에 대한 궁극적인 신뢰는 인간을 패배와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만들며, 따라서 인간은 이제 ‘궁극 이전의 진지함’을 가지고 역사 완성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신이 사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역사의 완성을 보아야 한다는 기대와 초조감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은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장차 오는 세계’를 선취하는 선구적 결단을 할 수 있다고 함석헌은 생각했다. 그것은 ‘장차 올 날’에 대한 기다림이자 동시에 자유로운 인격의 의지적 결단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에게 역사는 “시(始)가 종(終)을 낳는 것이 아니라 종이야말로 처음부터 있어 시(始)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함석헌의 종말론은 무시간성 속에 안주하는 현실도피나 숙명론적 미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종말론적 희망이 견지되는 자리는 늘 역사의 한 복판에서 책임을 가지고 사는 곳이었다. 긴 호흡으로 역사 안에서 고단한 과제들을 ‘커다란 희망’에 근거해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와야 할 시간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평화와 정의와 자유의 삶을 창조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커다란 빛을 대망하기 때문에 가장 어두운 시대의 한 복판에서도 머리를 들고 전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기 존재의 궁극적인 뿌리를 종말론 즉 희망에 두었기에 ‘창조적 자기수고자’는 척박한 현실 역사 속에서 두 발을 굳건히 땅에 디딜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함석헌에게 절대자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있는 생명 원리를 활성화 시킴으로써 인간의 자기실현과 역사 완성에 행동력을 부여하는 근원적 실재였다. 즉 절대자는 ‘스스로 하는 존재’인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근거였다. 그리고 믿음이란 이러한 궁극적 실재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를 뜻했다. 이 근원적 신뢰에 근거하여 주체는 거듭 ‘고난’을 선택하고 ‘창조적 자기수고자’로서 자신을 실현해 갈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함석헌의 사상 체계에서 지금까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절대자의 초월성이 드러난다. 그가 동일성의 형이상학에서 절대자의 내재성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절대자는 타자적 존재이기도 했다. 그에게 절대자는 역사 완성을 선취하며 인간을 그 목표를 향해 불러 세우는 존재였다. 절대자는 인간과 역사 속에 내재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러한 함석헌의 ‘종교’에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었다. 첫째, 그의 종교는 인간의 반성적 사유 능력을 통해 도달하는 종교였다. 그는 인간의 내적 반성능력 즉 자신의 본질을 ‘생각함’ 없이는 참된 종교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내적 반성 능력은 인간 정신의 내부로 통하는 길이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절대자와 맞닿아 있는 자신의 본질을 직관한다. 신앙이란 만유의 내면적 본질인 창조적 생명 원리로서의 자유와 사랑에 자신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근거지우는 내면화 운동이었다. 이러한 ‘생각함’을 통한 내면화 운동은 비판 정신으로서의 이성을 포괄하되 그 끝자락에서는 이성을 초월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반성하면 결국 종교적인 믿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의미에 대한 인간의 물음은 종교의 영역에서만 대답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초월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현실을 부정하는 ‘무지’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질문과 회의를 허용하지 않는 모든 종교적 도그마와 독단을 거부했다. 동시에 이성만을 절대시하는 이성만능주의 역시 인간의 정신을 예속화하려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참다운 종교에서 반성적 사유는 그에게는 적극적인 종교적 의무였던 것이다.

두 번째로 함석헌은 종교적 깨달음이 내면적 자유의 공간 확보로 그치는 것을 부정했다. 그는 “학교 교실에서만 위엄 있고 그 밖에 나가면 아무 힘이 없는 그런 따위 도덕은 이 앞의 역사에서는 소용이 없다. 성당, 법당 안에서만 경건하고 눈물 나고, 나오면 곧 말라버리는 그런 믿음”은 종교적 위선에 불과하다고 파악했다. 믿음은 ‘역사에 응용’되어 인류적 전체성을 이루어가는 ‘산 역사 행진’의 추진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참여는 회피할 수 없는 종교적 책임이었다. 역사변혁의 행위는 자유와 사랑의 생명 원리에 역행하는 모든 정치적 현실과 필연적으로 충돌하며 그것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함석헌은 정치를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정치는 역사변혁을 위한 가장 최소한의 환경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가장 긴급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에게 인간의 자기변혁 과정에서 절대자를 향해 상승하는 영역이 종교라면 일상성을 향해 하강하는 영역이 정치였다. 따라서 그는 참된 종교에서 정치는 ‘궁극 이전의 진지함’을 가지고 자유와 통찰에 근거해야 하는 신앙적 봉사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게 참 종교는 종말론적 희망 속에서 일상성을 지켜내야 하는 정치윤리의 근거였던 것이다.

세 번째로 함석헌은 참된 종교는 기존의 많은 종교적 위악들과 결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을 분열시키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모든 부족신, 계급신, 주의신’을 다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종교가 인간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되는 것을 배격했다. 인간의 우주적 연대성을 부정하는 모든 종교적 계급주의, 귀족주의, 종교적 선민의식은 낡은 종교적 미신의 잔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신들은 본질적으로 자유를 ‘절대 권력에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무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 자유는 고난을 통해 생명의 연대성을 형성해 가는 사랑의 의지임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유의 빈곤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나아가 함석헌은 생명의 원리인 ‘고난’의 뜻을 회피해야만 하는 저주스러운 운명으로 왜곡하여 그로부터 도피하려는 “모든 타부, 모든 주문, 모든 마술적인 것, 모든 신화적인 것, 모든 화복(禍福)주의적인 것을 다 뽑아내는” 것 역시 참된 종교에는 필요하다고 보았다. 동시에 그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여 압류하려는 모든 숙명론적인 사고도 타파되어야 할 종교적 미신이라고 보았다. 그는 “스스로 하려는 정신이 죽어 갇혀버린 혼 그것이 곧 운명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자기를 잊은 자에게는 언제나 있는 것이요, 스스로 하는 자에게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함석헌은 운명론을 동원해 인간의 정신을 노예화하는 종교, 인류의 전체성을 부정하고 인간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종교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보았다. 인류의 단일적 연대성을 부정하며 자유를 자신만의 특권으로 독식하려는 자들을 옹호하는 종교는 억압당하는 자들의 정신을 늘 노예화했다는 것이다. 함석헌은 지금까지의 종교는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지배욕과 소유욕을 이겨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에 중독되어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해 왔다고 인식했다. 종교가 인간의 지배욕과 소유욕을 극복시키는 정신이 되지 못할 때 미신으로 전락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유와 그것이 고난을 통해 전환된 사랑의 능력을 극한대로 활성화시키는 종교, 그리하여 인류적 연대성을 완성시켜가는 종교만이 참 종교라고 보았다. 그에게 참된 종교는 모든 종교적 미신을 탈각한 정신만이 다다르는 경지였다.

함석헌은 참된 종교의 ‘이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등의 기존의 이름은 임시방편의 이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임시방편성은 인간의 유한한 이성이 무한한 영원자를 파악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불가피한 한계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참된 종교의 이름이 아니라 그 구조였다. 그의 관심은 영원자를 향한 수직적 상승운동을 통해 자신을 변혁시키고 그것을 현실의 역사에서 인류적 전체성을 형성해 가는 수평운동으로 확대시키는 십자구조를 종교가 담보하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수직과 수평이 교착하는 그 중심점에 인간을 세우는가가 중요했다. 그 중심의 ‘가운데 점’은 인간 생명의 중심이자, 우주적 연대의 중심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그것은 또한 만물을 관통하는 절대자의 중심이기도 했다.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은 위에도 안 계시고 아래에도 안 계시고 중(中)에 계신다. 중(中)이 하늘이다. 중점(中點)은 중간이 아니다. 중심(中心)이다. 심(心)이다. 속이다. 극이다. 만유(萬有), 만민(萬民), 만물(萬物), 만신(萬神)이 다 가야 하는 길다.

 

이 가운데 점에 자신을 세울 때만 인간은 진정한 주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종교적 미신들 가운데서 참 종교를 가려낼 수 있는 시금석은 인류적 전체성의 실현을 위해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전일화(全一化)하는 동원령’을 발동시켜 인류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를 자기 변혁과 역사변혁의 진정한 주체로 세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함석헌의 형이상학적 윤리사관은 이러한 독특한 종교관에 의해 그 의미 구조의 전체적 그물망이 완성되는 종교 윤리사관이었던 것이다. 그의 한국사관 역시 이러한 의미의 그물망 안에서 전개되는 것이었다.

 

5. 함석헌의 한국사관

 

이미 고찰한 바대로 함석헌은 세계사를 인류적 전체성를 완성해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는 세계사에서 이 과정을 꾸려갈 주체를 민족이라고 보았다. 계급이나 여타의 단위와는 달리 민족만이 ‘영속적인 자기의식’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기의식이란 인류적 전체성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 각각이 맡은 소명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뜻한다. 함석헌에 의하면 각 민족에게 부여된 소명은 그 대소나 경중이나 우열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독자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각 민족이 제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생존권의 주장이 아니라 진리의 주장이다. 한 민족이 못 사는 것은 온 우주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슬픔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류적 단일성과 연대성 안에서 각 민족의 개성과 특징이 논해진다. 즉 민족에 대한 평가는 오직 “살아라! 뜻을 드러내라”라는 절대 명령과의 관계에서만 행해지는 것이었다. 민족 간의 상대적 비교나 경쟁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민족 간의 경쟁이 허락된다면 그것은 자유와 사랑의 능력을 얼마나 활성화시켜서 불모의 경쟁 자체를 폐지하는가에 있을 뿐이었다. 함석헌에게 민족은 어떠한 선민의식이나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의 도덕적 완성을 책임져야 할 짐을 맨 존재였다. 그에게 민족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역사 완성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함석헌은 민족은 긍정하나 민족주의의 시대는 지났다고 공언했다. 민족은 인류적 전체성을 이루는 다양한 주체이나 민족주의는 그것을 파괴하는 단체적 소유욕과 권력욕의 모체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생존 경쟁의 원리’에 근거한 ‘이기적인 나의 모인 것’에 불과한 모든 민족주의는 폐기되어야 할 과거의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함석헌의 민족 이해는 개인만 있고 민족도 세계도 없는 개인주의나 민족만 있고 개인도 세계도 없는 민족지상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한 세계만 있고 ‘나’도 없고 민족도 없는 자기 상실의 서구중심적 세계주의와도 구별된다. 개인 속에 민족과 세계가 공속하고 그 개인은 역사의 보편적인 ‘뜻’에 귀속되는 것이었다.

그는 각 민족이 소명을 자각하고 실현해 가는 정도에 따라 인류 역사를 4단계로 나누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인류가 발생한 단계였고, 두 번째 단계는 성장기로 모든 민족과 나라가 일어난 시기였다. 세 번째 단계는 기원후에서부터 네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우주 완성의 날까지의 중간기이다. 그에 의하면 인류는 지금 이 세 번째 단계인 단련기를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시기의 역사는 약육강식을 근본 원리로 삼아 폭력을 일삼는 상호 쟁탈의 역사이다. 이러한 역사는 “세속적인 것에서 종교적인 것으로, 물질에서 정신으로, 필연에서 자유로, 종살이에서 아들로 완전히 껍질을 벗기 위해 변화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요, 다듬음의 시대”라는 내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훈련기간이라고 한다. 이러한 단련기에서 특히 현대라는 시점을 그는 매우 특별하다고 보았다. 그는 세계사에 있어서 현재의 시점을 인류가 “전쟁으로 끝을 맺느냐 전쟁의 끝을 맺는 새 문명에로 들어가느냐 하는 갈림길”이라고 보았다. 즉 “어느 민족 어느 나라가 이기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무슨 주의가 이기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인류 전체의 싸움이다. 정신적인 방향으로 결정적으로 키를 돌리지 않는 한 소망이 없는 자리에 이른 시대”라는 것이었다.

그가 세계사에서 현재의 시점을 역사의 분기점으로 보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 인류는 이제 악을 과학적이며 조직적으로 행하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전쟁의 발발이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전쟁이 “먹을 것, 입을 것, 땅, 돈, 권리를 뺏으려는 주먹으로, 칼로, 기계로, 약으로 싸우는 육체의 싸움”이었다면, 한국전쟁은 ‘생각으로 싸우는 정신의 싸움’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 전쟁으로 보았다. 이제 인류가 물질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각에 사로잡혀’ 전쟁을 하는 새로운 시대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물질적 필요에 의한 전쟁은 필요를 충족시킴으로써 종식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간단할 수 있지만, 그러나 사상으로 인한 전쟁은 타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음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자를 멸절시키지 않는 한 결코 종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전쟁이 끝나는 날은 오직 인류 멸절의 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함석헌은 앞으로의 전쟁은 인류가 전체의 일체성을 자각함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까닭에 한국전쟁은 인류가 멸절하고야 말 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원리로의 전 인류적 회심을 결단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기로에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이 회심을 이루기 위해 사상적인 ‘진리의 싸움’에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싸움의 무기는 ‘고난’을 의욕하는 사랑이고 그 장소는 그가 있는 모든 곳이며 그 방법은 비폭력이었다. 그가 역사의 ‘뜻’을 밝히는 역사책을 저술한 것도 다름이 아니라 인류에게 이제 ‘전일화하는 인류적 동원령’이 발동되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세계사의 이해 속에서 함석헌은 한국사의 특징과 그 소명을 논했다. 왜냐하면 인류적 전체성을 이루기 위해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소명지가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함은 소위 조국애에서부터가 아니다. 여기를 묵히고는 하늘나라를 임하게 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민중을 사랑함은 소위 동포애에서부터가 아니다. 이 사람들을 빼놓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함석헌이 한국사를 문제시한 것은 배타적인 애국심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우주적 구원사의 지평에서 한국사가 담당해야 할 ‘뜻과 사명’을 논했던 것이다.

그는 한국민의 심성을 인(仁)과 용(勇)의 특징을 가진 민족이라고 보았다.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은 ‘도덕성이 매우 높은’ 성품을 지녔다. 그러나 단련기의 세계사가 생존경쟁을 주된 원리로 해 왔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는 고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민족이 자리 잡은 곳은 중국, 만주, 일본을 연결하는 반도라는 관계적 위치였다. 어진 인(仁)의 성품을 가진 한국민에게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고난의 터전’이었고 그 역사는 고난을 기조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함석헌에게 한국사의 기조가 ‘고난의 기조’를 띠었다는 것은 한민족이 타민족에 비해 열등했다거나 미천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역사의 발생과 진행의 원인이자 그 목표가 ‘아가페’이기 때문에 고난은 또한 모든 참된 역사의 기조이기도 하다고 인식했다. 한민족의 역사가 고난의 역사인 것은 그것이 참 역사의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한국사에서 그가 중요시한 것은 이 고난의 터전에서 한국인이 고난의 의미를 알고 사는가 모르고 사는가 하는 문제였다. 고난을 뜻 없는 비참함이요 힘없는 자가 당하는 피해라고 생각하면 ‘종살이’이지만, 그 의미를 바로 알게 되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짊어지는 고난은 ‘생명진화의 지금 단계를 위한 것이 아니요, 다음 단계를 위한 창조적 자기수고’라는 것이었다.

그는 고난의 의미를 알고 살았는가, 모르고 살았는가를 기준으로 한국사의 모든 흥망성쇠를 평가했다. 이러한 그의 한국사 서술은 일반 역사학계의 그것과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치경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일도 그 안에 ‘창조적 자기수고’로서의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종살이’로서의 고난을 초래한 ‘무지’로 평가 내렸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위업도 그에게는 단지 도덕 없는 나라의 시작이고 이후 조선역사 전개의 중축를 부러뜨린 원인을 제공한 사건에 불과했다. 또한 역사적으로 참담한 패배에 불과했던 일에 대해서도 그 안에 ‘창조적 자기수고’가 있었다면 절대자의 뜻을 잉태하고 출산한 일대 사건으로 칭송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북벌의 원대한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역적이라는 오명 속에서 죽은 임경업을 두고 ‘창조적 자기수고자’의 임무를 자각한 ‘뜻’의 사람으로 칭송했다. 허망한 죽음 가운데에서도 임경업은 “하늘이 미워하는 것은 곧 사랑하는 것”이라 하여 역사의 ‘뜻’에 대한 절대 신뢰, 절대 긍정을 한국사에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종살이’로 겪어냈던 모든 ‘노예적 고난’에 대해서도 그것의 의미를 오직 ‘창조적 자기수고자’로서의 책임을 고조시키는 긴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고구려가 망했느냐. 아니다. ……다 저 할 일을 하고 갔느니라. 고구려가 망하고 아니 망하는 것은 오늘날 너와 내게 달렸다. 우리가 버리면 단군도 개죽음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살리면 세계의 주인으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한국사의 모든 서술은 궁극적으로 ‘너는 어떻게 결단하겠느냐’는 호소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한국전쟁 앞에서 그의 호소는 최고조에 다다른다. 세계 역사의 분기점이 되는 전쟁이 발발한 땅이 한국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 한국에서 이러한 결단에 대한 호소가 절박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바로 여기에 한국사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민의 사명은 이 절박한 호소 앞에서 고난을 기꺼이 의욕하며 ‘창조적 자기수고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인생이 물질의 종이 아닌 것, 권력이 정의가 아니라는 것, 결국은 그것이 정의를 이겨내지 못하리라는 것, 불의의 세력이 결코 인생을 멸망케 할 수 없다는 것, ……고난으로써 인류를 구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로 인하여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류적 전체성을 온 인류에게 알리고 “비폭력주의, 평화주의, 세계 국가주의, 우주통일주의”만이 살 길임을 밝히는 것이 한국사의 세계사적 소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사에 요청하는 역사의 ‘뜻’이며 한국민이 해야 할 응답이라는 것이었다. 한국민은 오직 이 세계사적 소명을 완수함으로써만 인류적 공동체에 도덕적 책임을 다하는 세계사적 민족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족사적 현실성이 세계사적 이념성으로 승화하고 세계사적 이념성이 민족사적 현실성으로 구체화되는 것을 본다. 이 점에서 함석헌은 철저한 민족주의자였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인류주의자였다.

한편 그는 이 호소에 응답하는 존재를 바로 씨알이라고 보았다. “땅위에서 하늘의 명령”을 듣는 자가 바로 씨알이기 때문이었다. 씨알은 땅에서 인류의 전체성을 실현하라는 절대자의 ‘뜻’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자였다. 씨알은 어떤 계층이나 계급에게 지속적으로 귀속되는 사회과학적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종말론적 희망 속에서 일상성을 사는 정치윤리의 실현자로서의 ‘창조적 자기수고자’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씨알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또한 모든 사람의 과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함석헌은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스스로 자각조차 못한 채 부지불식간에 억지로 씨알됨을 체현해 왔던 집단이 민중이라고 보았다. 민중은 가난함과 힘없음으로 인하여 노력하지 않아도 ‘맨 사람’이 되었다. “가난하지만 가난하니 땅에 붙고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요, 무지하지만 무지하니 살아있는 것”이었다. 고집하고 지킬 소유와 권력이 허락되지 않음으로 인해 저절로 비폭력적이었고 모두에게 개방적이었다. 저절로 자유를 사랑으로 체현하여 공감과 연대를 꾸리고 지탱해 왔다. 그들의 무지함과 힘없음은 실은 그들의 자유함이었고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힘없음과 가난함으로 인해 쟁탈의 역사 속에서도 공감과 연대의 공동체가 죽지 않고 살아 움직여 왔다는 것이다. 역사의 뜻에 대하여 “먼저 반응으로 보인 것도 민중이었다. 마지막에 믿을 수 있는 것은 민중 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중은 “수없는 무명 영웅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부딪치는 사나운 물결 속에서 우뚝 서 있는 곧 바위같이 이 어지러운 사회에 있어서 그들은 밑에 있는 생명의 화산맥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 ‘가난하고 힘없음’으로 인해 민중은 역사의 보이지 않는 주체가 되어 왔던 것이다.

현실의 모든 권력은 민중이 관대히 내어주는 ‘묵인’에 근거한다고 보는 그는 이러한 민중을 지도와 관리 대상으로 보는 모든 정치 공학적 프로그램에 반대했다. 그에 의하면 역사를 변혁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억지로 그러나 저절로 씨알을 체현한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모시고 섬기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 속의 씨알을 해방해 내어 그들 스스로가 자각적으로 역사의 주인 노릇하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정치 공학적 프로그램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민중 안에 잉태된 씨알을 스스로가 자각적으로 출산하게 하는 섬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필요한 것은 ‘고난’을 통해 사랑의 씨를 뿌리는 농부였다. 자기의 시간에서는 어떠한 수확도 기대하지 않고 종말의 그날까지 다만 영원히 씨 뿌리려는 파종꾼이었다. 함석헌은 ‘창조적 자기수고자’는 ‘물 위에 씨 뿌리는’ 자의 긴 호흡으로 한 톨 한 톨 정성껏 이 씨를 뿌리고 가꾸는 농부라고 했다. 그는 이 씨에서 나온 자유와 사랑의 능력이 대폭발을 일으키고 그 연쇄반응으로 우주적 연대성을 이루어가는 길 외에는 인류역사를 멸절 앞에서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한국민은 이러한 비폭력적 정신운동의 씨를 뿌리는 ‘창조적 자기수고자’가 됨으로써 역사의 ‘뜻’의 완성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종교윤리사관을 한국사의 해석과 방향 모색에 적용시키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한국사 서술은 일반적 의미의 한국사 통사라기보다는 그의 종교윤리사관이라는 총론을 보완하며 구체화하는 각론적 위치에 있었다고도 하겠다.

 

6. 결론을 대신하여

 

이상에서 우리는 함석헌의 종교윤리사관의 의미 그물망을 조망해 보았다. 그는 인류 한 사람 한사람에 대해서 만물을 하나로 꿰는 자유와 사랑이라는 생명 원리에 입각한 주체로서 불러 세우고자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참으로 자유하게 함으로써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주체로 세우고자 했다. ‘고난’을 의욕함으로써 모든 인류가 다 자기 변혁과 역사변혁을 이루는 그런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그들이 체현하는 비폭력과 서로 용납함이 대폭발로 이어져 일으키는 연쇄반응으로 인류적 전체성을 이루고자 했다. 함석헌은 자신을 이를 위한 영혼의 계몽자로 의식했으며,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창조적 자기수고자’로서 굳건히 서있는 인류 대동의 공동체를 꿈꾸었다.

이러한 그의 역사관은 근대 부르조아적 자유 이념이나 생존경쟁의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기도 했다. 나아가 현상 세계 내의 내재적 결정론에 질식된 근대적 역사의식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다. 또한 인간을 획일적 관리대상으로만 파악하는 모든 수량적 사고방식과 이에 근거한 실용주의적 윤리학과 정치 공학적 프로그램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다. 그러한 체계 속에서는 세계의 신성함과 인간의 고결함에 대한 어떠한 감수성도 숨 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함석헌의 역사관은 근대적 세계의 근원적인 모순과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함석헌이 품은 인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인간의 자기 초월과 인류적 연대성에 대한 비전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우리 앞에 놓인 역사의 부조리와 그 앞에서 주눅 들고 있는 우리의 남루한 현실에 비해 그것이 너무 크고 높기 때문이다. 그 둘 사이의 아득함 앞에서 우리는 그의 사상의 실용성과 현실성을 의심스러워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에게 함석헌은 말하고 있다. 세계 멸절의 위기 앞에 살고자 하느냐. 그렇다면 너라고 팔짱만 끼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 결단하라. 세계사가 지금까지 축적해 온 결과물을 보지 마라. 남이 어떻게 하는가도 보지 마라. 역사를 구원할 자는 오직 너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지금 여기에서 자유와 사랑의 씨를 뿌리는 ‘창조적 자기수고’를 하겠느냐. 그리고 이 질문 앞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한 치의 틈바구니도 그는 우리에게 허용하지 않는다. “자! 지금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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