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 강동우
차라리 딱딱한 알껍데기가 나를 둘러싼 것이었으면 좋겠다. 깨뜨리고 나오면 되니까. 가끔 고래의 뱃속에 갇힌 듯 답답할 때 드는 생각이다. 벗어나기 위해 아무리 주먹을 내질러봤자 소용없다. 고래의 위벽은 움푹 패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무슨 일이지?’
소아과 문을 열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 한쪽으로 비켜선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바짝 깎은 여자아이가 휠체어에 누워 울고 있었고, 엄마는 여자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아직 눈물 조절 장치가 자라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는 범람하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모른 척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는 모녀 앞에서 우리 부녀는 얼른 사라져 주는 게 예의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세 살배기 딸아이가 괜한 관심을 보일까 봐 조마조마했다. 어른들은 장애인을 마주쳤을 때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장애인과의 대면을 별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러한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딸아이가 한마디 불쑥 내던졌다.
“쟤는 왜 울고 있어?”
‘쟤가 아니라 언니란 말이다!’ 터져 나오는 탄식을 되삼키며 나지막이 “응. 그러네.”하고 답해주었다. 왜 울고 있는 걸까. 아빠는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해서 물어봤겠지만, 이번 질문은 아빠인 나도 도저히 답해줄 수가 없었다.
모녀의 좌표는 우연의 산물로 보였다. 건물 4층에는 소아과와 줄넘기 학원밖에 없었다. 여자아이가 소아과에 올 나이는 아니었다. 불편한 몸으로 줄넘기 학원에 등록했을 리도 없었다. 아무래도 모녀는 오랜만에 외출했다가 우발적인 상황을 맞닥뜨렸고,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황급히 아무 건물 아무 층에 자리를 잡은 듯했다.
딸아이도 필연으로 가득했던 날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유모차 밖으로 고개를 빼고 자꾸 모녀 쪽을 쳐다보았다. 아빠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내뱉었던 “응. 그러네.”란 대답은 아이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치 않았다. 아빠의 미적지근한 응답에 대한 항거였을까. 아이는 호기심을 굽히지 않았다.
“왜 유모차에 누워있는 거지? 흐음.”
아이의 직설적인 물음과 “흐음”이라는 만화적 추임새는 모녀와 부녀 사이로 날아드는 돌덩이였다. 엘리베이터가 어디쯤 왔나 흘끗 쳐다봤다. 이 동네 엘리베이터는 왜 이렇게 느린지. 아직도 올라오는 중이었다. 머릿속이 빙판을 문지르는 컬링 선수처럼 분주해졌다. 돌덩이가 우리 넷 중 그 누구에게도 부딪치지 않도록 경로를 조절해야 했다.
머릿속을 헤집었다. 급속히 냉각된 이 분위기를 사르르 녹여줄 한 마디를 찾아야 했다. 딸아이에게 건네는 말이면서도, 모녀에게 나의 뜻을 넌지시 전할 수 있는 말이면 좋을 것 같았다. 딸아이에게는 우리가 맞닥뜨린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납득시켜야 했고, 동시에 모녀에게는 앞으로 동네 사람들이 오늘과 같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또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 자주 밖으로 나와주길 바란다는 희망 사항을 전해야 했는데, 주제도 모르고 선문답이라도 하려는 것이었는지, 입에서 한마디 툭 튀어나왔다.
“졸린가 보지 뭐.”
돌덩이에 부딪혔던 걸까. 여자아이의 엄마가 홱 돌아보았다. 뒤통수가 아렸다. 뒤늦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올라타 1층 버튼과 닫힘 버튼을 눌렀다. 침몰하듯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모차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온 정신세계를 찾아 헤맨 끝에 건진 한마디가 고작 그거였다니.
밖에는 갈색 바람이 불고 있었다. 갖가지 환절기 증상을 몰고 올 것만 같은 바람이었다. 야윈 이파리가 한둘 떨어졌다. 아직 나무에 매달려있는 잎사귀와 이미 떨어져 한데 쌓여있는 낙엽이 번갈아 눈에 들어왔다.
딸아이에게 뭐라고 해명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사실 아빠에게도 별일이었다고, 편견 없이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아이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고, 이런 말이 오히려 아이에게 어떤 편견을 심어주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다시 비슷한 상황이 찾아와도 나는 더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졸린가 보지 뭐.’라는 식의 무심한 대처보다 더 나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름의 논리적 정합성으로 빼곡히 채워진 삶의 매뉴얼에는 빈칸이 없었다. 잡다한 지식과 수사로 꽉 들어차 알맹이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길을 가다 멈추고 유모차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방백을 읊듯 말했다. “어른들도 유모차를 탈 수 있어. 그건 이상한 게 아니야. 아이들만 유모차를 타는 게 아니라, 유모차가 필요한 사람이 유모차를 타는 거야.”
어느 주말 우리 가족은 동네를 걷고 있었다. 딸아이가 대뜸 “엄마”하고 부르더니 소곤소곤 속삭였다. 아내는 동그란 눈을 하고 내게 물었다.
“어른도 유모차 탈 수 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멋쩍게 웃으며 소아과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