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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광주 양림동 사직공원 옆에 위치한 충현원

작성자사무처|작성시간15.03.25|조회수168 목록 댓글 3

 

한국 고아의 천사 러셸 블레이즈텔 대령

 

한국전쟁 당시 고아 1천여명을 제주도로 긴급후송하여 고아들의 생명을 구한 미국 공군 대령 故 러셀 블레이즈델 군목의

 

 

 

광주 양림동에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어 기독교역사의 산실이다.

사직공원과 호남신학교가 있는 양림동 일원에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이곳에 자리를 잡고 교육과 의료선교에 앞장섰던 곳이다.

 

특히 충현원은 선교사들과 함께 기독교의 복음을 듣고 고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던 곳으로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5월 故 박순이 선생에 의해 창립돼 현재 호남사회봉사회로 발전해왔다. 지난 2005년 광주시 개발계획에 따라 건물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에 미국으로 입양된 앤소니 윌리(31.한국이름 김신용)씨가 갓난아이때 자신을 보살펴준 고아원인 광주 남구 양림동 충현원(현 호남사회봉사회)을 보존해달라고 박광태 광주시장에 편지를 보내 다시 복원하게 되었다.
2009년 10월부터 2012년 3월에 복원사업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故 박순이 선생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고 고아원시절 사용했던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고아들을 돌보았던 충현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에는 옛날 성경, 함께했던 사람들의 사진까지 전시되고 있다.

충현원 관계자는 “자녀들과 함께 사직공원을 둘러보고 옛 역사의 이야기를 나누어봄도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6·25 전쟁 당시 어린이 1000여명 구출작전
엇갈렸던 공적 60여년 만에 공식화될 듯

【서울=뉴시스】오종택 기자 = 그 동안 의견이 분분했던 6·25 전쟁 당시 어린이 1000여명을 구출한 주인공이 고(故) 러셀 브레이즈델 대령으로 공식화될 전망이다.

전쟁고아를 돌보던 한 보육원 원장과 브레이즈델 대령 유족의 노력으로 60여년만에 진실의 빛을 보게 됐다.

6·25 전쟁 당시 서울에 남아있던 고아 1059명을 제주도로 피신시켜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로 불리는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도 주장이 엇갈렸다.

당시 미군 군목으로 참전한 러셀 브레이즈델 대령이 유력한 주인공으로 지목됐지만 딘 헤스 미 예비역 공군 대령은 자서전 '신념의 조인'을 통해 자신이 전쟁고아 1000여명을 구출한 작전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한 방송에서는 한국보육원 원장이었던 고 황온순 여사를 전쟁고아 구출작전에 크게 관여한 것으로 조명했다.

6·25 전쟁 참상을 다룬 영화 '전송가(Battle Hymn)'는 전쟁고아 구출작전의 주인공으로 딘 헤스 대령과 황온순 여사를 묘사했다.

국내 현존하는 보육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광주시 충현원의 유혜량 목사는 딘 헤스의 자서전과 러셀 브레이즈델 군목의 자서전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당시 전쟁고아였던 이강훈(당시 16세)씨 등 3명의 증언과 당시 참전 용사였던 조지 F. 드레이크 박사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딘 헤스 대령이 전쟁 당시 한국 공군 발전과 조종사 양성에 이바지 한 것은 맞지만 전쟁고아 구출작전의 주인공으로 묘사된 것은 잘못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딘 헤스 대령이 속해 있는 미국공군비행단은 1950년 12월19일 대전에서 제주도로 이동했고, 브레이즈델 대령이 아이들을 구출한 이후 제주도에서 이들을 만났다고 설명했다.

또 황온순 여사 역시 전쟁고아를 돌보는데 힘썼지만 제주도 수송 작전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러셀 브레이즈델 대령의 아들 카터 브레이즈델은 6일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국내 사회복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친의 업적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13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제23회 전국사회복지대회에서 카터 브레이즈델씨에게 부친의 공로를 인증하는 감사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6·25 전쟁 당시 어린이 1000여명 구출작전
엇갈렸던 공적 60여년 만에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6.25 특집 다큐멘터리 – 전쟁고아 구출작전

방송일시 : 2014년 6월 25일(수) 밤 10시 KBS 1TV

내레이션 : 정용실
  
“누군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일이 죽음에 내몰린 아이들을 죽게 놔두는 일이라면 저는 전역 하겠습니다”
 -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의 군법회의 최후 진술 중 -
 



1950년 12월 20일, 중공군 참전으로 연합군이 일제히 퇴각하는 가운데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964명의 전쟁고아를 탈출시킨 미군이 있었다.
故 러셀 블레이즈델 미 공군 중령.
 
1950년 12월 4일, 평양에서 한국군이 철수하고 12월 8일에는 동부전선 흥남을 통한 연합군 철수명령이 떨어진다. 미 제5공군에 속한 군목軍牧으로 서울 종로 초등학교에서 1천 여 명의 전쟁고아를 보호하고 있던 러셀 블레이즈델 미 공군 중령 (당시 39세) 은 군의 철수명령을 어기고 서울에 남아있다 아이들을 모두 제주도로 탈출시키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해군에게 거짓 명령을 내려 아이들을 트럭에 태우고 일본에 있던 공군 수송기까지 불러들여 대대적인 수송 작전을 벌인다.
때문에 당시 서방 언론에는 ‘kiddy car airlift’ (일명 유모차로 변한 수송기) 로 알려졌다.
당시 중령이던 러셀 블레이즈델은 이 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1964년에 예편한 뒤 목회활동을 이어갔을 뿐, 이 사건은 미국과 한국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죽음의 냄새 가득한 전장에서
누군가는 명령에 따라 총칼을 휘둘렀고 누군가는 우는 아이의 손을 놓쳤으며
또 누군가는 죽은 병사의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훔쳤다.
이렇듯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동족상잔과 이산, 아귀다툼의 처참한 기억 뿐이다

크리스마스 5일 전에 감행됐다는 것, 그리고 부두 대기 중 질병으로 죽은 여덟 명의 아이를 빼고는 전원 (964명) 구출에 성공했다는 것 때문에 극동의 <크리스마스 스토리> 혹은 <한국의 쉰들러 리스트>로도 불리는 전쟁고아 구출작전.
군인이자 목사인 러셀 블레이즈델이 명령에 불복종해가면서 아이들 구출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도로 무사히 탈출했던 964명의 전쟁고아들은 그 후, 어떻게 됐나.
故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의 발자취를 통해 한국전쟁의 또 다른 역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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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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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문철 | 작성시간 15.03.26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작성자사무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3.27 3월22일 윤호상상임대표님과 김용진 화순 유족회 총우국장, 김세권사무처장, 김환영 재경유족회 운영위원장이 광주광역시 양림동 소재 충현원을 방문하여(고) 러셀 블레이즈텔 대령의 동상을 참배하고 고인의 뜻을 기렸습니다.
  • 작성자박경옥 | 작성시간 15.03.27 전쟁중에 외로운 한국의 고아들의 생명을 구해주신 러셀중령님의 고귀한 박애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가.존경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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