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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6.15 산행(북한산 碑峰,560.3m)

작성자사무처|작성시간15.06.21|조회수40 목록 댓글 2

6.15 산행(북한산 비봉碑峰,560.3m)

 

일시:2015년6월21일(일)오전9시 불광역 집결

 

장소:북한산(비봉(碑峰,560.3)

 

6.15 산

 

   

 

   

 

2015년 6월21일 6.15산악회 회원들은 오전 9시 불광역에 집결하여 북한산비봉(碑峰,560.3)을 향해 등반을 시작하였습니다. 6월의 향기로운 신록이 우거진 북한산의 비경을 만끽하면서 6,15 산악회 관련단체들은 삼삼오오 대오를 유지하면서 북한산 비봉(碑峰,560.3)에 도착하여 땀방울을 식히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아래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권오헌, 김종일 선생의 특강을 들으며 준비해 가지고간 점심이 꿀맛 같았습니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에서는 편준우 고문님을 비롯하여 송영덕, 송정혜, 김세권사무처장이 참여 하였습니다.

 

 

북한산(北漢山)

 

북한산 인수봉의 위용

 

서울특별시 강북구· 도봉구· 은평구· 성북구· 종로구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양주시의 경계에 있는 높이 835.6m(2013년 6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으로, 이름은 조선 후기시대때 한성의 북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북한산은 1억 7천만년전에 형성되었으며, 이곳은 최초 백제땅으로 지역명으로 한산, 산의 명칭으로 31년 이후 횡악(橫岳)이라고 하였다. 고구려가 475년 백제로 부터 이곳을 정벌하여 지역명으로 북한산주이라 칭하고 산명은 그대로 횡악으로 불렀다.

신라가 이곳을 정벌하고(553년)난 후 557년에 북한산주(北漢山州)라 칭하였다. 신라는 횡악을 부아악으로 고쳐부르고, 이곳 북한산주 부아악에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백제 초기에는 횡악(橫岳), 신라때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진 이후 부아악(負兒岳)이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초기에는 부아산이라 불렀고, 고려 시대에는 993년 이후 때 부아봉(현 인수봉 810.5m), 중봉(현 백운대 835.6m), 국망봉(현 만경대 800.6m, 국토지리정보원) 세 봉우리가 모여 있어 삼각(三角)처럼 보여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려왔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고려시대에 측성한 중흥산성을 보수축하여 북한산성을 축성(1711년)한 이후 한성의 북쪽이라는 의미에서 북한산(北漢山)이란 산명을 별칭으로 사용해 오다가, 일제 강점기 이후로 점차 북한산(北漢山)이란 산명을 정식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983년에 대한민국의 국립공원 북한산으로 지정 되었고, 2010년에는 북한산 둘레길 코스가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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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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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문철 | 작성시간 15.06.22 잘 다녀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사무국 | 작성시간 15.06.22 북한산의 비경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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