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아가씨가 다시 나타난 것은 초겨울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첫눈이 내리기 전, 바람이 유난히 앙칼스럽던 날이었다. 이번에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마을 입구에 낡은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왔다. 예전처럼 화려하지도, 서두르지도 않았다. 목도리를 여러 겹 두른 채 기담의 집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렸다.
한동안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문이 열렸을 때, 기담은 그녀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얼굴은 말라 있었고,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기담 씨.”
그 한마디에 그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누군가 오래간만에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만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왜 왔어?”
“미안해서요.”
그녀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묻지도 않았다. 기담이 몸을 비키자, 그제야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 안은 지나치게 정돈돼 있었다. 손때 하나 남지 않은 방, 규칙처럼 가지런한 물건들. 사람이 산다기보다는 관리되고 있는 공간 같았다. 동백아가씨는 그 사실을 한눈에 알아봤다.
“사람들이 자주 오나 봐요.”
기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녀회에서도 오고, 요양보호사도 오고….”
“그럼 혼자 있는 시간은요?”
기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주방으로 가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예전에 늘 앉던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마치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날 이후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왜 화가 났는지, 왜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
기담은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담 씨가 잘못이 아니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날 내가 깨달은 건 기담 씨가 아니라 기담 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었어요.”
기담의 손이 무릎 위에서 천천히 오므라들었다.
“나는 여기 올 때마다 조심했어요. 말도, 웃음도, 손길도. 혹시라도 기담 씨가 사람 취급을 못 받을까 봐.”
그녀는 그제야 기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다방 여자였고, 기담 씨는 쇠약한 노인 인걸 처음부터 의식했어요.”
기담의 입술이 떨렸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백아가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 예전처럼 안아 주지도, 등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대신 그의 눈높이에 맞춰 앉았다.
“나는 기담 씨가 불쌍해서 온 게 아니에요.”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
“기담 씨가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는지 그게 궁금해서 왔어요.”
그 말에 기담의 가슴은 무너졌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들썩였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울음이 아니라, 오래 쌓아 두었던 침묵이 풀려 나오는 소리 없는 진동 같았다.
그제야 동백아가씨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조심스럽지 않았다. 단단했고, 오래 붙잡았다.
“괜찮다고 하지 마요.”
그녀가 말했다.
“괜찮지 않은 사람이 괜찮다고 말하면, 그건 감정이 무너지는 마지막 신호잖아요.”
그날 동백아가씨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밥을 해 주지도, 침대를 정리해 주지 않았고, 떠나기 전 이렇게 말했다.
“나, 자주 못 와요. 그렇지만 가끔은 올 수 있겠죠.”
그 말은 약속도, 위로도 아니었다. 다만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선택으로 남았다.
문이 닫힌 뒤, 기담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소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집 안에 자신 말고도 누군가 살아 있는 기척이 필요해서였다. 텔레비전을 켰으나 채널은 바뀌지 않았고, 내용은 보지 않았다. 화면의 빛이 벽을 스치는 동안만, 집이 완전히 죽은 공간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다리던 그녀는 약속대로 자주 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부터는 쭉 오지 않았다.
기담은 동백아가씨가 오지 않은 날을 처음에는 날짜를 세었다.
눈이 두 번 내리고, 왕왕거리던 마을 방송이 몇 번이나 울리고, 요양보호사가 다녀간 횟수를 속으로 세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그 일이 무의미함을 알았다.
기다림의 숫자가 커질수록 자신은 더 괴로운 미로로 들어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집 안은 더 정돈되었고 지나치게 정갈했다. 물건은 움직이지 않았고, 공기는 쌓였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공간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비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담은 종종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 고개를 돌려봤다. 바람이 문짝을 건드려도, 마을에서 차 소리가 멀리서 들려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러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다가 동작이 점점 느려졌다.
어느 날부터는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고 집 안은 완전히 적막강산이었다.
그 고요 속에서 자신이 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늙고 병든 숨, 얕고 고르지 못한 숨이었다.
그러함에도 그 숨이 집 안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날 무시하는 그런 사람이었지.”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도 몰랐다.
동백아가씨에게인지, 스스로에게인지, 아니면 이미 지나간 시간에게인지….
그는 문 쪽을 오래 바라보다가 시선을 떨구었다. 이제는 누가 찾아와도 일어나 맞이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기다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다릴 수 있는 몸이 먼저 닳아 버린 것이었다. 방 안의 공기는 차갑지 않았으나 체온이 빠져나간 육신은 갓 냉장고에서 꺼낸 식은 밥과 같았다.
그날 이후 기담은 텔레비전을 다시 켰다. 하지만 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집 안을 채우도록 두었다. 그 소리 사이에서 그는 눈을 감았다. 그가 버티는 방식은 단순해졌다. 아침을 넘기고, 정오의 햇볕을 창가에서 기다리고, 해가 기울고, 밤을 맞이하는 것. 그 사이 어디에도 기다리는 사람은 끼어들지 않았고 스스로 하루를 통째로 이겨내는 시간이 유일했다.
마을 사람들은 기담의 변화를 알지 못했다. 그날도, 다음 날도, 그의 집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러나 조용함은 더 이상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침묵이 될 수 없었다. 어느 특정인의 온기를 기억해 버린 뒤에 다른 사람의 온기는 거부하는 침묵이었다. 곧 빈자리가 되었다. 기담은 그 침묵 속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특정인의 손이 잠시 머물렀던 기억만을 붙잡은 채, 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먼저 자신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한 인간의 치졸함을 떠올렸다. 스스로 그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기담에게 다시 내려앉았다.
동백아가씨는 다시 쭉 오지 않았다.
초겨울의 문턱에서 한 번 나타났을 뿐, 눈이 내리고 길이 얼어붙는 동안에는 소식이 없었다. 기담은 전화하지 않았고, 그랬으니 당연히 마음을 전하지도 않았다. 다만 집 안의 벽시계가 소리를 내고 있는지만 가끔 확인했다. 멈춰 있지 않다는 사실이면 충분했다. 겨울은 조용히 지나갔다.
요양보호사는 정해진 시간에 왔다 갔고, 부녀회 사람들은 여전히 동네에 필요한 말만 남기고 떠났다. 집은 늘 정돈돼 있었고, 텔레비전은 밤마다 일정하지 않게 켜졌다 꺼졌다. 사람의 기척을 흉내 내는 소리였지만, 기담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동백아가씨가 다시 온 건 산수유꽃이 필 무렵이었다. 봄은 그래서 좋았다.
눈이 녹아 질퍽해진 길을 따라, 이번에도 낡은 승용차가 마을 어귀에 섰다. 그녀는 예전처럼 집 앞에서 한 번 숨을 고른 뒤 문을 두드렸다. 기담은 바로 열지 않았다. 서너 박자쯤 지나서야 문을 열었다.
“바쁘셨어요?”
그녀가 물었다.
기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말에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이번에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주전자 물을 비우지 않은 채 내려놓았다. 집 안을 둘러보지도 않았다. 다만 창가에 놓인 화분을 보고 말했다.
“잎이 새로 났네요.”
기담은 그제야 화분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뒀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물을 준 날도,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에 옮긴 날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잎은 분명히 돋아 있었다.
“살아 있었네.”
기담이 말했고 동백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그날 그녀는 문을 나서며 말했다.
“다음엔 시간이 되면 올게요.”
약속 같지도, 인사 같지도 않은 말이었다. 기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을 닫은 뒤에도 한동안 서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 침묵이 무거웠겠지만, 그날은 달랐다. 무언가가 빠져나간 자리에 공기가 남아 있었다.
봄의 새싹이 꽃과 어우러질 때 그녀는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바람이 심했다. 늘 같은 시간도 아니었고, 같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밥을 먹고 갈 때도 있었고, 문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돌아간 적도 있었다.
기다림이 무덤덤해졌었다. 그녀가 온다고 해서 들뜨거나 오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녀가 왔을 때, 문을 여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을 뿐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기담 씨는 나한테 아무것도 안 묻네요.”
기담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묻는다고 달라질 게 있나.”
그녀는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그래서 잊지 않고 내가 오는 거예요.”
그 말은 고맙다는 뜻도, 미안하다는 뜻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관계를 설명하고 있었다.
여름이 오자, 마을은 더 조용해졌다. 더위에 호박잎은 늘어졌고 상추도 시들어졌다.
사람들은 더위를 핑계로 왕래를 줄였고, 기담의 집은 고요 속에 묻혔다. 여름에 온 동백아가씨는 오래 머물렀다. 부엌에서 선풍기를 켜고, 아무 말 없이 창문을 열어 두었다.
“여긴 바람이 잘 드네요.”
“그래.”
그 대화가 전부였다.
그날, 기담은 처음으로 그녀 앞에서 낮잠을 잤다. 잠에서 깼을 때 그녀는 이미 가고 없었다. 대신 선풍기는 꺼져 있었고, 창문은 반쯤 닫혀 있었다.
그는 그것이 배려라는 걸 알았다.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남겼던 흔적이었다.
마늘씨 선별로 집집이 냄새가 진동하는 가을로 접어들 무렵, 기담은 문득 깨달았다. 동백아가씨 때문에 하루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특별한 일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기다림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지 않게 되자, 시간은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해 첫서리가 내리던 날까지도 동백아가씨는 오지 않았다. 기담은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차도 사람의 기척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섰다. 텔레비전도 틀지 않았다. 대신 창가에 서서 천천히 내려앉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주변은 고요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까지 비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을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침묵 속에서 기담은 알게 되었다. 사람은 꼭 자주 만나야만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멀리 있어도 마음 한편에 조용히 머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적어도 지금의 기담에게는.
모처럼 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왔다.
기담의 집 안은 오랜만에 사람 기척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오래 닫혀 있던 방문이 삐걱거리며 열렸고, 창문이 열리자 겨울 내내 갇혀 있던 먼지가 자욱했다. 아들은 말없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걸레로 창틀을 훔쳤다. 평소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구석까지 손을 뻗어 먼지를 털어냈다.
손자는 낯선 집이 신기한지 방마다 기웃거렸다. 장롱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오래된 괘종시계 앞에 서서 한참 올려다보았다. 낡은 농기구들을 보며 “할아버지, 이건 뭐야?” 하고 묻기도 했다.
집 안에 아이 목소리로 들썩거렸고, 기담도 덩달아 웃었다. 이 집에서 아이 웃음소리를 들은 것이 얼마만 인지 가물거렸다.
점심 무렵, 아들은 자장면을 배달시켰다.
식탁 위에 윤기 나는 면 그릇을 내려놓았을 때, 잘 볶아진 자장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졌다. 그 냄새를 맡으니 예전 같으면 후루룩 면을 들이키며 금세 한 그릇을 비웠을 음식이었다. 하지만 뇌경색 이후 둔해진 손은 예전 같지 않았다. 아들은 나무 젓가락을 기담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 주었다. 몇 번이나 면을 집어 올리려 했지만 손끝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겨우 들어 올린 면이 허공에서 풀려 다시 그릇 속으로 떨어졌다.
몇 번을 그러다 보니 면이 식탁 위에 떨어졌다. 입가에 자장이 묻자 아들은 말없이 휴지를 뽑아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그 손길이 지나치게 세심해서 오히려 낯설었다. 예전에는 한 번도 아버지 입가를 닦아 준 적이 없던 손이었다. 그 손을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마음이 불편해 서운했던 기운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그 자리에서 아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 주에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함께 보러 가자고 말했다.
“아버지도 한번 가셔야죠.”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계산된 듯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싹싹한가?’
기담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며칠 뒤 요양병원에서 만난 아내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어이구, 왔네 왔어.”
얼굴에는 반가움이 넘쳤고, 눈빛에는 금방이라도 집으로 돌아갈 사람 같은 기대가 부풀었다. 퇴원해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고향집이 이미 팔렸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들은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자는 침대 옆을 맴돌며 할머니 손을 만지작거렸다. 잠시 뜸을 들이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요즘 사업이 좀 어렵습니다.”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섬유 사업은 국내 업체들끼리도 경쟁이 치열했지만, 요즘은 값싼 중국산 제품이 밀려 와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했다. 거래처가 하나둘 끊기고, 남은 주문도 단가를 계속 낮추려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말끝을 흐리며 병원비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병원비가 매달 나가다 보니까.”
말은 조심스럽게 꺼냈지만, 속내는 이미 정해진 듯했다. 기담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평생 논밭을 일구며 모은 돈으로 지은 대궐 같은 집을 팔아 넘긴 일이 떠올랐다. 그 돈이 어디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아들도, 며느리도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 지금 아들의 입에서 그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어려운 사정만 길게 늘어놓고 있었다. 기담은 천천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바람이 병원 마당의 나무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그 바람 소리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그 이후로 아들은 자주 찾아왔다.
말수는 적었고, 탁자 위에는 병원비 명세서를 차곡차곡 올려놓았다.
“이번 달도 이만큼이에요.”
기담은 종이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병원비 내역은 아내의 골절에 대한 고통을 설명하지 못했고, 다만 높은 산처럼 높고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어느 날 아들은 가슴에 눌러 두었던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 산소 있는 산 있잖아요, 그거 팔아야 할 것 같아요?”
기담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산은 안 된다.”
그 뒤로도 아들은 산 이야기를 직접 꺼내지 않았지만 무언의 압박은 쌓여 갔다.
“어차피 아무도 안 가는 산이잖아요. 산만 정리되면 숨통이 트여요.”
기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명하는 순간, 산이 이미 남의 것이 되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산은 재산이 아니라 가족의 역사이고 마지막 보루였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삽으로 파헤쳐진 산소 앞에서 낡은 서류 뭉치가 드러났다. 가족의 이름이 적힌 종이였다. 숨이 막혀 헐떡이다가 깨어났다.
다음 날, 아들은 병원비 명세서 대신 산의 등기부 등본을 내려놓았다.
“이미 알아봤어요.”
그제야 기담은 깨달았다.
이 요구는 허락을 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안 된다. 그 산은 땅이 아니다.”
며칠 뒤 아내에게 병문안을 가 아들이 산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산 얘기했나?”
아들은 경직되어 있었고, 기담은 말이 없었다.
아내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산이 그냥 산인 줄 아나.”
아내는 침착하게 조용히 말을 이었다.
젊은 시절, 사고로 사람이 죽었다. 신고하면 집안이 무너질 상황이었고, 두 개의 산소 중 하나는 그를 묻었다.하나는 조상의 묘, 다른 하나는 말할 수 없는 사정이 묻힌 자리다.
“산 팔면 다 드러나.”
“유골도 기록도.”
아들은 뜨끔하게 놀랐다. 이 산은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끝까지 묻어 둬야 할 가족의 과거였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버지가 산을 지키는 건 재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인생이 죄인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다.”
기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나도 나이가 됐으니 같이 그 산으로 가야지.”
아들은 석고상처럼 굳어 버렸다. 그 순간 산은 더 이상 땅이 아니었다. 가족 전체를 삼킬 수 있는 씽크홀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아들은 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전화도 줄었고, 찾아오는 것도 뜸해졌다. 승용차만 마당에 세워 두고 방으로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기담은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다시 복잡한 터널로 끌려갈 것 같았다. 침묵은 수긍한 것처럼 보였지만, 믿을 수 없는 평화였다. 아들은 요양병원에 혼자 갔다. 기담이 함께 가자고 해도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댔다.
아내 역시 기담이 같이 오지 않음을 묻지 않았다. 오지 않는 것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기담의 하루는 더 조용해졌다. 텔레비전은 켜 두기만 했다. 화면은 보지 않았고, 시간만 흘려보냈다. 아들이 오지 않는 날 혼자 자장면을 시켰다. 젓가락질은 여전히 서툴렀고 상 위는 어질러졌다. 닦아 줄 사람은 없었다. 싱크대로 빈 그릇을 옮기다 손에서 놓쳤다.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접시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고요한 집에 오래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면 어둠뿐인데 시선은 늘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산이 있는 쪽이었다.
며칠 뒤,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몸은 좀 어떠세요.’
짧은 문장이었다. 기담은 한참 바라보다가 ‘괜찮다’라고 답했다. 그 뒤로 답장은 없었다. 기담은 생각했다. 이 침묵은 물러남이 아니라 숨 고르기일지도 모른다고. 사람은 진짜 결정을 앞두면 말을 줄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들이 멀리 있었고 산은 가까워보였다.
꿈속에서도, 깨어 있는 동안에도, 지키고 있다는 느낌보다 언젠가 다시 입에서 나올 이름처럼 느껴졌다.
기담은 알았다. 아들이 다시 돌아올 때는 말을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론을 확인하러 올 것이라는 걸 예측했다. 병든 몸이었지만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았다.
그는 인감도장을 깊숙이 숨겼다. 지킬 수 있는 마지막이 그것뿐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지금 집 안에 가득 찬 공기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산과 관련된 가족사는 오래된 흙처럼 눅진하게 묻혀 있었다.
겉으로는 마른 흙처럼 보였지만, 한 번 건드리면 속에서부터 축축한 기운이 올라오는 그런 흙이었다.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했다. 사람이 죽으면 슬퍼하기보다 먼저 숨길 방법을 찾았다.
그때 죽은 사람은 떠돌이였다. 연고도, 찾는 이도 없는 사람이었다. 잠잘 곳과 밥을 주는 대신 일을 시켰다. 머슴과 비슷했다.
산 중턱에서 반짝이던 광맥 같은 것이 보였다. 탄광이라도 해 보려던 참이었다. 일은 시작부터 허술했다. 도구도, 준비도, 책임성도 부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바위 하나가 미끄러지듯 굴러 떨어졌다. 그 아래에 있던 사람의 머리를 그대로 덮쳤다. 악하는 소리는 짧았다. 바위보다 그의 숨이 더 짧았다. 그 자리에서 삶이 끝이었다.
그날 밤, 기담의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은 이미 결정을 암시했다. 신고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상황이었다. 사람 하나의 죽음이 아니라, 집안 전체가 무너질 일이었다. 결국 선택은 하나였다. 그 사람의 죽은 사실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묻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주변에서 사람이 죽은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산 아래에서 일을 돕던 이웃이었다. 그들의 입을 막아야 했다. 기담의 아버지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집 뒤편 창고에서 배급으로 받아 두었던 밀가루 자루를 꺼냈다. 두 포대는 박씨 집으로, 두 포대는 최씨 집으로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옮겼다.
문을 두드릴 때마다 손이 떨렸다.
“이건 그냥.”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신 허리를 굽혔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못 본 걸로 해 주시오, 이 일은, 그냥.”
부탁이었고, 거래였고,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그날 밤, 밀가루는 입막음이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침묵해 줄 것임을 동의해 준 셈이었다. 그 순간 한 사람의 죽음은 여러 사람에게 비밀이 되었다.
그날 이후,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었다. 두 개의 봉분 중 하나는 조상의 자리였고, 다른 하나는 이름조차 남지 못한 자리였다. 기담은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어른들의 눈빛, 밤공기의 눅눅함, 삽으로 흙을 퍼내던 둔탁한 소리, 그리고 다음 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밥을 먹던 사람들의 얼굴. 그 모든 것이 뇌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모르고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알면서 덮어 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생 그 산을 떠나지 못했다.
산이 좋아서도 아니었고, 땅이 귀해서도 아니었다. 그 산에는 가족의 시간이 묻혀 있었다. 정확히는 가족의 엄청난 치부가 묻혀 있었다. 겉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산이었다. 나무가 자라고, 바람이 지나가고, 계절이 바뀌는 곳. 그러나 기담에게 그곳은 늘 멈춰 있었다. 그날 밤 이후로 그곳이 무너지면 흙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온 집안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는 더 강하게 그 산에 매달렸다.
그 산을 금은보화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무너지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재산이었지만, 그에게는 경계선이었다. 선을 넘으면 드러나고, 드러나면 끝나는 것. 그는 평생 그 선을 지키며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깨닫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비밀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 하나를 묻은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함께 짊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 짐은 시간이 지난다고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말하지 않을수록 더 깊이 박혔다.
그는 가끔 생각했다.
‘나는 그날의 공범인가?’
직접 손으로 흙을 퍼내지 않았더라도,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침묵에 동조했으며,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밥을 먹었다. 이미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태연한 척 살아왔다.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고, 웃으며 살아왔다. 모든 시간이 커튼에 가려진 시간 위에 쌓인다는 것을 알면서 더 지켜야 했다. 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게 막는 일이었다. 그 산이 파헤쳐지는 순간, 흙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삶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지키고 있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죄인의 울타리였다. 그래서 더 놓을 수 없었다. 놓는 순간, 온 가족은 죄인이라는 오명을 갖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뇌경색으로 장애인이 된 이유 또한 그 산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뇌경색은 뇌혈관이 막혀 뇌 조직이 손상되는 질환이 아닌가. 남에게 털어놓지 못한 채 끙끙 앓아 온 수십 년의 시간이 결국 몸을 서서히 압박해 온 것은 아닐까 싶었다.
며칠 뒤 기담은 녹음기를 켰다.
“그날은 사람이 죽었다.”
처음으로, 깊숙이 감춰진 과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삽질 소리, 밀가루 자루, 어둠 속에서 굽혔던 허리 등.
“우리는 다 같이 묻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한 사람을 여러 사람이 나눠서…”
아들은 그 녹음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이어받으려 했던 것은 산이 아니라, 숨겨진 가족사의 고통이었다는 것을. 녹음을 들은 후 아들은 혼자 산에 올라갔다. 두 개의 봉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조상의 묘가 아닌 이름을 알수 없는 산소 앞으로 가 자신도 모르게 꿇어앉게 되었고 눈물이 나왔다. 두 줄기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 턱선에서 모여 잔디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아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올라갈 때와 길은 같았지만, 돌아오는 길은 전혀 다른 길처럼 느껴졌다. 산에 묻혀 있던 것은 단순한 유골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시간,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가족의 얼굴이 함께 묻혀 있는 듯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늦었지만 숨기지 않겠다.’
그러나 곧 발걸음이 멈추듯 생각도 멈췄다.
드러내는 순간에 벌어질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 집안의 과거,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법과 도리 사이, 진실과 은폐 사이에서 그는 어느 쪽으로도 쉽게 발을 내디딜 수 없었다. 숨기자니 숨이 막혔고, 드러내자니 삶이 무너질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집에 도착했다.
기담은 그 사이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녹음한 후 그의 얼굴에는 묘한 평온이 내려앉았다. 무언가를 끝낸 사람의 얼굴이었다. 여전히 손은 떨렸고 말은 느렸지만, 마음만큼은 이전보다 가벼워진 듯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지만 화면을 보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숨기는 시간은 이제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아들이 들어왔다.
아들의 얼굴은 온갖 상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한참을 서 있다가,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녹음기를 집어 들었다. 버튼을 눌렀다.
‘그날은 사람이 죽었다.’
기담의 목소리가 다시 방 안에 흘렀다.
아들은 끝까지 들었다.
한 번도 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녹음기 소리가 끝나자, 방 안은 조용해졌다.
아들은 녹음기를 내려놓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아버지.”
잠시 멈췄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 말은 재촉이었다. 결정을 미룰 수 없다는 압박과 혼자 짊어지기에는 버거운 무게가 함께 실려 있었다. 기담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예전과 달랐다. 아들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보는 눈이었다.
기담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는…”
말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이 아비가 어떻게 할 게 아니다.”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하다.”
방 안의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 말은 단순한 전가가 아니었다. 오래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기담은 덧붙이지 않았다. 설명도, 설득도 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몫은 끝났다는 듯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자신에게 무엇이 넘어왔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산이 아니라, 결정이었다. 재산이 아니라, 가족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이었다. 그날 이후, 집 안의 공기는 조금 달라졌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기담은 더 이상 산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묻지도, 확인하지도 않았다. 대신 아들이 가끔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시선은 늘 같은 방향에 머물렀다. 산이 있는 쪽이었다. 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더 깊은 선택의 시간이 되고 있음을 기담은 알고 있었다.
드러낼 것인가? 묻어 둘 것인가?
아들은 매일 창밖을 바라보며 서서 골똘하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선택은 누군가에게 물어 답을 들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이 맺힌 것을 스스로 풀어야 하는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동백아가씨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들르던 발걸음이 끊기자, 기담은 별다른 이유 없이도 자주 문밖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 인기척이 났다. 기담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낯선 중년 여인이 한 사람을 부축해 데리고 들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백아가씨였다.
그러나 예전의 모습은 아니었다. 몸은 같았지만, 정신이 조금 빠져나간 듯한 얼굴이었다. 눈은 떠 있었으나 시선은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았다.
기담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디 안 좋으신가요?”
부축하고 온 여인이 대신 대답했다.
“병원에서 치매라고 하더라고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덧붙였다.
“알츠하이머라는데 진행이 빠르대요. 기억도, 생각도 점점 잃어버릴 수 있다고요.”
중년 여인은 말끝을 흐렸다. 기담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이 온전히 들어오지는 않았다. 눈앞의 모습이 이미 모든 설명을 대신하고 있었다.
동백아가씨는 기담을 바라보지 않았다. 아니, 바라보지 못했다. 그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이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예전에는 먼저 말을 건네고, 웃고, 안부를 묻던 사람이었다. 심지어는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홀라당 벗어던지고 기담의 손을 끌어 당겨 본인의 젖무덤을 어루만지도록 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그 기억이 기담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은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기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한 사람의 시간이 눈앞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만을 느끼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곳의 주소를 알고 찾아오게 되었는지 부축해 온 여인에게 물었다.
그녀는 요양보호사라고 했다. 동백아가씨가 창문을 통해 먼 산을 바라보며 “기담씨, 기담씨”라고 중얼거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집 안을 뒤져 보았고, 책상 서랍에서 주소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래서 별다른 준비도 없이 무작정 이곳까지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러고는 기담을 바라보며 말했다.
와서 보니 당신 또한 몸이 성하지 않은 노인이었고,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신이 흐릿한 치매 환자가 왜 기담이라는 이름을 불렀는지, 왜 이곳을 그토록 찾았는지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어색한 침묵 속에 서성이다가, 결국 동백아가씨 일행은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 이후로 집 안은 또 조용해졌다.
최근 들어 기담의 아들은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 어떤 말도 꺼내지 않으려는 듯했다. 사고로 죽은 사람을 소리 소문 없이 묻었다는 사실, 그 사실은 집 안 공기처럼 꽉 눌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만약 그 산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간다면, 그날 일이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되는 순간, 이미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까지 가족 모두가 한 줄로 엮여 법정에 서게 될 운명이었다.
산을 매각하자는 말도, 그 일을 세상에 드러내자는 말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아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산으로 올라갔다.
어디를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묻지 않았다. 몇 시간이고 머물다 내려왔고, 돌아올 때마다 손에는 늘 흙이 묻어 있었다. 그 흙은 단순한 흙이 아니라, 덮어둔 시간의 흔적처럼 보였다.
어느 날, 기담은 몰래 뒤를 따라 올라간 적이 있었다. 뇌경색으로 반쪽이 굳어 버린 몸을 이끌고, 숨을 죽이며 한 걸음씩 옮겼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다리는 본인 것이 아닌 것처럼 떨렸고, 심장은 지은 죄를 들킨 사람처럼 빠르게 뛰었다.
몸속의 병은 단순한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혈관이 막혀 쓰러졌던 날, 그 병이 스스로 지은 죄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이건 벌이다.”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숨겨야 했던 것을 깊이 묻어 두었으니, 그것이 결국 혈관 어딘가를 막아 버렸다고 여겼다. 흘러야 할 것은 흐르지 못하고, 멈춰서는 안 될 것은 멈춰 버렸다. 뇌경색이 바로 그런 삶에 내려진 벌이라고 생각했다.
두 개의 봉분 앞에서 아들은 혼자 앉아 있었다.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며 돌을 고르고, 손으로 만져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내려놓고 또 다른 돌을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르다가 모양이 반듯한 돌 하나를 들고 와 이름 없는 봉분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돌 하나를 놓는 데도 마치 사람을 대하듯 조심스러웠다.
그다음에는 나뭇가지를 꺾어 와 끈으로 묶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엉성해 보였지만, 몇 번이나 풀고 다시 묶기를 반복했다. 손에 익지 않은 사람의 서툰 정성이었지만, 그 안에는 잔잔한 마음을 담았다. 마침내 하나의 모양이 만들어졌다. 나무로 만든 작은 비목(碑木)이었다.
기담은 그때 처음으로 비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 대신 나무로 세운 묘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사람을 위해 세우는 혼이었다. 아들은 그것을 봉분 앞에 세웠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사죄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기담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저 아이가 짊어진 게 다 누구 때문인가?
입으로는 한 번도 밝히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그 선택이 자식의 평생을 붙잡아 두고 있는 듯했다. 그는 문득 자신의 몸을 되뇌어보았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 의지와 다르게 끌려다니는 다리, 그것이 늙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땅에 묻은 것은 시체가 아니라, 자신의 병치레를 되돌려 받은 환생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죄는 땅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핏속으로 스며들어, 결국 그의 몸 한쪽을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기담의 눈이 젖었다. 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목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잘못했다.”
그러나 그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다시 가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아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돌려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게 이름 하나라도, 기억 하나라도 남겨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기담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조용히 내려왔다. 부르지 않았다.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저 짐작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신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사죄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바지 곳곳은 여전히 흙이 남아 있었다. 기담은 그를 바라보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마음속에는 죄송함이 먼저였다. 갈 곳이 없었다고는 하나, 고인의 시신을 서둘러 묻는데 급급했던 그날의 선택은 지금까지도 뼈에 사무치게 후회로 남아 있었다.
그 일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온 지난 세월은, 그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기담은 문득 깨달았다. 이 모든 속사정이 쌓이고 쌓여, 결국 뇌경색이라는 병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온 것이 아닐까 하고 가슴을 쳤다. 몸 한쪽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살아가는 지금의 삶이 어쩌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받아 들었다.
동백아가씨는 그 뒤로 몇 번 더 찾아왔지만, 점점 말을 잃어갔다.
기담을 알아보지 못했고, 어느 날은 자기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기억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마치 오래된 산의 흙이 조금씩 깎여 나가듯이 무너지고 있었다. 기담은 생각했다. 누군가는 너무 많이 기억해서 무너지고, 누군가는 기억을 잃어서 무너진다는 것 같았다. 동백아가씨는 너무 빨리 잊어가고 있었다.
아들은 그 사이 또 산에 갔다.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바람이 불고, 풀은 자랐고, 비목은 쓰러지지 않았다.
산에는 조금씩 사람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픈 흔적이 잊혀져가고 있었다. 알츠하이머 치매처럼 기억이 사라지고 있었다.
세월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병든 자의 신음이나 건강한 자의 활기에도 차별을 두지 않는다.
굽은 허리의 노인에게도, 푸른 꿈을 품은 젊은이에게도 시간은 같은 보폭으로 다가와 누구에게나 공평한 하루를 내어주고, 그 생(生)과 함께 흘러간다.
흐르는 강물 앞에 만물이 평등하듯, 모두는 같은 시간 위에서 각자의 계절을 맞고 보내는 동행자이다.
혼자 집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자 기담을 요양원에 입원시켰다. 기담의 아들이 그렇게 조치했다. 그렇게 세월과 함께, 노인들은 하나둘 삶의 자리를 옮겨 가며 결국은 죽음과 묻히게 될 땅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옮겨 온 뒤, 기담의 하루는 길고도 지루하게 흘러갔다.
시간은 분명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 흐름은 집에서 살아오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 아침과 점심, 저녁이 나뉘어 있을 뿐, 하루는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창밖의 해가 떠오르고 지는 일조차, 그저 정해진 순서를 되풀이하는 의식처럼 보였다.
복도에는 같은 냄새가 감돌았다. 소독약과 미음, 그리고 오래된 이불에서 배어 나오는 눅진한 체취가 뒤섞여 있었다. 텔레비전은 하루 종일 비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요양보호사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몸은 날이 갈수록 생각을 따르지 않았다. 왼쪽 다리는 끌리듯 힘없이 뒤따랐고, 손은 힘을 주어도 좀처럼 오므라들지 않았다. 숟가락 하나 제대로 쥐는 일조차 버거웠다. 그럼에도 이따금 방을 나서 복도로 향하곤 했다. 그것은 걷는 일이라기보다, 무너져가는 몸을 힘겹게 끌어내는 시간이었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오히려 생각은 또렷해졌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장면만이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몸을 움직였다. 육신을 움직이기 위함이 아니라, 끝내 무너져내리지 않으려는 마음을 붙들기 위해서였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복도 끝 창가 쪽에 휠체어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앉아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었고, 그 사연은 서로에게 쉽게 내보이지 않는 것이 마치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그저 지나치려던 순간이었다. 창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앉아 있는 여자의 머릿결을 스쳐 흔들었다. 그것은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그 잔잔한 흔들림이 기담의 시선을 붙잡았다.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오래전 어디선가 마주한 듯한 기억이 뇌가 감지했다. 기담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까닭 없이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그는 이끌리듯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발끝이 바닥을 끌면서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 창가 쪽으로 기울어진 옆모습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시간이 그 자리에 멈춰 선 듯, 숨조차 이어지지 않았다.
동백아가씨였다.
예전의 그 얼굴은 아니었다. 같은 얼굴이었지만, 그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시간이 거의 지워진 듯했다. 웃음이 머물던 자리도, 슬픔을 나타내던 눈동자도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눈은 분명 떠 있었지만, 그 시선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하면서도,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눈이었다. 기담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었지만, 몸은 오히려 굳어 갔다. 입을 열려 했으나, 목 안쪽이 메말라 붙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참 만에, 겨우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동백아가씨.”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기담의 가슴에서 오래 묻어 두었던 시간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봄바람이 불던 날의 웃음, 노을에 비추어진 아담한 어깨, 끝내 건네지 못했던 수많은 말들이 한꺼번에 울대를 밀어 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치 그 이름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소리인 것처럼,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기담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잡는 순간, 자신이 낯선 현실에 닿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숨을 고르며 또렷하게 불렀다.
“동백아가씨 나야. 기담이.”
그제야 그녀의 시선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기담의 얼굴을 향해 오는 듯했지만, 그 눈은 끝내 그에게 머물지 못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 사람이 있던 자리를 스친 뒤 어딘가 먼 기억의 뒤편을 더듬는 눈이었다. 기담은 그 시선에서 자신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바로 앞에 서 있는데도, 그녀에게는 닿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기…담”
그 한 마디였다.
그 이름이 불린 순간, 기담의 가슴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꿍꽝거렸다. 그것은 기쁨이 아니라, 곧 사라질 것을 예감하는 짧은 절망의 순간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흔들렸고, 방금 스쳐 지나간 이름조차 곧 놓쳐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기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녀는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는 자리에서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허무하게 느껴졌다.
기담은 가슴이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숨이 막힌 듯, 아무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흔들리던 시선이 이내 힘없이 풀리더니, 그녀의 눈은 다시 낯선 자리로 돌아갔다.
“누구세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무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
조금 전까지 분명히 불렸던 이름이, 눈앞에서 물처럼 흩어져버렸다. 기담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발이 말을 듣지 않아 중심이 흔들렸지만, 그보다 크게 흔들린 것은 가슴이었다.
그녀는 기담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정신이 떠나 있던 사람이었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담은 그녀와 추억과 인연을 붙잡고 싶었지만, 그녀의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복도 끝, 희미한 형광등 아래에 있는 간호사실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는 손끝이 묘하게 낯설었다. 이름 하나를 확인하는 일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질 줄은 미처 몰랐다.
“저, 아까 휠체어에 계시던 분, 혹시…”
말끝을 맺지 못한 채, 기담은 떠오르는 얼굴을 더듬으며 서툰 설명을 이어갔다. 간호사는 기록지를 한 장 넘기더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히 말했다.
“203호요. 정화란 어르신이세요. 알츠하이머 치매가 꽤 진행된 상태고요.”
정화란.
그 이름이 기담의 귓속에서 천천히 울렸다. 동백아가씨의 이름이 정화란이었다는 사실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기담은 한 번도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았고, 그녀 또한 끝내 말해 준 적이 없었다. 그저 동백아가씨 그 이름 하나로 충분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이름이, 그녀가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는 순간에 건네받았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기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오히려 더 멀어져 버린 거리감이 생겼다.
동백아가씨는 사라지고, 정화란이라는 이름만이 남았다. 그마저도, 그녀 안에서는 서서히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도에서 다시 그녀를 마주했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기담의 손등 위에 조용하게 얹혔다. 뜻밖의 접촉이었다. 그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보지 않은 채,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그 손만은 놓지 않고 있었다.
기담은 어슴푸레 기억이 되살아났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집 안에 갇힌 듯 지내며 사람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던 시간들. 몇 번이나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망설이던 날들. 처음으로 그녀를 집으로 불러 마주하던 날이 떠올랐다. 오랜 망설임 끝에 겨우 누른 번호,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그래서 더욱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었다.
그녀가 지금 앞에 와 있었다. 여러 번 스쳐 지나간 삶의 끝자락에서 다시 이어진 인연이었다.
그 뒤로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지면서 기담의 마음도 함께 저물어 갔다. 그 시간을 건너, 이렇게 다시 마주 앉게 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지금, 같은 지붕 아래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어느 때보다 멀리 가 있었다. 기담보다도 자신의 시간에서조차 벗어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인연이 이어진 것인지, 아니면 이미 끝난 것을 뒤늦게 붙잡고 있는 것인지, 기담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살아 있는 동안 이렇게까지 엇갈릴 수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그때였다.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해요.”
누구를 향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건네는 말일지도 몰랐다. 그 말은 방향 없이 떠돌았다, 그 말은 기담의 가슴 깊은 곳에 조용히 꽂혔다. 기담의 눈이 붉어졌다. 입술이 떨렸지만, 끝내 ‘동백아가씨’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는 굳은 손을 겨우 들어 그녀의 손 위에 겹쳐 올렸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애매한 온기가 오래전의 기억을 불러냈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미안하긴, 뭘?”
그 한 마디를 꺼내 놓고는 가슴이 아팠다.
“내가 미안하다.”
그 말 속에는 그동안 하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담겨 있었다. 붙잡지 못한 순간들, 외면했던 시간들, 끝내 돌아보지 못한 마음들까지. 말이 끝나자, 기담의 어깨가 천천히 무너졌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동백아가씨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그 손만은 끝내 놓지 않고 있었다. 복도 끝 창문으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커튼이 천천히 흔들렸다. 마치 두 사람이 지나온 시간이, 이제야 조용히 숨을 고르는 듯했다.
노인요양원을 두고 사람들은 말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으로 향하는 마지막 문이라 한다. 그 문을 나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다고 하나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요양원은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더는 버티지 못할 때 몸이 먼저 무너지고, 기억이 부서질 때, 결국 그 문 앞에 서게 된다. 돌아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는 혼자서 견딜 수 없을 때 가는 곳이다. 남아 있는 시간보다 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더 짧아진 순간이 임박했을 때다. 자식은 스스로 삶과 시간을 붙잡고 현실로 가야 하고, 부모는 삶을 놓으며 억세게 견뎌온 시간을 포기하며 물러선다.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있을 수 없게 되는 그 잔인한 자리가 요양원이다. 그래서 요양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한 사람이 평생 붙들고 살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마지막 자리다.
요양원, 요양병원, 주간보호센터 이 모든 이름은 결국 하나를 말한다. 쇠약한 사람이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는 현장이다.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알게 된다. 그곳은 기다림의 장소이다.
누군가는 이름을 잊고, 누군가는 얼굴을 잊고, 사랑했던 사람마저 잊는다. 그렇게 하나씩 놓아버리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까지 놓아버리는 곳이다. 비명 없이 조용하게, 분명하게 이 세상의 끝을 향해 가는 곳이다.
요양원에 들어온 뒤로, 기담의 하루는 더 길어졌다. 몸이 불편해진 탓만은 아니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더 또렷해졌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잊어 간다고했지만, 기담은 오히려 반대였다. 잊어야 할 것들이 더 선명해졌다. 그는 종종 생각했다. 이제는 죽을 때도 되었으니 모든 일도 함께 마음에 묻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산속에 묻어 둔 것처럼 자신의 안에 묻어 둔 채로. 그렇게 사라지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기담은 혼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몸을 지탱하는 일조차 버거웠지만, 끝내 남의 손에 자신을 맡기지 않으려는 습관이 그를 붙들고 있었다. 차가운 타일 위에 손을 짚는 순간,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졌다.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졌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만, 한 시대를 버티어 온 숨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고 이내 고요했다.
기담의 아내는 요양병원에 있었다.
몸은 살아 있었지만, 기담이 알던 그 사람은 아니었다. 눈을 뜨고 있었으나, 그 눈은 늘 멈추는 장소를 벗어나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거동이 가능할 때 기담이 찾아가 손을 잡아도 아내는 그 손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한때는 서로의 생을 기대어 견디던 사람, 가난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한 길을 걸어온 사람, 이제는 같은 시간 속에서도 서로 닿지 않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말은 없었고, 기억도 없었고, 다만 숨만 이어지고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이 끝내는 자리는 비슷하다. 기억이 먼저 떠나고, 몸이 뒤따르며, 남은 이들이 그 빈자리를 감당하는 순서다. 늙음이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회가 함께 짊어지는 숙명이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생의 끝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마지막으로 머무는 자리이다. 그곳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있음’ 속의 고독이었다. 수많은 노인의 같이 모여 있지만, 각자의 시간은 점점 단절되어 갔다.
아들은 더 이상 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끝까지 밀어붙이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었다. 그 산이 단순한 땅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끔 혼자 산에 올랐다. 잡초가 무성한 길을 헤치고 들어가 그 자리에 섰다. 비목 앞에 서면 이상하게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한참을 서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사과를 하는 것인지,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침묵이 더 진실했다.
그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일인지, 아버지의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몫인지. 분명한 것은 집안의 일이고 자신까지 이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동백아가씨는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그 다음 주가 지나도 복도 끝 창가에는 더 이상 그녀가 앉아 있지 않았다. 기담이 마지막으로 남겨 두었던 시선도 그 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았다.
간호사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치매 전문요양원으로 옮기셨어요.”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이, 그녀는 또 한 번 기담의 시간에서 사라졌다. 이번에는 영영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장소로 가버렸다.
누군가는 기억을 잃었고, 누군가는 잊지 못한 채 가슴이 무너졌으며, 침묵만 남았다.
인연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도 보이지 않게 얽혀 있는 것이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사라지기도 했고, 또 다른 형태로 남아 있기도 했다.
기억과 인연은 붙잡는다고 머무는 것도 아니고, 놓는다고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남고 떠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정리되어 가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 했고, 또 팔자라 불렀다.
바람이 산을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지나갈 뿐이었다.
사람들은 바람처럼 각자의 몫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축복을 받지만, 떠날 때는 슬픔을 남긴다. 그 슬픔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함께 얽혀 살아온 시간의 무게 때문이다. 기쁨이든 고통이든, 좋았던 날이든 모진 날이든, 서로의 삶을 스쳐 지나며 남긴 흔적이기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하나의 몸으로 와서 하나의 몸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관계와 기억, 그리고 서로에게 남긴 보이지 않는 흔적들이다.
기담,
기담의 아내,
기담의 아들,
동백아가씨 또한 그러하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