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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성공사례

돌땅에서 이룩한 새마을의 산 증거 -북제주 장경욱-

작성자우보|작성시간11.09.13|조회수34 목록 댓글 0

돌땅에서 이룩한 새마을의 산 증거

 

제주 북제주군 한림읍 옹포리

지도자 장 경 욱 (38세)

 

돌과 바람이 많은 옹포리 마을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31km 떨어진 일주 도로변 해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450가구에 1,822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어촌마을이다.

옛날에는 제주도내에서 유일한 포구라 하여 독포라고 불리기도 하였으나 그 후 얼마동안은 덕포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포구 모양이 항아리와 같다하여 옹포리라고 행정구역을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주도 대부분의 토지가 그러하듯이 이 마을도 돌과 바위투성이로서 불과 10년 전만 하여도 1년 내내 조와 고구마를 섞은 밥먹이밥을 주식으로 해왔으며 마을주민들은 눈앞의 일만 생각하고 마을의 발전을 위하는 공동사업은 쉽게 추진하려 아니하고 하늘이 주신 그대로 생활하고 있었다. 마을공동이용시설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마을안길은 꼬불꼬불 한 채로 겨우 우마차가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았으며 문화생활면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이었다.

 

오늘을 있게 한 지도자의 탄생

 

이 무렵 한림 수산업협동조합에 근무하는 장 경욱 씨가 고향 옹포마을의 가난을 씻어 보겠다고 1975년 새마을지도자로 자원한 후 좀처럼 새마을사업에 대한 의욕을 갖지 못하고 있던 주민들을 끈질기게 설득하면서 온갖 시련과 역경 속에서 강인한 의지와 끈질긴 노력으로 주민들을 일치단결 시켜 꾸준히 추진한 새마을운동은 수백 년 동안 이루지 못하였던 빈곤과 낙후를 불과 수년 동안에 바꾸어 잘 살고 발전된 마을로 성취하는 큰 변혁을 가져왔다.

 

마을 숙원사업 추진

 

장 지도자는 먼저 마을의 의욕 있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어촌마을에 가장 긴요한 선착장시설을 확장키로 하였다. 기존 선착장시설이 짧고 빈약하여 어업에 불편을 겪고 있었다. 선착장 확장사업에 착수한 장 지도자는 비판적이고 소극적인 주민들을 설득하여 가면서 4개월에 걸쳐 연 1,000명이 동원된 고된 작업 끝에 마침내 50m 의 튼튼한 선착장이 완공을 보게 되었으며 스스로 이룩한 성과 앞에 주민들은 새마을사업에 대한 새로운 의식과 의욕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장 지도자는 1977년 초에 마을주민의 오랜 숙원인 마을회관을 건립키로 하고 2,5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한 후 돌을 깨어 지반을 고르면서 사업 착수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마을회관은 당초 30평을 건립키로 계획하였으나 회관건립 소식을 들은 일본에 있는 이곳 출신 교포들로부터 500만원 성금이 지원되어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50평으로 늘려 공사를 추진하게 되었다. 1년이 넘도록 장 지도자와 주민은 혼연일체가 되어 땀 흘린 보람으로 1977년 8월에는 드디어 완공을 보게 되었으며 회관 앞 2,000여 평의 공지에는 1m 이상을 복토하여 마을광장까지도 마련할 수 있었다.

회관준공식에 참석한 주민들은 이제야 우리 마을도 새마을대열에 앞장서게 되었다는 긍지와 자신감이 충만하였으며 부자마을을 향한 결의를 새롭게 하였다.

 

돌땅을 옥토로 만들고

 

특히 회관광장의 복토과정에서 돌과 암반투성이 인 마을 땅도 흙을 돋우면 충분히 농토를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을 얻은 주민들은 버려진 땅을 경작지로 조성할 의욕에 찬 계획을 수립하고 대상지를 선정한 후 농토조성사업에 착수하였다. 주민들은 새로운 농토를 가진다는 부푼 기대와 희망으로 손발이 닳는 고생도 참고 견디면서 수많은 돌을 주워 냈으며 마을 주변에 흙이 부족하여 2km 떨어진 한림화력발전소 터파기 공사장에서 수천 트럭분에 달하는 흙을 운반 하였으며 군의 보유 장비를 지원받아 경작이 가능하도록 흙 고르기 작업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3년 동안 주민들이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 3만 평에 달하는 귀중한 농토를 새로이 조성함으로써 주민 의식 속에 어떤 역경이든 노력만 하면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이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힘들여 가꾼 귀중한 농토에 양파, 참깨, 유채 등의 경제작물을 재배하여 매년 1억 5천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주민들은 마을의 토질과 기후에는 감귤재배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왔으나 수년간 퇴비와 해초를 계속 넣어 토질을 비옥하게 하고 해풍에 견디도록 방풍림을 조성하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인 보람이 있어 8ha의 귤밭을 조성하여 수확을 보게 되었으며 앞으로 면적을 더 확대 해 나갈 계획이다. 새로운 소득증대에 눈을 뜨게 된 주민들은 축산에도 주력하여 인근 이시돌목장과 계약 사육 방식으로 돼지 사육도 하게 되었으며 주변에 풍부한 초지를 이용하여 한우 사육도 확대해 나감으로서 소득원의 다변화를 꾀하게 되었다.

 

바다 속의 자원을 개발하고

 

이처럼 의욕적인 소득사업을 추진하면서 장 지도자는 평소의 소망이었던 소라양식장 조성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우선 해초에 자랄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로 하고 농지조성 과정에서 나온 돌과 인근에 많이 널려있는 돌을 여기에 활용하기로 하고 마을주민들은 인내와 끈기로 여러 가지 역경을 극복하면서 깨어진 돌을 등짐으로 해변에 운반하여 모아진 돌을 하나하나 새끼로 묶어 해초가 쉽게 부착할 수 있도록 한 후 투석작업에 편리한 10여척의 뗏목 배를 만들어 위험을 무릅쓰고 수개월동안 수백트럭분의 돌을 바다에 집어넣고 1977년 초에 처음으로 2,500kg의 종패를 살포하고 주민 모두가 부푼 기대를 갖고 초조하게 기다렸으나 6개월이 지나면 채취할 수 있다는 소라는 말라죽은 껍질만이 해변에 떠올라 버리자, 주민들의 허탈과 추궁의 눈초리 앞에 선 장 지도자의 가슴은 자책감으로 가득차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장 지도자는 한림읍내에 있는 수산진흥원지원에서 살포된 소라종패가 모랫바닥에 떨어질 때 뒤집혀지면 죽게 된다는 실패원인을 알고 선뜻 나서지 않는 주민들에게 한번만 더 분발해 보자고 설득하면서 5,000kg의 종패를 구하여 사업을 다시 시작하였다. 주민들은 지난번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190여명의 마을해녀들이 중심이 되어 고된 작업을 마다하지 않고 살포와 동시에 뒤집혀진 소라를 일일이 바로 잡아 놓았다. 이렇게 하여 모래와 암반으로 해초마저 자라지 않던 마을 앞바다 90ha는 황금의 양식장으로 변하게 되었다. 1978년도에는 마침내 그토록 갈망하던 감격의 첫 수확을 보게 되었고 투석사업을 계속하여 양식장 관리에 정성을 다한 결과 연간 62m/t 의 소라와 전복을 생산하여 1억 7천여만 원의 공동소득을 올리게 되었다. 또한 해초가 자라는 바다 속의 돌멩이의 이끼를 제거하는 작업을 실시함으로써 매년 45톤의 톳을 공동 채취하여 연간 84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편 마을 내에 있는 톳수술 가공공장에 50여명의 주민이 취업하여 연간 1,500만원의 노임소득도 올리고 있다. 공동이용시설의 확충에도 노력하여 80평의 창고를 건립 유채 고구마 등 마을 생산물을 보관하고 있다. 눈부신 마을 발전에 감동되어 지난날 가난을 등지고 일본으로 떠났던 옹포리 출신 재일교포들로부터 정성들여 모아 보내온 고향 돕기 지원 상금 300만원을 토대로 30평의 도정공장을 건립하여 수백 년 연자방아의 불편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전주민의 끈질긴 인내와 협동으로 대규모 소득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군내에서 가장 가난하였던 마을이 1980년 말에는 호당 2,948천원의 소득을 올리게 되었으며 1983년도에는 4,500천원의 수준으로 향상 시킬 계획이다.

 

복지마을의 기반 구축

 

장 지도자와 협동 단결된 마을주민들은 소득이 높아지자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증대 되어 마을의 주택개량사업 등 복지환경사업에도 투자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택개량사업은 주민들이 자체부담 하여야 할 재원과 조상 대대로 살아온 가옥을 선뜻 개조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행정기관과 절충하여 연차적인 사업물량을 확보하여 주민모두가 상부상조하여 기후풍토에 맞는 튼튼하고 편리한 주택을 건립함으로써 마을 면모를 새로이 바꾸어 가고 있다.

지금까지 개량한 주택은 110동에 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주민의 능력과 어촌 실정에 맞게 점진적으로 개량하여 문화주택으로 바꾸어 나갈 계획이다. 한편 마을 부녀회에서는 내일을 위한 알뜰한 생활을 통하여 3천만 원의 기금을 확보하게 되자 이 기금으로 22평의 공동목욕탕을 건립하여 해녀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을 개선 해 나가고 있으며 마을회관에 30평의 도서관을 중축하여 마을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 주고 있으며 주민들의 영농교육시설로도 활용하고 있다. 회관 앞 광장에는 어린이놀이터 시설을 마련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밝은 마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여 새마을사업의 혜택을 주민 모두가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앞서가는 어촌마을의 꿈

 

무지하고 가난하던 마을이 장 지도자의 끈질긴 집념과 주민들의 협동단결을 노력으로 잘 사는 부자마을로 육성한 결과 우수새마을로 선정되어 1981년 5월 16일 경제동향 보고회의시 성공사례를 보고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장 지도자의 강인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한 마을주민들은 소득원의 개발로 인한 기틀을 복지시설에도 중점 투자하여 기간농로를 확장 포장하고 생산기반 시설을 완비하는 한편 양식사업의 확대와 공동어장 관리어선을 건조 운영하여 주민소득증대에 계속 주력하는 한편 지금까지 다져진 복지 터전위에 정직, 성실, 인보, 협동하는 새생활운동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자료출처 : 새마을운동 1981 내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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