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_206. 심예경(心穢經)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마음속의 5예(穢)를 뽑아내지 못하고, 마음속의 5박(縛)을 풀지 못한다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반드시 물러나는 법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마음속의 5예를 뽑지 못하는 것인가?
혹 어떤 이는 세존을 의심하여 망설이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을 풀지 못하며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존을 의심하여 망설이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을 풀지 못하며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의 더러움을 뽑지 못한 것이라 하나니, 곧 세존(世尊)에 대해서 이니라.
이와 같이 법(法)과 계(戒)와 교(敎)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만일 모든 범행자들이 세존의 칭찬을 받을 때에, 다른 비구들이 이 범행자들을 나무라고 업신여기며 건드리고 침해하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을 풀지 못하며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의 더러움을 뽑지 못한 것이라 하나니, 곧 범행(梵行)에 대해서이니라.
어떤 것이 마음속의 5박을 풀지 못하는 것인가?
혹 어떤 이는 그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
만일 그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燕坐:坐禪)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 못하며, 머무르지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 못한다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몸[身]에 대한 것이니라.
어떤 비구는 욕심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
만일 욕심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것을 두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욕심[欲]에 대한 것이니라.
또 성인의 도리와 서로 맞고 부드럽고 연하여 의개(疑蓋)가 없는 말씀[說], 곧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ㆍ손해ㆍ모이지 않음ㆍ욕심이 적음ㆍ만족할 줄 앎ㆍ끊음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고요히 앉음ㆍ연기(緣起)에 대해 설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비구는 이 사문이 말하는 곳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도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이것을 세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말씀[說]에 대한 것이니라.
또 어떤 비구는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여 희락질하고 교만을 부리며 공부하지 않는다.
만일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여 희락질하고 교만을 부리며 공부하지 않으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도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이것을 네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모임[聚會]에 대한 것이니라.
또 어떤 비구는 조금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물러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구하지 않는다.
만일 조금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물러 다시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도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위로 올라감[昇進]에 대한 것이니라.
비구들아,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그 마음속의 5예를 뽑지 못하고, 그 마음속의 5박을 풀지 못한다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반드시 물러나는 법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그 마음속의 5예를 잘 뽑고, 그 마음속의 5박을 잘 푼다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맑고 깨끗한 법이라 한다.
어떤 것이 그 마음속의 5예를 잘 뽑는 것인가?
혹 어떤 비구는 세존을 의심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아, 마음을 열고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하다.
만일 어떤 비구가 세존을 의심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아,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하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속의 더러움을 잘 뽑는 것이라 하나니, 세존(世尊)에 대한 것이니라.
이와 같이 법(法)과 계(戒)와 교(敎)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만일 어떤 범행자가 세존의 칭찬을 받을 때 다른 비구들이 그 범행자를 나무라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으며, 건드리지 않고 침해하지 않고서, 마음을 열고 마음이 풀리며 마음이 편안하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속의 더러움을 잘 뽑는 것이라 하나니, 곧 범행(梵行)에 대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마음속의 5박을 푸는 것인가?
혹 어떤 비구는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며,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읜다. 만일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며,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燕坐:坐禪)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몸[身]에 대한 것이니라.
다시 어떤 비구는 욕심에 있어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며,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읜다.
만일 욕심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두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욕심[欲]에 대한 것이니라.
성인의 도리와 서로 맞고 부드럽고 연하여 의개가 없는 말씀[說], 곧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ㆍ손해ㆍ모이지 않음ㆍ욕심이 적음ㆍ만족할 줄 앎ㆍ끊음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고요히 앉음ㆍ연기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 때 그 비구는 이 사문이 말한 곳으로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세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말씀[說]에 대한 것이니라.
어떤 비구는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이지 않고 희락질하지도 않으며, 교만하지도 않고 공부한다.
만일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이지 않고 희락질하지도 않으며, 교만하지도 않고 공부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네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모이지 않음[不聚會]에 대한 것이니라.
어떤 비구는 조그만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구한다.
만일 조그만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구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위로 올라감[昇進]에 대한 것이니라.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그 마음속의 5예(穢)를 잘 뽑고, 또 그 마음속의 5박(縛)을 잘 풀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맑고 깨끗한 법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그들은 이 10지(支)에 머무른 뒤에 다시 5법(法)을 닦는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욕심의 정[欲定]을 닦아 단여의족(斷如意足)을 성취하여,
떠남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평정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가고,
정진의 정[精進定]ㆍ마음의 정[心定]ㆍ생각의 정[思惟定]을 닦아 단여의족을 성취하여, 떠남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평정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으로 나아가며,
참고 견딤[堪任]이 그 다섯 번째이다.
그들이 이 참고 견딤 등의 열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고, 스스로 그 기쁨을 누리는 경지를 성취한다면, 반드시 알고 반드시 보고 반드시 바르게 다 깨달아 감로문에 이르러 열반에 가까이 머무르리니,
‘이런 자들은 열반에 이르지 못할 이가 없다’고 나는 말한다.
마치 닭이 알을 열 개나 혹 열두 개를 낳아 때때로 품어주고 때때로 덥히며 때때로 보살피는 것과 같다.
어미 닭이 설령 게을러서 그 중에 혹 다른 닭이 부리로 쪼고 발로 밟아 부수더라도, 거기서 스스로 안온하게 나오는 것이 있다면, 그를 제일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가 이 참고 견딤 등의 열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여 스스로 그 기쁨을 누린다면, 그는 반드시 알고, 반드시 보고, 반드시 바르게 다 깨달아, 반드시 감로문에 이르러 열반에 가까이 머물리니,
‘이런 자들은 열반에 이르지 못할 이가 없다’고 나는 말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