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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SN(12인연법)

상윳따 니까야_12.17. 아첼라 깟사빠 경, 단견과 상견, 중도와 12인연법

작성자바다|작성시간26.06.07|조회수22 목록 댓글 0

상윳따 니까야_12.17. 아첼라 깟사빠 경, 단견과 상견, 중도와 12인연법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왕사성)의 벨루바나(죽림정사)의 깔란다까니바빠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을 입으시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라자가하로 탁발을 하러 들어가셨다.

벌거숭이 수행자[옷을 입지 않은 고행자] 깟사빠가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눈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벌거숭이 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존자 고타마시여, 만일 기회가 허락된다면 존자 고타마께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질문에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깟사빠여, 지금은 탁발을 하러 마을에 들어가는 중이니 질문할 때가 아닙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벌거숭이 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똑같이 여쭈었고, 세존께서도 똑같이 대답하셨다.

그러자 벌거숭이 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존자 고타마시여, 저희가 질문하려는 것은 그리 긴 것이 아닙니다.“

"깟사빠여, 그렇다면 질문하고 싶은 것을 질문하십시오.“

 

"존자 고타마시여, 괴로움[苦]은 자신이 지은 것입니까?“

"깟사빠여,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존자 고타마시여, 그렇다면 괴로움은 타인이 지은 것입니까?“

"깟사빠여,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존자 고타마시여, 그렇다면 괴로움은 자신도 짓고 타인도 지은 것입니까?“

"깟사빠여,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존자 고타마시여, 그렇다면 괴로움은 자신도 짓지 않고 타인도 짓지 않은 채, 원인 없이 우연히 생겨난 것입니까?“

"깟사빠여,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존자 고타마시여, 그렇다면 괴로움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깟사빠여,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괴로움은 엄연히 존재한다.“

 

"존자 고타마시여, 그렇다면 존자 고타마께서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십니까?“

"깟사빠여, 나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괴로움을 알고, 나는 괴로움을 본다.“

 

"존자 고타마시여, '괴로움은 자신이 지은 것입니까?'라고 여쭈었을 때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하셨고,

'타인이 지은 것입니까?'라 했을 때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하셨으며,

'자신과 타인이 함께 지은 것입니까?'라 했을 때도, '원인 없이 생긴 것입니까?'라 했을 때도 모두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괴로움은 존재합니까?'라 여쭈었을 때는 '엄연히 존재한다' 하셨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십니까?'라 여쭈었을 때는 '나는 알고 또한 본다'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괴로움에 대해 설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저에게 괴로움을 가르쳐 주십시오.“

 

"깟사빠여, '짓는 자와 행하는 자가 바로 그 괴로움을 겪는 자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자가 스스로 괴로움을 지은 꼴이 된다. 이처럼 '괴로움은 자신이 지은 것[自作]'이라고 주장하면, 이는 영원주의[상견, 常見]에 빠지게 된다.

깟사빠여, 반면에 '짓는 자와 행하는 자는 따로 있고, 그 괴로움을 겪는 자는 전혀 다른 자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괴로움의 충격을 받는 자가 따로 있어 타인이 괴로움을 지은 꼴이 된다. 이처럼 '괴로움은 타인이 지은 것[他作]'이라고 주장하면, 이는 허무주의[단견, 斷見]에 빠지게 된다.

 

깟사빠여, 여래는 이러한 양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그 중간[中]에 의해서 법을 설한다.

즉,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行)가 생겨나고,

의도를 조건으로 인식(識)이 생겨나며,

인식을 조건으로 명색(名色)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육입(六入)이 생겨나며,

육입을 조건으로 접촉(觸)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취함(取)이 생겨나며,

취함를 조건으로 존재(有)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과 근심과 슬픔, 고뇌가 생겨난다.

이와 같이 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가 소멸하고,

`의도가 소멸하기 때문에 인식이 소멸하며

... (중략) ...

이와 같이 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벌거숭이 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경이롭습니다, 고타마시여! 경이롭습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지거나 쓰러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방향을 잃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비추어 주듯, 존자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존자 고타마께 귀의하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저를 존자 고타마의 아래에서 출가하여 구족계(具족계)를 받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깟사빠여, 이전에 다른 교단에 속했던 자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기를 원한다면, 네 달 동안 별처(別處)에 머물며 수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 네 달이 지난 뒤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어 비구의 지위를 얻게 한다. 그러나 이 일에 있어서 개인적인 차이는 인정된다.“

 

"세존이시여, 다른 교단에 속했던 자들이 네 달 동안 수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면, 저는 4년 동안 별처에 머물며 수습 기간을 거치겠습니다. 4년이 지난 뒤 비구들이 동의하면 저를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어 비구의 지위를 얻게 해 주십시오.“

 

이리하여 벌거숭이 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의 처소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깟사빠 존자는 혼자서 외 떨어진 곳에 머물며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정진했다.

그는 그리 오래지 않아 지혜로운 이들이 그것을 위해 집에서 나와 부모 없는 은혜로운 출가의 길을 걷는, 위없는 청정범행[梵行]의 완성을 현생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눈으로 확인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다시는 이런 존재의 상태를 받지 않는다'라고 꿰뚫어 알았다.

이리하여 깟사빠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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