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니까야_122. 마하쑤냐따경, 큰 공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까삐라와투의 니가마에 있는 반야사 숲의 '미가라 어머니의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어느 날 저녁,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는 지금 ‘큰 공(Mahāsuññatā)’의 상태에 머문다.
아난다여, 어떤 비구가 ‘나는 큰 공의 상태에 머문다’라고 한다면, 그는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가?“
아난다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은 세존께서 설하실 때입니다. 지금은 선서께서 말씀하실 때입니다. 세존께 듣고 비구들은 간직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비구는 이렇게 머물러야 한다. 그는 거처함에 있어 비구들과 함께하든 홀로 있든, 비구들과의 관계나 사람들의 교제로부터 일어나는 지각(saññā)들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는 ‘내면의 고요함’을 확립하고,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한다.
이것이 비구가 머물러야 할 ‘큰 공’의 시작이다.
그는 또 이렇게 생각한다.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나, 내가 가르침을 주고받는 이들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어떠한 지각이나 대상도 나를 흔들지 못한다. 나의 마음은 흔들림 없이 고요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그는 이러한 지각의 상태가 조건에 의해 형성된 것임을 꿰뚫어 보고, 그 조건들이 소멸할 때 지각 또한 소멸함을 관찰한다.
그는 더 나아가 비구들의 무리 속에 있을 때도, 그 무리가 떠나거나 남아 있거나 그 상황에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다.
그는 오직 ‘공의 성품’을 유지하며, 어떠한 대상에도 집착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머문다.
아난다여,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그는 공동체의 소란함이나 개인적인 친소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오직 ‘내면의 공’에 머물며, 모든 지각의 대상을 ‘조건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만 인식한다.
그는 더 이상 이전에 겪었던 감각적 욕망이나 증오, 혹은 어리석음에 휘둘리지 않는다.
마치 큰 코끼리가 숲속에서 소란함과 관계없이 자신의 길을 가듯,
비구는 무리 속에 있든 홀로 있든 이 ‘큰 공’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가 머물러야 할 성스러운 ‘큰 공’의 수행이다.
아난다여, 과거에 큰 공으로 머물렀던 모든 성자들도 이와 같이 머물렀고, 미래에 큰 공으로 머물 자들도, 현재의 나 또한 이와 같이 머문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비구는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한다.
‘나는 큰 공으로 머물 것이다.’
이것이 그대가 기억해야 할 가르침이다.“
세존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 아난다 존자는 크게 기뻐하며 가르침을 받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