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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운영)

작성자김학열|작성시간26.06.19|조회수31 목록 댓글 0

작곡가 나운영 선생의 대표적 찬양곡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23편에 담긴 작곡 동기

시대적 상황,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1. 민족의 비극 속에서 피어난 불후의 명곡

    * 나운영 선생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는 단순한 종교 음악을 넘어, 6.25 전쟁이라는

       우리 민족 최고의 비극과 고난 속에서 탄생한 역사적 산물이다. 

   * 이 곡이 어떤 시대적 절박함 속에서 작곡되었는지, 그리고 최고 통치자부터 피난민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민족의 마음을 위로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자.

<피난민 교회 모습>

2. 1950년 전쟁 초기, 진해 피난 정부와 '눈물의 초연'

     * 시대적 상황: 1950년 6.25 전쟁 발발 직후,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는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임시수도는 부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시기 이승만 대통령은 군사적요충지이자 안전지대였던 진해(해군통제부)를 오가며 결사 항전의 의지로 전시 정부를 이끌었다.

       미군 측의 일본 망명 정부 제안을 이승만 대통령은 권총을 차고 거절했던 서슬 퍼런 시기였다.

     * 눈물의 피난 예배: 당시 연세대 교수였던 나운영 선생은 진해에서 열린 피난 정부의 첫 주일 예배 찬양대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나라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그는 목숨을 위협받던 다윗의 고백인 '시편 23편'을 떠올리며 밤을 새워 곡을 썼다.

     * 역사적 조우: 예배 당일, 이 절절한 찬양이 울려 퍼지자 지휘자와 찬양대는 물론, 이승만 대통령 부부와 피난민 성도들 모두가

        통곡하며 눈물로 구원을 갈망하는 예배를 드렸다.

 

3. 1953년 피난 막바지, 기적 같은 3분 만의 '최종 완성'

    * 또 다른 계기: 전쟁의 포화가 막바지에 이른 1953년 5월 부산의 단간방에서 고달픈 피난 생활을 이어가던 나운영 선생에게

      진해 교회의 목사님이 찾아와 간곡히 부탁했다.

       "우리 민족이 고난당하고 있으니, 외국 성가 대신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성가를 만들어 달라"

    * 신앙적 영감: 그날 저녁, 민족의 아픔을 붙들고 기도하던 나운영 선생의 귓가에 기적처럼 시편 23편의 가사와 함께 완성된 멜로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는 들려오는 선율을 오선지에 그대로 받아 적었고, 단 3분 만에 전 곡을 완성했다.

      단 한개의 음표도 수정되지 않은 이 기적 같은 곡에 대해 그는 "내가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려주신 영감" 이라 고백했다.

    * 통치자의 극찬: 이후 진해 해군 교회에서 이 곡이 공식 연주되었을 때, 이를 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한국인에게 딱 맞는, 민족의 마음을 울리는 참으로 훌륭한 성가"라며 극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4. 곡에 내포된 음악적 장치와 한국적 정서

     * 다윗의 시각화: 도입부의 피아노 반주 중 왼손 단선율 두 마디는 목동 다윗의 '피리 소리를 ' 를 , 이어지는 화음 두 마디는

       하나님을 찬양하던 '하프(수금) 소리'를 형상화했다.

     * 토착화된 성가: 서양식 7음계가 아닌 한국 고유의 5음 음계(궁,상,각,치,우) 색채를 시용함으로써,

       우리 민족 특유의 '애잔한 한(恨)과 이를 따뜻하게 품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완벽하게 융합해 냈다.

 

5. 결론: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성가

    * 나운영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는 전쟁 초기 진해 피난 정부의 결사항전 의지 속에서 싹터,

      1953년 피난 막바지 기적 같은 영감으로 완성된 민족의 대서사시이다.

   *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최고 통치자부터 이름 없는 피난민까지 눈물로 하나 되게 했던 이 곡은,

      오늘날까지도 고난받는 모든 이들에게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평안을 전하는

      한국 성가 음악의 최고 걸작으로 남아있다.

나운영 선생의 생전의 모습(1922~ 1993)

   참고: 학술적인 기록(1953년 완성이 정확한 악보 출판일)과

           대중적.교계의 전승(1950년 진해 피난 예배의 눈물) 사이의 시간적 간극 차이가 있습니다.

           아마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오래 시간 다듬어지고 마침내 영감으로 완성된 과정으로 이해가 되고

          우리 찬양대가 이 곡을 6.25를 앞둔 6.21주일에 연주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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