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교수협의회 이야기

총장해임 서명시위 11일째 정경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11.21|조회수667 목록 댓글 6

어제(11/20, 목)는 총장해임 서명시위가 제 11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어제 오전 10시에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에 배재흠 교수님이 출석하여서 1심 판결에서 우리가 승소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고무되어 있었습니다.  오후 3시 반에 손병돈 교수님과 이원영 교수님이 서명시위를 계속하였습니다.  경찰의 중재로 양측의 시위공간을 타협했기 때문에 학교측과 별다른 충돌은 없었지만, 어제는 화성서부경찰서의 서장님까지 나오셔서 시위 현장을 보고 가셨습니다.

 

교수산성에는 전처럼 임진옥 교무처장과 박태덕 교수가 전면에 나와 있었는데 어제는 문인수 미대학장이 오랫동안 전면에 나와 있었습니다.  어제 교수산성에 나오신 교수님은 많지 않았는데, 모두 합하여 20명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4시경에 이인수 총장이 교수산성을 깜짝 방문하였습니다.  총장은 교수와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격려를 해주고 갔습니다.  우리가 분석하기로는 그 시각까지 총장은 오전의 행정법원 판결을 보고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총장이 보고를 받았다면 아마도 노발대발해서 평정심을 잃었을 것입니다.

 

오후 5시 10분 경에 수원대 민주동문회의 안병주씨가 정문을 방문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아시겠지만, 현재의 총동문회장이 학교측과 이권관계로 얽혀 있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일부 동문회원들이 민주동문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민주동문회에서는 현재 온라인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모금된 돈의 일부는 신문광고비에 쓰겠다고 합니다.  어제 해직교수 6명이 모두 정문에 모여서 신문광고에 사용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재익 교수님은 다행히도 코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안경을 쓴 상태로 얼굴을 가격당했는데, 안경테가 부딪혀 피만 났지 뼈는 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치료 중인 코에 반창고를 붙이고서 나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교협에서는 학교측의 온갖 방해를 물리치고, 학생 6000명의 서명을 받을 때까지 서명시위를 계속하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1.21 아니나 다를까, 문인수 교수님은 저의 의도를 간파하였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문인수 학장님은 저의 글을 복사하여 학과장회의에서 나누어주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합니다.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서 별다른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 소식을 듣고서 문인수 교수님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학교에 들어오면 직원 한 사람이 따라붙기 시작한 후 어느날 저는 예고없이 미대 학장실을 방문하였습니다. 제가 들어가자 마침 문인수 학장님은 다른 분과 대화중이었습니다. 저는 한번 만나보러 왔다고 말하자 문교수님은 "손님이 있으니 다음에 오세요"라고 말하였습니다.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1.21 그후 서명시위가 시작된 후 저는 문인수 학장님이 거의 매일 정문에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문인수 학장님 곁으로 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지난 번에는 찾아갔는데 못 만났습니다. 그때 노크도 없이 들어오셨습니다. 아, 그래요? 제가 노크 정도는 하는데, 만일 제가 그랬다면 미안합니다. 다음에 한번 찾아 가겠습니다. 그게 대화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교직원 카페에서는 그 대화를 엿들은 어떤 사람이 문학장님이 이뭐꼬에게 호통을 쳤다고 써 놓았더군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겠습니다.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1.21 며칠 전 우연히 제가 구독하고 있는 시사주간지에 끼어있는 선전종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홍보종이를 읽어보니 덕수궁 중명전에서 올해 11월 17일부터 2015년 3월 1일까지 "난잎으로 칼을 얻다"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부제는 '우당 이회영과 6형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미술 분야는 문외한이고, 더욱이 우당 이회영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모릅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더 읽어 보니 이회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습니다.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1.21 "베이징 시절 불을 넣지 못하는 냉골에 앉아 이회영은 난초를 쳤다. 글씨로 이름난 벗 유창환이 붓을 돌려 묵란에 획을 더했다. 낙관은 이회영이 다듬고 벼리어내 새긴 돌로 찍었다. 우당은 이를 돈푼있는 중국인들에게 건네서 항일운동자금을 마련하곤 했다. 에술과 역사, 조선 사대부 전통과 혁명이 만나 일치를 이룬 이 대목은 우아한 고졸미나 문기 서린 향기 따위로 읊조릴 바가 아니다. 난잎으로 칼을 얻은 이 일은 저항미를 넘어 예술이 곧 행동에 이른 묵란 역사 천년 이래 절창이었다."
    이 글을 읽고서 이회영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호기심이 났습니다. 덕수궁 전시회를 보고 난 후 문교수님과 차 마시는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 작성자정상화로 가는 네비게이터 | 작성시간 14.11.21 음의 가락과 색의 조화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출중한 표현력에 감탄한다. 그 표현력은 난 잎 하나를 붓으로 올려쳐도 그 속에는 정치가 있을 수 있고, 정의가 솟구칠 수 있고, 인간미가 돋아날 수 있다. 무대에 서서 바이올린 소리 한 올도 인간의 심성을 울리는 깊은 맛이 있겠다. 수원캠퍼스에 그런 인간미와 정의가 무르익는 날을 기대한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