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교수협의회 이야기

교협 창립 2주년을 맞아 수원대 교수님들께 드리는 글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5.03.19|조회수1,637 목록 댓글 22

수원대 교수님들께,

 

저는 만 40살이 되던 1990년에 수원대에 조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25년 동안 와우리 동산에서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교육과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저는 교수 봉급에 만족하면서 부유하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게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1995년에는 서울 우면동에 30평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두 아들을 대학 졸업까지 시켰습니다. 비교적 순탄하게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금년 8월에는 만 65세로서 정년을 맞으므로 저는 수원대에서 퇴직해야 합니다.

 

오랫 동안 저는 이인수 총장님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5분 대화 녹취록에 나오는 것처럼 저는 총장님의 서초동 집에 인사하러 찾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이 많지 않지만, 저는 야간교학차장이라는 보직을 2년 동안 맡기도 하였습니다. 학과장 보직도 6년 이상 맡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학내.외의 정치에는 무관심한 채 평범한 공과대학 교수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다가 2013319일에 제가 교협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모든 것이 뒤틀리고 말았습니다.

 

교협 활동으로 인해 저는 채용해 준 총장의 은혜를 배반한 패륜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교수로서는 사형선고인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저는 사익을 위해 해교행위를 그치지 않는 나쁜 해직교수라고 매도되고 있습니다. 정문 앞 플래카드에서는 저를 학생을 선동하는 파면교수라고, ‘취업률을 떨어뜨리는 파면교수라고 욕하고 있습니다. 기나긴 소송이 언제 끝나서 복직될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저는 엄청난 시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141월부터 봉급이 끊겼습니다. 연금은 반으로 줄었습니다. 작년 봄에는 제가 살던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최근에 아파트가 팔려서 우면동을 떠나 이사를 가야 합니다. 저는 교협 공동대표가 된 이후 아무런 이익도 취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모든 것은 변화하는 법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라진다고는 하지만 제가 교협 공동대표를 맡은 후 2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이제는 수원대 학생의 반절은 교수협의회가 왜 생겼는지를 잘 모를 것입니다.  환경에너지공학과 학생의 절반은 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수원대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2년을 저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시계를 되돌리더라도 저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학생들의 열악한 교육환경과 계약제 교수님들이 흘리는 을의 눈물을 저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교협은 창립회원 30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현재 교협의 인터넷 회원은 315명이나 됩니다. 100명이 넘는 실명회원들께서 교협을 지지해 주시고 아낌없이 후원금을 내주셨습니다. 교협에서는 후원금을 바탕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수많은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기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운재단과 총장은 돈과 로비의 힘을 믿고서 어리석게도 지는 소송을 계속해서 제기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협이 모든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수원대가 정상화된다고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학생들이 잠잠하고 교수님들이 침묵하고 있는 한 수원대가 현재의 일인독재체제에서 벗어나 발전하는 민주대학으로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대학구조조정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하고서, 수원대의 구성원들인 학생과 교수와 직원과 재단이 모두 상생하는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교수님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상지대나 청주대 사태에서 보듯이 교육부는 결코 능동적으로 비리사학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학교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 마지못해 조금씩 움직일 뿐입니다. 수원대 교수님들 모두가 침묵한다면 교육부는 결국 재단과 총장 편에 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럴 경우에 수원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면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교육부의 대학평가 결과에 따른 부실대학 지정을 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정원감축안을 발표한 후인 작년 91일에 총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습니다. 그 후에 무슨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교협이 출범하면서 없어졌던 출근부가 되살아났습니다. 출장복명서가 나타났습니다. 교수업적평가에 총장특별점수가 등장하였습니다. 강의시간이 더 늘어났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학과통폐합이 어느 날 갑자기 통보될 것입니다. 호봉제 정교수 부교수들도 계약서에 싸인을 해야 할 날이 올 것입니다. 수원대에서만 가능한 이런 모든 부조리한 조치들을 여러분은 순순히 받아들이고만 있겠습니까? 대학 교수를 머슴처럼 취급하는 이인수 총장의 손에 여러분의 미래를 맡기겠습니까? 2015년에도 총장은 계약제 미대 교수 한 사람을 부당하게 쫓아내었습니다.  2016년에는 당신의 차례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교협 카페에 올라온 글 중에서 언젠가 보직교수를 허수아비라고 칭해서 일부 교수님들은 기분이 상하고 언짢아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원대 현실에서 보직교수를 허수아비라고 불러도 그것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여러분의 동료였던 6명의 교수가 어떻게 징계 당했는지 되돌아 보십시오. 20132학기에 보직교수들은 징계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파면과 재계약 거부를 결정하였습니다. 본인의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외형상으로는 동료 교수의 파면에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2015년 어느 날 여러분이 징계위원으로 임명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교무처장이 징계위원회를 소집하면 모든 징계위원들은 총장의 지시를 따를 것입니다. 징계위원들은 총장이 지목한 어떤 교수라도, 죄가 있든지 없든지, 파면시키는 데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201411월에 우리가 정문에서 총장 해임 서명운동을 벌일 때에, 많은 교수들이 총장의 부당한 지시인 줄 알면서도 정문 교수산성에 나와서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전에 알고 지내던 동료 교수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제가 느꼈던 참담함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에 "해직교수들의 해교행위에 반대한다"는 서명지에 247명의 교수들이 찬성 서명을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247이라는 숫자를 듣는 순간 저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인간성에 대한 비애를 느꼈습니다. 247명의 교수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2015년에 만일 징계위원에 임명되면 총장이 지목한 어떤 교수를 대상으로 파면 결정을 내리는데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서명도 거부 못하는데, 어떻게 파면지시를 거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수원대 보직교수는 허수아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교협 카페에 올라온 글 중에서 수원대 교수들은 울산대 청소부보다 못하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습니다. 울산대에서는 청소부들이 단결하여 자기들의 권익을 위하여 시위까지 하는데, 정문 앞 교수산성에서 해직교수 반대 시위를 한 수원대 교수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수원대 교수들이 울산대 청소부보다 용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원대 교수님이 있다면 그 분께 저는 참으로 죄송합니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인생의 진리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는 교황의 말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수님들이 학교에서 저를 만나면 격려해 주십니다. 힘내세요! 그런 말을 들을 때에 감사합니다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힘낼까요? 당신은 무얼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 받지 못한다.

내 권리는 내가 지키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인정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암시적 묵시적 동의로 인정된다.“

 

이런 표현은 너무 길며 먹물 냄새가 납니다. 민주주의니 권리니 그런 유식한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라는 속담을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밟히고 또 밟히는데도 꿈틀거리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가 지난 2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 교협 카페에서 이뭐꼬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정문에서 시위를 하고 국회에 가서 시위를 하고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감수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교협을 지지하지만 행동은 하지 못하는 교수님을 저는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교수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인격체이며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입니다. 총장의 부당한 지시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많은 교수님들이 요일별로 조를 짜서 잘못된 서명에 동참하지 맙시다라고 적힌 현수막 뒤에 서 있었습니다. 교수산성 길 건너편 서명 책상에서 용기를 내어 서명하는 제자를 바라보는 그 교수님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247명의 교수님들은 총장이 혹시라도 괴롭힐까 걱정이 되어 "해직교수들의 해교행위에 반대한다"는 서명지에 소속 학과와 자기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언제까지 권리 위에 잠자면서 불의의 편에 서서 암묵적 동의를 하시겠습니까?

 

지난 2년 동안 교협 활동을 하면서 저는 인생 공부, 세상 공부 많이 하였습니다. 아쉽지만 오늘 날짜로 저는 수원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에서 물러납니다. 그러나 저는 교협을 떠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승리할 때까지 총장과의 소송전을 계속하겠습니다. 저는 복직될 때까지 1인 시위를 계속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앞장서는 것을 저는 보고 싶습니다. 비리 복마전 수원대에서 정의가 승리하는지 불의가 승리하는지 저는 끝까지 지켜 볼 것입니다.    

 

저의 몸은 곧 수원대를 떠납니다. 그러나 제가 사랑한 수원대는 고향처럼 어머니처럼 저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수원대를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쪼록 여러 교수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2015319

이 상훈 올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춘하추동 | 작성시간 15.03.24 맞습니다.
    이교수님이 쉬셔도 어차피 해결 될 일이지요.
    다만 시간이 문제인데요. 피곤한 시간이 지속되니까요.
    저들은 시간을 끌면서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기자신의 무덤을 깊이 더 깊이 파는것이지요.
  • 작성자리슨투더뮤직 | 작성시간 15.03.25 이뭐꼬님 사퇴서를 읽고서 눈물이 납니다.....
  • 작성자상추 | 작성시간 15.03.25 일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하셨다면 이뭐꼬님께서는 계약제 교수들의 핍박과 애환, 최하의 교육 환경 등에 대해서 모르는체 조용히 지내시다가 은퇴하시면 됐을텐데 추우나 더우나 그 연세에도 특유의 강건함으로 교문앞 시위까지 계속해 주셨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것이지만 막상 공동대표를 끝내신다니 허전해지는 것은 왜 일까요.
    그래도 학교를 바로잡기위한 싸움은 계속 하신다니 죄송하고 존경스러운 마음 한이 없습니다
  • 작성자우분트 | 작성시간 15.03.26 끔찍한 이곳 와우리에서 저희들은 또 십수년을 더 있어야 합니다.
    이제 얼마 안있어 악의 뿌리가 뽑히고 간신배들이 거꾸러질겁니다.
    대표님을 비롯한 해직교수님들의 십자가는 영원히 빛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 작성자상생은없다 | 작성시간 15.03.27 총장이 물러나고 이사장이 사퇴할 때까지 우리 모두 함께 싸웁시다.
    이뭐꼬님은 뒤에서 응원해 주세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