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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의 사진기행(28) : '헤이나우'를 기억하라!

작성자한 길|작성시간14.03.13|조회수337 목록 댓글 1

여행을 하다보면 그 나라의 큰 도시나 수도부터 시작해 작은 마을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일겁니다.

그런데 폴랜드에서는 거꾸로(?) 가는 여행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크라코프를 찾았습니다.

이미 아우슈비츠와 카시미르 지역을 다녀왔으니 이번에는 크라코프 시내를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11세기부터 16세기말까지 폴란드의 수도였으며,

유럽문화의 중심지이자 예술의 도시로 군림했던 곳.

1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거의 새로 지은 건물이 없는 도시

그래서인지 거리를 걷다보면 중세의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곳.

크라코프,

지난 500년 동안 크라코프는 황실의 수도였지요.

폴란드 역사의 산실인 셈이지요.

 

어디선가 문득 쇼팽의 폴로네이즈가 들립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잠시 뒷걸음질을 쳤더니 음악이 멈추고...

그러기를 몇차례 하다보니,

아 글쎄 센서장치 때문인지 가까이 가면 음악이 나오고 멀어지면 음악이 안들리는거예요.

재미있더군요.

한참을 장난치듯 그러면서 폴로네이즈를 여러번 들었습니다.

 

사진속 부서진(?) 피아노 작품은 ‘The Fallen Piano’라는 제목으로 폴랜드의 Alexsander Janickl이 제작한 것입니다.

우리말로 그냥 작살난 피아노가 들려주는 행복한 선율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폴랜드의 도시 어느 곳을 가던지 쇼팽을 길거리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행복, 즐거움...

아마 그런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여행을 하면서 피아노를 몰라도 그냥 좋은 음악을 한곡 들을수 있는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는 느낌입니다.

 

바르비칸성 입구를 지나면 플로리안게이트를 지나게 됩니다.

중세시대에 설치된 3Km에 이르는 성벽에는 8개의 성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유일하게 플로리안 게이트만 남아있는데 이곳을 통과해야 시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거리이름 역시 플로리안스카, 크라코프에서 가장 활기찬 곳입니다.

이 거리를 걷다보면 여행자들의 마음을 어느새 혼란스럽게 하게 만들지요.

지금 내가 중세의 거리를 걷는건지 아닌지 헷갈리는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겁니다.

 

사진을 찍는데 문득 귀여운 아가씨 삼인방이 웃으며 포즈를 취해 줍니다.

헌데 이멜 주소도 안받아 왔으니 사진을 못보내주고 있음...ㅋㅋ

 

 

 

성곽 한편에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그린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런대로 구경할만합니다.

 

이 도시에 남아있는 중세의 성벽과 탑의 일부는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폴랜드에만 있는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크라코프는 과거 사건들을 조용히 기념하는 역사의 도시가 아니라,

그 역사의 성격과 정신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도시입니다.

크라코프는 오스카 쉰들러가 늘 다니던 곳이기도 합니다.

또 그의 이야기와 스필버그 영화의 무대였던 유태인 거주지역 카시미르도 크라코프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야기엘론왕조 마지막 시기인 1609년 당시 지그문트3세는 수도를 크라코프에서 지금의 바르샤바로 옮깁니다.

그후 크라코프는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독일과 소련 등의 침공으로 수많은 외침과 혼란을 겪게 됩니다.

 

13세기에 조성된 중앙시장광장입니다.

그 규모가 유럽 어느 광장보다 큽니다.

이태리 베니스의 산마리노 광장다음으로 크지 싶은데...

이 광장시장은 당시 실크로드의 중간기착지로 유럽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앙시장광장 한가운데 건물이 바로 의류직물회관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마차를 타고 시내를 돌아보고 싶지만 혼자서 참 거시기 합니다...ㅠㅠ

 

폴랜드는 1990년에야 겨우 동구라파의 개방 물결에 힘입어 뒤늦은 독립을 이루게 됩니다.

어찌보면 신생독립국가라고 해야겠지만 그 역사적 자태를 보면 분명 오래된 문화국가임에 틀림없습니다.

 

구시가지는 1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단하나의 건물도 증축이 되지 않은 지역으로 유일하고,

크라코프 구시가지에는 야기에오대학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 쿠스가 수학했고, 2005년에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여기서 수학했고 졸업 후에는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2번째로 오래된 대학으로 전신은 크라코프대학아카데미였다고 합니다.

 

성모마리아 성당입니다.

1290년부터 짓기 시작해 거의 100년후에 완성되었다고 하네요.

 

124149일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가 이끄는 몽고군은 폴랜드 남서부의 바르슈타트 평원에서 폴랜드와 독일기사단 연합군을 물리칩니다.

유럽사람들은 몽고군을 타타르족이라고 불렀는데 몽고군이 쳐들어왔을 때 성모마리아 성당 꼭대기에서 나팔수는 몽고군의 습격을 알리는 나팔을 불다 몽고군의 화살을 맞았다고 합니다.

 

크라코프를 상징하는 나팔소리는 800년이 지난 지금도 정오의 나팔소리(헤이나우 Heinau)를 라디오에서 생중계 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적의 화살을 맞고 중단된 그 부분까지만 지금도 연주를 하고 있지요.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며 지난 어둡고 힘들었던 시기를 기억하려는 폴랜드인의 치열한 회한이 가슴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잊기 잘하는 우리들의 세태와는 너무나 다른, 그래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은연중에 보여주는 폴랜드인의 모습...

이제 또다른 이야기거리로 자리를 합니다.

 

성 보이치아교회(아달베르트 교회라고도 부름)

10세기경에 지은 폴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입니다.

작은 기도소인 셈이지요.

 

광장의 누워있는 얼굴조각상입니다.

폴란드출신 작가 이고르 미토라이(Igor Mitoraj)의 작품

바르텍 오코(Bartek Oko/ 바르텍의 문)란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폴랜드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여하튼 간에 작품의 크기가 엄청난데 눈사이로 어린아이들이 빠져나갈 정도의 크기입니다...^^

   

폴랜드 수도로 있던 시기 역대 왕들이 살던 곳

요한바오로2세가 10여년간 주교시절 미사를 집도하던 곳

바벨성입니다.

 

500년 이상 폴랜드의 수도로 자리한 크라코프는 폴랜드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서기 1000년에 주교구가 설치되고 카시미르왕이 크라코프를 폴랜드수도로 정하면서 바벨성 자리에 큰 성을 짓습니다.

그러나 이 성은 금방 몽고족의 침입으로 파괴되자 지금의 바벨성은 그 자리에 다시 지은 겁니다.

 

이 바벨성의 성당은 지난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젊은 시절 주교로 일할 때 미사를 집전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 강과 성사이에 용의 전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마 네버엔딩스토리라는 영화의 골간이 이 용의 전설에서 따왔다는 ...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린아이를 잡아먹던 용을 물리치기 위해 왕은 용을 잡는 사람에게 공주와 결혼을 시키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후 어떤 대장장이가 용을 잡아 대령하고 공주와 결혼했다는...

바로 그 용입니다.

 

성안에서 비스와 강을 내려다 봅니다.

 

폴랜드는 외세에 억물려 지내다 보니 슬픈 이야기가 많습니다.

카틴 숲의 학살로 알려진 이야기도 그중 하나입니다.

 

19399월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은 동시에 폴랜드를 장악하기 위해 침공을 감행합니다.

양쪽에서 침공을 당한 폴란드는 많은 전쟁포로가 발생했고 모두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이후 1940413일 독일군은 러시아의 스몰렌스크 근교에 있는 카틴 근처의 숲에서 소련 비밀경찰(NKVD)에 의해 학살된 뒤 집단매장된 4,000여 구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독일은 조사를 통해 총 22천명 이상의 폴란드군 장교, 경찰관, 공무원, 지역유지 등의 매장된 시체를 발굴합니다.

소련은 1941년 가을에 자행된 독일군의 만행이라고 우겼으나, 독일측의 조사로 소련측이 행한 학살임이 입증됩니다.

카틴 사건의 주동자인 스탈린은 "폴란드가 독립국으로 일어설 수 없도록 폴란드 엘리트의 씨를 말릴 것"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폴랜드는 소련이나 독일이나 유럽에서 가장 문명화된 폴랜드의 엘리트들을 미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폴랜드에는 유독 유명한 예술가나 과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퀴리부인, 쇼팽, 등등 노벨상을 받은 사람의 수도 제법 적지 않지요.

 

다시 시내 중심가로 들어왔습니다.

 

어느새 어두워졌습니다.

어둠은 모든 걸 포용합니다.

한데, 안보인다고 용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이 납득하고 이해할수 있도록 석고대죄하는 마음과 자세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일,

바로 그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아니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지난번 그렇게 말했지요.

스스로 변화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크라코프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수많은 폴랜드의 이야기들...

밤이 깊어갈수록 가슴으로 이야기가 짠하게 여울져 갑니다.

 

크라코프의 밤은 낮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픈 역사는 오히려 어두울 때 더 그 빛을 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리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장식을 철거하지 않아 보기가 좋습니다.

 

 

구 시청탑입니다.

예전에 불에 탄 것을 복원해 지금은 시청건물의 일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박물관으로 사용합니다.

들어가 보려고 했더니 여름에만 문을 연다고 하네요.

 

수키엔니체라 불리는 직물회관(The Cloth Hall)입니다.

14세기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화재가 나자 길이 100m, 양쪽이 대칭인 지금의 건물을 1555년도에 다시 세웁니다.

아마 가장 오래된 쇼핑몰이라고 하겠는데 섬유나 의복을 사고팔던 곳이라 직물회관이란 이름이 붙었답니다.

 

2, 3층은 박물관 등으로 사용하고 1층은 선물가게가 대부분입니다.

폴랜드의 특산품이랄 모피, 호박 등이 엄청 쌉니다.

헌데 하나도 안샀지 뭐예요.

마눌님께 나중에 혼나게 되는 이유가 바로...ㅋㅋ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시내로 나왔습니다.

오늘은 저녁에 저어기 보이는 성당에서 음악회가 있는 날입니다.

쇼팽과 모차르트, 게다가 이무지치까지 레파토리에 있습니다.

우리돈으로 5천원 정도에 호강하는 셈이지요.

그러니 안갈수 없지요... ;-)

 

밤은 원래 그렇게 어두워야 제맛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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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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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단풍 나무 | 작성시간 14.03.13 아름다운 역사도시 크라코프의 모습을 잘 보았습니다.
    같은 공간을 낮과 해질 무렵 그리고 밤의 경관으로 보니 더욱 멋지군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현지에서 낯설은 역사와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교감하려는 구도자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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