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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는 곳

부도밭을 지나며

작성자한 길|작성시간14.05.29|조회수183 목록 댓글 0

 

 

부도밭을 지나며 / 정호승

 

사람은 죽었거나 살아있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따뜻해야 하고

사람은 잊혀졌거나 잊혀지지 않았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눈물이 글썽해야 한다

눈 내리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누군가 걸어간 길은 있어도

발자국이 없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

끝내는 작은 발자국을 이룬

당신의 고귀한 이름을 불러본다

부도 위에 쌓인 함박눈을 부르듯

함박눈! 하고 불러보고

부도 위에 앉은 작은 새를 부르듯

작은새! 하고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다

사람들은 오늘도 검은 강물처럼 흘러가

돌아오지 않지만

더러는 강가의 조약돌이 되고

더러는 강물을 따라가는 나뭇잎이 되어

저녁바다에 가 닿아 울다가 사라지지만

부도밭으로 난 길을 홀로 걸으며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들린다

누가 줄 없는 거문고를 켜는 소리가

보인다 저 작은 새들이 눈발이 되어

거문고 가락에 신나게 춤추는 게 보인다

슬며시 부도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 손을 잡아주는

당신의 맑은 미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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