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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는 곳

아들의 편지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7.14|조회수517 목록 댓글 5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께

 

아버지. 늦둥이 막내아들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라 조금 민망하네요. 2014년은 참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해인 것 같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 2년이 지나고부터 아버지의 직업은 항상 교수였는데, 이제 앞에 두 글자가 더 붙어 해직교수가 되셨네요. 사실 아버지가 교수협의회를 시작하시게 된 것이 제가 농담처럼 말씀드린 말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나누는 부자(父子)사이에 아버지가 항상 수원대 계약직교수님들의 어려운 상황들을 많이 이야기하셨잖아요.

아버지 이제 정년퇴임도 얼마 남지 않으셨는데, 마지막으로 학교를 위해 좋은 일 하시고 교직 마무리하셔야죠.’

그렇게 흘려들으시는 것 같았는데 작년 3월 교수협의회를 만드시고, 결국 올해 파면을 당하셨네요.

 

근현대사를 유독 좋아했던 제가 교과서에서만 봤던 해직교수’, ‘해직기자’. 그런데 아버지가 해직교수가 됐다는 게 아직도 조금 어색하기만 합니다. 징계는 생각했었지만 정직이나 감봉정도를 예상했었는데, 파면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버지의 파면이 저에게 영향을 미친 가장 큰 부분은 경제적인 부분이죠. 올해 용돈이 삭감되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열심히 버티고 있습니다. 아버지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지난 7개월 동안의 에피소드를 몇 개 나누려 합니다.

 

로스쿨 입시 때문에 하루 종일 바깥에 있는 제가 돈을 사용하는 가장 큰 부분은 식비입니다. 평소에는 5~6천원 짜리 밥을 먹었었는데 돈을 계산해보니 그렇게 하면 도저히 제 용돈으로 해결이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메뉴를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싸고 간편한 메뉴를 고민하다가 강남역 학원 앞에 있는 주먹밥집에 가보았습니다. 가장 기본 주먹밥이 1500원이더라구요. 성인남자에게 주먹밥 하나로는 허기를 채우는 정도 밖에 안 되어서 2개를 사서 먹었습니다. 한 끼에 3천원에 식사가 해결이 되겠더라구요, 제가 먹는 주먹밥 밑에 있는 메뉴가 햄주먹밥인데, 2000원이더라구요. 2개를 먹으려면 4천원인데, 1000원이 아쉬워서 그냥 주먹밥을 시키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구요. 아버지는 이제껏 저에게 풍족하게 용돈을 주시진 않았지만 모자라게 주시진 않으셨잖아요. 근데 해직의 여파로 삭감된 용돈으로 겨우 하나 때문에, 1000원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고르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그냥 기본주먹밥을 먹었던 2014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자전거입니다. 환경공학자의 아들로써 자전거를 곧잘 타고 다니는 저에게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첫째, 재미있어서 둘째, 환경을 사랑해서였습니다. 매일매일 최소한 2100원의 교통비가 들었는데, 한끼를 3000원으로 해결하는 제게 2100원이란 돈이 갑자기 크게 느껴지더라구요. 그 돈을 아끼려고 비가 오지 않으면 치열하게 새벽부터 자전거를 타고 학원으로 등교했던 이 시간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MB 정부 내내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아버지. 열심히 4대강을 반대하며 환경학자로서의 양심을 지켜 오셨던 아버지. 그때 토론회에서 항상 반대편 패널로 만났던 심명필 4대강살리기본부장님 아시죠? 그거 아세요? 심 교수님의 아들이 저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2년 선배라는 것. 심 교수님은 곡학아세(曲學阿世)하여 장관급 자리로 가셨고, 집으로 고급세단이 모시러 왔었죠. 근데 이상하게 그게 부럽지가 않더라구요. 그때 생각했어요. 난 이다음에 커서 곡학아세하지 말자. 조금 배고프고, 조금 불편해도 처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자.

 

아버지는 항상 저에게 그런 아버지셨습니다. 평소에는 매우 유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이시지만 옳고, 그름에는 명확하셨다는 것. 그리고 자식에게 부끄러울 행동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는 것.

 

예전에 읽었던 민주화운동가 문익환 목사님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나네요.

 

Q. 당신은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걸어가는 것인가요?

A. 별거 있나? 올바르게 살려는 것이지. 내가 아는 것, 내가 올바르다고 믿고 있는 것.

그것을 실천하려는 것이지. 이 땅에서 태어나서, 그저 내 아는 만큼 올바르게 살려는 것이지.

 

Q. 그저 착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게 올바른 것 아닌가요?

A. 착하게 사는 것 좋지. 그런데 착하게 사는 거랑 올바르게 사는 거랑 다른 것 같아.

남들이 하자는 대로 그게 틀린 것 같아도 그저 반대하지 않고 하자는 대로 하면 착하다는 말을 듣게 되지. 착하게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쉬워.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렵지.

지금은 착하게 사는 것보다, 올바르게 사는게 맞는 것 같아. 올바르게 살아야지

 

착하게 사는 아버지가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아버지가 내 아버지란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아버지.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지만 혹시라도 막내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으시다면 그 마음을 거둬주세요. 저번에 대외활동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이 물어 보더라구요.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그때 저는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제 아버지 이상훈 교수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무엇이 옳은 길이고 바른길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남을 짓밟고 올라가라 말하는 무한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저에게 항상 등대처럼 앞길을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제 아버지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꼭 아버지같이 배워서 남 주는 공익변호사가 되겠습니다. 머리에서만 끝나는 나약한 지식인이 아니라, 인생으로 이론을 증명해 보이는 행동가가 되겠습니다.

 

모든 존경을 담아, 사랑합니다.

 

2014713일 이찬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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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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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상화 | 작성시간 14.07.14 이교수님 든든하시겠습니다. 정말 괜찮은 청년으로 키우셌네요. 부럽습니다.
    온가족이 한 마음이 되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 올곧은 정신으로 일생을 살아가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지요.
    인도의 간디가 부럽겠어요? 함께 나누고 아울러 살아가려는마음이 아름답습니다.
  • 작성자단풍 나무 | 작성시간 14.07.14 아들이 아버지에게 얼굴을 마주하고 할 수 있는 대화보다 더 진솔한 마음과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자식에게 이러한 고백을 받아 볼 수 있다는 것이 부모된 자로서 얼마나 큰 행복일까요! 부러운 마음 감출 수 없습니다.
  • 작성자단풍 나무 | 작성시간 14.07.14 이 젊은이의 글을 읽고 나의 자식과 나의 제자들을 되돌아봅니다. 그들이 나에 대하여 글을 쓴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나와의 관계, 온정에 얽매이지 않고 공과 사를 구분하여 내게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그들의 생각을 ‘감히 어디 부모에게, 감히 어디 스승에게 ...’라며 보이지 않게 억압하고 있지는 않는가? ......
  • 작성자단풍 나무 | 작성시간 14.07.14 이찬연군의 부모가 고승덕 교육감 후보였다면, 이찬연군의 스승이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였다면, 어떤 글을 썼을지 그 성품과 기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아들과 딸 그리고 제자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이상훈교수의 아들, 고승덕후보의 딸, 김명수후보의 제자와 같은 젊은이들과 이 땅에 함께 사는 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 작성자푸른 하늘 | 작성시간 14.07.14 이교수님
    아들 찬연이를 훌륭히 잘 키우셨습니다. 찬연이의 꿈대로 이 사회에서 올바른 일을 행하는 훌륭한 공익변호사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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