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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는 곳

구경꾼은 언제나 구경꾼일 뿐

작성자한 길|작성시간14.09.22|조회수293 목록 댓글 0

 

 

 

구경꾼들이란 / 나희덕

 

 

구경꾼들이란 으레

충혈된 눈을 지니고 있는 법이죠

몸 속의 호기심이

피를 타고 온통 눈으로 몰려드니까요

특히 죽음에 대한 호기심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이어서

모르그*는 어떤 극장보다도 성황이었다죠

유리관 속에 진열된 죽음을

줄을 서서 구경하면서

담배를 피워물고 잡담을 나누는 남자들,

식물원의 화초처럼 즐기는 여자들,

막대사탕을 빨며 들여다보는 아이들,

조명 아래 누운 시체들도

몰려드는 구경꾼들을 보며 웃고 있었을 거예요

어쩌면 유리관 속에서

헤어진 옛 애인을 발견할 수도,

길에서 잃어버린 아이를 발견할 수도,

자신이 살해한 시체를 발견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래도 모르는 척 지나며

희미한 발자국만 남기고 흩어지는 사람들,

그래서 구경꾼의 눈은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지요

유리창 너머의 세계를 잠시 엿보았을 뿐

별거 아니군, 하는 표정으로

죽음의 극장 밖으로 걸어나왔을 뿐

 

*19세기 프랑스 파리에 있던 시체전시장. 연간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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