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최북
네델란드 출신 후기인상파 화가인 고흐는 미치광이 화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날 발작을 일으켜 한쪽 귀를 댕겅 잘랐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890년에 유명한 <자화상>을 그리고서 두 달 뒤 권총자살로 37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최북(崔北)이라는 화가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고흐는 귀를 잘랐지만 최북은 한쪽 눈을 제 손으로 찔러 여생을 애꾸로 살았다. 그는 1712년 생으로서 숙종 대에 태어났다가 49세 때인 어느 겨울밤 홑적삼 입고 눈구덩이에서 동사했다. 이름의 北자를 반으로 쪼개어 자(字)를 칠칠(七七)이라 했고, 붓 하나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호는 호생관(毫生館)이라고 했다.
최북의 광기는 고흐보다 못하지 않았다. 돈보따리를 싸들고 와 거드름 피우는 고관에게는 엉터리 그림을 주고, 좋은 그림인데 몰라주면 그 자리에서 박박 찢었다. 최북의 주량은 하루 막걸리 대여섯 되. 언제나 술에 취해 비틀거렸으며, 오두막에서 종일 산수화를 그려야 끼니를 겨우 때울 수 있었다. 어느 날 한 세도가가 와서 그의 붓솜씨를 트집 잡자 “네까짓 놈의 욕을 들을 바에야!”하며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찔러 버렸다. 대단한 결기였다.
미술가들은 대부분 자기의 예술 세계에 빠져서 세상일에 무관심하기 쉽다. 그러나 모든 화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시위 현장이나 대중집회에는 어김없이 대형 걸개그림이 등장하였다. 대학 건물 외벽과 담벼락에도 학생들이 그린 벽화가 많이 등장하였다. 젊은 미술가들이 주축이 돼 그림을 통하여 민중과 소통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척박한 삶의 단면을 표현하였다. 이들을 민중미술가라고 불렀는데 신학철, 임옥상, 최병수, 강요배, 홍성담, 안창홍, 오윤, 이종구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여기는 2013년 봄 개나리가 피는 와우리 수원대학교. 만일 최북이 환생하여 미술대학에 등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은 자유다. 아니, 정권이 바뀌어 국민행복시대가 시작되었다는데, 상상도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