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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단편소설 (14)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4.01|조회수249 목록 댓글 0

커다란 연못에 눈먼 거북이가 한 마리 살고 있었는데. 물 위에는 구멍 뚫린 통나무 하나가 떠 있었지. 이 거북이가 3천 년에 한 번씩 떠오르는데 용케도 통나무 구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만큼이나 어렵게 사람들은 서로 만난다는 것이야. 그러니 내가 아가씨를 만난 것이 얼마나 어렵게 이루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지?”

재미있는 이야기인데요. 절에 나가세요?”

아니, 내가 불교에 대해서 무얼 아나. 그저 들은 이야기이지.”

그러면 인연을 끊기는 쉬운가요?”

그게 쉽다면 나도 처자식 다 버리고 벌써 산으로 들어갔지. 요즘처럼 사는 게 복잡하고 힘들어서야 일찍부터 중이나 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난단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아가씨가 입을 열었다.

김 과장님. 저 세 달 후에 결혼하기로 했어요.”

그것 참 잘 됐군. 여자는 나이가 차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지. 아무튼 축하해.”

감사합니다.”

김 과장은 말은 축하한다고 했지만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심리란 묘한 것이어서 자기 여자가 아닌데도 알던 여자가 시집간다고 하면 뭔가 잃어버린 것처럼 섭섭한 생각이 드나 보다. 김 과장의 속셈으로는 아가씨와 몇 번 더 만나 철 늦은 데이트를 즐길 계획이었는데 모두 허사가 되어버린 것이 아깝기만 했다.

 

사실 결혼생활도 10년이 넘었고, 그동안 외길로만 걸어왔던 김 과장은 겉으로는 유능한 회사원이고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었지만 요즘에는 때때로 연애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지금의 아내야 왼쪽 발바닥에 점이 있는 것까지 다 알고 있고, 아내의 사촌 언니가 오리처럼 걷는다는 말도 수십 번은 들었으리라. 이른바 권태기인가? 결혼 후 2년 정도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아내와 외식을 해도 별로 할 말도 없고 재미도 없고, 괜히 옆자리에 앉은 젊은 아가씨를 바라보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 때도 있다. 사실 말은 그렇게 안 하지만 나도 외도라는 걸 한번 해봤으면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언젠가 넌지시 박 부장에게 비치니, 박 부장이 말했다.

 

외도? 그것 참 좋지요. 그런데 당신 돈 벌어 두었소? 당신 나이에 외도를 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지. 여자 만나서 옛날처럼 짜장면 먹고 커피 마실 수 있소?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호텔 커피숍에서 자마이카 커피 정도는 마시고, 여행도 가고, 또 일이 잘 되면 여자 미용비도 듬뿍 주어야 좋아할 텐데요. 젊은 여자가 당신 돈 보고 달라붙지 무얼 보고 따라오겠소?”

젠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남녀 간의 사랑에도 돈이 끼어드니 어디 돈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 맛 나겠습니까? 그렇지만 순수한 연애관계를 가질 수도 있지 않겠어요? 부담 없이 만나 서로 마주보며 대화도 하고 가끔 식사나 같이하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남녀관계란 무릇 자석의 남극과 북극 같은 이치요. 붙든지 떨어지든지 둘 중 하나이지 애매모호하게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요. 아니 자연법칙에 어긋나요. 김 과장도 잘 알지 않소. 자연법칙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김 과장이 현실로 돌아와 그래도 미련을 못버리고 엉큼하게 제안을 했다.

미스 나 다음 주 토요일 다시 만날까? 이번에는 내가 점심을 사지. 빚은 갚아야 되지 않겠어?”

네 좋아요.” 아가씨는 즐거운 표정으로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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