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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중편소설(40)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7.09|조회수151 목록 댓글 0

어찌된 일인지 약속 시간이 삼십 분이나 지나도록 아가씨가 나타나지 않는다. 궁금하여 공중전화를 걸어보았다. 아가씨가 받는데,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먹어 못 일어나고 있었단다. 기다릴테니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라고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삼십분 이상이 지나서 미스최가 나타났다.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피곤한 모습이다. 사실 술집아가씨들이 술을 즐겨서 먹지는 않을 것이다. 직업이니까 할 수 없이 마시는 것이리라. 그런데도 짓궂은 손님들은 자꾸 술을 먹여서 젊은 여자가 헤롱헤롱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일종의 가학성 술먹이기라고나 할까? 어제는 단골이 아닌 웬 뜨내기 손님이 왔는데, 그만 폭탄주를 5잔이나 돌려서 고생을 했단다.

 

김교수는 평소에 마시는 커피 대신 미스최에게는 생강차를 시키고 자신은 구기자차를 시켰다.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보니 숙취 해소에는 생강차가 좋다고 써 있고, 구기자차는 시력이 좋아진다고 써 있다. 김교수는 사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은 항상 젊다고 큰소리 치더라도 육체가 노화되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나이가 들어가자 몇 가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첫째는 시력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노안이 오는지 안경을 썼는데도 가물가물 거려서 신문을 읽을 때에 멀리 떼면 겨우 보이는 것이다. 둘째는 기억력이 떨어진다. 머리에서는 뱅뱅 도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셋째는 말이 헛 나오는 경우가 있다. 뻔히 아는 단어가 잘못 발음되는 경우가 있어서 아내가 바로잡아 주는 현상이 나타난다. 네째는 잘 넘어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길을 가다가 발이 접히면서 넘어지려고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다섯째는 밥을 먹을 때에 자신도 모르게 흘리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여섯째는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누는데 그만 구두 위에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는 현상이다. 일곱째는 아내와 밤에 사랑을 나누려고 하는데 마음만 안타깝지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니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개 비슷한 현상을 호소한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라는 노래 가사가 절실히 가슴에 와 닿는 나이들이 된 것이다.

 

차를 마시면서 김교수는 평소와는 달리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가씨도 평상시에는 조잘조잘 이야기를 잘 했는데 어젯밤 술이 아직 덜 깨어서인지 조용히 차만 마시고 있다.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함께 있으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는 법이다. 꼭 이야기를 해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 필요는 없다. 서로 좋아하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김교수가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김교수는 차만 홀짝 홀짝 마시고 있다.

 

더 참지 못하고 아가씨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빠.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지요?”

으음. 아리랑은 어디까지 갔나? 재미있지?”

아이, 오빠. 아리랑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해 보세요.”

 

김교수는 가방에서 웬 신문광고를 꺼내어 주었다. 방통대학의 모집공고였다. 신입생은 116일 마감이고 편입생은 125일 마감이었다. 아가씨가 방통대 국문과 2학년 중퇴인 것을 알고 있던 김교수가 전날 신문에서 방통대 모집공고를 보고 오려온 것이다. 김교수는 아가씨에게 방통대에 다시 편입하여 졸업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방통대는 방송으로 강의가 진행되니까 녹음했다가 들으면 되고, 방학 때에 출석 수업을 하면 되기 때문에 술집에 나가더라도 가능하다는 이야기. 김교수는 자기가 최대한 도와 주겠다고 덧붙였다. 아가씨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김교수는 아직 열흘 이상 시간이 있으니 잘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네가 다시 방통대를 다녀서 졸업장을 받는다면, 그것이 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물론 그것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는 네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당찬 여자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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