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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중편소설(45)-9번째 만남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7.20|조회수148 목록 댓글 0

 아홉 번 째 만남

 

불교는 기독교와 비교했을 때에 일반인에게는 소극적인 종교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김교수는 기독교인으로 자처하기 때문에 불교는 잘 모르며 단지 옆방의 C교수에게서 귀동냥하여 조금씩 불교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림엽서에 적은 법구경의 유명한 구절이 나타내듯이 사랑도 하지 않고 미움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생활철학이 아닌가? 깊은 산속에서 홀로 수행하는 스님은 여신도를 만나더라도 사랑도 미움도 하지 말라는 말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거리에서 직장생활하며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서 상담도 하고 교제도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실천하기 어려운 요구이다.

 

더욱이 김교수처럼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일상인의 입장에서는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 자기 가족을 해치려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살다 보면 미운 사람을 안 만날 수가 없다. 김교수가 대학 다닐 때에 화학실험을 지도하는 조교가 있었는데 성격이 변덕스러우며 학생들을 매우 괴롭히는 그러한 형의 사람이었다. 학생들은 화학실험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잔디밭에 모여 앉아 조교 욕을 실컷 하곤 하였는데, 남을 욕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매우 통쾌한 일이다. 욕을 하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하고 요즘 말로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법구경에서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구절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사랑도 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기독교에서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며, 불교 역시 자비를 강조하는 종교가 아닌가? 사랑을 하게 되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자꾸 만나고 싶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꾸 만나고 싶은데 만나지 못하면 괴롭기 때문에 애초부터 사랑을 하지 말라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과 똑같다. 장은 식생활에 꼭 필요하고 따라서 장은 담가야 하는 것이다. 단지 장 담그는 과정에서 구더기가 끼지 못하도록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혹 많은 사람들이 장 담그면서 관리를 잘못하여 구더기가 끼더라도 장은 담가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괴로움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구경에서 권고하듯이 사랑도 미움도 하지 않으면 괴로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산다는 것은 물로 말하면 증류수와 같다고나 할까? 광물질이나 불순물이 하나도 섞여있지 않고 물 분자로만 이루어진 아주 순수한 물이 증류수이다. 그러한 증류수는 아무 맛도 냄새도 없는 어찌 보면 죽은 물이다. 증류수는 사람이 마실 수 없다. 증류수는 화학실험에서 시약을 녹이는 데만 쓰이는 물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괴로움이 없는 세상을 꿈꿀 것이 아니다. 세상살이에 괴로움이 있지만 괴로움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사는 재미가 있는 세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도 미움도 없는 세상이라면 무슨 재미로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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