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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중편소설(49)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7.27|조회수202 목록 댓글 0

아직 진달래가 피기는 이른 어느 날 아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면서 달력을 보니 그날은 춘분이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515. 보내 준 그림엽서 잘 받았다는 인사를 하더니 명랑한 목소리로 유혹을 한다. 이 아가씨가 봄바람이 났나보다.

 

오빠, 오늘은 매우 기쁜 날이에요. 한 번 만나고 싶어요.”

무슨 좋은 일인데?”

집 계약이 되었어요. 한 달 후에 양재동으로 집을 사서 이사 가요, 오빠.”

그래? 잘 되었네. 이제는 전세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동안 고생 많았지?”

. 오빠. 오늘 시간 좀 내세요.”

그래 모처럼 좋은 일이 생겼는데, 축하해 주어야지. 잠실로 갈게.”

오빠, 오늘은 보스로 한 번 오세요. 제가 기다릴께요.” 젊은 아가씨의 애교 섞인 유혹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그래, 8시까지는 도착할게.”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면 커피 두 잔 값만 있으면 되는데, 보스에서 만나려면 술값이 들고 또 팁값이 필요하니 아무래도 돈을 찾아야겠다. 은행은 이미 문을 닫았고, 24시간 돈을 찾을 수 있는 창구에서 10만원을 인출했다. 문방구에서 흰 봉투도 샀다. 아내에게는 친구가 술 한 잔 하자고 연락이 와서 오늘 좀 늦겠다고 전화를 해 두었다. (이건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다. 여자 친구도 친구이니까!) 차를 집의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세워놓고 택시를 타러 큰 길 쪽으로 나갔다. 그런데 저녁 식사를 어떻게 하나? 시계를 보니 벌써 8시가 되었다. 제과점에 들러 찹살떡 2개를 샀다. 택시를 잡아 타고서 찹살떡을 먹는데, 아무래도 기사 아저씨가 마음에 걸려 한 개를 드시라고 주었다.

 

기사 아저씨는 마침 출출하던 차에 잘 먹었다고 하더니 세상을 한탄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낮 시간에 운전하다 보면 있는 것이라고는 돈과 시간뿐인 아줌마유식하게 말하면 유한마담(有閑madam)들이 거리에 많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초보 운전이라는 딱지를 붙이고서 그랜져를 운전하는 아줌마도 있고, 모피를 입고서 계 모임에 가는 아줌마도 있단다. 기사 아저씨의 이야기로는 처음 운전하면서 그랜져를 뽑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 처음에는 소형차를 가지고 운전하는 것이 순서 아니냐는 것이다. 그랜져나 포텐샤는 보험료도 많이 들고, 부속품 값도 비싸고, 차체가 커서 주차하기도 어렵고. 즉 돈 자랑하는 것이지, 실용성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모피만 해도 그렇다. 대화를 듣다 보면 세일 기간에 1000만원짜리 모피를 샀더니 5만원어치 화장품을 경품으로 주었다고 자랑한다고 한다. 경품받는 재미로 1000만원짜리 모피를 쉽게 산다는 것이다.

 

모피 코트는 몇 년 전부터 유행이었다. 모피 옷은 여자가 부를 과시하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다. 남자가 비싼 외제차를 자랑하듯이 여자는 비싼 모피를 자랑한단다. 가장 비싼 차는 5000만원 정도이지만 가장 비싼 모피는 1억원까지 나간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김교수는 모피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그날 생계를 걱정하는 달동네 아주머니의 눈에는 1억원 짜리 모피를 입고 뽑내는 여자가 어떻게 보일까?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엄청난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모피 옷 한 벌 값이 자기 집 전세금보다도 비싸니 자기 팔자를 한탄하며 남편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모피는 수입하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도 좋을 게 없다. (IMF 이전 통계에 의하면 1995, 19962년 연속 우리나라는 미국 모피의 최대 수입국이었으며 1996년에는 유럽과 미국에서 모피를 수입하는데 2000억원을 지출하였다.)

 

생태적인 측면에서도 모피는 문제가 있다. 모피를 만들기 위하여 사육된 여우와 밍크 등 야생 동물이 매년 4000만 마리가 죽는다. 멋있는 밍크 코트 하나를 만들기 위하여 200마리의 밍크를 죽여야 한다니 불살생을 강조하신 부처님이 현대에 나타나신다면 모피 안 입기 운동의 선두에 섰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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