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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중편소설(55)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8.07|조회수143 목록 댓글 0

여자의 일생과 꽃의 일생을 비유한다면 어떨까? 김교수는 막 피어나는 목련을 보면서 18살 처녀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다음 날 하룻 만에 탐스럽게 피어있는 목련을 보면서는 여자 나이로 따져서 20살 정도라고 생각을 하였다. 며칠 후 시들기 시작하는 목련을 보면서는 이미 40대에 들어선 자기의 아내를 연상하였다. , 젊음이란 얼마나 짧고, 또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그런데, 김교수도 그랬고 아내도 그랬듯이, 젊었을 때에는 젊음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였다. ‘젊은 날의 고뇌라는 말이 있듯이 김교수가 젊었을 시절에는 제대로 젊음을 즐기지 못하고 괴롭게 보냈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라는 것이 제일 큰 이유이었을 것이다.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고 또 돈이 없어서 심지어는 우표값을 아껴야 할 정도이었으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참으로 축복받은 세대인데 안타깝게도 그들 역시 젊음이 좋다는 것을 느끼며 사는 것 같지 않다. 김교수가 그랬듯이 그들도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말하지 않는가?

 

남녀 간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리라. 좋게 말해서 로맨스 나쁘게 말하여 불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이 되풀이 된다. 일부일처의 종교인 기독교의 서슬이 퍼랬던 중세에서도 불륜은 끊이지 않았다. 근엄한 신사의 나라이며 기독교 국가인 영국에서도 불륜은 끊이지 않았다. 20세기의 신데렐라인 다이에나 공주 역시 불륜에 빠져 들다가 그만 자동차 사고로 죽고 말았다.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영웅호색이라고 해서 여자를 밝히는 남자를 오히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에너지가 넘친다고 추켜주기까지 하는 문화가 있었다. 남자에게는 성윤리가 적용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여성에게만 정조를 요구하는 불평등 윤리가 전승되어 왔다. 중동지방에서는 공식적으로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는 정조란 여성의 전유물이었는데, 그러한 전통은 아직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법으로는 1953년부터 간통죄가 규정되어 있고 매춘을 금하고는 있으나, 실제로 미아리나 천호동에서는 매춘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창녀촌에 갔다가 붙잡혀 벌금 문 사람은 아직껏 보지를 못했다. 노골적으로 창녀촌에 가지 않더라도 룸살롱같은 술집의 아가씨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술집아가씨들이 모두 돈만 주면 몸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나름대로 절제를 하는 여자도 있으며, 자기가 싫은 손님은 끝까지 거절하는 당찬 여자도 있으나, 이미 술이 취한 상태에서 하룻밤 헛사랑은 쉽게 이루어진다.

 

미스최는 어떤 형의 아가씨인가? 김교수가 지금까지 미스최를 아홉 번 만나면서 파악한 바로는 쉽게 몸을 주는 여자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아니다대신 아닌 것 같다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있지만 김교수는 열 길 남자 마음은 알아도 한 길 여자 마음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비단 미스최 만이 아니고 20년 동안 한 이불 아래서 살아온 아내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어떤 부부는 살아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잘 알게 된다고 하는데, 김교수의 경우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아직도 있다. 그렇다고 김교수에게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심리학의 원조인 프로이드가 나는 30년 동안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였으나, 아직도 모르는 것은 여자의 마음이다라고 고백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바꾸어 생각하면 아내의 입장에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김교수가 미스최와 사귀면서 느끼는 감정을 아내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날 신문을 우연히 보니 명사가 추천하는 금주의 시에 소설가 조정래씨가 추천한 시가 실려 있다. 조정래씨야말로 승주군 출생으로서 김교수와도 이제는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 시는 군산 출신으로서 한때는 스님이었던 불교시인 고은(高銀)씨가 쓴 삶이라는 시였다.

 

             

 

비록 우리가 몇 가지 가진 것 없어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의 모습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의 소리 들을 일이다

우리가 기역 니은 아는 것 없어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古群山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더 무엇을 가지겠는가

또 무엇을 生面知之로 안다 하겠는가

잎새 나서 지고 물도 차면 기우므로

우리도 그것들이 우리를 따르듯 따라서

無情한 것 아닌 몸으로 살다 갈 일이다

 

추천인: 조 정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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