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연재소설 및 에세이

중편소설(59)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8.13|조회수116 목록 댓글 0

아가씨는 745분에야 나타났다. 근사한 저녁식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8시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아가씨는 벌금을 물어야 하니까. 아가씨가 먼저 제안을 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보스에 가서 식사하고 술 한 잔 하자고. 김교수는 원래 식사만 하고 그냥 갈 계획이었는데, 예쁜 아가씨가 웃으면서 말하니 순간적으로 마음이 변했다. 두 사람은 웨이터의 영접을 받으며 보스로 들어갔다.

 

아가씨는 김교수를 룸으로 안내한 후 옷 갈아 입으러 대기실로 갔다. 노크소리가 나더니 사장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강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장사 잘 되십니까?”

그저 그렇지요.”

요즘 신문에서는 불경기라던데, 장사하시면서 그저 그렇다는 것은 잘 된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희 가게는 아직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사장님, 미스최라고 있지요. 그 아가씨 어때요?”

미스최가 저희 집에서는 보배지요. 상냥하고 잘 웃고, 찾는 손님들이 많답니다

제가 미스최와 사귄지 딱 1년 되는데, 이 아가씨가 애만 태우지 주지를 않네요.”

그래요? 미스최가 헤픈 여자는 아니지요. 그렇다고 정조대를 찬 것은 아닌데 . . . 교수님을 좋아하는 눈치던데요.”

제 이야기를 합디까?”

, 친구들에게 교수님을 만난다고 자랑하면서 교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단단히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던데요.”

그런데, 미스최가 돈 씀씀이는 어때요?”

알뜰하지요. 여기 나오는 아가씨가 30명 정도 되는데, 대개 돈을 벌어서 그냥 쓰고 말아요. 옆에서 보기에도 참 딱하지요. 그런데 미스최는 돈을 모아 얼마 전에 양재동에 집을 샀습니다. 제가 은행 융자를 알선해 주었어요. 그런 아가씨가 드물지요.”

, 제가 보기에도 돈을 낭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아마 동생하고 같이 살지요?”

정신박약아인 남동생을 끔직히 돌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업소에 나오는 아가씨치고는 신문날 일이지요.” 

 

노크소리가 나더니 미스최가 들어왔다. 검은 색 브라우스와 검은 색 원피스가 1년 전에 보았던 바로 그 옷이다. 사장님은 좋은 시간 되십시오하면서 방을 나갔다. 김교수는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옆에서 아가씨가 밥 시중을 들었다. 아가씨는 장사 끝나고 밥을 먹는다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 김교수는 6개월 전 춘분날에 와서 마시다가 남겨두고 간 양주를 가져오라고 했다. 아가씨가 나갔다 오더니 가게 규칙상 첫 병은 주문하고 그 후에 가져올 수 있다고 알려준다. 최소한 한 병은 사서 마시라는 이야기다. 그래야 장사가 되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긍할 수 있는 영업방침이다. 양주 한 병과 안주 하나를 시켰다. 6개월 만에 만나 술을 같이 마시자 아가씨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술 먹고 기분이 좋아지면 남자나 여자나 말이 많아지는 법. 그날은 아가씨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전에 잠간 들은 적이 있는 자기 집안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도 맨날 속을 썩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2달도 안 지나서 새장가를 가더란다. 얼마 전에도 노래방 사업자금으로 필요하니 1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하더란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돈을 꾸어다가 드리기도 했지만 몇 번 신용을 잃은 후에는 이제 아버지와는 돈거래를 안 하기로 했단다. 동생은 정신질환을 보이는데, 요즘도 매주 한 번씩 서울대학병원에 가서 약을 타다 먹는다고 한다.

 

술집에 나오는 아가씨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나름대로 어려운 사정들이 있다. 세상 살아가기가 어려운 것은 대학교수나 술집아가씨나 목사님들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어려운 세상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다 마찬가지이다. 목사님들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어려운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이다. 구원을 확신하는 교인은 아니지만 김교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설교 말씀을 듣고서 위로를 받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미스최 역시 누군가에 의지하면서 위로를 받고 싶어할 것이다. 어느 소설 제목에서 나오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용감무쌍한 사람은 드물다. 그녀는 아마도 가끔 나간다는 절에서 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할 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약한 존재이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이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약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하여 부부가 함께 살고 또 종교가 필요한가 보다.

 

옆 연구실의 C교수에게서 들어 보니, 불교 경전에 자기가 좋아하는 보왕삼매론이라는 좋은 말씀이 있다고 한다. 보왕삼매론의 둘째 구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세상살이에 어려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없으면 마음이 교만해지고 생활이 사치해진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어려움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참으로 공감이 가는 구절이다. 어려움이 없이 사는 사람들의 두 가지 특징은 교만과 사치이다. 잘 나가는 사람은 교만해지기 쉽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교만해지기 쉽다. 돈이 많은 사람은 사치해지기 쉽다.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교만해지고 사치해진다. 어려움 없는 사람이 교만해지지 않고 사치해지지 않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부자가 사치해지지 않고 검소하려면 항상 자기를 되돌아보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김교수가 아직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는 이르지 못했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경험으로 볼 때에, 세상살이에서 어려움이란 없어야 좋은 장애물이 아니고 꼭 있어야 할 필수품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