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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운길산 산행기 - 2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10.04|조회수231 목록 댓글 0

다행이 우리는 우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등산 출발점으로 들어가는 마을버스는 배차시간이 너무 길다고 해서 택시를 탔다. 택시는 좁은 길을 이리 저리로 꼬불꼬불 돌고 돌아 운길산 쪽으로 다가갔다. 당시는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명박과 이회창 정동영의 3파전으로 압축되고 있었다. 나는 엉뚱하게도 학군단 10기 동기생인 문국현을 지지하고 있었으며 문국현 후보의 정책이 좋아서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던 중이었다. 문국현의 열렬지지자였던 나는 택시를 타고 가면서도 나름대로 선거운동을 할 요량으로 택시기사에게 문국현 후보 이야기를 슬쩍 꺼내 보았다. 택시기사야말로 국민 여론을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는데, 기사 아저씨의 하는 말은 문국현이요? 정책은 좋지요. 그러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번에는 안 될 거에요.”라고 정책 평가와 예상 결과까지를 너무 쉽게 알려 준다. 나는 저으기 실망하면서도 택시기사의 예측을 인정하기 싫었다. 우리는 도곡3리 새재골가든 앞에서 내렸는데, 택시비는 4100원이 나왔다.

 

1130분에 산불감시초소라고 쓰인 큰 간판 앞에서 배낭을 둘러매고 우비를 걸치고 걷기를 시작했다. 그전에는 등산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다녔었는데, 얼마전에 친구가 지팡이를 2개 사용하면 훨씬 편하다고 해서 2개를 사용해 보니 정말로 편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평지를 걸을 때에 대비하여 올라갈 때는 3배의 하중이 무릎에 전달되며, 내려갈 때는 7배의 하중이 무릎에 전달된다고 한다. 지팡이 2개를 제대로 이용하면 다리에 실리는 체중의 30% 정도를 팔로 분산시켜 준다고 하니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지팡이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이들어 등산할수록 지팡이는 필수장비라고 볼 수 있다.

 

몇 채의 시골집을 지나자 바로 산길로 들어섰다. 이름을 아는 또는 이름을 모르는 가을꽃이 여기 저기에 피어 있었는데, 주종은 국화이었다. 국화는 가장 늦게까지 피는 꽃으로서 대표적인 가을꽃이다. 꽃집에서 화분에 키우는 국화는 원예종으로서 꽃잎도 크고 색깔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산야에 피는 야생화로서 국화는 대개는 들국화라고 부르는 쑥부쟁이가 제일 많고 산국, 감국, 구절초, 익모초, 개미취, 벌개미취 등이 모두 국화과이다. 가을은 국화의 계절인 셈이다. 국화는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씩씩하게 피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선조는 그 기상을 높이 평가하여 4군자에 국화를 포함시켰다.

 

조금 올라가자 금새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비가 개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먹구름은 물러가고 서쪽에서부터 푸른 하늘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등산하면서 비가 오면 고생이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오늘 산행은 안심해도 되겠다. 우비를 접어서 다시 배낭에 넣고 우리는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노인문제와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지루하지 않았다. 친구와 나는 노인문제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간단히 말해서 나이 들어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은 아니라는 이야기. 그러므로 괜히 주위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 적당히 살다가 쾍 쓰러져 하룻 만에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는 데에는 둘이서 공감을 했다. 이러한 결론은 우리가 처음으로 내린 것이 아니다. 옛사람이 말하는 오복(五福)은 서경(書經)에 나오는데 (), (), 康寧(강녕), 攸好德(유호덕), 考終命(고종명)이다. 다섯 번째인 고종명은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대립되었다. 나는 이미 밝혔지만 문국현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친구는 50명 사원을 거느린 중소기업의 사장을 몇 년 하다가 그만 부도가 나서 빈털터리가 되었다. 작기는 하지만 기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좀 더 근사하게 표현하면 실물경제의 체험이 있는 친구는 이명박 후보를 절대 지지하였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어야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나는 환경공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로서 실물경제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비판하기에는 실력이 모자랐다. 흔한 말로 종교와 정치는 친구 간에 화제에 올리지 말라고 했다. 괜히 더 논쟁을 해 보았자 결론이 나지 않고 잘못하면 싸움난다는 것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정치 이야기는 조금 꺼내다가 그만 두었다.

 

대신에 친구는 주로 등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가 얼마 전에 남도 지방에 혼자서 12일 산행을 갔다가 빗길에 길을 잃고 그만 날씨가 어두워졌는데, 사격장 부근으로 잘못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사격장에서 야간사격 훈련이 있었는지 밤새 총소리가 나서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밤을 새웠다고 한다. 이튿날 날이 밝은 후에 산을 내려와 알고 보니 밤새 나던 총소리는 진짜 총이 아니고 마을사람이 멧돼지를 쫒기 위해 터트린 일명 공갈탄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방위로 병역을 마쳐서 총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인과응보라고 나름대로 그럴듯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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