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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운길산 산행기 - 5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10.10|조회수127 목록 댓글 0

8부능선 길은 참나무 숲 사이로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중간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김밥 2줄과 7개가 들어있는 찰떡파이 한 상자가 점심메뉴였다. 산에서 먹는 김밥은 맛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찰떡파이는 홀수였기 때문에 누군가 4개를 먹어야 했다. 나는 제조회사에 대해서 불평을 했다. “아니, 찰떡파이의 갯수를 짝수로 맞추어야지, 친구 사이에 싸움나게 왜 홀수인 거야!” 결국 친구가 양보를 해서 삐적 말라 몸무게가 덜 나가는 내가 4개를 먹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서 힘을 내어 올라가니 정상이 보이는 지점에서부터 바위길이 나타났다. 바위길을 갈 때에는 지팡이가 큰 도움이 된다. 바위길을 올라갈 때는 조심스러워서 아무래도 속도가 떨어졌다. 이제는 산 아래로 경치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저기 아래로 한강이 보였다. 바위길을 지나 정상에 도달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1435분에 드디어 오늘 산행의 목적지인 운길산((雲吉山)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 있는 안내판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높이 610.2 미터. 구름이 가다가 산에 걸려서 멈춘다고 하여 운길산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강원도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화천.춘천을 거쳐 약 371km를 흘러 내려온 북한강물과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영월.충주를 거쳐 흘러 내려온 남한강물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수가 모두 수려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쪽을 바라보니 멀리 덕소와 구리시가 보이고, 서울이 그 너머에 희미하게 보였다. 동쪽으로는 팔당댐과 북한강이 내려다 보였다. 내려다보는 경치가 빼어났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를 보기 위하여 산에 간다고 해도 좋은 답변이 될 것 같았다. 정상에서 사진을 한장 찍고 수종사 쪽으로 안내판을 따라 내려왔다.

 

20분쯤 내려오니 옆쪽으로 조그만 봉우리가 있는데, 친구는 그곳에 들렸다 가자고 한다. 운길산 정상은 매우 좁았는데, 거기는 그런대로 공간이 확보된 봉우리였다. 커다란 고사목 한 그루가 정상에 있었다. 사진찍기에 좋은 고사목이었다. 친구에게 봉우리 이름을 물어보니 무명봉이라고 대답한다. 무명봉이라면 이름없는 봉우리라는 뜻인데, 그럴 듯한 이름을 하나 붙여주면 좋을 것 같았다.

 

1530분에 수종사에 도착했다. 수종사는 크지는 않고 아담한 절이다. 그런데 수종사는 대웅전 앞 마당이 매우 좁아서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데, 마당에 목련을 심어서 마당을 더욱 비좁게 만들었다. 내가 주지스님이라면 나무를 베어내어 공간을 더 만들고 싶었다. 수종사에서는 3가지가 볼 만하다. 첫째는 북쪽에 심어져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이다. 나무 옆에 작은 안내판이 있는데, 내용인즉 수령은 525살이고 나무높이는 39m이고 둘레는 7m라고 쓰여있다. 나무에 얽힌 고사로서는 세조대왕께서 수종사를 창건하시고 기념으로 식수하신 나무라고 전해온다고 쓰여있다. 둘째는 대웅전 왼쪽에 있는 오층석탑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2호라고 적혀있다. 이 탑은 차분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탑이다. 셋째는 수종사 마당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아래에 있는 마당에 누각이 있는데, 차를 마실 수 있는 장소로서 삼정헌(三鼎軒)이라고 현판이 걸려 있다. 삼정헌이란 시와 선과 차가 하나가 되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그 찻집에서는 동쪽으로 난 커다란 통유리를 통하여 팔당호수를 내려다 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사진작가라면 탐낼 만한 경치이다. 수종사에서 내려다보는 두물머리의 모습은 일찍이 서거정이 동방의 사찰 중 전망이 제일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수종사는 세조6(1460)에 건립되었는데, 세조가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서 자주 들렸던 절로 잘 알려져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두물머리(양수리)에 있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에서 가장 가까운 절이 수종사이다. 어린 시절에서 노경에 이르기까지 틈이 나면 즐겨 찾던 곳이 수종사여서, 다산의 시에는 수종사가 자주 등장한다. “수종산은 옛날에 나의 정원으로 여겼기에, 생각만 나면 훌쩍 가서 절 문에 당도했네”(水鍾山昔作吾園 意到翩然卽寺門)라는 시구에서 알 수 있듯이, 다산이 자기 집안의 정원으로 여길 만큼 가깝게 여기던 곳이 수종사였다. 1782년 봄에 22세의 젊은 다산이 수종사에 올라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春日遊水鐘寺> (봄날 수종사에서 노닐다)

 

고운 햇살 옷깃에 비추어 밝은데                  

옅은 그림자 먼 밭에 떠 있다.                            

배에서 내리니 자유로워 기분 좋고                

골짜기에 들어서니 그윽하여 즐겁구나.             

바위 풀 교묘하게 단장하였고                              

산 버섯 둥글게 불끈 솟아나왔네.                  

아스라한 강변에 어촌이 보이고                   

위태로운 산머리엔 절간이 붙어있다.               

생각이 맑아지니 사물이 경쾌하게 여겨지고        

몸이 높아지니 신선이 멀지 않구나.               

안타까움은 뜻 맞은 길손이 없어                  

현묘한 도 찾는 토론 못함이로다.

 

麗景明衣袖 輕陰汎遠田

舍舟欣散漫 入谷愛幽娟

巖卉施妝巧 山茸發怒專

漁村生逈渚 僧院寄危巓

慮澹須輕物 身高未遠仙

惜無同志客 談討溯微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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