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연재소설 및 에세이

장편소설(32) - 유학간 이야기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5.06.02|조회수234 목록 댓글 0

경영 이야기가 나오니 미스K가 말이 많아졌다. 미스K는 스파게티 식당을 열기 전 영화 회사를 운영하다 망한 적도 있었고, 또 잡지사에 근무한 적도 있단다. 연극에 출연하다가 아예 극단을 만들어 운영한 적도 있었고. 이 일 저 일을 하다 보니 그녀는 나름대로 경영에 대해서 일가견이 생겼단다. 훌륭한 경영자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데리고 있는 모든 사람을 바쁘게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K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나는 1979년 여름에 뒤늦게 유학을 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기 3달 전에 미국 뉴욕 주에 있는 시라큐스(Syracuse)라는 작은 도시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시라큐스는 이탈리아 이민들이 개척한 도시인데, 마피아로 유명한 시실리 섬에 있는 시라쿠사라는 항구도시와 지형이 비슷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남들은 대학 졸업을 하고 바로 유학을 가는데, 나는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후 5년 동안 연구소에서 근무를 하다가 뒤늦게 나이 30살이 다 되어 유학을 가게 되었지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부모님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였고, 성적이 최상위는 아니었기 때문에 국비장학금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어거지로 유학을 떠났고, 고학하면서 어렵게 공부를 했습니다.

 

미국으로 떠날 당시 나는 결혼하여 아들이 두 살이 채 되지도 않은 상태였지요. 나는 아내와 아들은 시집으로 들여보내고, 그때 돈으로 미화 5000불을 쥐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미화 5000불은 방 한 칸짜리 신혼집의 전세금과 결혼 후 2년 동안 저축한 돈을 합한 돈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하라면 아마 못할 거에요. 나는 아주 비장하기까지 했답니다. 나는 공항에서 홀짝거리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걱정 마. 나는 반드시 해낼 거야.” 나의 계획으로는 다행히 미국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면 가족과 합류할 수 있지만, 만일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한 학기 공부하고 한 학기 알바하고 그런 식으로 공부를 해서 반드시 박사 학위를 받겠다는 것이었지요.

 

왜 그렇게 박사 학위에 집착하였느냐고요? 내가 연구소에서 5년 근무했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아 글쎄, 나하고 입사 동기들이 미국 가서 3년 만에 박사학위증을 받아오면 그 날부터 공용차로 출퇴근을 시켜주고, 숙직도 빼주고, 봉급도 껑충 뛰고 등등 대우가 확 달라지는 거에요. 그래서 나는 결심했지요. 안 되겠다. 박사 학위 없이 연구소에 있다가는 속된 말로 벨이 꼴려서 못 다니겠다는 오기가 난 거지요. 그래서 무리하게 유학을 떠난 것입니다. 다행히 두 번째 학기부터 장학금을 받게 되고, 1년 만에 아내와 아들을 미국으로 불러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학금으로 세 식구가 살기에는 생활비가 모자랐지요. 모자라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는 쇼핑몰에서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하루에 4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내가 일한 쇼핑몰은 말하자면 대형 쇼핑 센터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쇼핑몰에서 일주일 먹을 식료품 등을 한꺼번에 삽니다. 여러 가지 식품과 상품을 카트에 담아 계산대로 오면 여자 점원이 영수증을 찍어서 돈 계산을 해 줍니다. 이때에 배거(bagger)라고 해서 물품을 종이 봉투에 차곡차곡 잘 넣어 카트에 싣고서 야외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까지 가서 트렁크에 짐을 부리고 카트를 다시 끌고 오는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가 한 일이 바로 그 배거였습니다. 별로 힘들지 않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일이었지요. 손님이 없으면 카운터에 있는 계산원과 서투르게 대화하면서 영어를 배우기도 하고, 미국 사회를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매니져가 두 사람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죤이었고 한 사람은 피터라는 사람이었는데, 두 사람의 경영방침이 달랐습니다. 죤이 근무하는 날은 모든 배거가 다 바쁘게 움직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의 배거가 근무하는데, 한 사람만 일할 정도로 한가하면 그 즉시 죤은 나머지 두 사람에게 무언가 할 일을 지시하였지요. 흩어진 상품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라든가, 대걸레로 매장 바닥을 청소하라든가, 등등..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우선 자판기에서 커피를 두 잔 뽑아서 같이 마시자고 주었습니다. 아마도 죤은 나보다 나이가 10살 정도 많았을 것입니다. 저는 커피를 마시면서 영어로 말했습니다. “너는 모든 사람을 바쁘게 만든다.” 그러자 죤이 대답을 했지요. “그것이 좋은 경영자이다.” 지금 은경씨가 한 말과 똑같은 말을 했던 것입니다. 진리는 어디에서나 비슷한 가 봅니다.

진리라고 말씀을 하시니, 뭐 대단한 것을 깨우친 것 같네요.”

그럼요. 은경씨는 꼭 사업에 성공할 것입니다.”

호호호, 감사합니다.” 미스K가 흡족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미스K가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주자 K교수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는 잊고서 미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