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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장편소설(40) - 음악애호가 공대 교수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5.06.26|조회수248 목록 댓글 0

다음 날 오후, 강의 시간이 비는 틈을 타서 K교수는 봉담읍 장터에 나가서 3000원 주고 조롱박 모종을 3개 사서 차에 싣고 미녀식당으로 갔다. 마침 미스K가 자리에 있었다. K교수는 모종을 얼른 내려 놓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서 차도 마시지 않고 식당을 나왔다. 미스K가 문 밖에까지 따라 나오며 진심이 묻어나오는 말투로 말했다. “조롱박을 잘 키우겠습니다. K교수님, 정말 고마워요.”

 

계절은 이제 늦봄이 지나고 있었다. 미녀 식당의 베란다 밖으로 보이던 화려했던 봄꽃은 다 지고 이제는 잎이 무성해졌다. 개나리, 목련수수꽃다리, 장미에 이어서 향기가 진한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아카시아꽃은 꿀이 많아서 양봉업자들이 제일 소중히 여기는 꽃이다. 아카시아꽃이 질 무렵이면 봄도 지나간다고 볼 수 있다.

 

며칠 후, K교수는 공과대학의 나)교수와 점심 시간에 미녀식당에 갔다. 나)교수 역시 미스K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K교수는 직관적으로 알아 차렸다. 아마도 나)교수가 라이벌이 될지도 몰라. 나)교수는 서울 출신이어서 그런지 시골 출신인 K교수에 비해 매너도 세련되었고, 영어도 훨씬 잘하고, 또 워낙 박식해서 K교수는 은근히 기가 죽는 경우를 몇 번 경험한 바 있었다. K교수는 소형차인 프라이드를 타는데, 나)교수는 쌍용에서 만든 고급차인 췌어맨을 타고 다녔다. 그 날도 두 사람은 나)교수가 운전하는 췌어맨을 타고 미녀식당에 갔다.

 

나)교수는 특히 K교수가 취약한 부분인 음악과 미술 부문에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좋은 그림을 비싼 돈 주면서 살만큼 재력도 튼튼했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온몸으로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모은 음악 CD2000장이나 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K교수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그림은 그저 색의 조합일 뿐이며, 아무리 들어 보아도 음악은 음의 조합일 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K교수는 지금까지 자기 돈으로 음악회 티켓을 사거나 미술 전람회 입장권을 사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K교수의 연구실에는 그림 한 점 걸려있지 않았고, 오디어 시설도 일체 없었다.  예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K교수는 무미건조한 사람이었다.

 

미스K가 다가오더니 두 사람에게 미소를 띄며 인사를 했다. 나)교수가 미녀식당에 처음 온 것은 아닌 듯하다. K교수가 유심히 관찰하니 미스K의 눈동자가 나)교수를 향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은근한 경쟁심 같은 것을 느끼면서 미스K와 간단한 인사말을 교환한 후 두 사람은 스파게티를 주문하였다.

 

영업은 날로 번창하지요?”

그저 그래요. 교수님들이 이렇게 찾아 주시니 그럭저럭 운영이 되지요.”

사업하는 사람은 엄살이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사업하면서 그저 그렇다는 것은 상당히 잘 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하던데요. 금방 부자 되시겠어요.”

아니에요. 생각보다 손님이 많지 않아요. 큰 길에서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면 홍보를 좀 쎄게 하시면 어떨까요?”

그러면 좋겠지요.”

 

그날 두 사람은 홍보 전략에 대해서 미스K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길가에 플래카드를 내거는 방안, 벼룩시장에 광고를 내는 방안, 신문지에 전단을 끼워 돌리는 방안 등등. 두 사람이 머리를 짜내어 생각해 보니 근사한 홍보 방안이 여러 가지로 튀어 나온다. 미녀식당은 음식 맛은 그런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가 충분하므로 홍보만 잘 하면 될 것 같다. 마침 식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미스K는 테이블에 같이 앉아 커피를 마시는 짬을 낼 수가 있었다.

 

염려했던 대로 그날 화제는 주로 나)교수가 이끌어 갔다. 유럽 여행한 이야기, 호텔 이야기, 음식 이야기, 미국에서 살던 이야기, 음악가의 숨겨진 비사 등등 화제는 끝이 없었다. 평상시와는 달리 듣는 입장이 되어 버린 K교수는 나)교수의 풍부한 화제와 능숙한 화술에 감탄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하였다. 미스K가 두 사람을 비교한 후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까?

 

아무래도 K교수는 나)교수와 비교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K교수는 열등감과 함께 솟아오르는 질투심을 느꼈다. 질투가 여자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은근하지만, 남자에게도 분명 질투심은 존재하는 것이다. 스파게티를 먹고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K교수의 표정은 시무룩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K교수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읽은 나)교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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